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의 속뜻 (2025/8/23)

 

 

우리의 형상(our image)은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 곧 거듭남의 최종 목표인 영적 인간(spiritual man)을, ‘우리의 모양(our likeness)은 주님을 닮은, 곧 영적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천적 인간(celestial man)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우리’는 각 사람, 특히 거듭남의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에게 와 있는 천사들을, ‘사람’은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인 안식일로 표상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각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와있는 천사들과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의 타고난 악과 거짓으로 부르지 않았는데도 와 있고, 천사들은 사람 안의 천국과 지옥 간 균형을 맞추시고자 주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가 있어 사람이며, 그래서 각각 최소 둘씩 와 있는 것입니다. 즉 ‘의지’에 대해 의지와 상응하는 천국에서 하나, 지옥에서 하나, ‘이해’에 대해서도 이해와 상응하는 천국에서 하나, 지옥에서 하나가 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입니다.

 

 

HH.291,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HH.291-302)

33천국과 인류의 결합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Human Race 291모든 선이 주께로부터 오고, 사람에게서 난 선은 하나도 없다는 것, 따라서 아무도 어떤 선이든 자기에게 근원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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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는,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이 모든 번거로운(?) 일, 곧 끊임없이 달래시며, 선과 진리를 향해 계속 나아가도록 격려하시고 힘주시는 이 모든 일이 천사들이 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겉보기엔 그렇지만, 사실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위 말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라는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 세 하나님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즉 삼신(三神) 사상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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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6:2)의 속뜻 (2025/8/20)

 

6:1-8은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인류 첫 교회 시대인 태고교회 시대, 곧 첫 교회인 아담에서 마지막 교회인 라멕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 교회의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은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즉 신앙에 관한 가르침(the teachings of faith)을 말합니다. 원래 태고교회는 퍼셉션(perception)의 시대여서 이런 표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모습은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딸들(the daughters of man)은 갈망(yearnings, cravings), 즉 간절히 원하되 눈이 돌아갈 정도로 원하는 걸 말합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고교회는 완전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교회였기 때문이지요.

 

보통 진리, 교리, 가르침 같은 건 이해(understanding)를 거쳐 의지(will)로 들어옵니다. 이 둘 사이에는 합리(rational, 이성, 추론)가 다리 역할을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홍수 직전 사람들의 상태는 갈 데까지 간 상태여서 중간에 필요한 합리와 이성을 생략, 바로 신앙의 신비로 직행하고자 했습니다.

 

그 최종 상태가 바로 ‘네피림(Nephilim)입니다. 자신의 교만과 탁월함에 맛이 간 나머지 모든 거룩하고 참된 것을 가볍게 여긴 자들, 곧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생각한 자들이지요. 이런 일은 사람들 속에, 교회 안에  리메인스(remains)가 완전히 고갈될 때 일어납니다.

 

사람, 곧 교회가 이 상태, 이 지경이 되면 주님은 기존 교회를 닫으시고, 새 교회를 여십니다. 이때 각 교회 시대마다 주님이 남겨두시는 남은 자’, 곧 리메인스’의 역할을 담당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여십니다. 이때는 바로 노아(Noah)라는 사람들이 이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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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하면서 스마트폰 보는 거, 굉장히 멍청한 짓입니다 (2025/8/15)

 

제목 그대롭니다.

 

그때 천국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천국에서 흘러들던 입류가 끊기고, 대신 세상 입류가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치 계속 파란불이어서 안 서고 좀 주욱 갔으면 좋겠는데, 신호 때문에 계속 가다 서다 반복하는 것하고도 같고, 늘 들어오던 월급이나 연금이 끊기는 것하고도 같습니다.

 

천국 입류는 나만 정신 차리면 언제든 재개 가능하지만, 못 받은 그만큼 큰 손해 아닌가요?

 

차라리 그 시간에 말씀 한 구절 더 암송하고, 말씀 한 챕터 더 리딩하시거나 천국에 대해, 말씀의 속뜻에 대해 배운 것들을 생각하시거나, 아니면 따로 기도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스베덴보리처럼 제게도 가끔 천국을 경험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의지가 너무 약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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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서 선한 사람, 모르면서 악한 사람, 나는 어느 쪽일까? (2025/8/13)

 

제목 그대롭니다.

