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이곳 파주 크리스찬 메모리얼 파크에서 세 번째 故 권성조(權聖祚, 1923 生 - 2015 卒, 享 91세), 故 김정자(金貞子, 1926 生 - 2005 卒, 享 79세), 두 분의 추모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1, 2

 

본문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1)

 

설교

 

※ 편의상 두 분의 호칭을 각각 ‘아버님’, ‘어머님’으로 통일하겠습니다.

 

오늘로 어느덧 두 분의 각각 11주기, 21주기 기일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의 경우, 11년 전인 2015년 삼일절 날, 며칠 전인 설 연휴 기간 뵌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들 마음의 준비들을 하고 있던 차,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그날 밤 국립중앙의료원 도착, 아직 간호사실에 병상 채 계신, 잠깐 손대어 느낀, 아직 그 발에 남아 있던 온기며... 그리고 이어 장례식장에서 입관 및 하관 예배 준비에 여념 없었던 그런 여러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특히 입관예배 때 다들 크게 울던 장면들이며, 포천 황동묘원 시절, 새벽 미명 그 춥고 어두운 길을 따라 당시 사정상 은밀하게 드려야 했던 하관예배도 생각납니다.

 

어머님의 경우는 더 거슬러 올라가 21년 전인 지난 2005527일 금요일, 그날,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온 가족 함께 찾았다가 괜찮아 보이셔서 저녁 무렵 대전 집으로 내려왔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연락 받고, 방금 벗었던 구두를 얼른 다시 신고 그대로 출발, 이번엔 한양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으로 갔지요. 그때 어머님, 돌아가시기 며칠 전, 갑자기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을’을 부르시더라는 말씀에 감동하던 생각이 납니다. 발인까지는 사랑의교회에서 섬기시지만, 주일이라 장지까지는 어렵겠다 하시는 교회 부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장례식장에서 생전 처음 장례, 특히 하관예배 준비를 해야 했던 기억도 납니다. 아직 신학도 안 한 사람이 말입니다. 저는 사실 어머님 병 낫기를 위한 철야기도 때 주님 음성 듣고 신학교를 간 사람입니다. 그때 살던 아파트 앞, 다니던 교회에 가서 한밤 본당에서 혼자 어머님 병 낫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던 중, 신학교를 가라시는 음성을 들었지요. 주님은 어머님의 연약함을 통해서 둘째 사위를 신학교 가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셨었나 봅니다. 어쨌든 저는 신학도 하기 전 인생 첫 장례 집례를, 그것도 장모의 장례 하관예배를 인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해 여름과 가을을 서둘러 준비, 이듬해인 2006년, 대전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 신대원 3년 과정을 마치고, 계속해서 대전 모 교회에 부사역자로 청빙 받아 장년 사역을 시작하게 되지요.

 

잠시 두 분 관련, 저의 오래된 옛 기억들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저와는 다른 저마다 다들 특별한 기억들이 있으시지요? 이런 기억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합니다. 저의 모친께서는 제가 고3 때인 1980년 가을, 교통사고로 갑자기 떠나셨는데, 그 황망함 중에 겪었던 모든 것이 아직도 무슨 비디오 영상 보듯 생생하지요... 네, 과거 기억들 이야기는 이쯤하고...

 

그러면, 두 분은 지금쯤 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요?

 

주님의 자비(mercy)로 생전에 특별히 천국을 비롯, 영계를 27년간 왕래하며, 주님의 허락으로 많은 걸 기록으로 남긴 분이 계시는데, 이분의 대표적 저작 중 하나인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1758)이라는 책을 보면, 아버님, 어머님, 두 분의 현재 모습들을 대략 유추해 볼 수 있어 잠시 나누겠습니다.

 

참고로, 다음은 이분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수학했습니다. 자연과학을 연구하여 광산학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아이작 뉴턴과 같은 최고 과학자 반열에 올랐으나 57세에 주님의 부르심으로 영계 체험을 시작, 이후 27년간 영계를 자유롭게 오고 가며,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그 라틴어 원고만 수만 장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의 과학적 재능을 아낀 동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합니다.

 

저와 같은 과학자는 얼마든지 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 곧 영계에 관한 진리를 남기는 일은 인류 전체의 생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께 받은 이 특별한 소명은 제가 과학자로 공헌하는 것보다 수천수만 배 더 중요합니다...”

 

그는 그의 마지막 저서, ‘True Christian Religion(1771)을 끝으로 이듬해인 1772년 주님이 부르시는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

 

이 스베덴보리라는 분이 전하는 많은 놀라운 사실들에 의하면, 사람은 사후 영계에서 눈을 뜰 때,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 상태에서 눈을 뜬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영계는 우리 사는 이 자연계처럼 시공간(視空間)의 나라가 아닌, 상태(state)와 그 변화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천국’이라고 하면, 그것은 사실은 ‘천국이라는 상태’의 준말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지옥도 마찬가지고요.

