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1-8

 

554.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state of the people before the flood.

 

THE INTERNAL SENSE

 

560.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기 전에 먼저, 홍수 이전 교회의 상황은 어땠는지를 좀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efore proceeding further we may mention how the case was with the church before the flood.

 

일반적으로는, 후대에 일어난 교회들의 상황과 같았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즉, 주님 강림 전 유대교회의 경우나, 주님 강림 후 기독교회의 경우처럼, 참 신앙 지식의 부패와 타락, 뒤집힘 및 불순물을 섞음 등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홍수 전 교회에 속한 사람의 경우,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서운 신념, 곧 소름 끼치는 망상을 품게 되었고, 신앙에 속한 선과 진리를 역겨운 갈망, 욕망에 철저히 잠기게 하여 그 결과, 그들 안에 리메인스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지경까지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Speaking generally, it was as with succeeding churches, as with the Jewish church before the Lord’s advent, and the Christian church after his advent, in that it had corrupted and adulterated the knowledges of true faith; but specifically, as regards the man of the church before the flood, he in course of time conceived direful persuasions, and immersed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in foul yearnings, insomuch that there were scarcely any remains in them.

 

그들이 이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사실은 스스로를 질식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리메인스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AC.530), 사람을 짐승 수준의 삶에서 인간의 삶으로 고양하는 것이 바로 이 리메인스이기 때문입니다. When they came into this state they were suffocated as if of themselves, for man cannot live without remains; for, as we have said, it is in the remains that the life of man is superior to that of brutes.

 

리메인스를 가지고, 즉, 주님에게서 온 리메인스를 통해서, 사람은 사람이 될 수도,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 수도, 온갖 종류의 일들을 생각할 수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리메인스 그 안에는 영적, 천적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From remains, that is, through remains from the Lord, man is able to be as man,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to reflect upon matters of every kind, and consequently to think and to reason; for in remains alone is ther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561. 그러면 리메인스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But what are remains?

 

리메인스는 사람이 유년기부터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배워 그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선과 진리뿐 아니라, 거기서 기원한 모든 상태, 가령, 영유아기 순진무구한 상태, 부모, 형제, 선생님과 친구를 향한 사랑의 상태,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 및 가난한 자, 빈궁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상태 등, 한 마디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상태를 가리킵니다. They are not only the goods and truths that a man has learned from the Lord’s Word from infancy, and has thus impressed on his memory, but they are also all the states thence derived, such as states of innocence from infancy; states of love toward parents, brothers, teachers, friends; states of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nd also of pity for the poor and needy; in a word, all states of good and truth.

 

선과 진리와 함께 기억에 각인된 이런 상태를 일컬어 리메인스라 합니다. 이것은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관되는데, 이때 주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도 눈치 못 채게 조심조심 그의 속사람 안에 쌓아가십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즉, 악과 거짓에 관련된 것들하고는 철저히 격리됩니다. These states together with the goods and truths impressed on the memory, are called remains, which are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and are stored up, entirely without his knowledge,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ompletely separated from the things that are proper to man, that is, from evils and falsities.

 

이 모든 상태는 그 가운데 아주 작은 것조차 잃는 것이 없도록 주님에 의해 사람 안에 보존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도록 전에 이런 경험을 했는데요, 사람의 모든 상태는 그의 영유아 때부터 아주 늙었을 때까지 내세에 그대로 보존될 뿐 아니라 다시 체험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상태는 그가 현세에 살면서 처음 겪었던 상태 그대로 정확히 다시 체험됩니다. All these states are so preserved in man by the Lord that not the least of them is lost, as I have been given to know from the fact that every state of a man, from his infancy to extreme old age, not only remains in the other life, but also returns; in fact his states return exactly as they were while he lived in this world.

 

※ 사람의 사후, 그 영은 둘 또는 세 번의 상태변화를 겪게 되는데 보통은 첫 번째 변화 때, 지상의 모든 기억과 경험 등 외적인 것들이 휴면상태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즉, 주님이 원하실 때는 언제든지 꺼내어 다시 생생하게 재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 영이 자신의 행적을 부인하거나 무엇을 확인해야 할 때 등이 되겠지요.

 

우리 기억에 아로새겨진 선과 진리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이노센스나 체어리티도 마찬가지, 즉, 하나도 잃는 것은 없습니다. Not only do the goods and truths of memory thus remain and return, but also all states of innocence and charity.

