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5. ‘5: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겔5:11) Therefore, as I live, says the Lord Jehovih, shall it not be, because thou hast defiled My sanctuary with all thy detestable things, and with all thine abominations, that even I shall diminish thee; and My eye shall not spare, and even I will not have pity (Ezek. 5:11).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말씀에서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두고 말씀하시는 표현이 나오며, 이를 통해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영어의 as I live’는 개역개정의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에 해당합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단지 살아 계시는 한 존재가 아니라 생명 자체(Life Itself)시라고 설명합니다. 사람과 천사는 생명을 받아 살아가지만, 주님은 누구에게서도 생명을 받지 않으십니다. 모든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오므로, 주님께서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이 생명 자체의 권위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예루살렘과 성소(sanctuary)의 모독에 대한 심판입니다. 백성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주된 목적은 성소의 모독이나 예루살렘의 심판을 자세히 해설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구절 가운데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는 표현에 주목, 말씀이 주님께만 고유한 생명을 증언한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다만 이 구절의 문맥은 AC.290의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성소의 모독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거룩한 것을 더럽히는 일이 곧 생명의 근원을 거부하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성소는 주님의 선과 진리가 있어야 할 곳인데, 그 자리를 악과 거짓으로 채우면 사람과 교회는 생명 자체이신 주님과의 연결을 스스로 끊게 됩니다.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라는 말씀도 주님께서 자비를 잃으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결과에 따라 그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끝까지 거부하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보호와 생명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영적으로 약해지고 황폐해집니다. 마치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생명의 유입을 스스로 막은 것, 즉 자초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앞서 인용한 렘5:2, 12:16, 16:14-15, 23:7과도 같은 흐름에 있습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 표현이 나왔고, 5:11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표현은 생명이 오직 주님께 있으며, 주님의 생명이 모든 신적 말씀과 심판, 그리고 구원의 근원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겔5:11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스스로 살아 계시며, 생명 자체시라는 사실을 말씀 자체로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과 천국, 그리고 교회가 살아 있는 것은 그들 자체에 생명의 근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과의 연결 안에 있는 사람은 산 자’가 되지만, 거룩한 것을 더럽히고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몸은 살아 있어도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AC.290, 심화 4, ‘렘23:7’

AC.290.심화 4. ‘렘23: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렘23:7) Therefore, b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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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4. ‘23:7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23:7)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they shall no more say,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Jer. 23:7);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중심 주제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천사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명이 오직 그분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여호와의 사심으로’라는 표현이 바로 영어 본문의 Jehovah lives’,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에 해당합니다.

 

23:7은 바로 앞에서 살펴본 렘16:14와 거의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두 본문 모두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며,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였으나, 장차 주님께서 더 크고 새로운 구원을 이루실 것을 예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지 과거의 출애굽을 회상하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께서 시대마다 자기 백성을 속박에서 건져 내시고, 생명의 상태로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살아 계신 여호와’라는 표현은 단순히 여호와께서 존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은 생명을 가지고 계신 분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생명 자체(Life Itself)이십니다. 사람과 천사는 생명을 받아 살아가지만, 주님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는 고백은 모든 생명과 구원, 그리고 회복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렘23:7만 짧게 인용하였지만, 그 의미는 이어지는 렘23:8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북쪽 땅과 그들이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다시 그들의 땅에 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적으로는 흩어진 백성의 귀환을 가리키지만, 내적 의미로는 악과 거짓 가운데 흩어졌던 사람을 다시 모아 선과 진리의 질서 안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구원 역사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살아 계신다’는 것은 정지된 속성이 아니라 실제로 구원하고 회복시키시는 신적 활동과 연결됩니다. 살아 계신 주님은 사람을 단지 존재하게 하시는 데 그치지 않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깨우시며, 악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시고, 선과 진리 안에서 다시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시라는 사실은 이처럼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역사 속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출애굽과 포로에서의 귀환은 모두 거듭남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애굽 땅’은 사람이 자연적 지식과 외적인 것에 매여 있는 상태와 관련되고, 흩어졌던 여러 나라에서 돌아오는 것은 악과 거짓으로 분산되었던 생각과 애정이 주님의 질서 아래 다시 모이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모든 회복을 이루시는 분이 살아 계신 여호와’이시므로,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받아 살아납니다.

 

이 구절은 렘5:2와도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룹니다. 5:2에서는 사람들이 입으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도 실제로는 거짓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렘23:7-8에서는 살아 계신 여호와께서 실제로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일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참된 고백은 단지 주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생명 자체이신 주님의 구원을 받아 그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렘23:7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한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은 주님께서 생명 자체이실 뿐 아니라, 악과 거짓 가운데 흩어진 사람을 다시 모으고 영적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교회 자체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계신 여호와, 곧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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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6:14-15

 

14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15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6:14, 15) Therefore, behold, the days come, says Jehovah, that it shall no more be said,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but, Jehovah lives, who brought up the sons of Israel from the land of the north, and from all the lands whither He had compelled them; and I will return them onto their ground that I gave unto their fathers (Jer. 16:14-1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위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오직 주님만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시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 구절은 그 진리를 더욱 깊은 차원에서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며,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장차 그보다 더 큰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며, 백성은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역사적으로는 포로에서의 귀환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주님께서 사람을 악과 거짓의 모든 속박에서 건져 내시는 더 큰 구원을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역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이라는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도, 포로 된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때도 동일한 ‘살아 계신 여호와’이십니다. 다시 말해, 시대와 사건은 달라져도 생명의 근원은 언제나 오직 주님 한 분뿐입니다. 이것이 AC.290의 중심 사상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주님께서 단순히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시키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애굽에서의 구원은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고, 북방 땅과 여러 나라에서의 귀환은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는 회복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이것은 사람이 악과 거짓 가운데 있다가 주님에 의해 다시 신앙과 생명의 상태로 인도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특히 ‘북방’은 말씀에서 진리의 빛이 희미해진 상태나 영적 어둠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북방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다’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영적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다시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 결과 사람은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은 영적으로는 본래 주님께서 의도하신 교회와 생명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이 구절은 ‘살아 계신 여호와’라는 이름과 함께, 그 살아 계신 주님께서 실제로 사람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까지 보여 줍니다. 따라서 생명은 단순히 존재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끊임없이 악에서 선으로, 거짓에서 진리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렘16:14-15를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이 주님을 ‘살아 계신 여호와’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서 사람을 모든 영적 속박에서 구원하여 참된 생명의 상태로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290에서 말하는 ‘(living)은 단순히 존재를 유지하는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고, 당신께로 이끄시는 구원의 생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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