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18.심화
1. ‘이 사람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이 사람은 처음 눈 뜨는 과정부터, 그러니까 모든 신생 영들에게 허락된 기본 코스를 밟지 않았나요? 어떻게 자기가 죽어 내세에 와있는지조차 모를 수 있죠? 그리고 천적 천사들의 돌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거 하나만으로도 그의 quality를 알 수 있지 않나요? 끝으로, 세 번째 상태인 오리엔테이션을 안 받아도 되나요? 탈북자들이 국정원, 하나원 등을 안 거치고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천국도 그렇지 않나요?
AC.318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 사람은 모든 신생 영들에게 허락되는 기본 과정을 모두 거친 것일까요? 스베덴보리는 앞에서 모든 사람이 먼저 천적 천사들의 돌봄을 받고, 이어 영적 천사들의 돌봄을 받은 다음, 마지막으로 선한 영들의 돌봄을 받는 일반적인 질서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AC.318에서는 그런 과정이 거의 보이지 않은 채, 이미 어떤 영이 스베덴보리와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마치 이 사람이 일반적인 과정을 생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전체를 연결하여 읽어보면, 오히려 그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AC.181 이하에서 설명된 내용은 특정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모든 신생 영에게 적용되는 일반 법칙입니다. 반면 AC.318은 그 일반 법칙을 다시 반복하여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라, 그 법칙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따라서 AC.318은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모두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중요한 장면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체 문맥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람 역시 천적 천사들과 영적 천사들, 그리고 선한 영들의 돌봄이라는 기본 질서를 따랐지만, 스베덴보리는 그 모든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만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이미 천사들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면 어떻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이것 역시 앞에서 설명된 첫 번째 상태의 목적을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상태에서 주님께서는 사람이 죽음을 충격으로 경험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사람은 의식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여전히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사들의 보호는 사람의 의식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즉시 그것을 자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천사들의 인도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식 속에서는 아직 세상에 있는 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집도 없고 재산도 없으며 이전의 삶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사람이 천적 천사들의 돌봄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AC.315와 AC.316을 함께 읽으면 이것만으로도 그의 영적 품질은 상당 부분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사랑이 중심인 사람은 천적 천사들의 사랑과 평화를 오래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떠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천적 천사들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 분위기를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의 가장 깊은 사랑이 천국의 사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를 다시 자기 자신에게 맡기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의 상태를 몰라서 다시 시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는 확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참된 사랑이 외적 영향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 안에서 스스로 드러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생각은 ‘이 큰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를 향합니다. 만일 그의 선함이 단지 천사들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혼자 남겨졌을 때 다른 생각이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여전히 체어리티를 향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선함이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평생 형성된 삶의 본성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 사람이 세 번째 상태, 곧 천국 공동체에 적응하는 오리엔테이션을 거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문이 직접 답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AC.318은 그가 ‘곧바로 천국으로 올려졌다’고 말하지만, ‘세 번째 상태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천국과 지옥’에서 설명하는 세 번째 상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질서 있는 준비 과정이지, 반드시 장기간의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가장 자연스러운 이해는, 이 사람도 주님의 질서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상태에 맞는 매우 짧은 준비를 거쳤다는 것입니다.
이를 탈북민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탈북민은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 교육을 반드시 거쳐야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대한민국의 언어와 문화, 제도와 생활방식을 이미 충분히 익힌 사람이 귀국한다면, 입국 절차는 거치더라도 장기간의 적응 교육은 거의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도 이와 비슷합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의 질서를 거치지만, 그 준비의 길이와 깊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미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자신의 본성으로 만든 사람은 긴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 안에서의 성장과 배움은 다른 모든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계속됩니다.
AC.318이 보여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주님의 질서가 사람의 상태에 따라 얼마나 섬세하게 적용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질서 안으로 들어가지만, 이미 세상에서 천국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질서가 매우 짧고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오랜 준비를 거치지 않고도 거의 곧바로 자신의 천국 공동체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AC.181 이하의 일반 원칙과 AC.317, 318의 사례를 종합하여 내릴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며, 스베덴보리가 ‘세 번째 상태가 완전히 생략되었다’ 직접 말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구별하여 이해하는 것이 본문에 가장 충실한 태도입니다.
AC.317, 창3 뒤, ‘저마다 다 다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후의 여정’
사람이 영생에 들어감에 관하여 (계속) AC.317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향하여 더 천천히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더 빨리 나아갑니다. 나는 죽은 직후 곧바로 천국으로 올려진 사람들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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