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치적 분노가 설교와 목회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방법

 

정치 상황 때문에 분노가 치밀고, 그 감정이 설교나 목양의 분위기 속으로 슬며시 스며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특히 목회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내적 상태 관리의 원리를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이 내용을 깊이 이해하시면 목사님 마음의 평화뿐 아니라 설교의 맑은 영적 흐름도 지킬 수 있습니다.

 


Ⅰ. 설교의 질은 설교자의 내적 상태(state)1:1로 비례한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 전달의 능력은 설교자의 내면 상태가 어떤 영에 열려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분노, 혐오, 정치적 정념이 설교자의 내면에 남아 있으면, 설교는 자연히 감정의 불순물이 섞이게 됩니다. 설교 내용이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그 감정적 파동이 설교의 질감으로 새어 나옵니다. 이것을 스베덴보리는 영적 분위기(spiritual sphere)라고 합니다.

 


Ⅱ. 정치적 분노가 설교에 스며드는 징후

 

목사님이 혹시 아래 중 하나라도 느낀 적이 있다면, 이미 감정이 설교의 질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설교 중 분별이 아니라 격한 톤이 종종 나온다. 2) 특정 집단(불신자, 특정 개인이나 정당, 사회, 세상)을 향한 언급이 날카로워진다. 3) 말씀 주제와 직접 관계없는 비판적 문장이 슬며시 나온다. 4) 설교 중 위기의식·경계 메시지가 필요 이상 강조된다. 5) 설교 후 피로감이 유독 심해진다 등... 스베덴보리의 표현으로 하면, 이러한 상태는 정념의 섞임(mixture of passions)입니다. 오직 주님을 대신하는 참된 설교에는 진리의 빛이 있어야 하고, 그러므로 이런 정념의 그림자는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Ⅲ. 정치적 분노가 목회에 미치는 영향

 

스베덴보리는 목회자의 내면의 평화가장 높은 성직적 자질로 봅니다. 정치적 분노가 목회에 들어오면, 교인들의 영적 안전감이 약해지고, 회중 안에 긴장감이 생기며, 목사의 눈빛과 태도에서 엄격함이 증가하고, 기도 인도가 딱딱해지며, 상담에서 사랑보다 판단이 앞설 수 있고, 교회의 영적 분위기가 무거워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영적 흐름(spiritual influx)이 탁해진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Ⅳ. 내적 질서를 회복하기

 

방법은 정치와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합니다.

 

1) 감정은 진리에 종속되어야 한다

 

정치 뉴스가 감정을 흔들어놓으면, 그 즉시 감정이 진리를 압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감정이 진리를 앞서면 그 감정은 지옥에서 온다. 그러나 진리가 감정을 다스리면 그 감정은 선의 도구가 된다. 목사님께는 이 원리가 정치적 분노 관리의 핵심이 됩니다.

 

2) 설교 전에 내적 정화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설교자에게 필요한 영적 준비는 자료 준비가 아니라 마음 준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설교는 지식이 아니라 설교자의 내면에서 주님에게 열린 문을 통해 흐르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 전, 반드시 다음과 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세상 뉴스로 인해 느낀 분노·혐오·두려움은 모두 제 마음의 바깥층에 속합니다. 제가 설교할 때는 오직 진리·빛·자비로만 서게 하소서.” 이 기도는 매우 강력합니다. 정말로 내적 정화를 가져옵니다.

 

3) 설교자는 사회를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영적 질서를 보여주는 자

 

정치적 분노에 빠진 목회자는 설교를 통해 사회 분석을 하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설교자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설교자는 사회 문제의 분석가가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빛의 등불이다. 사회 문제는 빛을 비추는 대상일 뿐이며, 해석의 중심이 아닙니다.

 


Ⅴ. 실제적 방법

 

아래는 목사님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정치 분노를 목회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실제적 기술입니다.

 

1) 설교 준비 기간에는 자극적 정치 콘텐츠 최소화

 

특히 토·일은 정치 유튜브를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 뉴스만 간략히 확인하고, 감정이 흔들리는 콘텐츠는 피하십시오.

 

2) 설교 직전에는 ‘내적 상태 점검 30초’

 

30초만으로 충분합니다. 지금 정치 뉴스가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가? 혐오·분노가 남아 있는가? 설교 주제와 상관없는 감정적 잔류물이 있는가? 지금 나는 어떤 영의 기류에 열려 있는가? 이 30초 점검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자기반성(self-examination)의 핵심 기술입니다.