 

그리고 악과 거짓의 상태가 재생, 유지 및 다시 휴면상태로 들어갈 때,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 심지어 아주 작은 것조차 말이지요, 이때는 주님이 선한 상태들을 가지고 누그러뜨리십니다. And when states of evil and falsity recur—for each and all of these, even the smallest, also remain and return—then these states are tempered by the Lord by means of the good states.

 

이 모든 사실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리메인스가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면, 그는 반드시 영원한 지옥살이, 곧, 영원히 지옥에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AC.468번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From all this it is evident that if a man had no remains he must necessarily be in eternal damnation. (See what was said before at n. 468.)

 

 

562. 홍수 전 사람들은 결국 리메인스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게 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독특한 멘탈 때문인데요,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떠오르는 모든 생각에 관해, 무서울 정도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종교적 신념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멘탈적 특성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고자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들은 어마어마한 자아 사랑의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을 신으로 여기며, 자기들이 하는 생각은 무엇이든지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people before the flood were such that at last they had almost no remains, because they were of such a genius that they became imbued with direful and abominable persuasions concerning all things that occurred to them or came into their thought, so that they would not go back from them one whit, for they were possessed with the most enormous love of self, and supposed themselves to be as gods, and that whatever they thought was Divine.

 

이런 종교적 신념, 혹은 종교적 설득력, 이쯤 되면 종교적 수준의 자기기만인데요, 이런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어떤 사람들한테서도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고 질식시켜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내세에서는 이 홍수 전 시대 사람들은 다른 영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는데요, 이들이 나타나면 이들은 공포스럽다 판명된 자신들의 이 종교적 신념을 주입함으로써 사람들의 모든 사고능력을 거두어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이쯤 하고, 나머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허락하심으로 이어지는 그 부분에서 계속하겠습니다. (AC.1265-1272) No such persuasion has ever existed in any people before or since, for it is deadly or suffocative, and therefore in the other life the antediluvians cannot be with any other spirits, for when they are present they take away from them all power of thought by injecting their fearfully determined persuasions, not to mention other matters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shall be spoken of in what follows.

 

 

563. 이런 종류의 자기기만이 사람을 점유, 점령하게 되면, 이것은 무슨 접착제처럼 착 달라붙어 만일 이것이 없었으면 여전히 남아있었을 선과 진리로 하여금 도저히 남아나게도, 더 이상 쌓이게도 하질 않습니다. 또 그동안 쌓아놓은 것들은 사용할 수도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들은 이런 망상의 정상, 끝판왕에 도달, 결국 그들에게 부합하는 종말, 정말 전무후무한 멸망에 이르게 되며, 홍수와 다름없는 범람으로 질식당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종말을 ‘홍수’에 비유하며, 태고인들의 언어습관, 관용적 표현에 따라 같은 것, 곧, 홍수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When such a persuasion takes possession of a man, it is like a glue which catches in its sticky embrace the goods and truths that otherwise would be remains, the result of which is that remains can no longer be stored up, and those which have been stored up can be of no use; and therefore when these people arrived at the summit of such persuasion they became extinct of their own accord, and were suffocated by an inundation not unlike a flood; and therefore their extinction is compared to a “flood,” and also,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most ancient people, is described as one.

 

 

THE CONTENTS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And it came to pass that man began to multiply himself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And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an that they were good; and they took to themselves wives of all that they chose.

 

555. 사람과 더불어 교회가 있었던 곳에 갈망(yearnings, 동경, 욕구, appetites)이 일어나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갈망이 바로 ‘딸들’입니다. That with man, where the church was, yearnings—which are the “daughters”—began to reign.

 

※ ‘사람’은 그 시절 존재하던 인류를, ‘땅 위’는 교회가 있던 모든 지역을, ‘딸들’은 사람의 의지에 속하는 것들이며, 결과적으로는 갈망, 욕망을 상징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그 안에 선을 위한 게 있으면 여전히 의지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때는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대홍수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 초유의 종말을 앞둔 이 당시 마지막 인류가 가진 갈망, 이 선이 사라진 갈망은 ‘끔찍하다’, ‘지독하다’, ‘혐오스럽다’, ‘더럽다’와 같은 형용사를 붙여야만 할 정도의 갈망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신앙의 가르침들을 자신들의 갈망으로 결합, 그 결과, 자기들이 악과 거짓 가운데 있음을 확실히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라는 표현은 이런 뜻입니다. (1-2절) Also that they conjoin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with their yearnings, and thus confirmed themselves in evils and falsities, which is signified by “the sons of God taking to themselves wives of the daughters of man” (verses 1–2).

