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5:2)

 

AC.477

 

‘사람’(man)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여러 차례 말하고 또 보였습니다. 이는 최고 의미에서 오직 주님 자신만이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천적 교회가 ‘사람’이라 불리는데, 이는 주님의 ‘모양’이기 때문이며, 또한 여기에서 영적 교회도 이후에 ‘사람’이라 불리는데, 이는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인간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사람’이라 불립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해력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며, 그에 따라 어떤 이는 다른 이보다 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참된 구별은 주님을 사랑하는 데 근거한 신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That “man” is the most ancient church has been often said and shown above; for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lone is man. From this the celestial church is called man, as being a likeness, and from this the spiritual church is afterwards so called because it was an image. But in a general sense everyone is called a man who has human understanding; for man is man by virtue of understanding, and according thereto one person is more a man than another, although the distinction of one man from another ought to be made according to his faith as grounded in love to the Lord.

 

[2] 태고교회와 모든 참된 교회, 그리고 그 교회에 속한 자들, 곧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향한 신앙으로 사는 자들이 특별히 ‘사람’이라 불린다는 것은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에스겔서에서 말하기를,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and every true church, and hence those who are of the church, or who live from love to the Lord and from faith in him, are especially called “man,”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Ezekiel:

 

10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36:10-12) I will cause man to multiply upon you, all the house of Israel, all of it; I will cause to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that they may be multiplied and bear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ccording to your antiquities; and I will do better unto you than at your beginnings and I will cause man to walk upon you, my people Israel, (Ezek. 36:10–12)

 

여기서 ‘전 지위’(antiquities)는 태고교회를, ‘처음’(beginnings)은 고대 교회들을, ‘이스라엘 온 족속’(house of Israel)과 ‘내 백성 이스라엘’(people Israel)은 원시 교회, 곧 이방인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 모든 교회가 ‘사람’(man)이라 불립니다. where by “antiquities”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es; by the “house of Israel” and “people Israel,” the primitive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ll which churches are called “man.”

 

[3] 신명기에서도 이와 같이 말합니다. So in Moses:

 

7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8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32:7, 8) Remember the days of eternity, understand ye 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when the most high would give the nations an inheritance, when he would set apart the sons of man, he set the bounds of the people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Deut. 32:7–8)

 

여기서 ‘옛날’(days of eternity)은 태고교회를, ‘역대’(generation and generation)는 고대 교회들을 의미하며, ‘인종’(sons of man)은 주님을 향한 신앙 안에 있던 자들을 의미하는데, 이 신앙이 곧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number of the sons of Israel)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사람’(man)이라 불린다는 것도 예레미야서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where by the “days of eternity” is meant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and generation,” the ancient churches; the “sons of man” are those who were in faith toward the Lord, which faith is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That a regenerate person is called “man,” appears from Jeremiah: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4:23, 25)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empty and void;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3, 25)

 

여기서 ‘땅’(earth)은 외적 인간, 곧 겉 사람을, ‘하늘’(heaven)은 내적 인간, 곧 속 사람을, ‘사람’(man)은 선에 대한 사랑을, ‘공중의 새’(birds of the heavens)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where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heaven” the internal; “man” the love of good; the “birds of the heavens” the understanding of truth.

 

[4] 또다시 말하기를, Again: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31:27) Behold the days come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Jer. 31:27)

 

여기서 ‘사람’(man)은 내적 인간, 곧 속 사람을, ‘짐승’(beast)은 외적 인간, 곧 겉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에서도 말하기를, where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beast” the external. In Isaiah: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2:22) Cease ye from man in whose nostrils is breath, for wherein is he to be accounted of, (Isa. 2:22)

 

여기서 ‘인생’(man)은 교회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 말하기를, where by “man” is signified a man of the church. Again: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6:12) Jehovah shall remove man far away,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Isa. 6:12)

 

이는 선과 진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사람의 황폐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man, in that there should no longer exist either good or truth. Again: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24:6)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shall be burned, and man shall be left very little, (Isa. 24:6)

 

여기서 ‘자’(man)는 신앙을 가진 자들을 의미합니다. 또 where “man” signifies those who have faith. Again:

 

