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 창1:4-5,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AC.21, 창1:4-5,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4-5절,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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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4(D1)-주일예배(2536, 눅17,28-37),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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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2024-03-24(D1)-주일예배(2536, 눅17,28-37),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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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의 속뜻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롯의 처를 기억하라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없음) 37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눅17:28-37)

 

 

주님이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사신 것은 말세에 진리의 신성, 또는 말씀의 내적 의미가 고대 교회가 이해했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사흘째는 말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인자, 즉 진리의 신성이 그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천국의 비밀 2813:3, 이순철 역) The Lord’s rising again on the third day also involves that truth Divine, or the Word as to the internal sense, as it was understood by the ancient church, will be revived in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ich is also the “third day” (n. 1825, 2788); on which account it is said that the son of man (that is, truth Divine) will then appear (Matt. 24:30, 37, 39, 44; Mark 13:26; Luke 17:22, 24–26, 30; 21:27, 36). (AC.2813:2)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누가복음 17장 같은 본문, 지난주에는 전반부를 했다면 오늘은 후반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자가 나타나는 날’은 내적 의미, 즉 그 속뜻으로는 교회의 마지막 때, 낡고 부패한 교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교회가 열리는 때를 말합니다. 그때를 ‘인자가 나타나는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때 주님께서 새 교회, 곧 인류 다섯 번째, 마지막, 그리고 영원한 교회인 새 교회의 교리로서 말씀의 내적 의미를 열어주시는데, 그 내적 의미, 속뜻이 바로 인자, 곧 진리이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거나 사람의 아들, 즉 인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실 때는, 주님의 거룩한 인간(Divine Human, 신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뜻하고, 인자라고 하실 때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의 속뜻으로 오시는, 교회의 마지막 때를 가리켜 ‘인자가 나타나는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에 대해 본문 28과 2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은 마치 롯이 소돔에서 나오는 때와 같다고 하십니다. 여기 소돔은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깊이 빠져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불은 그 사랑에서 나오는 온갖 욕망들을, 유황은 그런 욕망들에서 비롯한 거짓 교리를 뜻합니다. 교회 안에 선과 진리가 사라지고, 대신 악한 욕망과 거짓 교리가 만연할 때, 신실한 신앙인들은 진리를 찾아 부패한 교회를 떠납니다. 그들이 바로 롯으로 표상되는 선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불과 유황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롯이 소돔에서 나오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 주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불과 유황이 쏟아지는 것은 악한 욕망과 거짓 교리로 말미암아 교회가 스스로 몰락하는 것이고, 롯이 소돔을 떠나는 것은 선한 사람들이 부패한 교회를 떠나가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도 홍수가 있기 직전, 어떤 사람들은 방주에 올라 구원을 얻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주 밖에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다가 홍수를 만났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교회를 심판하시는 방법입니다. 먹고 마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먹는 것은 삶 가운데서 저지르는 악이 의지라는 생명에 쌓이는 것이고, 마시는 것은 삶 가운데서 저지르는 거짓들이 이성이라는 생명에 쌓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곧 이성과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1절과 32절 말씀입니다.

 

31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롯의 처를 기억하라

 

앞의 28절과 29절 말씀이 부패한 교회에 대한 심판에 대한 것이라면, 이 말씀은 새 교회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지붕은 영적으로 가장 높은 것인 사랑의 선을 뜻하고, 집과 세간은 그보다 낮은 차원의 것인 신앙의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이 집의 세간을 가지러 내려오는 것은, 선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 진리의 상태로 내려가는 것이며, 거듭난 사람이 거듭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거듭나기 전 사람과 거듭난 사람의 차이에 대해 '천국의 비밀' 10184번 글 4번 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진리를 통해 선으로 나아가며, 그러므로 부분적으로는 자기가 자신을 이끈다. 그러나 거듭나게 되면 주님께서 선을 통해 그를 이끄신다. (AC.10184:4, 이순철 역) for in this state man is led by means of truth to good, thus partly by himself; but in the later or posterior state, namely when he has been regenerated, man is led by good, that is, through good by the Lord.

