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7)



AC.268

(ground)이 겉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earth’, ‘ground’, 그리고 field에 관하여 설명한 내용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사람이 거듭나면 더 이상 earth라 하지 않고, ‘ground라 하는데, 이는 천적 씨가 그 안에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여러 곳에서 사람을 ground에 비유하며, 또한 ground라고 합니다. 선과 진리의 씨는 속 사람이 아니라 겉 사람, 곧 사람의 애정과 기억 속에 심어집니다. 이는 속 사람 안에는 사람 자신의 own이 전혀 없고, 오직 겉 사람 안에만 own이 있기 때문입니다. 속 사람 안에는 선과 진리가 존재하며, 그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은 겉 사람, 곧 육적인 사람(corporeal man)이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과 진리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 안에 보존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겉 사람이 마치 죽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될 때라야 비로소 나타나는데, 이는 대개 유혹 가운데 있을 때나, 재난과 질병을 겪을 때,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그러합니다. 또한 rational도 겉 사람에 속합니다 (AC.118 참조). rational은 그 자체로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일종의 매개체(medium)입니다. 속 사람은 rational을 통하여 육체적인 겉 사람에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rational이 잘못된 것에 동의하게 되면, 겉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더 이상 속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게 되며, 따라서 속 사람에 속한 총명과 지혜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That the “ground” signifies the external man is evident from what was previously stated concerning “earth,” “ground,” and “field.” When man is regenerate, he is no longer called “earth,” but “ground,” because celestial seed has been implanted in him; he is also compared to “ground” and is called “ground” in various parts of the Word. The seeds of good and truth are implanted in the external man, that is, in his affection and memory, and not in the internal man, because there is nothing of one’s own in the internal man, but only in the external. In the internal man are goods and truths, and when these no longer appear to be present, the man is external or corporeal; they are however stored up in the internal man by the Lord, without the man’s knowledge, as they do not come forth except when the external man as it were dies, as is usually the case during temptations, misfortunes, sicknesses, and at the hour of death. The rational belongs also to the external man (n. 118), and is in itself a kind of medium between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for the internal man, through the rational, operates on the corporeal external. But when the rational consents, it separates the external man from the internal, so that the existence of the internal man is no longer known, nor consequently the intelligence and wisdom which are of the internal.

 

 

해설

 

이 글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인간의 영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그는 먼저 ‘ground’가 겉 사람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앞에서 ‘earth’는 아직 거듭나지 않은 상태를, ‘ground’는 천적인 씨를 받을 준비가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의미를 더욱 발전, 선과 진리가 실제로 심어지고 자라나는 장소가 바로 겉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처음 읽으면 다소 의외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장 깊은 영적 생명은 속 사람 안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선과 진리의 씨는 겉 사람의 애정과 기억 속에 심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는 거듭남이 단순히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생각, 배우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듣고,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모든 과정은 겉 사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속 사람이 비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속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속 사람 안에는 사람 자신의 own이 없다고 말합니다. 속 사람은 본래 사람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 안에 마련해 두신 생명의 통로입니다. 따라서 참된 선과 진리는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게 흘러 들어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하나 나옵니다. 속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는 사람이 평소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그것들을 사람도 모르는 가운데 보존하고 계신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 리메인스의 교리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모든 선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시며, 필요한 때를 위하여 그것들을 속 사람 안에 안전하게 간직하십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그 선과 진리가 언제 드러나는지도 설명합니다. 그것들은 겉 사람이 ‘마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에 이를 때 나타납니다. 유혹 가운데 자기 확신이 무너질 때, 큰 재난이나 질병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을 때, 또는 죽음을 앞두고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될 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속 사람의 생명이 더욱 분명하게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람이 자신의 own을 의지하지 않게 될 때, 속 사람 안에 간직해 두셨던 선과 진리를 더욱 자유롭게 역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스베덴보리는 rational의 위치를 매우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rational은 속 사람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가장 바깥의 육체적 차원에 속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겉 사람에 속하지만, 동시에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이어 주는 매개체입니다. 속 사람은 rational을 통하여 겉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람은 rational을 통하여 진리를 이해하고, 삶에 적용합니다. 따라서 rational은 본래 속 사람의 빛을 겉 사람에게 전달하는 통로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rational은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 되기도 합니다. rational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아들일 때에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반대로 rational이 감각과 own에 동의하면,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이것이 AC.267에서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라는 말씀이 갖는 심각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rational의 동의는 단순한 생각 하나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영적 질서를 바꾸는 결정이 됩니다.

