AC.30.심화
2.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He that believeth on the son hath eternal life, but he that believeth not on the son sha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shall abide upon him (John 3:36).
요3:36이 AC.30에 인용된 이유는, 넷째 날의 두 광명체 가운데 특별히 ‘달’로 상징되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30에서 스베덴보리는 해는 사랑을, 달은 신앙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참된 신앙은 결코 사랑과 분리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신앙을 단순히 ‘믿는 것’, ‘교리를 인정하는 것’, ‘올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런 것은 신앙의 외형일 뿐이며, 참된 신앙은 반드시 사랑과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요3:36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겉으로 보면 이 구절은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것은 후반부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believeth not’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의 의미는 단순히 ‘믿지 않는다’가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다’, ‘복종하지 않는다’에 더 가깝습니다. 즉 주님은 여기서 단순한 지적 믿음과 실제 삶의 순종을 분리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스베덴보리에게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 자신 ‘믿음’을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순종’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신앙이 단순한 생각이나 교리적 동의라면, 왜 주님은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영생에서 제외하셨겠습니까? 이는 참된 신앙이 반드시 삶으로 나타나야 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AC.30에서 이 구절은 ‘신앙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인용됩니다. 사랑 없는 신앙은 달이 해의 빛을 잃은 것과 같고, 삶의 순종 없는 신앙은 생명이 없는 신앙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신앙은 사랑과 결합된 신앙이며, 이것이 넷째 날의 달이 해로부터 빛을 받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결국 AC.30에서 요3:36은 단순히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증거 구절이 아니라, ‘참된 신앙은 사랑과 순종을 포함하며, 그런 신앙만이 생명을 가진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인용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넷째 날의 해와 달, 곧 사랑과 신앙의 관계를 설명하는 AC.30의 핵심 주제입니다.
AC.30, 창1:14-17, ‘사랑과 신앙의 광명체 : 생명 얻은 신앙이 다스리는 넷째 날’(AC.30-37)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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