8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9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33:8, 9) The paths have been desolated, the farer on the path hath ceased, he hath made vain the covenant, he hath despised the cities, he hath not regarded man, the earth mourneth and languisheth, (Isa. 33:8–9)

 

여기서 ‘사람’은 히브리어로 ‘에노스’(Enosh)라 불립니다. 또 denoting the man who in the Hebrew tongue is “Enosh.” Again: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13:12, 13) I will make a man more precious than fine gold, and a man than the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moved out of her place, (Isa. 13:12–13)

 

여기서 처음의 ‘사람’은 ‘에노스’(Enosh)이고, 두 번째의 ‘사람’은 ‘아담’(Adam)입니다. where the word for man in the first place is “Enosh,” and in the second is “Adam.”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7에서 ‘사람’이라는 단어 하나에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의미를 담아냅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사람’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해 왔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 분명히 밝힙니다. 그 근원에는 ‘최고 의미에서 오직 주님 자신만이 참된 사람’이라는 선언이 있습니다. 사람됨의 기준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랑과 지혜 그 자체이시며, 모든 참된 인간성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이름은 본래 주님께 속한 이름입니다.

 

이 점에서 천적 교회가 ‘사람’이라 불리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천적 교회는 주님의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사랑과 질서가 교회 안에 그대로 살아 있는 상태가 천적 교회이며, 이때 교회는 주님을 닮은 ‘사람’이라 불립니다. 이어서 영적 교회도 ‘사람’이라 불리는데, 이는 그들이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교회는 완전한 모양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여전히 주님의 진리를 통해 그분을 닮아 가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한 단계 내려와 일반적인 의미의 ‘사람’을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이해력을 가진 모든 인간이 ‘사람’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해력으로 인해 인간이 되며, 이 이해력의 정도에 따라 어떤 이는 다른 이보다 더 ‘사람’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즉시 중요한 단서를 붙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된 구별은 지적 능력이나 사고력의 차이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데 근거한 신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력은 사람됨의 바탕이지만, 사랑에 뿌리내리지 않은 이해력은 참된 의미에서의 ‘사람’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원리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에스겔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표현이 단순히 인구 증가를 뜻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전 지위’는 태고교회를, ‘처음’은 고대 교회들을, ‘이스라엘 온 족속’과 ‘내 백성 이스라엘’은 이방인 교회를 가리키며, 이 모든 교회가 ‘사람’이라 불립니다. 이는 교회가 서로 다른 시대와 형식을 가졌을지라도, 주님과의 관계 안에 있을 때 동일하게 ‘사람’이라 불린다는 뜻입니다.

 

신명기에서 말하는 ‘옛날’과 ‘역대의 연대’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태고교회와 고대 교회들의 흐름 속에서, ‘인종’은 주님을 향한 신앙 안에 있던 자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앙은 단순한 사상 체계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로 표현될 만큼 질서와 충만함을 가진 생명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사람’은 언제나 신앙과 사랑의 질서를 살아 있는 방식으로 지닌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서의 표현은 이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사람이 없으며’라는 말은 인간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선에 대한 사랑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과 ‘하늘’이 황폐해지고, ‘공중의 새’, 곧 진리에 대한 이해가 사라질 때, 성경은 그것을 ‘사람이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사람의 씨’를 뿌리신다는 말은, 내적 인간, 곧 속 사람을 다시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사람’은 언제나 내적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사야서의 여러 구절들도 같은 원리를 반복합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인간 일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람이 더 이상 신뢰할 만한 상태에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나 ‘남은 자가 적도다’라는 표현은, 교회 안에서 선과 진리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는 황폐의 상태를 말합니다. 반대로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라는 말씀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신앙을 지닌 자가 얼마나 귀한지를 강조합니다. 여기서 ‘에노스’와 ‘아담’이라는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는 것도, 인간의 연약함과 본래적 이상이 동시에 대비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AC.477이 말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사람’이란 생물학적 종의 이름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영적 이름’입니다. 태고교회가 ‘사람’이라 불린 것은 그들이 주님을 닮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며, 이후의 모든 참된 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자들도 같은 이유로 ‘사람’이라 불립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사람됨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상실되며,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증언하는 책’으로 읽히게 됩니다.