 

사람이 사후 바로 천국이라는 상태나 지옥이라는 상태로 못 들어가고 일단 이렇게 중간 상태에서 눈을 뜨는 이유는, 좀 쉽게 말씀드리면, 천국이나 지옥은 완전히 선하든지, 완전히 악하든지, 혹은 완전히 진실하든지, 완전히 거짓되든지 해야만 갈 수 있는, 즉 그래야만 들어갈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 살면서 이 둘이 어느 정도는 좀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못 가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소위 ‘정제 기간’, 그러니까 렌더링(rendering)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말이죠. 천국 갈 사람은 천국에서는 소용없는 악과 거짓을 떼어내는 시간이, 지옥 갈 사람은 지옥에선 소용없는 선과 진리를 떼어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둘이 섞여 있는 정도에 따라 그 중간 상태 체류 기간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데, 그런데 아버님, 어머님의 경우, 두 분 모두 겉과 속이 거의 같은 분들이셔서 아마 중간 상태 체류 기간은 무척 짧았겠고, 얼마 안 있어 두 분 다 바로 천국으로 올라가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사람이 이 중간 상태에 머무르는 기간은 다 다른데 최장 한 30년 정도랍니다.

 

방금 ‘겉과 속’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이는 사람의 겉, 곧 겉 사람(external man)과, 사람의 속, 곧 속 사람(internal man)을 줄여 말씀드린 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 곧 겉 사람이고요, 눈에 안 보이지만 우리의 진짜 모습, 곧 우리의 진짜 정체가 바로 속 사람입니다. 사람의 사후,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는 건 바로 이 속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영이라고 하지요. 사후 세계를 가리켜 영계라고 하는 이유는 사후 세계는 육이 아닌 영들이 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라고 했지만, 사실은 상태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사실은 영적 존재인 영(靈)이 자연적 존재인 이 육(肉)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육은 영이 떠나면 바로 부패 시작, 썩어 없어집니다.

 

사람의 영이 육에서 분리되는 순간은 사람의 주요 장기인 심장과 폐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입니다. 이 순간은 의료장비보다도 더 미묘하여 오직 모든 생명의 주(主)이신 주님만이 직접 하십니다. 왜 심장과 폐냐면, 사람의 심장은 주님의 신성(神性, Divine) 중 선(, Good)과, 사람의 폐는 주님의 신성 중 진리(眞理, Truth)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분도 이런 분리의 순간이 있으셨을 텐데요, 그럼, 이렇게 영과 육이 분리되면,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 세상인 우리 쪽에서는 임종이지만, 저 세상인 영계에서는 신생(新生), 곧 새롭게 태어남입니다. 마치 신생아실 아기들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임종 후 저세상에서 새롭게 눈 뜨기까지는 대략 72시간 정도 걸립니다. 이는 우리 안에서 뭔가 아주 근본적으로 준비되어야 할 게 있기 때문인데, 이때 영계의 악한 영들이 가까이 다가와 해치지 못하도록 가장 높은, 사랑의 천사들인 삼층천 천사들이 찾아와 지킵니다. 이 천사들이 찾아오면 특유의 향기가 진동하는데, 악한 영들은 이 향기를 아주아주 질색해서 다들 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도 영감이 좀 예민하신 분들은 장례식장이나 영안실, 혹은 장지에서 이 향기를 느끼시는 분들이 계시며, 천주교의 많은 성인들 중에는 그 임종 시 또는 그 묘역 주위에 이 향기가 오래 머물렀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는 우리도 뭐 저희처럼 서울 살다 대전으로 가거나, 한국 살다 미국이나 호주로 이민을 가거나 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자기가 살러 간 그곳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우선 배우고 익히는 것인 것처럼, 두 분 역시 사후 도착한 너무나도 생소한 영계에서 눈을 뜨셨을 때, 굉장히 생소하고 어리둥절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모든 걸 각자 알아서 해야 하는 우리와는 달리 사람이 사후 영계에서 눈을 뜨면, 이미 주님이 보내신 천사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지혜의 돌봄을 받으며, 하나하나 새로운 생활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처음에는 말입니다. 지상에도 이와 거의 유사한 시스템이 있는데 바로 산부인과 신생아실 간호사들의 돌봄 시스템인 것 같아요. 누구든 영계에서 처음 눈을 뜰 땐, 그쪽에서 봤을 땐 신생영이기 때문이지요. 어머님도, 그리고 아버님도 여기서는 할머니로, 할아버지로 눈을 감으셨지만, 저쪽에서는 갓 태어난 여아, 남아였을 뿐입니다. 몸집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요! ㅎㅎㅎ

 