 

모르면서 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르지만 착한 사람들입니다. 겸손하고 순진하며, 주위를 환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한테서는 좋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반면, 모르면서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르는데다 나쁘기까지 합니다. 교만하고 약삭빠르며, 주위를 어둡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한테서는 나쁜 기운이 느껴집니다. 같이 있고 싶지 않고, 마음이 불편하며 싫습니다.

 

이런 건 종교, 학력, 소유, 정치 이념하고도 별로 상관없는 거 같습니다. 교회를 다니니 안 다니니, 대학을 나왔니 안 나왔니, 부자니 가난하니,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니 사회, 공산 민주주의니 하고도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아, 이 정치 이념은 좀... 다른가요?

 

자칭 기독교인이다, 나는 교회 다닌다 하여도 악인이 있는가 하면, 타 종교인이어도 선한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또 대학을 나왔어도 악인이 있는가 하면, 안 나왔어도 선인이 있는 걸 보면, 그리고 부자이면서도 선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악한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소위 좌파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정치 이념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네, 이 경우는 좀... 뭘 모르고 좌파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알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악과 거짓의 화신들인 것 같아요. 이들은 살아생전 이미 지옥에 속한, 자기에게 맞는 지옥 특정 사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건 자기 사랑, 자아 사랑(the love of self)의 사람, 그러니까 잘난 체하는 사람, 곧 주님의 자리에 자기가 올라서고자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로 결정 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종교, 정치 이념, 학력, 소유 등을 전부 자기를 사랑하는 용도로 그럴듯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과 천국, 영계, 속 사람, 내면세계 등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에 속한 나라에 대해 거의 모르면서도 ‘’이 아닌 ‘’ 얘기를 하면 화를 내고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을 통해서 ‘’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데도 말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모르면서 선해도, 그러니까 선해 보여도 그 뿌리가 주님 사랑(the love of Lord)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겉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 사람이 선해야 합니다. 천국은 속 사람이 선한 사람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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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이고 앞이 캄캄할 때’의 속뜻 (2025/8/9)

 

우리 안에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매우 귀한 것들,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나면서부터 그리고 우리가 이 나이 되도록,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여호와 우리 주님이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끊임없이 우리 안에 불어넣으신 것들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살면서 이것을 꺼내쓸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곧 겉 사람의 일에 사로잡혀 보내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의 것들은 속 사람 안에 들어있어 우리가 겉 사람에게 매여 사는 동안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 겉 사람의 시간이 끝날 때가 몇 차례 오는데 그때가 바로 ‘절망적이고 앞이 캄캄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겉 사람의 삶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은 그런 때입니다. 그럴 때, 소위 정신이 번쩍 들고, 이게 뭐라고 내가 지금까지 이 부질없는 걸 붙잡겠다고 이 ㅈㄹ하며 살아왔나 하는 때입니다.

 

절망적이고 앞이 캄캄할 때’는 겉 사람이 죽고 속 사람이 깨어나는 때입니다.

 

한 가지, 어떤 사람한테는 이런 일이 단 한 번으로도 족하지만, 보통은 두세 번은 옵니다. 저 같은 ㄴ은 서너 번 왔지만 말입니다.  

 

11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15:11-24)  

 

※ 효과를 위해 일부러 속된 표현들을 사용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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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사랑해야 지옥이 그냥 지나친다! (2025/8/7)

 

제목 그대롭니다.

 

지옥은 우리를 흔들어 신앙에서 떠나 아무렇게나 살다 죽어 지옥 가기를, 지옥에 쉽게 데려갈 수 있기를 끊임없이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신 못 차리는 상태가 되니까요! 돈, 즉 소유든 가족이든, 아니면 자존심이든 편안하고 편리한 삶이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주님인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주님이면, 그리고 그것이 여러 시험을 통해 확인이 되면, 그때는 지옥은 우리를 포기하고 물러납니다.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이 상태가 거듭남이 완성된 상태, 곧 일곱째 날 상태인 것입니다. 안식일의 상태이며, 태고교회의 상태입니다. 수도사들, 수도 영성 하시는 분들은 이 상태를 가리켜 합일(合一), 득의(得意), 완덕(完德)의 상태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신 것입니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2:37-40)

 

그러므로 주님 아닌 다른 것들은 지옥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무심한 듯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이 어려우면, 그것들을 사랑하되 주님을 통해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전혀 새로운 관점, 시야가 열릴 것입니다. 그것은 아래 주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18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13:18-23)

 

보통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은 에이, 설마 내 마음 밭이 길가나 돌밭, 가시떨기에 해당할까 하시지만, 의외로 실제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지옥이 그냥 툭하고 쳐보기만 해도 그냥 그 실상이 다 탄로 납니다. 착각들을 하며 사시는 겁니다.