 

 

 

AC.476, 창5:2,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 ‘사람’(homo)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6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로 말하는 것이 신앙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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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5:2)

 

AC.476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로 말하는 것이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선언되고 증명되었습니다. 곧 남자, 또는 사람(vir)은 이해력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신앙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하고, 여자 또는 여인은 의지, 곧 의지에 속한 것들을 의미하며, 따라서 사랑과 관련된 모든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생명을 의미하는 이름인 하와라 불렸는데, 생명은 오직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에 의해 교회도 의미되며, 이는 이미 앞에서 보인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남자에 의해 교회의 사람(vir)이 의미됩니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것은 교회가 영적 상태에 있었고, 그 후에 천적 상태로 만들어진 때의 상태이므로, ‘여자’(female)보다 ‘남자’(male)가 먼저 언급되는데, 이는 창세기 126–27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영적 인간과 관련되지만, 그 후 결혼이 이루어질 때, 곧 교회가 천적 상태로 만들어질 때에는 더 이상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라고 하지 않고, 그들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둘을 함께 의미하는 ‘사람’(homo)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and he called their name man)는 말이 뒤따르는데, 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That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was declared and proved above, where it was shown that the male or man [vir] signifies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belongs to it, consequently everything of faith; and that the female or woman signifies the will, or the things appertaining to the will, consequently whatever has relation to love; wherefore she was called Eve, a name signifying life, which is of love alone. By the female therefore is also signified the church, as has been previously shown; and by the male, a man [vir] of the church. The subject here is the state of the church when it was spiritual, and which was afterwards made celestial, wherefore “male” is mentioned before “female,” as also in chapter 1:26–27. The expression to “create” also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man; but afterwards when the marriage has been effected, that is, when the church has been made celestial, it is not said “male and female,” but “man” [homo], who, by reason of their marriage, signifies both; wherefore it presently follows, “and he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church.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6, 27)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6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을 통해 교회의 내적 구조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앞서 ‘남자와 여자’가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의미한다는 점을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고 말하면서, 이제 그 이유를 인간 내면의 구조로부터 풀어냅니다. 남자, 곧 사람(vir)은 이해력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하며, 이는 곧 신앙의 영역입니다. 반면에 여자, 곧 여인은 의지와 그에 속한 모든 것을 뜻하며, 이는 사랑의 영역입니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한 쌍이며, 교회의 생명은 바로 이 결합에서 나옵니다.

 

이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남자와 여자를 역할이나 지위의 차이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이해력(understanding)과 ‘의지(will)라는 두 근본 기능으로 나누고, 그 각각이 신앙과 사랑에 상응한다고 말합니다. 이해력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분별하는 능력이고, 의지는 선을 사랑하고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인간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이해하되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머리에 머무는 지식이 되고, 사랑은 있으나 진리가 없으면 그것은 방향 없는 열정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말하며, 교회를 이 둘의 결혼으로 표현합니다.

 

이 맥락에서 여자가 ‘하와’라 불린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하와라는 이름은 ‘생명’을 뜻하는데, 스베덴보리는 생명이 오직 사랑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진리는 생명을 비추는 빛이지만, 생명 자체는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생명을 상징하고, 나아가 교회 자체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지만, 그 진리가 생명이 되려면 사랑 안에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이 때문에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고, 남자는 교회의 사람(vir), 곧 그 교회 안에서 신앙의 역할을 맡은 자를 의미합니다.

 

AC.476은 또한 성경의 표현 순서에 주목하게 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시점은 교회가 아직 영적 상태에 있었고, 그 후에 천적 상태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가 먼저 언급됩니다. 이것은 창세기 126–27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영적 상태에서는 진리를 통해 선으로 나아가는 질서가 먼저 나타나기 때문에, 이해력과 신앙이 앞서 언급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 사랑보다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 성장의 순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다시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을 끌어옵니다. 이 말은 영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받아 새롭게 세워질 때, 그는 ‘창조’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 신앙과 사랑의 결혼이 이루어질 때, 곧 교회가 천적 상태로 만들어질 때에는 표현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고 하지 않고, ‘사람(homo)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두 기능, 곧 이해력과 의지, 신앙과 사랑이 하나로 결합되어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는 말이 뒤따릅니다. 여기서 ‘사람’은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혼된 상태, 이해력과 의지가 하나로 작동하는 상태가 바로 참된 인간이며, 참된 교회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신앙이 따로 말하지 않고, 사랑이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이 인간 안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나타납니다.