 

※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앙의 교리, 신학, 가르침들을, ‘사람의 딸들’은 선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의지, 곧 혐오스러울 정도로 더러워진 갈망을 말합니다.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556. 그 결과, 선과 진리의 리메인스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언되는데,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리메인스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게 하시려고, 사람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백이십 년’은 리메인스를 가리킵니다. (3절) And whereas there were thus no remains of good and truth left, it is foretold that man should be differently formed, in order that he might have remains, which are “a hundred and twenty years” (verse 3).

 

※ 즉, 인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도함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퍼셉션의 유무입니다. 퍼셉션은 지상의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하는 태생적 은사, 능력으로서 ‘내적 호흡’(internal respiration)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귀하다 못해 황송하기까지 한 영적 선물을 그러나 태고교회 후손들은 하찮게 여겼고, 그 결과, 홍수 즈음하여서는 깡그리 박탈당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박탈당했다’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은 이런 귀한 하늘의 선물이 타락한 사람들 안에 도무지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홍수로 표현된 종말 역시 사실은 이들이 자초한 것이고요... 결국, 이렇게 소멸될 인류를, 그러나 주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그럼, 퍼셉션을 대신할 새로운 뭔가를 준비, 인류가 여전히 하늘, 곧 나와 연결될 수 있게 해야겠다’ 하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주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대용품이 바로 ‘양심’입니다. 주님은 홍수 후 인류에게는 이 ‘양심’이 있게 하셔서, 이것으로 계속해서 주님과 연결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4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There were Nephilim in the earth in those days; and most especially after the sons of God went in unto the daughters of man, and they bare to them; the same became mighty men, who were of old, men of renown.

 

557. 신앙의 가르침들을 자기들이 가진 욕망 실현의 도구로 이용하고, 이런 상태로 자기를 사랑하고, 자아를 사랑하면서, 남들과 비교, 자기들만이 가진 위대함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기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 하는, 끔찍할 정도로 소름 돋는 망상, 즉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런 자들이 바로 ‘네피림’입니다. (4절) Those who immersed 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in their yearnings, and in consequence of this as well as of the love of self conceived dreadful persuasions of their own greatness in comparison with others, are signified by the “Nephilim” (verse 4).

 

※ ‘네피림’은, ‘아,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아, 나는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가...’ 하는 신념(persuasion)과 망상(delusions)에 사로잡혀, 거룩하거나 참된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긴 사람들을,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는, 이런 일이, 그들이 신앙에 관한 가르침을 그들의 갈망(yearnings)과 욕구(appetites)에 잠기게 하여 거짓된 것을 신념화했을 때 일어났음을, ‘그들은 용사라’는 그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음을,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는 전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음을 각각 말합니다.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And Jehovah saw that the evil of man was multiplied on the earth, and that all the imag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every day.

 

558. 이렇게 되고 나자 선과 진리에 관한 무슨 의지나 퍼셉션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5절) In consequence of this there no longer remained any will or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verse 5).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지기 시작했음을,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는, 진리와 선에 관한 퍼셉션이 전혀 없었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it repented Jehovah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I will destroy man whom I have created, from upon the faces of the ground, both man and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fowl of the heavens; for it repenteth me that I have made him.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And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Jehovah.

 

559.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주님의 자비(mercy)에 대한 묘사입니다. (6절) The mercy of the Lord is described by “repenting and grieving at heart” (verse 6).

 

※ 6절, ‘한탄하사’는 자비(mercy)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걸 상징합니다. ‘한탄하사’(후회, repent)는 지혜와 관련이 있고,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가 자비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상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 곧 결론지을 수 있는데요, 여호와는 결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만물을 온전히 영원부터 예견(豫見, foresee)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람을 지으셨을 때, 즉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온전하게 하사 천적 인간이 되게 하셨을 때에도 그는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지금 여기서 설명 중인 이런 인종이 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예견하셨고, 그래서 후회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들은 이런 갈망과 이런 신념은 사람을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을 입증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7절) That they became such that their yearnings and persuasions must needs prove fatal to them (verse 7).

 

※ 7절, ‘이르시되 내가 사람을 쓸어버리되’는 인류가 전멸을 자초할 것을,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는 태고교회의 후손이었던 사람들을,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는 그들의 의지 안에 무엇이 있든지 그것이 그들을 전멸시킬 것을, ‘공중의 새까지’는 그들의 지적 능력 또는 사고능력 안에 무엇이 있든지를,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는 위에서(cf. AC.587-588) 살핀 대로, 불쌍히 여기심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건짐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려면 새로운 교회가 반드시 일어나야 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노아’입니다. (8절) Therefore in order that the human race might be saved, a new church should arise, which is “Noah” (verse 8).

