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지옥에 가는가 - 재산이 아니라 사랑의 문제
‘부자는 지옥에 가는가?’라는 질문은 복음서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주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3-24)고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도 부자는 죽은 뒤 음부에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만 놓고 보면 마치 부유함 자체가 구원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와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 남기신 그의 저작들을 함께 보면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 자체가 재산의 많고 적음을 구원의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가축과 은금을 소유한 부자였고, 욥 역시 큰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마태복음이 명시적으로 ‘부자’라고 부르는 사람이면서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부유함 자체를 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입니다. 재산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그것을 자기 존재의 안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의 근원으로 삼는다면 부는 영적인 위험이 됩니다. 그러나 재산을 자신과 가족을 돌보고 이웃과 사회에 유익을 끼치며 맡겨진 일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재산 자체가 천국을 가로막지는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 구별은 더욱 분명합니다. 사람이 사후에 가져가는 것은 집도, 토지도, 그리고 통장도 아닙니다.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 안에 형성한 ‘지배적 사랑’(ruling love)을 가지고 갑니다. 따라서 똑같이 많은 재산을 가진 두 사람도 내적으로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돈을 통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자신의 쾌락과 명예를 높이는 것을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재산과 능력을 맡겨진 것으로 여기며 정직하게 사업하고 가족을 책임지며 많은 사람에게 ‘유용한 일’(use, 쓰임, 쓰임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둘 다 ‘부자’이지만 그 재산을 움직이는 내적인 사랑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그토록 강하게 말씀하셨을까요? 마태복음 19장의 문맥을 보면 바로 앞에 부자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계명을 지켰다고 말했지만 주님께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났습니다(마19:21-22). 그 순간 그의 재산이 단순히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붙들고 있는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주님과 재물 가운데 어느 하나를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오자 재물을 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핵심은 재산의 액수보다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있습니다.
‘낙타와 바늘귀’도 같은 문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흔히 ‘바늘귀’가 예루살렘의 작은 성문이어서 낙타가 짐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면 통과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역사적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의 자연스러운 뜻은 실제 낙타와 바늘구멍을 극단적으로 대비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놀라자 주님께서는 곧바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5-26)고 말씀하십니다. 이 마지막 말씀이 앞의 말씀을 푸는 열쇠입니다. 주님께서는 ‘부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힘으로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벗어나 천국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사랑 자체를 변화시키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속뜻으로 들어가면 ‘부자’의 의미는 물질적 재산을 넘어 더욱 넓어집니다. 말씀에서 ‘부’, ‘재물’, ‘보물’은 좋은 의미에서는 선과 진리의 지식, 곧 영적 부요함을 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 의미에서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 자기 의와 자기 지혜를 자기 것으로 여기며 의지하는 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프로프리움’(proprium)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다’, ‘내가 이루었다’, ‘나는 옳다’는 것이 주님을 대신하여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하면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영적 의미에서는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가 좋은 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는 영적 자기충족이 문제입니다. 주님에게서 선과 진리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자신에게 이미 모든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부유하지만 속으로는 가난할 수 있고, 반대로 겉으로는 가난하지만 주님에게서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적으로 부유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역시 ‘부자 = 지옥, 가난한 사람 = 천국’이라는 경제적 구원론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부자의 문제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자기 문 앞에 누워 있는 나사로를 외면하면서 자신의 풍요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재산이 체어리티(charity)로 흘러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웃을 보지 못하는 상태’가 문제입니다. 부가 자기 사랑 안에 갇히면 그것은 사람을 주님과 이웃에게서 멀어지게 하지만, 부가 이웃의 유익과 ‘유용한 일’을 위해 사용되면 같은 재산도 전혀 다른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부자’를 한 가지 의미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자적으로는 실제 재산이 많은 사람을 가리킬 수 있고, 좋은 의미에서는 선과 진리라는 영적 재산을 풍성하게 가진 사람을 뜻할 수 있으며, 반대 의미에서는 자신이 가진 재산과 지식, 능력을 자기 것으로 여기며 주님보다도 더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부자’가 등장할 때마다 먼저 그 문맥에서 어떤 종류의 ‘부’를 말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결국 주님께서 문제 삼으시는 것은 ‘소유’ 자체라기보다 ‘소유에 대한 사랑’입니다. 부유한 사람에게는 부를 주님보다 사랑하게 될 특별한 시험이 있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를 탐내고 부자를 시기하며 재물을 삶의 궁극적인 행복으로 여기게 될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다는 사실도 영적인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통장에 돈이 없으면서 마음 전체로 돈을 사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많은 재산을 소유하면서도 마음은 그것에 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지옥에 가는가?’라는 질문에는 분명하게 ‘아닙니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죽은 뒤 그의 재산 목록을 조사하여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재산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동안 그 사람 안에 ‘어떤 사랑이 형성되었는가’를 보십니다. 재산은 죽을 때 모두 남겨 두고 가지만, 그것을 사용하면서 형성된 사랑은 가지고 갑니다.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이 주님을 대신하여 마음의 주인이 될 때 영적인 위험에 빠집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죽을 때 우리가 가지고 가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그 재산을 사랑하고 사용하면서 형성된 우리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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