 

AC.268은 사람의 영적 구조와 거듭남의 과정을 하나의 질서 안에서 설명하는 글입니다. 겉 사람은 선과 진리가 실제로 심어지고 자라는 삶의 자리이며, 속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rational은 이 둘을 연결하는 소중한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rationalown과 감각의 편에 설 때에는 속 사람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이때 사람은 속 사람의 존재와 그 안에 있는 지혜와 총명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rational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아들일 때에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하나로 결합되고, 사람은 비로소 주님께서 속 사람 안에 보존해 두셨던 리메인스의 역사 가운데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심화

 

1. ‘AC.118’

 

스베덴보리가 AC.268에서 AC.118을 인용한 이유는, 방금 설명한 ‘rational은 겉 사람에 속하지만,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가르침이 이미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 해설에서 밝혀졌던 내용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AC.268의 설명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이미 제시한 인간의 영적 구조를 타락의 문맥에 적용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AC.118에서 스베덴보리는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네 강을 사람의 내적 구조와 연결하여 해석합니다. 그 가운데 ‘힛데겔’은 rational의 밝은 통찰을, ‘앗수르’는 rational 자체를 의미합니다. 특히 ‘앗수르로 향하여 흐르는 강’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rational에 이르는 진리의 유입(influx)을 나타냅니다. 즉, rational은 스스로 빛을 내는 기관이 아니라,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작용하는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AC.268의 핵심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AC.268에서 스베덴보리는 ‘속 사람은 rational을 통하여 겉 사람에게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AC.118에서 이미 ‘강이 속에서 밖으로 흘러간다’는 상징으로 설명했던 동일한 원리입니다. 따라서 AC.118의 인용은, 속 사람에서 rational을 거쳐 겉 사람으로 이어지는 질서가 창조 때부터 주어진 본래의 질서임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AC.118은 rational의 위치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rational은 속 사람도 아니고, 가장 바깥의 감각적인 차원도 아닙니다. 그것은 양자를 이어 주는 중간 영역입니다. 그래서 AC.268에서 rational을 ‘일종의 매개체(medium)’라고 부르는 것도 AC.118의 설명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 안의 모든 작용이 주님 → 속 사람 → rational → 겉 사람이라는 질서를 따라 이루어진다고 이해합니다.

 

이 때문에 rational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본래 rational은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아 겉 사람을 인도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창3에서처럼 rational이 감각과 own의 편에 서게 되면, 더 이상 속 사람의 빛을 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AC.268에서 ‘rational이 동의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C.118은 rational이 본래 어떻게 기능하도록 창조되었는지를 보여주고, AC.268은 그 기능이 어떻게 손상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AC.118에서 ‘유브라데’(Phrath, Euphrates)를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의 경계라고 설명한 것도 AC.268과 연결됩니다. 속 사람의 빛은 rational을 거쳐 기억과 감각, 그리고 행동에까지 흘러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흐름이 중간에서 막히면 기억 지식은 더 이상 영적 생명을 담지 못한 채 단순한 지식으로 남게 됩니다. 이것이 창3 이후 인간에게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AC.268에서 AC.118을 인용한 이유는, 인간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창조의 본래 질서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rational에 빛이 흘러들고, rational은 다시 그 빛을 겉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나 rational이 own과 감각에 동의하는 순간 그 흐름은 차단되고, 겉 사람은 속 사람과 분리됩니다. 따라서 AC.118은 인간의 본래 구조를 설명하는 본문이고, AC.268은 그 구조가 타락으로 어떻게 손상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둘을 연결함으로써, 창세기 2장은 창조의 질서를, 창3은 그 질서의 붕괴를 보여주는 서로 대응되는 기록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AC.267,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AC.267-271)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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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7.심화

 

1. ‘속 사람’, ‘겉 사람

 

여기 내적인 사람’, ‘외적인 사람을 각각 속 사람’, ‘겉 사람으로 이해해도 되나요?

 

 

속 사람’과 ‘겉 사람’이라는 표현은 스베덴보리의 internal man external man을 이해하는 데 매우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적인 사람’, ‘외적인 사람’보다 우리말에서 훨씬 자연스럽고 직관적이어서, 독자들도 의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AC 번역에서는 internal man은 ‘속 사람’, external man은 ‘겉 사람’으로 통일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스베덴보리의 개념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internal man external man은 단순히 ‘마음속’과 ‘겉모습’을 대비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는 이것을 인간 존재를 이루는 두 가지 영적 차원으로 사용하며, 각각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가진 실제적인 구조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속 사람(internal man)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직접 받는 차원입니다. 퍼셉션과 천적, 영적 생명이 자리하는 영역이며, 거듭남의 중심이 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이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과 연결되며, 참된 선과 진리는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반면 ‘겉 사람(external man)은 감각과 기억 지식, 행동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자연적인 차원입니다. 사람은 몸을 통하여 세상과 접촉, 배우고, 기억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데, 이러한 모든 활동은 겉 사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겉 사람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속 사람으로부터 질서를 받아야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C.267에서 ‘외적인 사람 전체도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라는 표현도, ‘겉 사람 전체도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라고 옮기면 훨씬 자연스럽고 의미도 분명하게 전달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주’는 주님께서 내리시는 형벌이 아니라,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된 결과를 의미합니다.