 

그러니까 거듭나기 전 진리의 인도를 받을 때는 주님께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의지하는 상태라는 것이고, 거듭난 후에 선의 인도를 받을 때라야 비로소 주님을 완전히 의지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 거듭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영적으로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만큼 살아나고, 주님보다 자신을 믿는 만큼 영적으로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붕에 있던 사람이 세간을 가지러 집 안으로 내려오는 것이나,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주님만을 믿고 따르던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며,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러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뒷걸음치지 않고, 항상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와 관련해 본문 34절과 3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3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밤에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림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밤은 교회의 마지막 때의 상태, 즉 교회 안에 악한 욕망과 거짓 교리가 가득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리, 또는 침상은 교회의 교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는 같은 교리 안에 있더라도 삶의 행위에 따라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만의 교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진실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만, 새 교회의 신앙 안에 있더라도 믿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른 삶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가는데 하나만 데려감을 얻고, 다른 하나는 버림을 당한다는 것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여기서 여자는 진리에 대한 애정을 뜻하고, 맷돌을 가는 것은 애정을 가지고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깨우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진리에 대한 애정이 같아 보이더라도 애정의 질에 따라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할까요? 자아의 애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주님이 주시는 애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자아에서 비롯한 애정은 진리를 진리 그 자체로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어떤 이익을 위해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보려고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자아의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주님이 주신 애정 안에 있는 사람은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진리의 깨달음 안에 있게 되고, 그것으로 매일 같이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맷돌을 가는 두 여자 중 구원받는 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진리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진리를 그 자체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에 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주님보다 자신의 자아를 더 사랑하는 것이고,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은 주님을 위해 자아를 버리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자아를 목숨만큼이나 소중히 여깁니다. 굶주림은 견뎌도 모욕을 당하거나 자존심 상하는 것은 못 견디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이런 자아를 그대로 두면 절대로 이웃을 사랑할 수 없고, 나아가서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아는 모든 진실과 선의를 왜곡하고, 결국은 주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잃는다는 것일까요?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아를 버리는 자는 대신 주님의 생명인 선과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악하고 거짓된 지옥의 영들이 믿지 않는 자는 물론이고, 믿는 사람들까지 유혹해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신앙적으로 뒷걸음질 칠 때가 많습니다. 또 부패한 교회들은 인간의 추론을 앞세워 진리를 왜곡하고, 수많은 거짓 교리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들의 추론의 능력을 주검 위에 날아드는 독수리에 비유했습니다. 주검은 사랑과 믿음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교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16:25)고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생명처럼 아끼는 자아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아를 버리기 위한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아와의 싸움에서 때로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교리이신 주님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눈먼 자는 눈을 뜰 것이요, 귀머거리는 귀가 열릴 것이며, 앉은뱅이는 일어나 걸을 것입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5:8, 9)

 

아멘

 

 

원본

2021-10-17(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4-03-2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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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안의 주님의 신성은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이다

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천국과지옥.1.3.13-19.'천국 안의 주님의 신성은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이다'.sca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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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3, '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HH.3.13-19)

※ 천국에서는 주께로부터 나오는 신성(神性, The Divine)을 신적 진리(Divine truth)라고 부른다.  3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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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에는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사랑이 있다. 주님을 향한 사랑(love to the Lord)과 이웃을 향한 사랑(love toward the neighbor)이다. 3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In Heaven the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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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7, '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HH.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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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8, '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HH.3.13-19)

※ 천국 안의 주님의 신성이 사랑인 이유는 평화, 지성, 지혜, 행복 등 천국의 모든 것을 받는 그릇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3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In Heave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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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9, '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HH.3.13-19)

※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 모든 신적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으로 확증된다. 3천국에서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In Heaven the Divine of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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