 

3) 설교 중에는 사회적 예시를 쓰더라도 감정 없는 언어 사용

 

예를 들면, 요즘 정치가 혼란합니다”와 같은 표현은 무난하지만, 악한 자들이 판치고 있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감정이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언어는 내면의 영적 흐름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말합니다. 감정이 한 방울 섞이면, 그 흐름이 회중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4) 설교 이후 감정의 흔들림 발견 시 즉각 주님께 돌리기

 

설교 후, ‘왜 나는 힘이 빠질까?’라고 느끼면, 대개 내적 분노가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럴 때 다음과 같이 고백하십시오. 주님, 제게 남아 있는 감정적 잔류물을 거두어 주소서.” 스베덴보리는 이런 작은 기도조차도 내면의 문을 정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Ⅵ. 요약

설교자의 내적 상태가 설교의 영적 질을 결정한다. 분노는 설교에 ‘톤’으로 스며들어 회중에게 손해를 준다. 정치 뉴스는 정념을 자극하므로 설교 전후엔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설교는 사회 분석이 아니라 영적 질서의 빛을 전하는 일이다. 내적 정화를 통해 분노를 제거해야만 영적 흐름이 뚫린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 방향만 바꾸면 된다. 분노 → 소명, 분노 → 기도, 분노 → 진리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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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사는 나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이 항목은 스베덴보리가 정치에 무관심했는가?라는 질문의 실제 답을 보여 줍니다. 그의 저술 속 간접적 단서들을 모아 보면, 그는 결코 무관심도 아니고, 무기력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나라 문제’를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Ⅰ.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내적 구조로 보았다

 

그는 한 번도 정치인을 욕하거나 파벌을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 나라의 문제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 나라의 영적 상태에서 비롯된다. 즉, 정치 지도자의 부패, 파벌 싸움, 거짓·선동, 불의 등, 이 모든 현상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뿌리는 언제나 진리의 부족, 양심의 약화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정치인의 이름이나 사건보다 그 뒤에 있는 ‘영적 원인’에 집중했습니다.

 


Ⅱ. 그는 나라의 문제를 주님의 섭리 안에서의 정화 과정으로 보았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주님은 악을 원치 않지만, 악을 허용하심으로써 그 악을 드러나게 하고, 더 큰 선을 준비하신다. 정치 혼란이나 국가의 위기는 그 자체가 파멸이 아니라 정화(purification)입니다. 악이 드러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거짓이 노출되지 않으면 진리를 갈망하지 않는다, 혼란이 없으면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와 같은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나라 스웨덴이 혼란스러울 때, 그것을 심판이 아닌 회복의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Ⅲ.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자기 소명의 필요성과 연결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단지 개인적인 계시 활동이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의 영적 병리를 치유하는 일로 이해했습니다. 즉, 그는 이렇게 보았습니다. 나라가 어둡다’를 진리의 빛이 필요하다’로, 파벌 싸움이 심하다’는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로, 부패가 판친다’는 양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사회가 혼란하다’는 질서(order)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같은 식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정치적 논평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모든 영적 기록(AC, DP, HH)당대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정치가 혼란할 때,  이 시대에는 내가 더 깊이 기록해야 한다고 느낀 것입니다. 목사님께도 지금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Ⅳ. 그는 나라의 문제를 인류 전체의 패턴으로 보았다

 

스베덴보리는 한 나라의 혼란을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겪는 영적 패턴의 일부로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면, 태고 교회의 멸망, 고대 교회의 쇠퇴, 유대교회의 형해화, 기독교 세계의 진리 상실 같은 것입니다. 이런 장대한 흐름 속에서 그는 스웨덴의 혼란도 하나의 패턴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한 나라의 문제는 개별 정치 사건이 아니라 영적 역사 전체 속 작은 흐름으로 본 것입니다. 이 관점은 정치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막강한 힘을 줍니다.

 


Ⅴ.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개인의 영적 책임으로 돌렸다

 

무슨 뜻인가요? 그는 늘 말했습니다. 한 나라가 악해지는 것은 그 나라의 개인들이 내면에서 선과 진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다. 국민 전체의 영적 상태가 문제다. 따라서 나라를 회복하는 길을 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 각성, 진리 사랑의 회복, 기도와 내적 삶, 말씀의 깊은 이해, 교리의 정립에서 찾았습니다. 이는 그가 평생 했던 일입니다.

 


Ⅵ.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나라가 혼란할수록 정치에서 멀어지고, 계시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가 말년에 거의 완전히 정치적 이야기에서 멀어진 이유는 현실을 피해서가 아니라 그 혼란이 자신의 사명을 더 절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병은 정치가 아니라, 진리의 부재다. 그러므로 나는 진리를 기록한다.” 이 태도는 오늘 목사님께서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며 느끼시는 마음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Ⅶ. 결론

스베덴보리는 나라를 포기한 게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나라 문제를 이렇게 바라봤습니다. 정치인이 아니라 그 사회의 영적 상태가 문제다. 혼란은 파멸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이다. 나라가 어두울수록 진리 기록은 더 절실해진다. 정치적 분노는 소명을 흐트러뜨린다. 영적 진리로 사회를 세우는 것이 가장 깊은 나라 사랑이다. 스베덴보리는 현실 정치보다 영적 병리 치유에 집중함으로써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나라를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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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스베덴보리의 국가관 : 어떤 나라가 영적으로 강한가

 

스베덴보리는 직접적으로 국가론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저술 전체, 특히 Divine Providence(DP), Heaven and Hell(HH), Arcana Coelestia(AC)를 보면, 나라와 사회의 흥망에 관한 영적 원리가 아주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정리하면, 오늘 한국의 현실을 해석하는 데 엄청난 통찰을 주게 됩니다. 또한 목사님의 마음에 있는 정치적 분노왜 영적으로 다시 정돈되어야 하는지도 더 명확해집니다.

