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6.심화

 

1. ‘knowledge 인식으로 번역

 

위 본문에서 기혼을 설명하면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왜 영어 knowledge 인식으로 번역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여기서 knowledge’를 지식’이 아니라 인식’으로 번역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핵심은 이 단어가 가리키는 수준과 기능’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지식(memory-knowledge, scientifica)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과 신앙에서 흘러온 선과 진리를 알아보고 분별하는 이해의 작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같은 knowledge 계열 단어를 쓰지만, 라틴어 원어에서는 cognitio’가 사용되며, 이것은 단순 축적된 지식이라기보다 알아차림, 인지, 식별’에 가까운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옮길 때, ‘지식’이라고 하면 너무 외적이고 정적인 느낌이 강해지고, ‘인식’이라고 해야 그 내적이고 동적인 성격’이 살아납니다.

 

특히 이 문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기혼은 이해’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이 이해는 외부에서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기능이 아니라, ‘이미 주님으로부터 유입된 사랑과 신앙의 내용들을 이해의 빛 안에서 알아보는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지식을 쌓는다’기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참인지 알아본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인식’이라는 번역이 더 정확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지식’이라는 말을 따로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mere memory-knowledge’라는 표현으로, 감각과 경험에 근거한 외적 지식을 따로 비판적으로 다룹니다. 만약 여기서도 같은 지식’이라는 단어를 써 버리면, 기혼이 의미하는 고차원의 이해 작용과 그 기억 지식’이 혼동됩니다. 그래서 번역에서는 의도적으로 구분하여, 하나는 지식’, 하나는 인식’으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리하면, 여기서 knowledge’를 인식’으로 번역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선과 진리를 이해 안에서 알아보고 분별하는 살아 있는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식’이 저장이라면, ‘인식’은 작동이며, 기혼은 바로 그 작동하는 이해의 강을 가리킵니다.

 

 

 

AC.116, 창2:13, '천적 인간의 이해, 기혼 : 사랑에서 나온 것을 알아보는 능력'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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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2:13)

 

AC.116

 

둘째 강(second river),  기혼(Gihon)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을 의미합니다. ‘구스 땅(land of Cush)은 마음(mind), 곧 역량(faculty, 능력, 기능)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은 의지에 관한 것이고, 이 둘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은 이해에 관한 것으로서, 여기에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들이 속합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해설

 

이 글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지혜의 강이 ‘의지와 이해라는 두 축’으로 어떻게 분화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AC.110에서 첫째 강 비손은 사랑에서 나온 신앙의 지성으로, 곧 의지의 영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AC.116은 그 다음 단계로, 이해의 영역을 다룹니다.

 

기혼’이 의미하는 것은 선과 진리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입니다. 여기서 인식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나 기억 지식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분별하고 알아보는 이해의 능력’을 뜻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이해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언제나 사랑과 신앙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받아 정리하고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구스 땅’이 마음이나 역량(faculty, 능력, 기능)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 인식이 머무는 자리를 분명히 합니다. 마음은 하나의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의지와 이해라는 두 기능으로 구성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매우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인간의 영적 구조는 언제나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다시 등장합니다. 첫째 강에 대한 설명은 의지에 속하고, 둘째 강에 대한 설명은 이해에 속합니다. 의지는 사랑을 담는 그릇이고, 이해는 그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인식으로 풀어내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둘째 강은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으로 정의됩니다.

 

이 구조를 놓치면, 두 강의 차이가 흐려집니다. 비손은 사랑에서 직접 흘러나온 신앙의 지성이라면, 기혼은 그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들을 ‘이해 차원에서 폭넓게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는 근원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전개에 가깝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인식들이 여전히 ‘천적 질서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AC.111–112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지 않은 인식은 참된 것이 아니라는 선언과 연결됩니다. 기혼의 인식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유입된 선과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AC.116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이해는 사랑을 대신하여 판단하지 않으며, 사랑에서 흘러온 선과 진리를 밝히고 정리하는 조용한 강으로 흐른다고 말입니다.  

 

 

심화

 

1. ‘knowledge인식으로 번역

 

 

AC.116, 심화 1, ‘knowledge’를 ‘인식’으로 번역

AC.116.심화 1. ‘knowledge’를 ‘인식’으로 번역 위 본문에서 기혼을 설명하면서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knowledge [cognitio])’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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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 창2:11-12, '천적 인간의 인식 : 의미만 봄'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5 태고의 사람들은 ‘땅들’(lands)에 대하여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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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5.심화

 

2. ‘28: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28:11)

 

 

이 구절이 AC.115에서 참조되는 이유는, ‘보석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표현을 통해 ‘진리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생명과 상태를 담은 고정된 실재’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서는 보석 자체보다도 ‘그 위에 이름을 도장처럼 새긴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도장은 임의로 바뀌는 표시가 아니라, 정체성과 소속을 확정하는 표지입니다. 따라서 보석에 이름이 새겨졌다는 것은, 각각의 보석, 곧 각각의 진리가 막연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구별된 상태’를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신앙의 진리들이 각기 다른 성질과 기능을 가지며, 분명히 구별된 채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 이름들이 ‘이스라엘 아들들’, 곧 열두 지파의 이름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신앙의 모든 다양한 형태와 상태들이 각각의 진리로 보존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는 하나로 뭉뚱그려진 추상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상태 속에서 각각 ‘이름을 가진 채’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이 보석들이 ‘금 테에 물려 있다’는 사실이 함께 강조됩니다. 금은 사랑의 선을 의미하므로, 이름이 새겨진 보석들은 ‘사랑 안에 고정된 진리들’을 뜻합니다. 즉 진리는 사랑과 분리되어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 자리 잡고 그 안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결국 이 구절은 AC.115의 논지를 이렇게 뒷받침합니다. 진리는 단순히 아는 내용이 아니라, 각기 구별된 상태로 사람 안에 새겨지는 것이며, 그 모든 진리는 사랑이라는 중심 안에서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을 통해 ‘보석 = 신앙의 진리’라는 상응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름이 새겨진 보석 = 살아 있는 상태로 확정된 진리’라는 점까지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AC.115, 심화 1, ‘창25:18’

AC.115.심화 1. ‘창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이 구절이 AC.115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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