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나오는 숫자들의 속뜻 (2025/9/17)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 3)

 

위 구절들에 ‘일곱(7)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처럼 말씀 전반에 의외로 숫자가 참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6:2)

 

이 호세아 말씀에는 ‘이틀(2), ‘셋째(3)라는 숫자들이 나오며, 무엇보다 창세기 1장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1:8)

 

식으로 ‘여섯(6)째 날까지 계속 숫자들이 나옵니다. 계속해서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23:44)

 

이 구절에는 ‘(6) 시와 ‘(9) 시가 나옵니다.

 

이렇게 단순 숫자들이 있는가 하면 ‘십일조(10), ‘열두 지파, 열두 제자, 열두 문, 열두 돌(12), ‘40일 정탐, 40년 광야 생활, 40일 금식(40), ‘측량한 성곽 규빗수(144), ‘일천 번제, 천 년(1000), ‘지파별 인침 받은 자의 수(144000) 등이 나오고, 그리고 창5 아담의 계보 장엔 아담, ‘구백삼십(930) 세, 셋, ‘구백십이(912) 세...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의 경우, ‘구백육십구(969) 세 등 복합 숫자들과 큰 숫자들이 나옵니다.

 

이 숫자들은 그냥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은 모두 천국과의 상응으로 기록된 것처럼 이 숫자들 역시 그 안에 형언할 수 없는 아르카나가 담겨 있습니다.

 

참고로, 저 창5 아담 계보의 경우, 저마다 누렸다는 저 향년은 그 어느 특정 개인이 저 나이 되도록 살다 갔다는 뜻이 아니라 저 이름으로 일컫던 교회가 저 숫자에 담긴 ‘상태와 그 변화’를 겪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969세라 해서 실제 969년 동안 존재했다,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므두셀라’라는 교회, 또는 교리나 어떤 신학적 입장이 969라는 숫자로 표현해야만 하는 어떤 장구한 상태변화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저 숫자가 실제 역사로 얼마나 되는 기간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질학적 지구의 나이, 그리고 오파츠(Out-of-place artifacts, OOPARTS)들의 발견 등을 고려할 때, 아주 장구한 세월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5:32)

 

이 역시 ‘노아’라는 교회에서 ‘오백(500)이라는 어떤 상태변화 후에, ‘셈, 함, 야벳’이라는 세 종류의 교회가 나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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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사람의 변화 (2025/9/16)

 

사람이 영적 상태에 있는 동안은 겉 사람은 아직 속 사람에게 기꺼이 복종하려 하거나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아직 일종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천적 상태가 되면, 그때는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복종하고 섬기기 시작합니다. 자연히 싸움도 그치고, 평온함이 시작되지요. (AC.91)

 

지난날 국민 드라마 ‘허준(1999) 생각이 납니다. 거기 보면 주인공 허준과 그가 처음 몸담았던 경남 산청 유의태, 그리고 그의 아들 유도지와 유의태가 걷어 딸처럼 키운 아름다운 예진 아씨가 나옵니다. 도지는 준의 걸출, 범상치 않은 등장 및 연모하던 예진의 마음이 준에게로 향하는 데 앙심을 품고, 오랜 세월, 심지어 궁궐 내의원에 들어가서까지도 준을 시기, 질투하며, 내의원으로서 함께 임금을 모시는 입장이면서도 사사건건 준을 모함, 대적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그러니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함께 노인이 된 후에는 사람이 변해 진심으로 준을 아끼고 존경하며 따르지요.

 

AC.91번 글을 읽으며, 겉 사람, 속 사람 관계가 꼭 저들, 특히 저 유도지의 변화와도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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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영적, 천적 (2025/9/15)

 

영어로는 natural, spiritual, celestial(heavenly)로 표기할 수 있는 이 세 종류의 상태는 곧 사람을 영적으로 구분한 상태이며, 각각 일층천, 이층천, 삼층천에 상응하지만, 한편으론 ‘거듭남’의 관점에서 본 구분이기도 합니다.

 

이 상태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건 거의 책을 쓰는 수준이 될 것 같아 아주 단순하게 비유적으로만 살짝 말씀드립니다.

 

밭에서 갓 수확한, 그래서 여전히 흙이 묻어 있고 아직 다듬지 않은 거친 채소나 농장의 과일, 그리고 육류나 생선 등의 식재료들의 상태, 바로 이 상태를 가리켜 자연적이라 하며, 영적으로는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창1:2의 ‘혼돈(void)과 ‘공허(emptiness), ‘흑암(thick darkness) 상태를 말합니다.

다음은 저런 식재료들을 잘 다듬고 정성껏 씻어 준비한 상태, 이 상태를 가리켜 영적이라 하며, 창1:3-31의 천지창조의 육일, 곧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를 말합니다. 첫째 날, 둘째 날... 등으로 구분한 이 순서를 따라 사람은 점점 성숙, 마침내 거듭남의 최종단계, 그러니까 이제 요리를 시작해도 될 단계가 됩니다.

 

모든 준비를 끝마쳤어도 이것이 정말 먹기 좋은 훌륭한 음식, 아름다운 요리가 되려면 결정적으로 열을 가해야 하는데 이 열이 바로 사랑, 곧 창조주이신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이 사랑의 열로 변화된 최종 상태, 이 상태가 바로 천적이라는 상태입니다. 창2:1-17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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