우리가 남의 나라에 살러 갈 때 그러듯, 영들도 영계에서의 신생아 과정 및 100퍼센트 속 사람 과정이 끝나 천국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바로 천국이라는 나라의 주인, 곧 주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뭐 주인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대통령이든 주석이든, 왕이든 총리든 하여튼 소위 통치자, 최고 결정권자라는 게 있고, 그 사람이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데요, 거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처럼 천국 역시 천국의 하나님이 누구시냐 하는 지식이 모든 걸 결정합니다. 두 분도 이 오리엔데이션 과정을 밟고, 그 내면이 확 열려 말할 수 없이 지혜로운 천국 천사의 지성으로 들어가셨을 겁니다. 천국에서는 주님에 대한 사랑의 지식이 많을수록 부자이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사람의 이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및 촉각은 사후 영이 되면 몇 배로 향상,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동안은 물질인 육체에 갇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말입니다. 이들 감각 역시 사실은 영에 속한 것입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때, 그 사람의 가장 눈부시게 젊었던 상태로 들어갑니다. 가끔 영안이 열린 분들이 계시는데 이런 분들은 주님의 허락으로 다른 사람의 영, 곧 그 사람의 속 사람의 모습을 보실 수 있게 됩니다. 겉보기엔 그렇게 아름답지만, 그러니까 얼굴이며 몸매며 말이지요. 그러나 그 속 사람은 뭐랄까, 거의 괴물 수준의 여자들이 있더랍니다. 반면, 어떤 할머니는 허리도 굽고, 온통 쭈글쭈글 주름살투성이 겉모습이었지만, 그 속 사람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인지 가히 천사의 모습 같더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도 사실 살면서 우리 속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후 영이 되어 드디어 자기 속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너무 놀라 기절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후 천국이나 지옥에 들어가기 전 두 번의 상태 변화를 겪는데, 우리 속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 정착하는 건 두 번째 상태 변화 후입니다. 첫 번째 상태 변화 때까지는 그래도 지상에서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지만, 이 두 번째 상태 변화 이후에는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가족과 혈연까지도 말이지요. 우리도 사후 영계에 도착하면 먼저 가신 부모님들, 그리고 형제들을 만날 텐데요,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주님의 허락으로 잠시 우리를 만나러 오신, 그러나 우리가 ‘, 누구시지?’ 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는, 매우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젊은이들 모습의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미 지옥에 가신 분들을 이렇게 반갑게 만났다는 기록은 저는 아직 접하지를 못했습니다. 아마 지옥 가신 분들의 접견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질, 그러니까 퀄러티(quality)로 결정됩니다. 세상에서는 신앙생활을 몇 년 했냐, 교회를 몇 년 다녔냐? 회사에서 직급이 뭐냐? 무슨 자격증, 무슨 학위를 받았냐? 재산이 얼마나 되냐? 주식이나 코인, 금, 그리고 집 등 자산이 얼마나 되냐? 자식들은 얼마나 출세했냐? 등등으로 소위 행복과 불행, 인생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 같은 게 결정되지만, 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은 그런 걸로 들어가는 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천국은 천국이라는 나라에 얼마나 어울리느냐로 그 입국 자격이 결정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학적 지식이 가득해도 그 속 사람의 퀄러티가 천국에 맞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데라는 말입니다. 천국은 그러니까, 음... 굳이 비유하자면, 로또 1등 당첨의 수천수만 배보다도 더 큰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건 말이지요. 그래서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6:28-30)

 

두 분이 지금 천국에서 어떤 삶을 살고 계실지 살짝 짐작이 되시지요?

 

이 세상과 천국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서로 상응(相應, correspondence)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세상 살 때, 미리 천국에 대한 지식들을 알면, 헛된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헛된 인생이란, 뭔가 세상 살 때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뭔가를 이루고, 뭔가를 남기고 그랬는데, 정작 나중에 보니 전혀 천국스럽지 않은, 그러니까 전혀 천국 입국을 염두에 두고 한 게 아닌, 그래서 본의 아니게 자기 속 사람이 전혀 천국에 안 어울리는 모습, 상태가 된, 그런 인생을 말합니다. 그럼, 세상에서 열심히 살지 말라는 말이냐? 하실 수도 있으나 그건 아니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준은 간단합니다. 세상 살면서 천국을 염두에 두고 뭘 한다는 건, 그걸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걸 말합니다. 아주 작은 사소한 일 하나도 주님을 사랑해서 했으면 그건 천국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되며, 반대로 자기를 사랑해서 한 거면 그건 천국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것이 됩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여 하는 모든 말과 행동만이 자기의 속 사람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말입니다. 기독교인이어도 그 모든 동기가 자기 사랑이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도 그 동기가 자기 사랑이면, 매우 미안한 표현이지만 다 나가리가 됩니다. 반면, 타 종교인이어도 그 교리에 스며있는 주님의 신성을 따라 양심적이고 도덕적으로 살았으면, 즉 선과 진리를 행했으면, 주님은 그 사람의 그 모든 행위를 주님을 섬긴 것으로 쳐주십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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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3, 4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도우심의 그 은혜와 사랑이, 오늘 이 추모예배를 통해 들려주신 천국 이야기, 곧 두 분의 천국의 삶 이야기를 통해, 이제라도 우리 속 사람의 모습을 천국에 어울리는 상태가 되게 하자는 메시지를 듣고, 그동안 안개처럼 흐리고 뿌옇던 시야가 맑아져 마음에 굳게 결심하고 돌아가는 모든 심령 가운데, 그리고 생활과 삶 가운데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026-03-01(D1)