 

다만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스베덴보리가 구별하는 층위를 함께 살려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internal external뿐 아니라 interior exterior도 엄밀하게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만일 internal interior를 모두 ‘내적’이라고 번역하면, 스베덴보리가 의도한 인간의 영적 구조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는 사람을 설명할 때 inmost, internal, interior, exterior, external과 같이 여러 단계의 질서를 구분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를 가능한 한 우리말에서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inmost는 ‘가장 깊은’, internal은 ‘’, interior는 ‘내적’, exterior는 ‘외적’, external은 ‘’으로 구분하면,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영적 층위와 흐름을 비교적 충실하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 원칙을 따르면 스베덴보리의 개념 구조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한국어의 자연스러움을 함께 살릴 수 있습니다. 특히 ‘속 사람’과 ‘겉 사람’이라는 표현은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인간의 영적 구조를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번역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AC.267,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AC.267-271)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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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3:17)



AC.267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man hearkening to the voice of his wife)는 남자,rational의 동의를 의미하며, 이로 말미암아 rational 역시 스스로 돌아서게 되었고, 따라서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라는 말씀으로 뜻하는 바와 같이 외적인 사람, 곧 겉 사람 전체도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eat thereof in sorrow)라는 것은 그의 삶의 장래 상태가 비참하게 될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 교회의 끝에 이를 때까지,네 평생에(all the days of his life) 그러할 것임을 뜻합니다. By the “man hearkening to the voice of his wife” is signified the consent of the man, or rational, by which it also averted or cursed itself, and consequently the whole external man, denoted by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To “eat thereof in sorrow” means that the future state of his life would be miserable, and this even to the end of that church, or “all the days of his life.”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창3:17을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는 여자의 상태와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설명하였다면, 이제는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타락이 사람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합니다. 특히 그는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라는 표현을 단순한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rational이 감각과 own의 제안에 동의한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앞에서 뱀은 감각의 차원을, 여자는 own의 욕구를 따라 움직이는 애정의 차원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자, 곧 rational까지 그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동의(consent)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유혹은 밖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 죄가 되는 것은 rational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승인할 때입니다. 따라서 창3의 타락은 감각의 유혹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rational이 그것을 옳다 인정한 데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rational 역시 스스로 돌아섰다(averted itself)’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주님에게서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창3 전체에서 반복되어 온 원리입니다.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돌아설 때, 그 결과로 스스로 저주받은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저주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형벌이 아니라, 질서를 떠난 사람이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영적 결과입니다.

 

이어지는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에서도 ‘(ground)을 교회의 외적 상태, 또는 사람의 외적 생명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사람, 곧 겉 사람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자연 자체가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외적 삶 전체가 내적 질서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내면이 무너지면 그 결과는 반드시 삶 전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너는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라는 말씀도 단순히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사람의 장래 영적 상태가 비참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본래 퍼셉션 안에서 평안하게 진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같은 진리를 얻기 위해서 이제부터는 끊임없는 유혹과 갈등, 노력과 수고를 겪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수고는 육체적인 노동보다 먼저 영적 삶의 고단함을 가리킵니다.

 

또한 ‘네 평생에’라는 표현도 단순히 개인의 일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그 교회의 끝에 이를 때까지’라고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창3에서 다루는 것은 한 개인 아담의 생애가 아니라 태고교회 전체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은 그 교회가 존속하는 전 기간을 뜻하며, 그 기간 동안 교회는 점차 쇠퇴하여 마침내 홍수로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설명은 앞에서 살펴본 AC.261에서 AC.266까지의 흐름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own이 애정을 왜곡하고, 감각이 그것을 부추기며, 마침내 rational이 그것에 동의하자 사람의 외적 삶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과정을 매우 질서 있게 설명하면서, 타락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사람 안의 여러 기능이 차례로 질서를 잃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AC.267은 창3:17을 통하여 타락이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감각의 유혹과 own의 욕구에 rational까지 동의함으로써 사람은 스스로 주님으로부터 돌아섰고, 그 결과 외적 삶 전체가 본래의 질서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람은 진리를 살아가는 일조차 끊임없는 영적 수고와 유혹 가운데 행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태는 태고교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절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 주님의 구속과 거듭남이 반드시 필요한지를 보여주려는 스베덴보리의 깊은 영적 가르침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심화

 

1. ‘속 사람’, ‘겉 사람

 

 

AC.267, 심화 1, ‘속 사람’, ‘겉 사람’

AC.267.심화 1. ‘속 사람’, ‘겉 사람’ 여기 ‘내적인 사람’, ‘외적인 사람’을 각각 ‘속 사람’, ‘겉 사람’으로 이해해도 되나요? ‘속 사람’과 ‘겉 사람’이라는 표현은 스베덴보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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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8, 창3:17, ‘땅’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8‘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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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6, 창3:16, ‘창3:16에 담긴 결혼의 법의 의미’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6모든 법과 계명은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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