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6.심화

 

3. ‘4:6-14

 

6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7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8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9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 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10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1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12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3제단의 재를 버리고 그 제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14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4:6-14)

 

 

스베덴보리가 AC.296에서 민4:6-14를 인용한 이유는, ‘해달의 가죽’이 성막 가장 바깥 덮개로 반복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그것이 자연적 선을 표상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본문에서 법궤와 진설병의 상, 등잔대, 금제단, 성소의 기구들, 번제단 기구들을 모두 운반할 때 해달의 가죽으로 덮습니다. 곧 해달의 가죽은 단순한 방수용 재료가 아니라, 거룩한 것들을 외부의 충격과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바깥 덮개였습니다.

 

4에 나오는 성막 기구들은 각각 주님과 천국, 교회와 사람 안의 거룩한 것들을 표상합니다. 법궤는 가장 내적인 천적 선과 진리를, 진설병의 상은 사랑의 선과 그 선에서 나오는 천적 양식을, 등잔대는 영적 진리와 그 진리에서 오는 밝음을, 금제단은 기도와 예배의 향기로운 것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가장 거룩한 것들이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덮개로 싸여야 했으며, 가장 바깥에는 공통적으로 ‘해달의 가죽 덮개’가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적인 거룩한 것들이 직접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먼저 청색이나 홍색, 자색 보자기로 싸고, 그 위를 다시 해달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청색은 천적인 진리를, 홍색은 영적 선을, 자색은 천적 선을 나타내는 색채이며, 해달의 가죽은 그 모든 것을 둘러싸는 가장 외적인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덮개의 순서는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질서를 보여 줍니다.

 

특히 해달의 가죽이 거의 모든 성막 기구에 반복하여 사용된 것은 자연적 선의 보호 기능이 보편적임을 나타냅니다. 사람이 아무리 내적으로 사랑과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외적 삶의 질서와 선한 행위로 보호되지 않으면 쉽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선은 내적 거룩함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을 보존하고 운반하며 세상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필수적인 외피입니다.

 

이 점은 AC.296의 중심 주제인 ‘가죽옷’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신 ‘가죽옷’은 그들이 더 이상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에 머물 수 없게 된 뒤에도,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통하여 보호받을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외적인 옷을 의미합니다. 민4의 해달 가죽 덮개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내적인 거룩한 것들이 외적인 자연적 선으로 보호되는 모습을 표상합니다.

 

또한 성막 기구들이 이동할 때 해달의 가죽으로 덮였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성막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광야를 이동할 때, 곧 변화와 시험, 그리고 불안정의 상태를 통과할 때, 이 덮개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거듭남의 과정에서 여러 상태의 변화를 지날 때, 내적 사랑과 신앙이 외적 삶의 선과 질서에 의해 보호되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자연적 선은 특히 시련과 변화의 과정에서 내적인 것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는 민4:6-14를 통하여 ‘가죽’이 말씀에서 단순한 동물성 재료가 아니라, 사람의 가장 바깥 자연적 차원에 속한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법궤에서부터 제단 기구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거룩한 것이 해달의 가죽으로 덮였다는 것은,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자연적 선을 통하여 안전하게 보존된다는 질서를 보여 줍니다.

 

AC.296에서 이 긴 본문을 인용한 이유는, ‘해달의 가죽’이 자연적 선을 의미하며, 그 자연적 선이 내적인 거룩한 것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가장 바깥 덮개라는 사실을 말씀의 반복된 규례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창3의 ‘가죽옷’, 창27의 ‘염소 새끼의 가죽’, 출26의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함께 하나의 상응 체계를 이룹니다. 곧 주님께서는 사람의 가장 깊은 사랑과 신앙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 생활까지도 선으로 질서 있게 하셔서 사람 전체를 보호하십니다.

 

 

 

AC.296, 창3:21, ‘가죽‘의 상응 원리, 성경 전체를 관통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AC.296 새끼 염소와 양, 염소, 그리고 해달(badgers)과 숫양의 가죽이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bygrace.kr

 

AC.296, 심화 2, ‘출26:14; 36:19’

AC.296.심화 2. ‘출26:14; 36:19’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출26:14; 36:19) 스베덴보리가 AC.296에서 출26:14와 출36:19를 인용한 이유는

bygracetistory.tistory.com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6.심화

 

2. ‘26:14; 36:19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26:14; 36:19)

 

 