삼일절

파주 크리스찬 메모리얼 파크

변일국 목사

 

2640. 2026-03-01(D1)-추모예배(눅12,2-3), '2026 故 권성조(11주기), 김정자(21주기) 추모예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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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HH.8

천국에 있는 모두가 알고, 믿으며, 심지어 지각하기(perceive)까지 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곧 스스로 뭘 의도하거나 행하는 게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뭘 생각하거나 믿는 것도 전혀 없다는 것, 대신 오직 신성(the Divine)으로, 그러니까 오직 주님한테서 오는 걸로만 그렇다는 것, 그리고 또 자신한테서 나오는 선은 선이 아니며, 진리 역시 자기한테서 나오는 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그것들 안에는 신성으로 말미암는 생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가장 내적 천국(the inmost heaven) 천사들은 그 인플럭스를 분명히 지각하고 느끼며, 그것을 더 많이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자신들이 더욱더 천국 안에 있는 걸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그들은 사랑과 신앙 안에, 지성과 지혜의 빛 안에, 그리고 거기서 오는 천적 기쁨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바로 그 안에서 천사들은 자기들의 천국(their heaven)을 가지므로, 천국을 만드는 것은 천사들한테나 어울리는 그들 고유의 어떤 것(proprium. own, 고유 본성)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임이 분명합니다.(16) 이것이 왜 천국을 말씀에서 주님의 거처(dwelling place)라 하고, ‘그의 보좌(his throne)라 하며, 그곳에 있는 이들을 주님 안에 있다고 하는가 하는 이유입니다.(주17) 그러나 신성이 어떤 식으로 주님으로부터 나아와 천국을 채우는지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veryone in the heavens knows and believes and even perceives that he wills and does nothing of good from himself, and that he thinks and believes nothing of truth from himself, but only from the Divine, thus from the Lord; also that good from himself is not good, and truth from himself is not truth, because these have in them no life from the Divine. Moreover, the angels of the inmost heaven clearly perceive and feel the influx, and the more of it they receive the more they seem to themselves to be in heaven, because the more are they in love and faith and in the light of intelligence and wisdom, and in heavenly joy therefrom; and since all these go forth from the Divine of the Lord, and in these the angels have their heaven, it is clear that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and not the angels from anything properly their own that makes heaven.16 This is why heaven is called in the Word the “dwelling place” of the Lord and “his throne,” and those who are there are said to be in the Lord.17 But in what manner the Divine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fills heaven will be told in what follows.

 

 

16. 천국 천사들은 모든 선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자신들로부터는 아무것도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주님은 그들 안에 있는 주님의 것 안에 계시고, 그들의 것 안에는 계시지 않으신다. The angels of heaven acknowledge all good to be from the Lord, and nothing from themselves, and the Lord dwells in them in His own and not in their own (n. 9338, 10125, 10151, 10157). 그래서 말씀에서 ‘천사들’은 주님께 속한 무엇을 의미한다. Therefore in the Word by “angels” something of the Lord is meant (n. 1925, 2821, 3039, 4085, 8192, 10528). 더 나아가 천사들은 주님으로 말미암는 신성 수용체라는 의미에서 ‘신들’이라 한다. Furthermore, angels are called “gods” from the reception of the Divine from the Lord (n. 4295, 4402, 7268, 7873, 8192, 8301). 거듭, 선이기 때문에 선한 모든 것,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인 모든 것, 결과적으로, 모든 평화, 사랑, 체어리티, 그리고 신앙은 주님으로 말미암는다. Again, all good that is good, and all truth that is truth, consequently all peace, love, charity, and faith, are from the Lord (n. 1614, 2016, 2751, 2882, 2883, 2891, 2892, 2904). 또한 모든 지혜와 지성도 마찬가지다. Also all wisdom and intelligence (n. 109, 112, 121, 124).

 

17.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주 안에 있다고들 한다. Those who are in heaven are said to be in the Lord (n. 3637, 3638).

 

 

해설

 

이 글은 HH.7의 내용을 한층 더 깊이 밀어붙입니다. HH.7이 ‘천국은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라고 했다면, HH.8은 그 받아들임이 얼마나 철저한 자기 부인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천국의 모든 천사는 ‘선을 의도하는 것, 이것은 나한테서 나오는 게 아니다. 진리를 생각하는 것, 이것도 마찬가지다’라는 것을 단지 교리적으로만이 아닌, ‘알고, 믿고, 지각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각한다(perceive)는 말은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내적 확신이며 살아 있는 인식입니다. 천사에게는 이것이 사상(思想)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왜냐하면 자기한테서 나온 선과 진리는 ‘신적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생명은 오직 주님께만 속합니다. 피조물은 생명의 그릇입니다. 따라서 ‘자기에게서 나온 선’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자기 사랑과 공로 의식이 섞인 선이며, 그 안에는 하늘의 빛이 없습니다. 천사들은 이것을 분명히 압니다.

