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

 

1562. 5절,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Verse 5. And Lot also, who went with Abram, had flock and herd, and tents.

 

아브람의 일행 롯도’, 주님 안에 있었던 겉 사람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겉 사람을 풍성하게 하는 것들을 각각 의미하며, ‘양과 소’는 겉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고, ‘장막’은 그의 예배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신들을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하고 있었습니다. And Lot also, who went with Abram” signifies the external man that was in the Lord; “had flock and herd, and tents” signifies those things in which the external man abounds; “flock and herd” are the external man’s possessions; “tents” are his worship: these things were separating themselves from the internal man.

 

 

1563. 아브람의 일행 롯도 And Lot also, who went with Abram.

 

이것이 ‘주님 안에 있었던 겉 사람을 의미함’은 롯(Lot)이 표상하는 바가 감각적인(sensuous) 사람, 같은 말이지만, 겉 사람임을 생각할 때,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e external man that was in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representation of Lot as being the sensuous man, or what is the same, the external man.

 

누구나 다 그 안에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있다, 혹은 같은 말이지만, 사람은 겉과 속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얘깁니다. (※ 전에 말씀드린 내용에 대해 보시려면 AC.978, 994-995, 1015 참조) That there is an internal and an external in every man, or what is the same, that man is internal and external, is known to everyone within the church (concerning which see what has been said before, n. 978, 994–995, 1015).

 

겉 사람은 그 생명을 주로 속 사람, 즉, 영이나 혼으로부터 받습니다. The external man receives its life principally from the internal man, that is, from the spirit or soul.

 

겉 사람의 생명 자체가 일반적으로는 속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겉 사람의 유기적 그릇들(organic vessels), 곧 속 사람 특유의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담게 되어 있는, 겉 사람에게 있어 속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그릇들이 열리지 않는 한, 겉 사람한테 어떻게든 담길 수가 없습니다. Thence comes its very life in general; but this life cannot be received in its particulars, or distinctly, by the external man, unless its organic vessels are opened, which must be the recipients of the particulars and the singulars of the internal man.

 

※ 일단 무엇이든 뭘 담으려면 먼저 뚜껑이 열려야 하는데 안 열린다는 말이지요.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들은 오직 주님의 생명,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에 대해서만 열리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이라고 다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겉 사람의 모든 감각적 즐거움도 그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주 안에서 그 쓰임새를 따라 누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활짝 열립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한 정욕과 자아와 세상을 사랑함으로 말미암는다면 그때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 건 생명이라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 겉 사람의 생명이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데 둘 사이 무슨 불일치가 있어 그릇이 안 열리고, 그래서 속 사람의 생명이 겉 사람에게 흘러들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수용체 노릇을 하게 될 이들 유기적 그릇들은 감각들, 특히 청각과 시각이라는 감각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그릇들이 열리면 속 사람은 속 사람 특유의 것들을 가지고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습니다. These organic vessels, which are to be the recipients, are not opened except by means of the senses, especially those of hearing and sight; and, as they are opened, the internal man can flow in with its particulars and singulars.

 

그릇들은 감각들을 매개로 해서 지식과 즐거움, 기쁨들을 통해서 열립니다. 지식을 통해서는 이해에 속한 것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통해서는 의지에 속한 것들이 열립니다. They are opened with the senses as the media, by means of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and also by means of pleasures and delights; those belonging to the understanding by means of knowledges, and those belonging to the will by means of pleasures and delights.

 

[2] 이런 것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진리와 함께 갈 수 없는 지식은 자기를 겉 사람한테로 슬그머니 밀어 넣을 것이며, 천적 선과 함께 갈 수 없는 만족과 기쁨도 그럴 것이라는 거, 육체적, 세속적, 그리고 땅에 속한 모든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들의 경우도, 그런 것들이 목적이 될 때, 겉 사람을 밖으로, 아래로 끄집어내어 속 사람으로부터 제거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From these things it may be seen that it must necessarily happen that such knowledges as cannot agree with spiritual truths will insinuate themselves into the external man; and that such pleasures and delights will insinuate themselves as cannot agree with celestial goods; as is the case with all those things which regard corporeal, worldly, and earthly things as the ends; which, when regarded as ends, draw the external man outward and downward, and so remove it from the internal man.

 

※ 즉, 영적, 천적, 그리고 주님을 향하지 않는, 그와는 정반대로, 육체와 세상, 세속을 향하는 것들은 겉과 속의 하나 됨은커녕, 오히려 분리와 제거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먼저 흩어버리지 않으면 속 사람은 겉 사람과 하나 될 수가,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속 사람이 겉 사람과 하나 되려면 반드시 이런 일들이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Wherefore, unless such things are first dispersed, the internal man cannot possibly agree with the external; so that before the internal man can agree with the external, such things must first be removed.

 

주님과 함께 이런 일들이 제거되거나 분리되는 바로 이런 것이 롯과 아브람 간 서로 헤어지는 걸로 표상되고 있습니다. That with the Lord these things were removed or separated is represented and signified by the separation of Lot from Abram.

 

2021-11-14(D1)-매일예배(2234, AC.1562-1563, 창13,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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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IPV5Nf_wnc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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