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창4:12)

 

 

380. ‘밭을 갈다’는 이런 (이웃 사랑에서) 갈라져 나옴이나 이단 경작을 상징합니다. To “till the ground” signifies to cultivate this schism or heresy;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는 위와 같은 노력은 열매가 없음을 상징합니다. it shall not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signifies that it is barren.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는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is not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381. ‘밭을 갈다’의 의미가 이런 갈라져 나옴이나 이단 경작임은 방금까지 말한 ‘’이 상징하는 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That to “till the ground” means to cultivate this schism or heresy appears from the signification of “ground,” of which we have just now spoken;

 

효력을 주지 않다’가 그런 노력은 열매 없음을 상징함이 분명한 것은, 땅에 관한 언급을 보아도 그렇고, 위에서 말한 대로, 지금 보고 있는 이 사람들, 곧, 이웃 사랑 없는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자기들은) 신앙이 전혀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아도 그렇고, 뿐만 아니라, 표현들 자체도 그렇습니다. and that its “not yielding its strength” denotes its barrenness, is evident both from what was said concerning ground, and from the words themselves, as well as from this consideration, that those who profess faith without charity, profess no faith, as was said above.

 

 

382.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는 것은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 상징함이 분명한 것은, 말씀에서 ‘방황함’과 ‘피함’의 상징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That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signifies not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andering” and “fleeing away” in the Word.

 

예레미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As in Jeremiah:

 

13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The prophets and priests wander blind in the streets, they have been polluted in blood; the things they cannot do they touch with garments, (애4:13-14)

 

여기서 ‘선지자들’은 가르치는 사람들이며, ‘제사장들’은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where “prophets” are those who teach, and “priests,” those who live accordingly;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하는 것은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to “wander blind in the streets” is not to know what is true and good.

 

[2] 아모스에서 In Amos:

 

7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A part of the field was rained upon, and the part of the field whereupon it rained not withered; so two or three cities shall wander unto one city to drink waters, and shall not be satisfied, (암4:7-8)

 

여기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는 이웃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교리를 상징합니다; where by the “part of the field on which it rained” is signified the doctrine of faith from charity;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는 이웃 사랑이 없는 신앙의 교리를 상징합니다. and by the “part” or “piece” “of the field on which it did not rain,” the doctrine of faith without charity.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또한 진리 추구를 가리킵니다. To “wander to drink the waters” likewise denotes to seek after truth.

 

[3] 호세아에서 In Hosea:

 

16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Ephraim is smitten, their root is dried up, they shall bear no fruit; my God will cast them away, because they did not hearken unto him; and they shall be wanderers among the nations. (호9:16, 17)

 

여기 ‘에브라임’은 진리 혹은 신앙을 이해함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장자였기 때문입니다. Ephraim” here denotes the understanding of truth, or faith, because he was the firstborn of Joseph;

 

그 뿌리가 말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웃 사랑을 가리킵니다. the “root which was dried up” denotes charity that cannot bear fruit;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는 무엇이 진리요 선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wanderers among the nations” are those who do not know what is true and good.

 

[4]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8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3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Go ye up against Arabia, and devastate the sons of the east. Flee, wander ye exceedingly; the inhabitants of Hazor have let themselves down into the deep for a habitation. (렘49:28, 30)

 

게달’과 ‘동방 자손들’은 하늘의 부 혹은 사랑에 속한 것들의 풍성함을 상징합니다. 이런 것들이 황폐해질 때, ‘도망하라’, ‘멀리 가라’, 즉, ‘피하며 유리하는 자’라는 말을 듣는데, 이때 이들은 선한 일을 전혀 못 합니다. Arabia” and the “sons of the east,” signify the possession of celestial riches, or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which, when vastated, are said to “flee,” and “wander,” that is, to be “fugitives and wanderers,” when they do nought of what is good.

 

하솔 주민’, 혹은 영적 부를 보유한 사람들, 이 영적 부는 신앙의 부인데, 이런 말을 듣습니다. ‘하솔 주민아 깊은 곳에 살라’, 즉, 그들은 소멸된다는 말입니다. Of the “inhabitants of Hazor,” or those who possess spiritual riches, which are those of faith, it is said that they “let themselves down into the deep,” that is, they perish.

 

[5] 이사야에서 In Isaiah: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All thy foremost ones wander together, they are bound before the bow, they have fled from far, (사22:3)

 

환상의 골짜기’, 혹은 신앙은 이웃 사랑 없이도 가능하다는 환상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speaking of the “valley of vision,” or the fantasy that faith is possible without charity.

 

이어지는 구절인 14절에서 그 이유, 그렇게 말씀하시는 까닭을 보게 되는데요, 이웃 사랑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온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피하며 유리하는 자’, 즉, 선과 진리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Hence appears the reason why it is said, in a subsequent verse (Isa. 22:14), that he who professes faith that is apart from charity is a “fugitive and a wanderer,” that is, knows nothing of good and truth.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22:14)

2021-05-30(D1)-창세기(창4,12, AC.380-382),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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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2v4nAz-89A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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