 

특히 ‘가장 내적 천국’ 천사들은 ‘인플럭스(influx, 유입)를 분명히 느낀다고 합니다. 인플럭스는 스베덴보리 사상의 핵심 개념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며, 천사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받을수록 자기 자신이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더 천국 안에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자연적 사고로는 ‘내 것이 아니면 나는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질서는 그 반대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인정할수록, 나는 더 충만해진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사랑과 신앙, 지성과 지혜, 그리고 거기서 오는 천적 기쁨이 온전히 흐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어떤 외적 환경이 아니라, ‘사랑 안에 있음’, ‘신앙 안에 있음’, ‘지성과 지혜의 빛 안에 있음’, ‘거기서 오는 기쁨 안에 있음’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만드는 것은 천사들의 프로프리움(proprium. own, 고유 본성)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입니다.

 

그래서 말씀에서는 천국을 ‘주님의 거처’, ‘그의 보좌’라고 부릅니다. 이는 공간적 표현이 아니라 상태적 표현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충만히 받아들여지는 곳이 곧 그의 거처이며 보좌입니다. 또한 천사들이 ‘주님 안에 있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 글은 결국 우리에게 한 가지 근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선과 진리를 어디에서 온 것으로 인정하는가?’ 만일 내가 ‘내가 옳다, 내가 선하다, 내가 했다’는 생각에 머문다면, 그만큼 인플럭스는 가려집니다. 그러나 ‘모든 선과 진리는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고백이 단지 말이 아니라 실제 인식이 될 때, 그만큼 사랑과 빛과 기쁨이 열립니다.

 

HH.8은 천국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천국은 주님의 신성이 받아들여지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은 자기 고유 본성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신성이 어떻게 나아가 천국을 채우는지 설명하겠다고 합니다. 이로써 스베덴보리는 천국을 심리적, 영적 역동 속에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심화

 

1.천국에 있는 모두가 알고, 믿으며, 심지어 지각하기(perceive)까지 하는 게 있는데

 

알고, 믿고, 심지어 지각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반복이나 강조가 아니라, 의식의 서로 다른 층위를 가리키는 점층적 구조입니다. 먼저 ‘안다(know)는 것은 지성의 차원입니다. 어떤 교리를 듣고 이해하며, 논리적으로 납득하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말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앎입니다. 다음으로 ‘믿는다(believe)는 것은 그 이해에 동의하는 단계입니다. 단순히 뜻을 아는 것을 넘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직 생각과 판단의 영역에 속합니다.

 

지각한다(perceive)는 것은 그 진리가 단지 생각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의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내적 빛 속에서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확신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아는 것과, 그 말이 참이라고 믿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기도 가운데 그 사랑이 자기 안에 흘러들어와 마음이 녹고 평안과 기쁨이 동반되는 경험은 지각의 차원입니다. 또 ‘불은 뜨겁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앎이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믿음이지만, 실제로 불 가까이에서 열기를 느끼는 것은 지각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지각은 바로 이런 살아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HH.8에서 천국의 모든 이가 ‘알고, 믿고, 지각한다’고 한 것은, 그들이 단지 교리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실제로 느끼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사상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진리가 그들의 사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내적 감각처럼 분명합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진리를 알고 심지어 믿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랑과 결합되지 않으면 지각하지는 못합니다.

 

앎은 머리의 빛이고, 믿음은 의지의 동의이며, 지각은 사랑 안에서 느끼는 내적 빛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살아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HH.8은 바로 그 살아 있는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2.오직 신성(the Divine)으로, 그러니까 오직 주님한테서 오는 걸로만 그렇다는 것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스베덴보리에게서 ‘주님(the Lord)과 ‘신성(the Divine)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성은 주님과 분리된 어떤 에너지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본질이며 주님 자신입니다. 다만 표현의 관점이 다를 뿐입니다. ‘주님’이라는 말은 인격적 호칭으로, 사랑하시고 인도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을 가리킵니다. 반면 ‘신성’이라는 말은 그 주님의 본질적 생명, 곧 사랑과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존재는 하나이되,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각도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HH.8에서 ‘신성으로부터, 곧 주님으로부터’라고 병렬로 말하는 것은 둘을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이 추상적 무엇이 아니라 바로 주님 자신임을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도 주님을 영적 태양에 비유하며, 그 태양으로부터 사랑의 열과 진리의 빛이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이 비유를 사용할 때 중요한 점은, 열과 빛이 태양과 다른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열과 빛은 태양의 발현이며, 태양이 밖으로 나타난 방식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열과 빛도 없고, 열과 빛이 닿는 곳에는 태양의 영향과 현존이 실제로 작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성은 주님이 사랑과 진리로 우리에게 나아오시는 방식이며, 우리가 받는 것은 어떤 비인격적 에너지가 아니라 주님 자신의 사랑과 진리입니다.

 

주님은 영적 태양과 같고, 신성은 그 태양에서 나오는 사랑의 열과 진리의 빛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열과 빛은 태양과 분리된 다른 무엇이 아니라, 태양 자신이 밖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직접 물리적으로 들어오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사랑과 진리가 우리 안을 채울 때, 우리는 실제로 주님의 현존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성은 주님과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 임하시는 살아 있는 방식입니다.