 

※ 8절, ‘노아’는 새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는 말씀은, 주님은 인류가 이렇게 구원받게 될 것임을 예견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이것이 인류가 구원받는 방법임을 주님은 예견하셨다는 것입니다.

 

 

597. ‘노아’는 고대교회라 하는 새 교회를 상징하는데요, 고대교회라는 명칭은 홍수 전 존재했던 태고교회와, 홍수 후 존재했던 이 교회를 구별해 부르기 위한 것입니다. By “Noah” is signified a new church, whi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for the sake of distinction between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before the flood, and that which was after the flood.

 

이들 두 교회의 상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The states of these two churches were entirely different.

 

태고교회의 상태는,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거기서 나오는 진리에 관한 일종의 퍼셉션(perception, 지각, 배우지 않고도 주님의 선과 진리를 아는 타고난 능력)을 받은 그런 상태였습니다. The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such that they had from the Lord a perception of good and the derivative truth.

 

고대교회, 혹은 ‘노아’의 상태는, 그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일종의 양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The state of the ancient church, or “Noah,” became such that they had a conscience of good and truth.

 

즉, 선량함(goodness)과 진실에 관한 일종의 양심으로 상태가 바뀐 것입니다.

 

태고교회와 고대교회 간 상태의 차이는 이런 차이, 곧 퍼셉션을 갖는 것과 양심을 갖는 것 간 차이였습니다. Such as is the difference between having perception and having conscience, such was the difference of state of the most ancient and the ancient churches.

 

퍼셉션은 양심이 아닙니다. 천적(天的, celestial) 천사들은 퍼셉션을, 영적(靈的, spiritual) 천사들은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Perception is not conscience: the celestial have perception; the spiritual have conscience.

 

태고교회는 천적이었고, 고대교회는 영적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as celestial, the ancient was spiritual.

 

[2] 태고교회는 영들 및 천사들과 어울려 지냄을 통해, 그리고 비전 및 꿈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고,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는 선과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이런 걸 인식하게 되자, 이번에는 이런 퍼셉션 능력으로 얻게 된 무수한 인사이트들(insights, 통찰력)을 통해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들, 말하자면, 엑시엄(axioms, 자명한 이치, 公理)들을 컨펌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인사이트들은 특정 디테일들을 구성하는데, 넓은 카테고리들이 이런 디테일들로 채워지는 그런 것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had immediate revelation from the Lord by consort with spirits and angels, as also by visions and dreams; whereby it was given them to have a general knowledge of what was good and true; and after they had acquired a general knowledge, these general leading principles, as we may call them, were confirmed by things innumerable, by means of perceptions; and these innumerable things were the particulars or individual things of the general principles to which they related.

 

즉, 천국, 곧 주님의 신적 질서의 나라, 질서정연한 진리 체계가 차곡차곡 각 사람 내면에 자리 잡아갔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원리들이 날마다 컨펌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이 원리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걸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부합하면 그런 것으로 지각했습니다. Thus were the general leading principles corroborated day by day; whatever was not in agreement with the general principles they perceived not to be so; and whatever was in agreement with them they perceived to be so.

 

즉, 주님의 신적 질서의 근본에 대한 감각이 저변에 깔려 있어 어떤 것이 그 질서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직관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천적 천사들이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Such also is the state of the celestial angels.

 

[3] 태고교회의 보편적 원리들, 곧 엑시엄들은 천적이며, 영원한 진리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주님이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신다. 모든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모든 생명은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사람의 것(own, 사람에게 고유한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죽은 것이다 등등... 그외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general principles of the most ancient church were heavenly and eternal truths—as that the Lord governs the universe, that all good and truth is from the Lord, that all life is from the Lord, that man’s own is nothing but evil, and in itself is dead; with many others of similar character.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진리들, 원리들을 컨펌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것들, 생각들에 관한 퍼셉션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And they received from the Lord a perception of countless things that confirmed and supported these truths.

 

그들에게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었습니다. With them love was the principal of faith.

 

그들로 하여금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있도록 주님이 그들을 북돋워 주신 방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cf. AC.32:2, 202, 398) By love it was given them of the Lord to perceive whatever was of faith, and hence with them faith was love, as was said before.

 

그러나 고대교회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고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ancient church became entirely different,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2021-09-03(D6)-매일예배(2182, 아케이나말씀리딩.창6,1-8), '사람의 딸들, 백이십 년, 네피림, 한탄하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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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cAQjD8rNMk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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