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3.심화

 

5.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5:21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날들(days)이 단순한 과거의 시간들이 아니라 영적 상태들’을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 전체의 목적은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시간 단위가 아니라 거듭남의 상태들로 이해하게 하는 데 있는데, 이 구절은 그 점을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 예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지나간 좋은 시절을 다시 돌려 달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시간 회귀로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날들’은 과거의 연대가 아니라, ‘과거에 가졌던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즉, 이 기도는 예전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과 더 가까웠던 상태를 회복시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황폐와 어둠 속에 떨어진 사람이, 다시 주님께 향하던 생명의 상태, 신앙과 사랑이 살아 있던 상태로 회복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앞부분의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거듭남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변화가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사람을 돌이키실 때 가능한 회복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날들을 새롭게 하소서’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재창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는 표현은 AC 전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태고의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인간과 주님의 관계가 가장 순수하고 살아 있던 상태로 보는데, 여기서의 옛적 역시 그런 더 깊고 순전한 상태를 암시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단순한 민족적 회복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원래 질서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하여, 말씀의 날들’이 언제나 상태 중심의 언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증합니다. 창세기 1장의 첫째 날’, ‘둘째 날’도 마찬가지로, 우주의 시간표가 아니라 인간 안에서 주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영적 상태들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 애가의 날들을 새롭게 하소서’는 결국 창세기의 날들’과 같은 언어이며, 둘 다 주님께서 인간 안에서 다시 생명을 일으키시는 상태의 변화’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AC.23, 창1:5, '날은 곧 상태다 : 시간 너머에서 읽는 거듭남의 리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5) AC.23 말씀에서 ‘날’(day)이 시간 자체를 뜻하는 용례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da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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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심화 4, ‘렘33:20, 25’

AC.23.심화 4. ‘렘33:20, 25’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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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4. ‘33:20, 25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33:20, 25) If ye shall make vain my covenant of the day, and my covenant of the night, so that there be not day and night in their season (Jer. 33:20, also 25).

 

 

이 예레미야 33장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낮과 밤’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 질서의 규례(ordinances)’이며, 따라서 말씀에서 (day)은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을 문자적 시간으로 보지 않고, 인간과 교회의 영적 상태 변화로 읽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여러 선지서의 용례를 인용하는데, 이 예레미야 구절은 특히 낮과 밤의 교대 자체가 영적 질서의 상징’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낮에 대한 나의 언약’,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낮과 밤이 단순한 천체 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언약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낮과 밤의 반복은 우주의 기계적 순환이 아니라, 영적 세계까지 관통하는 신적 질서의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은 선과 진리의 상태, 곧 신앙과 주님의 빛이 있는 상태를 뜻하고, ‘’은 그 반대 상태, 곧 어둠과 시험, 혹은 진리가 약화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낮과 밤의 언약’은 인간과 교회 안에서 선과 진리, 빛과 어둠, 위로와 황폐, 시험과 회복이 질서 있게 교대되는 섭리의 법칙을 가리킵니다.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낮과 밤은 그 계절과 때’를 가지고 움직입니다. 이는 영적 상태에도 정해진 질서와 시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항상 같은 밝기 속에 머물 수 없으며, 교회 역시 늘 같은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아침과 저녁, 봄과 겨울 같은 교대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대는 무질서가 아니라 주님의 언약 안에 있는 질서입니다.

 

25절의 천지의 법칙(ordinances of heaven and earth)이라는 표현은 더욱 결정적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37에서도 이 규례(ordinances)를 영적 상태의 교대를 다스리는 신적 질서로 설명합니다. 하늘과 땅의 법칙이 무너지지 않는 한, 낮과 밤의 질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는 곧 인간 거듭남의 질서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이 단순한 창조 주간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영적 상태 변화의 질서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낮과 밤은 시계의 시간이 아니라, 영혼 안에서 반복되는 빛과 어둠, 신앙과 시험, 회복과 황폐의 상태들을 뜻하며, 그 모든 교대는 주님의 언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AC.23, 심화 5, ‘애5:21’

AC.23.심화 5. ‘애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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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심화 3, ‘렘6:4’

AC.23.심화 3. ‘렘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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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심화

 

3. ‘6:4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are stretched out (Jer. 6:4).

 

 

6:4 구절이 AC.23에 인용된 이유는, 말씀에서 (day)이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영적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3에서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의 날들’을 거듭남의 상태들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 예레미야 구절은 바로 그 해석 원리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예문입니다.

 

본문에서 핵심 표현은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어졌다’는 말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루가 저물어 가는 장면이지만, 선지서의 문맥에서는 단순한 일몰 묘사가 아닙니다. 여기서 ’은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상태를 뜻하고, ‘날이 기울어 간다’는 것은 진리와 선의 빛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저녁 그늘이 길어진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AC.22에서 이미 스베덴보리는 저녁’을 신앙이 약화되거나 없는 상태, 곧 거짓과 혼합의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저녁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것은, 영적 어둠과 거짓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앞부분의 정오에 올라가자’는 말도 상응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정오는 하루 중 빛이 가장 강한 때를 뜻하므로, 영적으로는 진리가 가장 밝게 드러난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가 한때 빛 가운데 있었으나 이제 황폐와 어둠으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즉, 이 구절 전체는 단순한 전쟁의 긴박함이나 하루의 경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상태 변화, 곧 빛에서 어둠으로 이동하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AC.23에 인용하여, 말씀의 ’이라는 표현이 언제나 상태 중심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창세기 1장의 첫째 날’, ‘둘째 날 역시 단순한 시간 계산이 아니라, 빛과 어둠, 신앙과 거짓, 질서와 혼란 사이를 오가는 인간 내면의 상태 변화를 뜻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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