 

 

3.가장 내적 천국(the inmost heaven) 천사들

 

가장 내적 천국(the inmost heaven)이라는 표현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내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공간적 안쪽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내적’은 공간의 깊이가 아니라 사랑의 깊이, 수용의 깊이를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천국은 위아래로 층이 있는 장소라기보다,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상태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가장 내적’이란 더 안쪽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람 안에도 바깥 생각이 있고, 더 깊은 생각이 있으며, 그보다 더 깊은 마음의 중심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말하며, 어떤 사람은 사랑에서 우러나와 말합니다. 이처럼 인간 안에도 층이 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천국이지만, 어떤 이는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더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비교적 외적인 진리의 빛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그 차이를 가리켜 ‘가장 내적’, ‘중간’, ‘가장 외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내적’은 거리의 개념이 아니라 친밀도의 개념입니다. 태양에 더 가까운 행성이 더 많은 빛과 열을 받는 것처럼, 주님의 사랑에 더 깊이 열려 있는 상태를 ‘내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내적 천국’의 천사들은 주님의 사랑의 유입, 곧 인플럭스를 가장 분명히 느끼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먼저 따져서 사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사랑 안에서 즉각적으로 옳고 선한 것을 지각하는 상태에 있는 이들입니다.

 

가장 내적 천국이란, 주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4.그 안에서 천사들은 자기들의 천국(their heaven)을 가지므로

 

그 안에서 천사들은 자기들의 천국(their heaven)을 가진다’는 표현은 처음 들으면 마치 각자가 따로 자기 전용 천국을 소유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their’는 소유권의 의미가 아니라 ‘수용의 정도에 따른 고유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국은 하나이며, 그 본질은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 동일한 신성이 각 천사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각 천사는 그 수용에 따라 ‘자기에게 해당하는 천국’을 경험합니다.

 

이미 ‘가장 내적’, ‘중간’, ‘가장 외적’ 천국으로 구분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큰 범주의 구분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각 천사들은 서로 다릅니다.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 안에서 모두 같은 곡을 연주하지만, 각 악기는 서로 다른 음색과 역할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음악은 하나이지만, 각 악기는 그 음악을 자기 방식으로 담고 울립니다. 이처럼 천국은 하나의 유기적 전체이지만, 각 천사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자기 고유한 사랑과 기능에 따라 받아들이고, 바로 그 수용 안에서 ‘자기 천국’을 가집니다.

 

천국은 하나이지만, 각 사람은 그 천국을 자기 마음의 그릇만큼 담습니다.’ 같은 햇빛이 비추어도 수정과 유리, 물은 서로 다르게 빛을 반사합니다. 빛은 하나지만, 반사되는 색과 광채는 다릅니다. 그 차이를 가리켜 ‘자기들의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리된 여러 천국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천국이 각 존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누가 ‘이미 가장 내적, 중간, 가장 외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 구분은 큰 구조이고, ‘자기들의 천국’은 그 구조 안에서 각 천사가 주님의 신성을 받아들이는 고유한 상태를 말합니다. 천국은 공동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격적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천국에 속하지만, 그 천국은 각 사람 안에서 각기 다른 깊이와 색채로 살아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이되, 각 천사는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기 고유한 상태 안에서 그 천국을 경험한다.’ 이것이 ‘their heaven’의 의미입니다.

 

 

5.천사들한테나 어울리는 그들 고유의 어떤 것(proprium. own, 고유 본성)이 아니라

 

프로프리움(proprium)이 어려운 이유는, 이 단어가 단순히 ‘자기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과 분리된 채 자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느끼는 생명 의식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프로프리움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 사랑하고, 내가 스스로 선을 행한다’고 느끼는 그 자아 중심의 감각입니다. 겉으로는 자율성과 개성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주님과 단절된 상태일 때, 참된 생명을 담지 못하는 왜곡된 중심이 됩니다.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가 ‘고유 본성’이라고 할 때, 단순히 개성이나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고유한 성향과 기능, 독특한 자리와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근원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여길 때입니다. 프로프리움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자기 것으로 돌리는 태도’이며, 더 깊이 말하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상태’입니다.

 

달은 빛을 냅니다. 그러나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빛을 반사합니다. 만약 달이 ‘이 빛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프로프리움의 상태입니다. 빛을 반사하는 고유한 모습은 남아 있어야 하지만, 빛의 근원을 자기로 돌리는 순간 왜곡이 시작됩니다. 스베덴보리가 ‘프로프리움은 본질상 악하다’고까지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중심으로 굽어 들어가는 사랑, 곧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중심에 두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프리움은 내가 주인이라고 느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질서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시라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아는 것’은 단지 교리적 동의가 아니라, 실제로 모든 선과 진리를 주님께 돌리는 내적 방향 전환을 말합니다.

