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04, 창5:10-11,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C.504-505)
즐겨찾기/AC 창5 2026. 1. 8. 15:26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창5:10, 11)
AC.504
여기서도 이와 같이 ‘날’(days)과 ‘해’(years)의 숫자들, 또한 ‘자녀들’(sons and daughters), 그리고 그가 ‘죽었더라’(dying)는 말은 앞에서와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Here in like manner the “days” and numbers of “years,” and also “sons and daughters,” and his “dying,” signify like things.
해설
이 글은 새로운 설명을 더하기보다, 지금까지 확립된 해석의 ‘일관성을 다시 확인하는 결론 문장’에 가깝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5장의 각 절을 해석할 때마다, 혹시라도 독자가 어느 지점에서 문자적 이해로 되돌아갈 여지를 차단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와 같이’라는 표현으로, 동일한 해석 원리가 예외 없이 적용됨을 분명히 합니다.
먼저 ‘날’(days)과 ‘해’(years)의 숫자들은 앞서 누차 설명된 대로, 연대적 시간의 길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교회가 거쳐 간 ‘상태의 지속과 변화의 질서’를 가리킵니다. AC.504는 이 원리가 이미 충분히 확립되었음을 전제하고, 더 이상의 반복 설명 없이도 독자가 동일한 틀로 읽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이는 해석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배려이자, 동시에 해석의 엄격함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자녀들’, 그러니까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 역시 동일합니다. 여기서도 그것들은 개인의 자녀가 아니라, 해당 교회 상태 안에서 퍼셉션된 ‘진리와 선들’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진리와 선들이 언제나 교회의 상태에 상응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그 교회가 낳는 진리와 선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AC.504는 이 상응 원리가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으므로, 다시 정의하지 않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진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그 교회 상태를 특징짓던 퍼셉션이 더 이상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을 반복하면서도, 점점 더 간결하게 처리합니다. 이는 독자가 이제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퍼셉션의 소멸’을 떠올리도록 훈련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이 글의 특징은, 설명의 축소가 곧 의미의 축소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AC.504는 앞선 해석들이 단편적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해석 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날, 해, 자녀들, 그리고 죽음이라는 네 가지 요소는 더 이상 각각 따로 설명될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은 이미 하나의 언어 체계 안에서 함께 작동합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문단은 매우 중요한 균형을 제공합니다. 설교자는 모든 구절을 매번 새롭게 설명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지만, 스베덴보리는 오히려 반복 속에서 형성된 이해를 신뢰합니다. 이미 충분히 설명된 원리는, 이후에는 간결하게 확인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태도입니다. 이는 청중을 존중하는 해석 방식이기도 합니다.
또한 AC.504는 창세기 5장이 단조로운 족보처럼 보이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반복되는 표현들은 지루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영적 구조가 여러 교회 상태에 걸쳐 적용됨’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반복은 변화 없음의 표시가 아니라, 동일한 생명 원리가 서로 다른 상태들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창세기 5장을 하나의 긴 이야기로 읽게 됩니다. 각 인물, 각 교회 상태는 다르지만, 그들을 관통하는 해석의 열쇠는 동일합니다. 퍼셉션이 살아 있을 때 교회는 자녀들을 낳고, 퍼셉션이 흐려질 때 교회는 죽음에 이릅니다. 날과 해는 그 과정을 표시하는 표지일 뿐입니다.
개인의 신앙 여정에서도 이 반복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신앙의 상태가 달라질 때마다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준이 다른 상황에 적용’됩니다. 무엇이 생명인가, 무엇이 죽음인가라는 기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기준은 퍼셉션이며, 퍼셉션의 분명함과 소멸 여부가 모든 것을 가릅니다.
결국 AC.504는 말수가 적지만, 그만큼 강력한 확인을 제공합니다. ‘여기서도 이와 같이’라는 한마디 안에, 창세기 5장을 관통하는 모든 해석 원리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 문단을 지나며 독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같은 눈으로 다음 절들을 읽을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AC.503, 창5:9, ‘태고교회 퍼셉션 능력의 비밀’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창5:9) AC.503 태고교회의 퍼셉션 능력은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퍼셉션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부터 생겨나는 행복과 기쁨에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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