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중 한 사람만 신앙이 깊은 경우, 사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다음은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관찰한 수많은 부부의 사후 모습들인데요, 이 주제는 스베덴보리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목사님처럼 실제로 목회를 하시는 분에게는 특별히 자주 받는 질문일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생전에 결혼하지 않았지만, 영계를 왕래하며 수천 쌍의 부부를 관찰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사후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때로는 고통스러운, 때로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통해 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영적으로 맞지 않던 부부는 사후에 자동으로 분리되지만, 서로를 사랑했던 부부는 다시 만나 조용한 이별 또는 새로운 결합을 경험한다.” 그리고 영적으로 깊이 맞았던 부부는 천국에서도 진짜 부부가 된다.”


1. “겉으로만 신앙이 있었던 배우자”의 경우 – 자연스러운 이별

스베덴보리가 가장 자주 본 유형입니다. 지상에서는 교회 다니고, 예배 참석하고, 외적 신앙 행위를 하던 배우자가 실제로는 자기애, 명예욕, 세속 욕망, 이기적 동기 속에서 살았던 경우입니다. 이 부부는 지상에서는 서로 생활을 함께하더라도, 내적 삶(affection)은 이미 다른 방향입니다. 그래서 사후에는 중간영계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멀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그들은 누가 끊어놓은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사랑의 흐름이 없다.” 이 이별은 다툼도 없고, 원망도 없고, 씁쓸함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억지 동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 “한쪽은 신앙이 깊고, 다른 쪽은 선한 사람인 경우” - 부드러운 재회와 조용한 결별

이 경우는 지상에서 흔히 있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신앙이 깊고 영적 진리를 사랑했는데, 아내는 신앙은 없지만 선하고 다정하며 양심이 깊은 경우, 혹은 그 반대인 경우인데요, 스베덴보리는 이런 부부를 중간영계에서 종종 보았습니다. 이럴 경우, 이들은 먼저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재회합니다. 지상에서 서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상태를 보고, 깊은 감사가 오갑니다. 지상에서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영적 본질(사랑의 종류)의 차이가 드러나며, 결국 서로 다른 공동체로 들어갑니다. 이 과정은 대부분 매우 평화롭게, 슬픔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삶을 축복하며 헤어진다.” 이 흐름은 서로의 내적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지, 관계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3. “한쪽은 깊은 영적 삶, 다른 쪽은 신앙과 선이 전혀 없는 경우” - 짧은 만남, 그리고 이별

스베덴보리는 이런 유형의 부부에 대해 약간은 안타까운 사례들을 기록합니다. 지상에서는 법적 부부였지만 감정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살았거나 사실상 각자 따로 삶을 살았던 부부들인데요, 이들은 사후에 잠시 재회하지만, 서로에게 아무런 영적 끌림이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묘사합니다. 그들의 만남은 의무감이 아닌, 마치 예절 같은 만남이었다.” 그러고 나서 둘은 각자 자신의 상태에 맞는 길로 자연스럽게 떠납니다. 이것은 사랑이 없어서 생기는 이별이 아니라, 사랑의 종류(본질)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4. “서로를 사랑했지만 영적 수준 차이가 컸던 부부” - 감동적인 장면들

이 경우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먼저 떠난 배우자의 깊은 영적 삶과 뒤따라온 배우자의 아직 미숙한 상태가 중간영계에서 서로 비교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신앙과 진리의 삶을 깊이 걸었고, 아내는 신앙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 남편을 깊이 애정하고 존중하며 살았던 경우 또는 그 반대인데요, 이런 경우, 사후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다시 만나 다음과 같은 ‘영적 교류’가 이루어집니다. 먼저 상호 감사의 눈물입니다. 지상에서 서로에게 준 사랑과 지지에 대한 감사를 표현합니다. 다음, 영적 차이의 인식인데요, 둘은 서로의 내적 상태 차이를 즉시 느낍니다. 천국 상태의 배우자는 그 상태를 낮추어 상대에게 맞추어 줍니다. 그러나 결국 각자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영적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들의 이별은 아픔이 아니라, 서로의 길을 인정하는 평화였다.


5. “영적 친화성이 깊었던 부부” - 천국에서도 진짜 부부가 된다

스베덴보리가 가장 감동적으로 기록한 장면들입니다. 이들은 지상에서 서로를 깊이 존중했고, 서로를 도우며 성장을 도왔으며, 서로의 신앙과 양심의 길을 지지했고, 마음의 깊은 결합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사후에는 중간영계에서 잠시 정화 과정을 거친 후, 둘이 천국의 같은 공동체로 들어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면을 보고 말합니다. 그들은 다시 만나 ‘아, 이 사람이 나의 진짜 짝이었구나!’ 하는 환희를 느낀다.” 지상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보지 못했으나 천국의 빛 속에서는 그 결합이 명백해졌다.” 이 부부는 천국에서도 실제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일심동체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영혼의 결합이므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참된 하나이다.” 지상에서 서로 깊이 맞았던 부부는 천국에서도 진짜 부부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6. 스베덴보리의 최종 결론 - 부부 결합은 지상의 법률이 아니라 ‘영적 본질’이 결정한다