 

따라서 ‘천사들 고유의 어떤 것(proprium)이 아니라’라는 말은, 천국을 이루는 것이 천사들의 독립적 능력이나 자아적 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 안에 있는 선과 진리는 그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근원과 연결된 고유성’이지, ‘근원과 단절된 자아’가 아닙니다.

 

프로프리움은 내가 스스로 살아 있고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은 주님에게서 오며,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프로프리움은 주님의 질서 안으로 재정렬됩니다.’  

 

 

6.그 인플럭스(influx, 유입)를 분명히 지각하고 느끼며

 

인플럭스(influx, 유입)와 ‘퍼셉션(perception, 지각)의 차이는 방향과 위치를 구분하면 비교적 쉽습니다. 인플럭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흐름’이고, 퍼셉션은 ‘그 흐름을 안에서 알아차리는 내적 감각’입니다. 하나는 원천에서 나오는 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작용이 도달했을 때 생기는 의식입니다. 쉽게 말해 인플럭스는 ‘들어오는 것’이고, 퍼셉션은 ‘그 들어옴을 느끼는 것’입니다.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인플럭스입니다. 그런데 그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따뜻함과 밝음을 느끼는 것은 퍼셉션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인플럭스이고, 그 바람을 피부로 감지하는 것은 퍼셉션입니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은 인플럭스이고, 그 음악의 화성과 조화를 마음으로 감지하는 것은 퍼셉션입니다. 들어오는 것과 느끼는 것은 구분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구조 안에서 보면, 인플럭스는 항상 주님에게서 먼저 시작됩니다. 사랑과 진리, 생명은 위로부터 흘러옵니다. 인간이나 천사는 그 근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유입이 곧바로 퍼셉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순수할수록, 자기 중심성이 적을수록, 그 유입은 더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장 내적 천국’의 천사들은 인플럭스를 분명히 지각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입은 모든 천사에게 있지만, 그것을 자각하는 깊이는 다릅니다.

 

또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인플럭스는 객관적 사실이고, 퍼셉션은 주관적 체험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유입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의식하는가 아닌가는 사랑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마치 공기가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숨을 깊이 들이쉴 때 더 또렷이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인플럭스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흐름이고, 퍼셉션은 그 흐름을 안에서 느끼는 빛입니다.’

 

유입은 근원 쪽의 작용이고, 지각은 수용 쪽의 반응입니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흘러오시고, 천사는 그것을 느낍니다. 바로 그 만남의 자리에서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HH.7, 2장,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HH.7-12)

2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HH.7천사들을 다 합쳐 ‘천국’(heaven)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천국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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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HH.7

천사들을 다 합쳐 천국(heaven)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천국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한테서 나와 천사들한테로 흘러드는, 그리고 그들에 의해 수용되는 신성(Divine)입니다. 주님한테서 나오는 신성은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이므로, 천사들은 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만큼만 천사이며, 천국입니다. The angels taken collectively are called heaven, for they constitute heaven; and yet that which makes heaven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is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flows into the angels and is received by them. And as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the good of love and the truth of faith, the angels are angels and are heaven in the measure in which they receive good and truth from the Lord.

 

 

해설

 

이 글은 이 책, ‘천국과 지옥’ 전체를 여는 매우 중요한 기초 원리를 제시합니다. 곧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이며, 그 상태의 본질은 주님한테서 나오는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첫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을 다 합쳐 천국이라고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천국이 어떤 건축물이나 공간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적 존재들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천사들이 모여 천국을 이룹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국을 만드는 것은 천사들 자신이 아니라, 주님한테서 나와 그들 안으로 흘러들어 수용되는 주님의 신성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나아감(go forth)과 ‘흘러듦(flow into), 곧 ‘발출’과 ‘유입’입니다. 주님은 태양처럼 사랑과 진리를 끊임없이 발출하십니다. 이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는 모든 천사에게 흘러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사가 되는 이유는 단지 그 빛과 열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빛이 비추어도 천사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라는 두 요소를 함께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리입니다. 선과 진리는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선은 사랑의 내용이고, 진리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선은 의지에 속하고, 진리는 이해에 속합니다. 천국은 단지 무엇을 ‘아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선과 결합될 때, 비로소 천국이 됩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만큼만 천사이며, 천국이다’라는 말은, 천사도 본질상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존재입니다. 받아들이는 정도, 곧 수용의 정도가 곧 그 존재의 질을 결정합니다.

 

이 원리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인간 역시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진리를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이 그것을 막으면, 흘러들어와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반대로 겸손과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같은 말씀을 읽어도 그 안에서 빛을 받습니다.

 

결국 이 글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가?’ 천국은 먼 곳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만큼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천국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내 것으로 주장하는 대신, 그분께 돌려드리며, 기꺼이 수용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HH.7이 제시하는 천국의 본질입니다. 천국은 천사들의 모임이지만, 그 본질은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가 그들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수용의 정도가 곧 천국의 깊이와 높이를 결정합니다.

