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40.심화

 

5. ‘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7:15)

 

 

AC.340에서 스베덴보리가 출17: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를 인용한 이유는 앞서 이스마엘, 르우벤, 시므온, 유다의 이름을 인용한 이유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고대에는 어떤 새로운 사건이나 상태가 나타났을 때, 그 의미와 성질을 이름에 담아 표현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앞의 네 사례가 모두 사람의 이름’이었다면, 이번에는 제단의 이름’을 예로 듭니다. 따라서 이 마지막 사례는 이름에 의미를 담는 고대의 방식이 사람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사물이나 장소에도 적용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17의 배경은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입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우는 동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으며,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마침내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그 후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합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제단에 아무 의미 없이 하나의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그 이름에 담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AC.340의 논점은 여호와 닛시’의 속뜻 자체를 깊이 해설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것은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했다’는 명명의 방식입니다.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의 의미를 하나의 이름으로 표현하여 기억하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앞에서 사람에게 이름을 붙일 때 보았던 것과 같은 원리가 이번에는 제단에도 적용됩니다.

 

이 사례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이름’의 의미를 단순한 개인 이름의 어원 문제로 한정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 르우벤, 시므온, 유다까지만 예로 들었다면 성경 시대에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출생 상황에 맞추어 이름을 지었구나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마지막에 사람도 아닌 제단’을 가져옵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닛시’라고 한 것입니다. 이로써 이름은 단순한 사람의 호칭을 넘어 어떤 대상의 성질과 의미, 그와 관련된 상태를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가인’이라는 이름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본래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랑 안에서 퍼셉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신앙에 속한 것들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의 신앙의 교리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마음에 새겨져 있던 것이 이제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되었고, 그들은 그것을 마치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고 얻은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상태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표현하고, 그렇게 나타난 신앙의 교리를 가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닛시’와 가인’이 같은 것을 의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두 이름의 속뜻을 서로 연결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비교하는 것은 오직 이름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승리하게 하신 일을 나타내기 위해 제단에 여호와 닛시’라는 이름을 붙였듯이, 태고인들도 새롭게 나타난 어떤 교리와 상태의 성질을 이름에 담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AC.340에 나온 사례들을 한꺼번에 놓고 보면 스베덴보리의 논증 방식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갈의 고통을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것을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에 담았고, 레아의 괴로움을 여호와께서 보셨다’는 것을 르우벤’이라는 이름에 담았으며, 자신이 사랑받지 못함을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것을 시므온’이라는 이름에 담았습니다. 또한 이번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상태를 유다’라는 이름에 담았고,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깃발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을 제단의 이름 여호와 닛시’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원리에 따라, 태고교회에서 신앙의 교리를 마치 새롭게 얻은 것처럼 여긴 상태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가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특히 출17:15의 사례는 바로 앞 AC.339와 연결해서 읽을 때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AC.339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인들이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어떤 것들을 나타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AC.340에서는 실제 말씀 안에서 이름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 줍니다. ‘여호와 닛시’는 그 가운데 마지막 사례로서, 이름이 단순한 사람의 호칭이 아니라 어떤 영적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더욱 넓게 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출17:15 AC.340에서 인용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모세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나타난 여호와의 도우심과 승리를 제단의 이름에 담아 여호와 닛시’라고 한 것처럼, 고대인들은 어떤 새로운 일이나 상태가 나타나면 그 성질을 이름에 담아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가인’이라는 이름 역시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말로 표현된 태고교회의 어떤 상태와 교리의 성질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사례에는 한 가지 중요한 효과가 있습니다. ‘가인’이라는 이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가인이라는 역사적 개인이 왜 그런 이름을 얻었는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단도 여호와 닛시’라는 이름을 통해 그와 관련된 상태와 의미를 나타낼 수 있었듯이, 태고인들은 교회에 속한 어떤 교리나 영적 상태에도 이름을 붙여 그 성질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AC.339에서 설명한 창4의 계보를 이해하는 방식과 정확히 이어집니다.

 

결국 여호와 닛시’는 AC.340에 나온 여러 예 가운데 마지막이면서, 스베덴보리의 설명을 가장 넓게 열어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단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어떤 것의 성질과 상태를 담아 나타낼 수 있다.’ 이 원리를 확인하고 다시 창4로 돌아가면, ‘가인’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태고교회 안에서 본래 사랑 안에 있던 신앙에 속한 것들을 따로 구별하여 교리로 만들고, 그것을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인식하고 인정하기 시작한 변화를 담아 나타내는 이름이라는 AC.340의 설명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AC.340, 창4:1,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4:1) AC.34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I have gotten a man, Jehov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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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40, 심화 4, ‘창29:35’

AC.340.심화 4. ‘창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29:35) AC.34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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