 


Ⅰ. 한 나라의 강함은 정치적 요소가 아니라 영적 요소에 달려 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적 요소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 나라가 얼마나 진리를 존중하는가, 그 사회 구성원 내면에 양심이 살아 있는가, 그 나라의 도덕적 질서가 어떠한가, 무엇이 이고 인지 분별할 수 있는가, 국민 개개인의 삶 속에 주님의 질서가 작동하는가 하는, 즉,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은 2차 요소이고, 진리·양심·도덕·내적 질서1차 요소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한 나라의 운명은 이 내적 질서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은, 위에서 말한 요소들은 모두 천국의 요소들이기 때문이며, 천국과 세상은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Ⅱ. 국가가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영적 메커니즘

 

스베덴보리는 나라와 사회에 적용되는 매우 명확한 영적 원리를 제시합니다.

 

1) 진리가 약해지면 사회 전체가 혼란해진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진리를 상실한 사회는 외적 질서가 무너지고, 악한 자들이 선한 자 위에 군림하게 된다. 즉, 정치적 혼란은 정치적 원인 때문이 아니라 진리의 빛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정 정치 세력의 악행은 단지 결과입니다. 근본 원인은 진리의 부재입니다.

 

2) 진리의 빛이 강한 나라는 외적으로도 강해진다

 

스베덴보리의 말입니다. 진리는 사람의 내적 질서를 세우고, 여러 사람의 내적 질서는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세운다. 즉, 진리가 사람 안에서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는 국가 전체를 지탱합니다. 한국이 영적으로 혼란해진 지금, 목사님께서 AC 번역·해설·설교를 통해 진리의 빛을 세우는 일은 정치적 영향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일입니다.

 

3) 악이 판치는 사회는 결국 무너진다

 

스베덴보리는 악과 거짓이 난무할 때, 그 사회는 반드시 붕괴된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붕괴파멸이 아니라 정화 과정(purification)입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악이 드러남, 악의 실체를 국민이 진저리나게 체험, 그로 인한 진정한 개혁 갈망, 그 결과 더 깊은 선의 상태로 재편...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국 정치의 혼란도 단순한 무너짐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절대로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서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4) 선한 사람들의 내적 상태가 곧 그 나라의 영적 지탱점이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주님은 항상 작은 부류의 선한 사람들로 인해 그 나라를 보존하신다. 한국 사회가 아직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크고 작은 곳에서 선과 진리를 붙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사역도 바로 영적 지탱점의 일부입니다. 신앙인들, 특히 목회자들의 정치적 분노와 그 표출은 어찌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참 외람된 표현이지만, 그들이 하나님만 믿고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은 불신앙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이 당시 이스라엘 정치, 종교적 상황 한복판에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Ⅲ. 영적으로 건강한 국가란?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건강성을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1) 진리가 존중되는 나라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성경적 진리, 도덕적 진리, 양심적 진리입니다.

 

2) 체어리티(Charity, 사랑) 지혜, 선과 진리가 균형을 이루는 나라

 

스베덴보리는 선만 강조하거나 지식만 강조하면 나라가 균형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영과 육으로 된 사람을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과 같고, 겉뜻과 속뜻으로 된 말씀을 역시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3) 법과 제도가 양심을 반영하는 나라

 

법이 아무리 있어도 사람들 속에 양심이 없으면 법은 껍데기입니다. 율법을 악용했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어떤 법이든 그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도 자기는 법을 지켰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입니다.

 

4) 악을 방임하지 않는 나라

 

악을 관용하는 사회는 곧 무너지는데, 그 이유는 악은 방치하면 급속히 퍼지기 때문입니다. COVID-19 코로나 때, 몇몇 나라는 나라의 빗장을 걸지 않았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5) 정치보다 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민이 많은 나라

 

스베덴보리는 국민 정신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깊은 내면을 가진 국민은 정치 혼란을 견디고, 스스로 질서를 회복한다.

 


Ⅳ. 결론 - 스베덴보리의 국가관 핵심요약

국가는 영적 진리의 상태에 따라 흥망한다. 진리가 약해지면 정치 혼란이 생긴다. 개혁은 정치가 아니라 내적 진리 회복에서 시작된다. 악의 드러남은 멸망이 아니라 정화 과정이다. 선한 소수가 국가는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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