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4.심화

 

1.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이라고 하실까?

 

앞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드렸던 것 같은데... 이 여섯 날의 모든 싸움은 사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거듭남의 일들인데, 왜 주님은 그가 하시던 모든 일(his work)이라 하시며,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그날에 안식하시니라(rest from all his work)라고 하시나요? 이런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거듭 질문드려봅니다.

 

 

아주 중요한 지점을 다시 짚어 주셨습니다. 이 질문은 사실 AC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섯 날의 싸움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거듭남의 과정’이면서도 동시에 주님의 일(his work)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모든 과정의 실제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안에서 협력하고 경험하는 자’이지, 근본적으로 이루어 내는 자’는 아닙니다.

 

먼저 AC의 기본 원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마치 스스로 하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주님이 그 안에서 모든 선한 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놓치면,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이 인간의 노력 이야기로 보이게 되고, 그러면 왜 주님이 하셨다고 하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인간은 싸우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 싸움의 힘과 결과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여섯 날의 싸움을 생각해 보시면 더 분명해집니다. 사람은 유혹과 싸우고, 옳은 것을 선택하려 애쓰고, 악을 거부하려 노력합니다. 이때 인간의 의식 안에서는 내가 싸운다’는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 진리를 붙들 수 있는 빛은 모두 주님에게서 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전체 과정을 주님의 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점에서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역할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근원적인 주체가 누구인가’를 바로잡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싸워야 하고, 선택해야 하며,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는 근원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것은 주님의 역사(役事)’입니다.

 

이제 안식(rest)이라는 표현을 보면, 이것도 같은 원리 안에서 이해됩니다. 여섯 날 동안은 싸움과 분리가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빛과 어둠이 나뉘고, 선과 악이 구분되고, 진리와 거짓이 갈라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여섯째 날이 지나 사랑과 신앙이 하나가 되면, 더 이상 같은 방식의 싸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  평안과 일치의 상태’가 옵니다. 이것이 일곱째 날’, 곧 안식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안식하셨다’는 말은, 주님이 피곤해서 쉬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의 거듭남의 주된 싸움이 마쳐지고, 이제 질서와 평안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일이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의 일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 설명하실 때는 이렇게 풀어 주시면 가장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싸우는 것은 맞지만,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그 모든 일을 주님의 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싸움을 잘 마치면, 주님이 우리 안에 평안을 주시는데, 그것을 안식이라고 한다.’

 

정리하면, 여섯 날의 싸움은 우리의 경험 속에서는 우리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 본질과 결과에서는 주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완성될 때, 주님이 그 안에서 안식하신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인간의 책임과 주님의 주권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질서 안에서 함께 서게 됩니다.

 

 

 

AC.84, 창2:2-3,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AC.84-88)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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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2:2, 3)

 

AC.84

 

천적 인간은 일곱째 날(seventh day)입니다. 주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셨으므로, 그것을 그가 하시던 모든 일(his work)이라 하며, 모든 싸움이 그때 그치게 되므로, 주님께서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그날에 안식하시니라(rest from all his work)라고 하십니다. 이로 인해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안식(rest)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שבת(샤바트, the sabbath)에서 유래하여 안식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며,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말씀을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 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 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해설

 

이 글은 창2:1-3에 대한 해설 가운데서도, 앞선 모든 논의를 하나의 고요한 결론으로 이끄는 자리입니다. AC.83이 ‘다 이루어짐’의 의미를 신앙과 사랑의 결합에서 설명했다면, AC.84는 그 결합이 도달하는 최종 상태를 ‘일곱째 날’이라는 이름으로 분명히 합니다. 천적 인간은 과정의 한 단계가 아니라, ‘과정이 안식으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일곱째 날’을 천적 인간과 동일시합니다. 이는 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인간 내적 상태의 이름입니다. 엿새 동안 주님께서 ‘일하셨다’는 말은, 인간 안에서 질서가 세워지고, 진리가 밝혀지며, 싸움이 계속되던 상태를 뜻합니다. 이때의 ‘’은 창조의 수고이며, 동시에 인간 거듭남의 긴 여정입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모든 싸움이 그칩니다. 여기서 싸움이란 외적 갈등이 아니라, ‘악과 거짓에 맞서 진리를 선택해야 했던 내적 투쟁’을 말합니다. 천적 상태에 이르면, 그 싸움이 더 이상 중심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이미 중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악과 거짓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그것들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주님이 안식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주님께서 활동을 멈추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생명과 선이 ‘방해받지 않고 사람 안에서 그대로 흘러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주님이 쉬신다는 것은, 인간 안에서 주님의 질서가 더 이상 저항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안식입니다.

 

이로 인해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됩니다. 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질서가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안식일의 거룩함을 규칙이나 계명에서 찾지 않고, 인간 내적 상태의 변화에서 찾습니다. 사람이 안식의 상태에 이를 때, 그날은 거룩해집니다. 거룩함은 시간에 붙어 있는 속성이 아니라, 상태에 붙어 있는 속성입니다.

