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1:14-17)
AC.32
사랑과 신앙을 처음에는 함께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이라 하고, 그다음에는 사랑을 ‘더 큰 광명체’(greater luminary), 신앙을 ‘더 작은 광명체’(lesser luminary)라 합니다. 또한 사랑을 가리켜서는 ‘낮을 다스린다’(rule by day) 하고, 신앙을 가리켜는 ‘밤을 다스린다’(rule by night)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바로 아르카나(arcana)인데,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숨겨져 있는 것을 이제 제가 설명해도 좋다는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가 있었습니다. 이 아르카나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가려져 있는 이유는, 지금이 세대의 종말(the consummation of the age)이기 때문이며, 이때에는 사랑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친히 예고하신 바와 같습니다. Love and faith are first called “great luminaries,” and afterwards love is called a “greater luminary,” and faith a “lesser luminary”; and it is said of love that it shall “rule by day,” and of faith that it shall “rule by night.” As these are arcana which are hidden, especially in this end of days, it is permitted of the Lord’s Divine mercy to explain them. The reason why these arcana are more especially concealed in this end of days is that now i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en there is scarcely any love, and consequently scarcely any faith, as the Lord himself foretold in the evangelists in these words: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29)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Matt. 24:29).
여기서 ‘해’(sun)는 사랑, 곧 어두워지는 사랑을, ‘달’(moon)은 신앙, 특히 빛을 내지 못하는 신앙을, ‘별들’(stars)은 신앙 관련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러니까 ‘하늘의 권능들’(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을 의미합니다. By the “sun” is here meant love, which is darkened; by the “moon” faith, which does not give light; and by the “stars,” the knowledges of faith, which fall from heaven, and which are the “virtues and powers of the heavens.”
[2] 태고교회는 사랑 자체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적 천사들 역시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무슨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합니다. 온 천국은 사랑의 천국이며, 천국(heavens)에는 사랑의 생명 외에 다른 생명은 없습니다. 모든 천국 행복이 여기서 나오는데, 그 그레이트(great)함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어떤 인간의 생각으로도 결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랑과, 그 결과 모든 생명, 곧 사랑에서만 나오는 모든 생명과 모든 행복이 오직 주님에게서만 온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며, 지각합니다(perceive). 그들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사랑이나 생명이나 행복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모든 사랑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은, 주님의 변화산 사건에서 큰 광명체, 곧 ‘해’(sun)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기록되기를, The most ancient church acknowledged no other faith than love itself. The celestial angels also do not know what faith is except that which is of love. The universal heaven is a heaven of love, for there is no other life in the heavens than the life of love. From this is derived all heavenly happiness, which is so great that nothing of it admits of description, nor can ever be conceived by any human idea. Those who are under the influence of love, love the Lord from the heart, but yet know, declare, and perceive, that all love, and consequently all life—which is of love alone—and thus all happiness, come solely from the Lord, and that they have not the least of love, of life, or of happiness, from themselves. That it is the Lord from whom all love comes was also represented by the great luminary or “sun” at his transfiguration, for it is written: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17:2) His face did shine as the sun, and his raiment was white as the light (Matt. 17:2).
얼굴은 가장 안쪽의 것들을 뜻하고, 옷은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뜻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신성(the Lord’s Divine)은 ‘해’(sun), 곧 사랑으로, 그의 인성(his human)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 곧 ‘빛’(light)으로 상징되었습니다. Inmost things are signified by the face, and the things that proceed from them by the raiment. Thus the Lord’s Divine was signified by the “sun,” or love; and his human by the “light,” or wisdom proceeding from love.
해설
이 단락은 넷째 날의 핵심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풀어 주는 부분입니다. 사랑과 신앙을 가리켜 왜 처음에는 함께 ‘큰 광명체들’이라 하고, 그다음에는 사랑은 더 크고 신앙이 더 작다고 하는지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이는 가치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질서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근원이고, 신앙은 그 생명이 인식과 이해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방식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랑이 우선합니다.
사랑을 가리켜 ‘낮을 다스린다’ 하는 말은, 인간의 밝은 상태, 곧 생명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상태를 이끈다는 뜻입니다. 반면 신앙을 가리켜 ‘밤을 다스린다’ 하는 말은, 아직 완전한 빛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밤에는 해가 없지만 달과 별이 길을 비추듯이, 신앙은 사랑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인간을 붙잡아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아르카나가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지금은 사랑이 거의 사라진 시대이기 때문에, 사랑을 신앙의 본질로 이해하는 시각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지식이나 교리로만 이해되고, 사랑은 부차적인 덕목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랑이 신앙의 생명이라는 사실이 안 보이게 됩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이 떨어진다는 말은, 자연 재난의 예고가 아니라, 교회와 인간 내면의 상태 진단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신앙은 빛을 잃고, 신앙의 지식들조차 삶과 연결되지 못한 채 흩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하늘의 덕과 능력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태고교회와 천적 천사들에 대한 언급은 이 글의 방향을 분명히 합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사랑과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살았고, 그 사랑 안에서 진리를 보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사랑에서 나온 신앙’ 외의 신앙 개념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상태입니다.
천국이 사랑의 천국이라는 말은, 천국이 감정적으로 따뜻한 장소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 방식의 문제입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생명이 사랑에서 나오며, 그 사랑이 곧 생명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행복은 외부 조건에서 오지 않고, 사랑 그 자체에서 흘러나옵니다. 인간의 언어와 상상력이 그 행복을 담아낼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의 영향을 받는 이들이 갖는 태도는 매우 특징적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자기에게서 나왔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랑과 생명과 행복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알고, 말하며, 지각합니다. 이것이 참된 겸손이며, 참된 자유입니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없다는 인식은 무력함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 끊임없이 공급된다는 확신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산 사건은 이 모든 내용을 하나의 장면으로 요약합니다. 주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는 말은, 주님의 가장 안쪽 본질이 사랑임을 뜻합니다. 그의 옷이 빛처럼 희어졌다는 말은, 그 사랑에서 지혜와 진리가 흘러나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얼굴과 옷의 구분은, 신적 본질인 신성과 그것의 발현인 인성을 구분하면서도 분리하지 않습니다.
AC.32는 결국 이것을 말합니다. 신앙은 빛이지만, 빛은 해에서 옵니다. 신앙은 생명을 비추지만, 생명은 사랑에 있습니다. 이 질서를 잃을 때 교회는 어두워지고, 이 질서를 회복할 때 인간 안에 다시 아침이 옵니다.
AC.31, 창1:14-17, ‘큰 광명체들’, 곧 '해, 달, 별'의 속뜻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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