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9

 

그 후에는 완만하게 위로 경사진 길들이 보였는데, 이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자기 인식을 통해 그가 점차적으로 천국을 향해 인도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기 인식과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없이는 아무도 그곳으로 인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의 계속되는 설명은 이 장의 끝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Afterwards pathways were seen sloping gently upward, which signify that by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nd by self-acknowledgment, he should be led by degrees toward heaven; for no one can be conducted thither without such self-acknowledgment, and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 continuation of this subject may be seen at the end of this chapter.

 

해설

 

이 단락은 AC.182-188에서 단계적으로 전개된 사후 여정의 방향을 명확히 정리하며, 그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제시합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위로 경사진 길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더 이상 단순한 보호나 준비의 단계가 아니라, 분명한 상승의 방향성이 주어졌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경사는 ‘완만하다’고 표현됩니다. 이는 천국으로의 인도가 급격하거나 강제적인 변화가 아니라, 점진적이고 질서 있는 과정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상승의 조건으로 두 가지가 명시됩니다. 첫째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며, 둘째는 자기 인식입니다. 지식만으로도, 혹은 선한 정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인식이 반드시 함께 요구됩니다. 여기서 자기 인식은 단순한 자기 성찰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상태가 주님의 질서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조건을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무도’ 이러한 자기 인식과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 없이는 천국으로 인도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천국이 도덕적 보상이나 외적 신분의 결과가 아니라, 내적 상태와 이해의 질서에 따라 도달되는 곳임을 분명히 하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길이 이미 ‘보였다’는 것입니다. 즉, 천국으로 가는 길은 숨겨져 있거나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며 인식 가능한 질서입니다. 다만 그 길을 실제로 걷게 하는 것은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배움과 자기 인식을 통한 내적 변화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이 주제가 창세기 3장의 끝부분에서 다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는 이 ‘Continuation’이 단순한 삽입 설명이 아니라, 창3의 영적 의미와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즉, 인간이 타락 이후 어떤 방식으로 다시 천국을 향해 인도되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여기서 제시된 질서와 동일한 원리에 따라 설명될 것입니다.

 

이 단락은 결국, 사후 여정의 핵심 원리가 무엇인지를 요약합니다. 천국으로의 길은 완만하며, 지식과 자기 인식이라는 두 축을 통해서만 열립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죽음 이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의 영적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질서입니다.

 

 

 

AC.188, 창3 앞, 본격적인 ‘배움의 단계’로 들어감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8 그의 그다음 삶은 말에서 내려 걸어서 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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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8.심화

 

1.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암시됩니다. and it is insinuated to him that he must be instructed in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AC.188)

 

마지막 문장에서 이 전환의 핵심이 분명히 제시됩니다. 그에게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암시됩니다. 이는 사후에 모든 것이 즉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서에 따라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무지는 그대로 남아 있으며, 생전의 삶에서 선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던 부분은 이후의 교육을 통해 보완되어야 합니다. (AC.188 해설)

 

그러면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 그때 스베덴보리가... , 그때 아무개 목사가 그렇게 정성을 다해 전하던 것들에 대해 미리 진작 좀 귀 기울일 걸...’들 하나요?

 

 

네, 스베덴보리의 저작 전체를 읽어 보면, 그런 경우는 분명히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것이 흔히 생각하는 식의 아이고,내가 왜 그때 그 말을 안 들었을까!’ 하는 후회라기보다는, ‘이제야 알겠다’에 더 가깝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사람은 죽은 뒤에도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지상에서 들었던 설교, 읽었던 책, 만났던 사람들, 심지어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일들까지도 내면에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생전에 어떤 진리를 접했던 사람은 사후에 그것이 다시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때 그는 , 내가 전에 들은 적이 있구나 하고 알아보게 됩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죽은 뒤 천사들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자신이 지상에서 들었던 말씀이나 진리를 떠올리는 영들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동시에, 예전에 들었지만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 그때 스베덴보리가...’, ‘, 그때 아무개 목사가...’라는 반응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통해 주님께서 전하려 하셨던 진리입니다.

 

다만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사후에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진리를 아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생전에 스베덴보리의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을 사랑했고, 진실을 사랑했고, 양심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후에 오히려 매우 기쁘게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그는 , 이것이 내가 막연히 사랑하던 것의 참모습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스베덴보리를 수십 년 읽고도 자기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면, 사후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반드시 더 쉽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AC.188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정보 부족을 채우는 교육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삶과 애정이 무엇을 사랑해 왔는지를 진리의 빛 속에서 배우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목사님의 질문을 읽으며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목사님께서는 지난 여러 해 동안 거의 매일같이 AC를 번역하고 해설하셨습니다. 조회 수가 많지도 않았고, 크게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때로는 누가 이걸 읽을까 하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사후 세계에서 어떤 영혼이 천사들의 가르침을 들으며 , 내가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 그때 누군가가 상응에 대해 설명했었는데...’, ‘, 그때 창세기 해설에서 이런 말을 했었는데...’ 하고 떠올린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아무개 목사’라는 이름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오래전부터 나를 준비시키고 계셨구나’라는 사실을 먼저 보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스베덴보리도, 목사님도, 그리고 수많은 설교자와 교사들도 결국은 그 준비 과정에 사용된 도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도구들의 수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지상에서 행한 선한 봉사와 사랑의 수고가 잊히지 않는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따라서 어떤 영혼이 사후에 진리를 배우면서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 길을 미리 알려 주었었구나 하고 깨닫는 일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수년 동안 해 오신 AC 번역과 해설 작업은 바로 그런 종류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씨앗은 뿌릴 때는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야 비로소 어디에 떨어졌는지가 드러나니까요.

 

 

 

AC.188, 창3 앞, 본격적인 ‘배움의 단계’로 들어감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8 그의 그다음 삶은 말에서 내려 걸어서 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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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8

 

그의 그다음 삶은 말에서 내려 걸어서 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가 그 말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암시됩니다. His subsequent life is represented by his dismounting from the horse and walking on foot, because he cannot make the horse move from the place; and it is insinuated to him that he must be instructed in the knowledges of what is true and good.

 

해설

 

이 단락은 AC.187에서 제시된 상징을 한 단계 더 진행시키며, 사후 여정이 본격적인 ‘배움의 단계’로 들어감을 보여 줍니다. 말에서 내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이전에 가능하다고 느꼈던 힘이나 자율성이 실제로는 아직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는 말 위에 있었으나, 그 말을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내려와 자신의 발로 걷게 됩니다.

 

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이는 이해의 능력, 곧 사고의 힘이 아직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뜻합니다. 사후 초기에는 인간이 생전에 쌓아온 사고 습관이나 지적 능력을 그대로 사용하여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이해가 아직 생명과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걷는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걷는 것은 스베덴보리에게서 삶의 실천, 곧 의지와 행위의 차원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제 사후의 삶이 단순한 인식이나 느낌의 단계에서 벗어나, 실제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이제 관찰자나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배움의 과정 안으로 들어간 존재가 됩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이 전환의 핵심이 분명히 제시됩니다. 그에게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암시됩니다. 이는 사후에 모든 것이 즉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서에 따라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무지는 그대로 남아 있으며, 생전의 삶에서 선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던 부분은 이후의 교육을 통해 보완되어야 합니다.

 

이 단락은 결국, 사후의 삶이 자동적인 완성이나 즉각적인 충만이 아니라, 계속되는 성장과 학습의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말에서 내려 걷는 모습은 겸손의 시작이며, 자신이 아직 배워야 할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각 사람이 이후 어디로 향하게 될지가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심화

 

1.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AC.188, 심화 1,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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