 

여기서 ‘안식일’이라는 말의 어원이 ‘’을 뜻하는 히브리어 ‘שבת(샤바트, the sabbath)에서 나왔다는 설명은 단순한 어학 정보가 아닙니다. 이는 안식일의 본질이 ‘행위의 중단이 아니라 싸움의 중단’임을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싸움이 끝났다는 것은, 주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안정되었다는 뜻이며, 인간의 의지와 이해가 주님의 질서 안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이제 스베덴보리는 이 모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되고, 형성되며,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이 세 동사, create, form, make는 우연한 반복이 아닙니다. 창조는 목적의 설정이고, 형성은 질서의 구성이며, 만들어짐은 실제 삶으로의 구현입니다. 즉, 사람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고, ‘목적 - 질서 - 삶이라는 단계를 거쳐 안식에 이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마지막 문장, ‘이러한 사실들은 말씀을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라는 말은, 스베덴보리의 특유의 확신을 보여 줍니다. 그는 이것을 새로운 교리를 제시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말씀이 이미 말하고 있는 것을, 그 내적 질서에 따라 풀어 보였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논증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자명함의 선언’으로 마칩니다.

 

AC.84에 이르면, 창세기 1, 2장은 더 이상 우주의 기원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어떻게 ‘죽은 상태’에서 시작하여, 영적 상태를 거쳐, 마침내 천적 상태, 곧 안식의 상태에 이르는가에 대한 ‘완결된 인간학적 서사’입니다. 그리고 이 서사의 끝은 활동이 아니라, 쉼입니다. 그러나 그 쉼은 공허가 아니라, 가장 충만한 생명의 상태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창세기 2장의 첫 단락은 사실상 하나의 완전한 원을 이룹니다. 시작은 ‘다 이루어짐’이었고, 끝은 ‘안식’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설명은, 왜 이 마침이 안식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심화

 

1.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이라고 하실까?

 

 

AC.84, 심화 1, 왜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이라고 하실까?

AC.84.심화 1. 왜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이라고 하실까? 앞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드렸던 것 같은데... 이 여섯 날의 모든 싸움은 사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거듭남의 일들인데, 왜 주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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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 창2:1,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 ‘천지와 만물’(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지니라’(finished)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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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3.심화

 

1. the sixth day the sixth day

 

그동안 참 궁금했는데요,  AC영역에 보면,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are said to be finished,”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 for then faith and love make a one.처럼, the sixth day,”식으로 “”를 씌우나요? the sixth day,”가 아니고 말입니다. 저 위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도 그렇고, to be finished,”도 그래요. the sixth day the sixth day의 차이가 뭔가요?

 

 

이건 단순한 따옴표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를 하나의 의미 단위로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the “sixth day sixth day라는 표현 자체를 하나의 상징 개념으로 묶는 것이고, the sixth day the까지 포함해서 전체 구절을 하나의 인용, 상징 단위로 묶는 것입니다. 즉, 기능은 비슷하지만 ‘묶는 범위’와 ‘강조 지점’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먼저 the “sixth day를 보면, the는 문법적으로 그냥 붙어 있는 정관사이고, 실제로 강조되거나 상징 단위로 처리되는 것은 sixth day입니다. 이 경우 핵심은 sixth day라는 표현이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특정 상태(거듭남의 여섯째 단계)’를 가리킨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sixth day에 집중됩니다.

 

반면 the sixth day라고 하면, the까지 포함된 전체 구절이 하나의 덩어리로 묶입니다. 이 경우는 ‘여섯째 날이라는 그 특정한 상태 전체’를 하나의 개념으로 강조하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즉, sixth day라는 말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정해진, 특정한 단계’라는 점까지 함께 포괄해서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스베덴보리의 글에서 이 두 표현이 항상 엄격하게 구분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틴어 원문에서는 이런 차이가 지금 우리가 보는 영어 번역만큼 미묘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영어 번역자(: Potts)가 읽기와 이해를 돕기 위해 따옴표를 배치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뉘앙스를 잡자면 이렇게 정리하실 수 있습니다. the “sixth day sixth day라는 표현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있고, the sixth day는 ‘그 여섯째 날이라는 상태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개념으로 묶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AC를 읽으실 때 실제로 중요한 것은, 따옴표가 어디까지 붙었느냐의 미세한 차이보다, ‘이 표현이 지금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상응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신호를 잡으시면, the “sixth day the sixth day든 결국 같은 방향, 곧 ‘시간이 아니라 상태’로 열리게 됩니다.

 

 

 

AC.83, 창2:1,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2:1) AC.83 ‘천지와 만물’(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이 ‘다 이루어지니라’(finished)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여섯째 날’(sixth day)이 되었을 때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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