 

 

심화

 

1.그들이 천국을 이루기(constitute)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천국을 만드는(make) 것은

 

HH.7에서 스베덴보리가 굳이 ‘constitute’와 ‘make’라는 두 동사를 나누어 쓴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외형적 구성’과 ‘본질적 원인’을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HH.7 전체의 구조가 선명해집니다.

 

먼저 ‘constitute’라는 말은 ‘구성하다, 이루다, 형성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떤 집합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도시를 구성한다’고 할 때, 시민들은 도시의 구성원입니다. 같은 의미로, 천사들은 모여서 천국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the angels taken collectively are called heaven, for they constitute heaven’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집합적, 구성적 차원’입니다. 천국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천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곧이어 스베덴보리는 전환합니다. ‘and yet...’라고 하면서 ‘make’라는 동사를 씁니다. ‘that which makes heaven... is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여기서 ‘make’는 단순히 구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존재하게 하다, 성립하게 하다, 본질을 이루다’에 가깝습니다. 즉, 무엇이 그것을 실제로 그 존재가 되게 하는가 하는 ‘본질적 원인’의 문제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constitute’ → 천사들이 천국의 구성 요소라는 점을 말함 (외형적, 집합적 차원)

make’ → 무엇이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지를 말함 (본질적, 원인적 차원)

 

스베덴보리는 이 두 층위를 의도적으로 구분합니다. 겉으로 보면 천사들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천사들 자체가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 안에 받아들여진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가 천국을 천국 되게 합니다.

 

만일 여기서 두 동사를 구별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오해가 생깁니다. ‘천국은 천사들이 있으니까 천국이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천사들이 구성하기는 하지만, 천국을 성립시키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이 차이는 그의 전체 신학에서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를 ‘구성’하지만, 사랑과 진리가 그들 안에 살아 있지 않으면 교회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더 깊이 보면, 여기에는 존재론적 구별이 있습니다.

 

constitute → 형상(form)의 차원

make → 본질(esse, being)의 차원

 

천사들은 형상을 이루는 주체들이고, 주님의 신성은 존재의 본질입니다. 형상은 본질을 담는 그릇이고, 본질이 빠지면 형상은 껍데기만 남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두 동사를 나눈 것은 단순한 문체상의 다양성이 아니라, 매우 정밀한 신학적, 형이상학적 구분입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천사들은 천국을 구성하지만, 주님의 신성만이 천국을 천국 되게 만든다.’

 

이 차이를 보시면 HH.7 전체가 훨씬 또렷해질 것입니다.  

 

 

2.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in general and in particular)

 

스베덴보리가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예외 없이’라는 뜻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이 표현은 논리적 강조가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먼저 자연적 언어 감각으로 보면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는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라는 뜻이고, 일상적으로는 ‘빠짐없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저작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는 우주와 천국, 인간, 교회, 말씀까지 모두를 ‘보편과 개별의 상응적 구조’ 안에서 이해합니다.

 

그의 사상에서 ‘보편(general)은 단순히 큰 덩어리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 개별적인 것들을 함께 묶어 하나로 작용하게 하는 ‘포괄적 질서’입니다. 반면 ‘개별(particular)은 그 보편 안에 들어 있는 각각의 실제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때로 ‘most particular’이라는 표현까지 써서, 가장 미세한 단위까지 포함시킵니다.

 

예를 들어, 천국을 생각해 보면, 전체 천국이라는 보편이 있고, 각 천국(삼층천)이라는 중간 보편이 있으며, 각 천사 사회, 각 천사 개인, 심지어 그 개인의 사랑과 사고의 가장 작은 움직임까지 모두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는 ‘보편’이 따로 있고 ‘개별’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은 개별들 안에서만 존재하며, 개별들은 보편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HH.7에서 ‘천국을 만드는 것은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신성이다(the Divine makes heaven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라고 할 때, 이것은 ‘예외 없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뜻입니다.

 

천국 전체를 이루는 것도 주님의 신성이며, 각 천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천국 되게 하는 것도 주님의 신성이다.’

 

만약 그가 단순히 ‘without exception’이라고 썼다면, 그것은 논리적 배제의 의미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in general and in particular’은 구조적, 유기적 포함을 말합니다. 천국이라는 전체가 주님의 신성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부분도 동일한 원리로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상응’ 사상과 연결됩니다. 상응에서는 보편과 개별이 서로 반영합니다. 큰 것은 작은 것 안에, 작은 것은 큰 것 안에 질서 있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천국은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전체 천국은 하나의 거대한 인간 형상(the Grand Man)이고, 각 천사는 그 안의 지체입니다. 이런 사고 안에서는 ‘보편’과 ‘개별’을 항상 함께 말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말하면 구조가 무너집니다.

 

결국 이 표현은 단순히 ‘예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신적 원리가 전체 구조와 각 요소에 동시에 작용한다’는 선언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보편은 개별 안에 있고, 개별은 보편 안에 있으며, 주님의 신성은 그 둘 모두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는 습관적으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를 반복합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이해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HH.8, 2장, '주님 신성의 수용은 철저한 자기 부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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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6, 1장, 사람들이 가지는 '천국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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