스베덴보리가 AC.296에서 출26:14와 출36:19를 인용한 이유는 성막의 덮개를 이루는 여러 가죽이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닌 표상물이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성막 전체가 주님과 천국, 그리고 거듭난 사람을 나타내는 거대한 상응 구조라고 보았으며, 그 가운데 가장 바깥을 덮고 있는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badgers) 가죽 역시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은 영적 선을 의미합니다. 숫양은 말씀에서 체어리티와 신앙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하며, 여기에 ‘붉은 물 들인’이라는 표현이 더해짐으로써 그 선이 사랑으로 생명을 얻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성막 안에 있는 거룩한 것들이 영적 선으로 먼저 보호되고 감싸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위를 다시 덮고 있는 ‘해달’ 가죽은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자연적 선은 영적 선보다 더 바깥 차원에 속하며,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선한 행위와 질서 있는 삶을 가리킵니다. 성막에서 가장 바깥 덮개가 해달 가죽으로 되어 있었던 것은, 가장 외적 삶까지도 선으로 보호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영적인 것은 언제나 자연적인 것을 통하여 세상 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막의 덮개가 두 겹으로 되어 있는 것은 선에도 질서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안쪽의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은 보다 내적인 영적 선을, 그 바깥 ‘해달’ 가죽은 보다 외적인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막은 가장 안쪽의 지성소에서부터 가장 바깥 덮개에 이르기까지,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영적 질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창3의 ‘가죽옷’과 창27의 ‘염소 새끼의 가죽’이 동일한 상응 체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진 ‘가죽옷’, 야곱이 입은 ‘염소 새끼의 가죽’, 그리고 성막의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 가죽은 모두 사람의 가장 바깥을 덮는 외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상응적으로는 겉 사람을 보호하는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성막은 주님의 신성한 인성, 곧 신적 인성(Divine Human)을 표상하는 동시에, 거듭난 사람을 표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바깥 덮개가 선을 의미하는 가죽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말과 행동, 생활과 습관까지도 선으로 보호되고 질서 가운데 있어야 내적 신앙과 사랑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내적 거룩함은 외적 삶이 함께 질서를 이룰 때 비로소 안전하게 보존됩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말씀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모두 상응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성막 덮개 재료 기록을 단순한 성막 운반법 기록으로만 보면, 왜 굳이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 가죽을 구별하여 기록했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응 관점에서는 각각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재료와 구조가 필연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AC.296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성막의 가장 바깥 덮개조차도 주님께서 사람을 영적 선과 자연적 선으로 보호하시는 섭리를 나타내는 거룩한 표상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AC.296, 심화 3, ‘민4:6-14’

AC.296.심화 3. ‘민4:6-14’ 6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7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

bygrace.kr

 

AC.296, 심화 1, ‘창27:15, 16, 27’

AC.296.심화 1. ‘창27:15, 16, 27’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296.심화

 

1. ‘27:15, 16, 27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7:15, 16, 27)

 

 

AC.296에서 스베덴보리가 창27:15, 16, 27을 인용한 이유는 단순히 ‘가죽’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강조하려는 것은 ‘염소 새끼의 가죽’과 ‘에서의 좋은 의복’이 함께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표상하며, 그 결과 이삭이 ‘밭의 향취’를 맡아 축복하는 장면이 하나의 일관된 상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야곱은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는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의 좋은 의복을 입고, 손과 목에는 염소 새끼의 가죽을 둘렀습니다. 겉으로는 형을 가장하기 위한 변장이지만, 속뜻으로는 전혀 다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에서는 선을, 야곱은 진리를 대표합니다. 진리가 참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을 입어야 합니다. 따라서 ‘에서의 의복’은 선이 외적 삶 속에 나타난 모습을, ‘염소 새끼의 가죽’은 그 선이 가장 바깥 자연적 차원까지 미쳐 사람을 감싸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특히 AC.296의 주제는 ‘가죽’입니다. 가죽은 살아 있는 동물의 가장 바깥 부분이며, 상응적으로는 사람의 가장 바깥 삶과 겉 사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염소 새끼의 가죽’은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이 겉 사람을 덮고 보호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창3에서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신 ‘가죽옷’과 정확히 같은 계열의 상징입니다. 두 경우 모두 가죽은 타락하거나 아직 연약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주님께서 마련하신 외적 선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라는 이삭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향취’는 선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기쁨과 즐거움을 의미하고, ‘’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이삭이 맡은 것은 단순히 에서의 체취가 아니라, 교회의 선이 밖으로 드러나는 영적 향기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의복’, ‘가죽’, ‘향취’, ‘’은 각각 따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의 선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또한 이 장면은 AC.296 후반부에서 성막의 ‘숫양의 가죽’과 ‘해달(badgers) 가죽을 설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성막의 가장 바깥을 가죽이 덮고 있었던 것처럼, 야곱도 가장 바깥에 가죽을 입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가장 거룩한 것을 외부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27의 가죽과 출26, 민4의 가죽은 동일한 상응의 원리를 보여 주는 서로 다른 사례입니다.

 

더 나아가 스베덴보리는 이 인용을 통해 말씀의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상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만일 ‘염소 새끼의 가죽’이 단순히 털 많은 손을 흉내 내기 위한 도구였다면, 성막의 가죽과 연결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가죽’이 두 본문에서 모두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창세기와 출애굽기, 민수기를 하나의 상응 체계 안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96에서 창27:15, 16, 27을 인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죽은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창세기의 또 다른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이 입은 ‘염소 새끼의 가죽’은 거듭난 사람의 겉 사람을 감싸는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에서의 의복’은 그러한 선이 삶 속에 드러난 모습을, 그리고 ‘밭의 향취’는 그 선이 교회 안에서 발산하는 생명의 향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창3의 ‘가죽옷’과 성막의 ‘가죽 덮개’를 연결하는 중요한 증거로 AC.296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AC.296, 심화 2, ‘출26:14; 36:19’

AC.296.심화 2. ‘출26:14; 36:19’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출26:14; 36:19) 스베덴보리가 AC.296에서 출26:14와 출36:19를 인용한 이유는

bygracetistory.tistory.com

 

AC.296, 창3:21, ‘가죽‘의 상응 원리, 성경 전체를 관통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AC.296 새끼 염소와 양, 염소, 그리고 해달(badgers)과 숫양의 가죽이 영적 선과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의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