스베덴보리는 천 명 이상의 부부 사례를 관찰하고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1) 영적으로 맞지 않은 부부는 사후에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2) 사랑은 있었지만 본질이 다르면 일시적 재회 뒤 조용한 이별이 있다. 3) 한쪽만 깊은 신앙을 가졌더라도, 선한 자는 천국으로 인도된다. 4) 천국에서도 부부는 지상의 외적 결혼이 아니라 내적 결합으로 결정된다. 5) 정말 서로의 영적 본질이 맞는 부부는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산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주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합이며, 지상에서는 각자 서로를 돕는 길을 걷는 것이다.”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에서의 가족은 어떻게 새롭게 구성되는가?

스베덴보리는 천국을 탐방하면서 천국의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는 가족이 혈연으로 묶여 있지만, 영계에서는 혈연이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 애정의 본질(사랑의 종류)이 결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러 차례 관찰하면서 결국 확신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천국의 가족은 지상 혈연을 바탕으로 재편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본질이 서로 맞는 사람들로 새롭게 구성된다.” 그러나 이것이 지상 가족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고, 더 진정한 방식으로 재구성되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그 실제 모습을 깊이 있게 설명드리겠습니다.


1. 천국에서의 가장 기본 원리 - 혈연이 아니라 ‘내적 애정(affection)’이 가족을 형성한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 가장 충격을 받은 사실 중 하나가 천국에서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사랑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혈연은 자연계의 관계인 반면, 천국은 영적 친화성으로 결합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사람들은 자연적 혈연보다, 영적으로 친근한 이들과 더 깊은 결합을 이루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천국에서는 같은 종류의 선을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를 가족으로 여긴다.” 즉, 천국 공동체란 비슷한 선(善)의 냄새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입니다.


2. 천국의 가족 공동체는 ‘같은 종류의 선’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공동체를 향기”와 “빛깔”로 묘사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드럽고 자비심 많은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진리를 추구하는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섬김과 겸손의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아이 같은 순전한 선을 가진 영들의 공동체 등, 이들은 마치 서로 같은 영적 호흡”을 하듯 함께 있을 때 깊은 평화를 느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천국의 가족적 결합”이라 부릅니다.


3. 지상 가족은 천국에서 ‘새로운 방식의 따뜻한 가족’이 된다

스베덴보리가 발견한 아름다운 사실 하나는 지상 가족이 천국에서 완전히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과는 다른 방식의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성인 자녀는 함께 살지는 않지만, 서로의 공동체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깊은 애정을 나눕니다. 신앙적·성격적으로 가까웠던 형제자매는 종종 같은 층위의 천국에 있게 되어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합니다. 부부 중 영적 친화성이 같았던 경우에는 천국에서도 실제 부부로 생활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의 가족관계는 지상에서보다 더 깊고, 더 진실하고, 더 자유롭다.


4. 천국의 한 공동체는 ‘영적 친화성’이 모여 이루는 가족 같은 사회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의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이나 이웃이 아니라 가족 같은 영적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 안에는 선배 같은 존재, 동료 같은 존재, 동생처럼 느껴지는 존재, 이웃 같은 존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각자는 자신과 마음이 가장 잘 맞는 사람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가족의 재편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가족들은 혈연의 형태는 없지만, 그 깊이는 지상의 가족보다 더 깊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비난, 질투, 오해, 상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지상 가족과의 애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천국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갖는다고 해서 지상의 가족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지상의 가족은 천국에서도 사랑으로 기억되며, 서로의 평안을 기뻐한다.” 즉, 지상 가족은 천국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기억되는 특별한 인연입니다. 하지만 각자 영적으로 가장 편안한 공동체에 가기 때문에 모두 한 집에 살지는 않습니다.


6. 어떤 경우에는 지상 가족이 천국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기도 한다

스베덴보리가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지상에서 실제로 영적 친화성이 매우 깊었던 가족이 천국에서도 비슷한 층위의 공동체에 들어가 더 밝고 자유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둘 다 선을 사랑했다면 천국에서도 실제 부부로 사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성인 자녀가 같은 천국 층위에서 자주 교류하기도 하고, 영적으로 깊은 유대를 맺은 형제자매가 같은 공동체 안에서 돕고 지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천국에서 가족은 지상보다 더 온전한 방식으로 보존된다.