 

이런 큰 실패, 낭패, 부끄러움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이지요.

 

제 얘기이기도 합니다.

 

당부드립니다. 무심한 듯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지옥이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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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신적 인성(神的 人性, The Divine Human) (2025/8/4)

 

어제는 월초 첫 주라 예배 때 성찬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저희가 성찬 때 늘 나누는 메시지입니다.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6-28)

 

주님이 생전에 남기신 두 가지 예전은 침례(세례)와 성찬입니다. 주님의 모든 활동은 세 가지, 곧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며, 말씀 또한 그렇습니다. 이 두 예전은 바로 이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침례가 그 첫 번째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성찬은 그 두 번째, 천국의 일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대기(大氣)는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입니다. 생전에 우리 안에 이 주님의 신성이 형성되어 있어야 사후 우리는 천국의 대기를 호흡할 수 있어 천국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평소 우리 안에 이 주님의 신성 형성하는 걸 ‘주님을 닮는다’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주님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곧 체어리티(charity)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 Divine Good)과 진리(眞理, Divine Truth)로 되어 있으며, 그래서 떡으로는 주님의 선을, 잔으로는 주님의 진리를 각각 상징하였고, 또한 각각 주님의 살과 피로 주님의 신적 인성(神的 人性, The Divine Human)을 나타내셨습니다.

 

여기 이 맨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주님의 ‘신적 인성(神的 人性, The Divine Human)에 대한 언급이 좀 있었대서 이 글로 정리합니다.

 

그 전에 잠깐 주님에 관한 호칭들을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주님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하나 되신 신(神)이시며, 또한 선과 진리의 속성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선은 천적(天的, celestial), 진리는 영적(靈的, spiritual)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주님의 신성 호칭이며, 이때 ‘여호와’는 선, 곧 천적 호칭, ‘하나님’은 진리, 곧 영적 호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인성, 곧 신적 인성 호칭이며, 이때 ‘예수’는 선, 곧 천적 호칭, ‘그리스도’는 진리, 곧 영적 호칭입니다.

 

부활하신 후 주님은 이 모든 호칭을 하나의 호칭인 ‘주님’으로 정하셨습니다. 주님의 인성이 주님의 신성과 하나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네, 그럼, 여기서 질문!

 

주님은 왜 그냥 본 모습이신 여호와로 직접 오셔서 상황을 정리하시지 않고, 번거롭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간 과정을 밟으셔야만 하셨나?

 

답은, 여호와는 영계, 자연계를 포함한 이 피조세계 전체조차 감당할 수 없으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우리가 저 하늘의 해를 육안으로 직접 보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가 뜨거운 용광로 곁을 맨몸으로 다가가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가 발전소 전기를 일반 가정집에서 직접 받을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오감, 곧 청각, 시각, 후각, 미각, 촉각이 중간에서 그 역할을 대행하는 중간 매체 없이는 외부의 그 어떤 것도 감각할 수 없는 것처럼, 즉 귀라는 대행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소리를 듣겠으며, 눈이라는 대행체 없이 어떻게 사물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주님이 여호와로 직접 이 피조세계를 방문하시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리고 이 세상이든 소멸하고 말기 때문에, 사랑 그 자체이신 여호와께서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우리의 인지 능력 아득히 저 너머에 계신 신이십니다.

 

이렇게 피조세계가 여호와를 접촉하여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조물에게 맞춤된 중간 매체, 중간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며,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오셔서 당시 급했던 영계의 균형을 바로잡으시고, 모든, 우리는 아무도 몰랐던 이 피조세계 전체의 질서를 회복하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저 성찬 메시지 맨 마지막 문장, ‘주님의 살과 피로 주님의 신적 인성(神的 人性, The Divine Human)을 나타내셨습니다’로 요약한 것이지요. 이런 엄청난, 어마어마한 일을 하시기 위해 주님은 반드시 마리아로 유전한 유전 악을 극복, 벗어버리심으로써 자신의 인성을 신성으로 회복하셔야만 했고, 우리는 그것을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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