 

AC.476은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남자와 여자’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사람’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신앙과 사랑을 말로는 함께 이야기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가 바로 이 ‘사람’의 상태를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생명이었고, 신앙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AC.476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교회는 신앙만으로도, 사랑만으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신앙과 사랑이 결혼될 때에만 존재하며, 그 결혼이 완성될 때 성경은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의 이름으로 ‘사람’이라 부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창세기 5장의 짧은 표현 하나하나가 교회의 깊은 비밀을 드러내는 언어로 살아나게 됩니다.

 

 

 

AC.477, 창5:2, 주님을 닮은 상태여야 ‘사람’(man)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7 ‘사람’(man)이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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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5, 창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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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5:2)

 

AC.475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로 말하는 것은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의미하며,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calling their name man)는 말은 그들이 교회였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특별한 의미에서 ‘사람’(man, homo)이라고 불립니다.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by “calling their name man,” is signified that they were the church, which, in an especial sense, is called “man” [homo].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5에서 창세기 52절의 짧은 표현 속에 담긴 교회의 본질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말은 생물학적 성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사랑 사이의 결혼’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남자는 신앙, 곧 진리를 의미하고, 여자는 사랑, 곧 선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열이나 역할 분담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발생하는 영적 구조에 관한 말입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합되지 않으면, 그곳에는 교회도, 생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결혼은 단순한 협력 관계가 아닙니다. 신앙과 사랑의 결혼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결합이며, 어느 한쪽이 빠지면 다른 한쪽도 그 본래의 성격을 잃습니다. 사랑 없는 신앙은 차갑고 메마른 지식으로 남고, 신앙 없는 사랑은 방향을 잃은 감정으로 흩어집니다. 태고교회는 바로 이 결합이 가장 온전하게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언제나 사랑 안에 있었고, 사랑은 신앙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는 표현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단순히 인간 개체를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사람(homo)은 ‘신앙과 사랑이 결혼된 상태’, 곧 교회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람’이라 부르셨다는 것은, 그들이 단지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곧 교회 자체였다’는 선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신앙과 사랑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입니다.

 

이 점에서 태고교회는 매우 독특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태고교회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삶, 사고, 사랑, 인식 전체가 교회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교회에 ‘출석한다’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살면서 곧 교회였고, 사랑하며 곧 예배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부르셨다’는 말에 담긴 깊은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지점에서 ‘특별한 의미에서 교회가 사람이라고 불린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인간성은 신앙과 사랑의 결합에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단지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혹은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참된 의미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인간은 주님을 향한 신앙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결혼된 상태에서만 나타납니다. 이 결합이 깨어지면, 인간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성경적 의미에서의 ‘사람’은 더 이상 아닙니다.

 

이 원리는 창세기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인간을 둘로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 구조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신앙과 사랑의 결합으로 존재하며, 이 결합이 있을 때에만 ‘사람’이라는 이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이 결합이 가장 온전했던 시대였기에,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한 이름으로, 곧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직접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사랑과 결혼되어 있는가, 아니면 분리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말하면서도 사랑을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신앙의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신앙과 사랑이 다시 결합될 때, 교회는 다시 ‘사람’이 됩니다. 그때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생명이 되고, 제도가 아니라 관계가 됩니다.

 

결국 AC.475는 교회의 정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줍니다. ‘교회란 신앙과 사랑이 결혼된 상태이며, 그 상태가 곧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태고교회는 이 정의가 가장 완전하게 실현된 교회였고, 그래서 창세기 5장은 그들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남자와 여자’라는 성경의 표현은 단순한 창조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의 생명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언어로 살아나게 됩니다.

 

 

 

AC.476, 창5:2,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 ‘사람’(homo)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5:2) AC.476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로 말하는 것이 신앙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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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4, 창5:1, 태고교회의 ‘번성’(propagation)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태고교회의 출생, 곧 ‘번성’(propagation)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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