7. 가장 중요한 핵심 - 천국의 가족 공동체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가장 조화롭게 재구성된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확인한 진리는 이것입니다. 1) 천국에서는 혈연이 아니라 선(善)의 본질로 가족이 구성된다. 2) 지상 가족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유지된다. 3) 영적으로 친화성이 깊었던 가족은 천국에서도 특별히 가깝다. 4) 영적 수준이 다르면 서로 왕래는 가능하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다. 5) 천국 공동체는 서로를 가족처럼 느끼는 새로운 영적 질서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슬픔 없이, 집착 없이, 평화와 기쁨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의 질서 안에서는 어떤 관계도 어그러짐이 없다. 모든 결합은 가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Posted by bygracetistory
,

 

영계에서 가족끼리 ‘자주 만나는 경우’와 ‘드물게 만나는 경우’

영계에서는 누구와 자주 교류하고누구와는 특별한 때에만 만나고누구와는 거의 만나지 않게 되는가? 이것은 모두 내적 상태(state)에 의해 결정된다고 스베덴보리는 아주 일관되게 기록합니다. 지상처럼 거리, 약속, 시간이 결정 요인이 아닙니다. 천국이나 중간영계에서는 “영혼의 향방(향기)”이 곧 만남의 조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만남은 두 마음의 애정이 서로를 향해 열릴 때 이루어진다.” 이 원리로 인해 가족 간에도 자주 보는 경우와 드물게 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1. 자주 만나는 가족 - ‘애정의 기운이 서로를 자연히 가까이하게 하는 경우’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여러 공동체에서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친척들이 자주 교류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이들이 자주 만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상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관계

지상에서 서로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아끼고, 도와주고, 영적 성장을 북돋아주는 관계였다면, 영계에서도 그 “향방”이 일치합니다. 영계에서 사랑은 방향을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서로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는 영혼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불러냅니다.


영적 친화성이 비슷한 경우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 모두 신앙적으로 비슷한 깊이를 가진 경우, 형제자매가 모두 선한 본성을 유지한 경우, 남매가 서로의 삶을 도와주며 지낸 경우, 이들은 천국에서도 비슷한 층위의 공동체에 들어가며, 정기적으로 만나 삶을 나누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비슷한 선을 가진 이들은 천국에서 자주 교류한다.


서로의 영적 기쁨을 북돋아주는 관계

천국의 사람들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영적 기쁨이 더 밝아지는가?”를 아주 정확히 느낍니다. 그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자연스럽게 자주 교류합니다. 가족 중에 이런 관계가 있었던 경우, 영계에서도 빈번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2. 드물게 만나는 가족 - “애정은 있지만 상태가 다를 때”

스베덴보리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만 영적 수준이 다르면 자주 만나기 어렵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결코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가 서로 달라 애정이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둘의 영적 “공기”가 다를 때

스베덴보리는 자주 천국의 공기를 ‘선함의 향기’로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아주 깊은 천국적 신앙 단계인 반면, 아들은 비교적 외적 선의 단계라면, 둘은 서로를 보지만, 영적 호흡(affection)이 오래 합쳐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남은 가능하나 길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짧은 기쁨, 그러나 온전한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좋아하지만 정서의 깊이가 다를 때

어떤 가족은 지상에서 서로 사랑했지만, 영혼의 기질(애정의 종류)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천적(天的) 사랑’을 가진 유형(순전한 선)인 반면, 다른 사람은 ‘영적(靈的) 사랑’을 가진 유형(진리를 통한 선)일 경우,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만, 각자의 공동체로 돌아가야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만남은 특별한 일”처럼 반갑고 의미 있지만, 빈번한 일은 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사명”이 다른 경우

천국 사람들은 각자 맡겨진 일, 주님과의 결합의 형태, 섬김의 방식이 다릅니다. 그 사명의 깊이에 따라 서로를 자주 만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만남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설명합니다. 천국의 사람들은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유 속에서 더욱 밝아진다.” 즉, 자주는 아니어도 항상 ‘열려 있는 관계’입니다.


3. 거의 만나지 않는 가족 - “영적 방향이 완전히 다른 경우”

이 경우는 “관계 단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영계에서는 서로 다른 애정은 서로를 향해 움직일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선한 삶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명예·자기애·세속적 욕망을 사랑했다면, 중간영계에서도 잠시 재회할 수는 있지만,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헤어집니다. 이때 천국인은 전혀 슬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인은 악을 향해 마음이 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천국적 정서의 특징입니다.


4. 스베덴보리의 결론 – “자주 만남은 사랑의 친화성이고, 드문 만남은 자유의 표현이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의 가족 관계를 이렇게 종합합니다. 자주 만나는 경우서로 비슷한 선이거나 비슷한 신앙, 그리고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이거나 영적 공기가 비슷한 경우이고, 드물게 만나는 경우는 본질은 같으나 깊이가 다르거나, 서로를 사랑하지만 영역(사명)이 다른 경우 등 이럴 땐, 서로의 상태가 맞춰질 때만 만남이 허용된다. 그리고 거의 만나지 않는 경우는 본질의 사랑이 완전히 다른 경우이거나 영적 방향성이 전혀 반대인 경우이다.


5. 결정적이고 실제적인 메시지

스베덴보리는 이 내용을 정리하며, 아주 중요한 목회적 통찰을 남깁니다. “사랑의 깊이는 영원히 기억되고, 각자의 거처는 영적 본질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만남의 자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즉, 가족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랑의 형태가 영계의 형태에 맞게 변형되어 가장 순전한 방식으로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