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51.심화

 

1. 갈빗대라는 own 여자라는 own으로

 

그러니까 위 본문은 두 종류의 own, 즉 사람에게 두 종류의 own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처음 own,  갈빗대라는 own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중 own,  여자라는 own이 되었다는 말이죠?

 

 

네, 바로 그 뜻에 가깝습니다. AC.151의 흐름은 ‘두 개의 서로 독립된 proprium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 허락된 proprium의 상태가 점차 다른 방향과 성격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빗대’와 ‘여자’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실체라기보다, 하나의 proprium이 변화, 전개된 두 단계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정확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처음의 proprium, 곧 ‘갈빗대’로 상징되는 것은 아직 비교적 수동적이고 미세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자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는 단계이지, 아직 완전히 독립 선언을 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래서 갈빗대는 몸에서 떼어낸 뼈처럼, 여전히 원래 생명 질서와 연결된 상태 안에 있습니다. 즉, 주님께로부터 오는 생명 아래 있으면서도, 인간 안에 자기감의 기초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자’로 표현될 때는, 그 proprium이 보다 적극적이고 자의식적인 구조로 나타납니다. 곧, 인간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고 응답하는 방향성이 더 분명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단순 보조 존재가 아니라, 인간 안에 형성된 proprium의 살아 있는 구조를 뜻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곧바로 타락이나 악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AC 초기에서 스베덴보리는 계속 조심스럽게 설명합니다. 이 proprium은 처음에는 ‘as if his own’, 곧 ‘마치 자기 것 같은’ 것으로 허락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롭게 사랑하고 응답하기 위해 반드시 자기 자신처럼 느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갈빗대가 여자 되는 과정은, 자기감 자체의 형성과 성장 과정이라고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정리하신 표현, 곧 ‘처음 own인 갈빗대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중 own인 여자가 되었다’는 이해는 상당히 정확합니다. 다만 조금 더 섬세하게 말하면, ‘주님께서 허락하신 초기 proprium의 가능성이 점차 인간 안에서 더 살아 있는 자기성 구조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 창세기 3장의 모든 긴장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proprium 자체는 처음부터 악으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proprium이 계속 주님께 열려 있느냐, 아니면 자기 자신을 독립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기 시작하느냐입니다. 즉, 갈빗대가 여자 되는 것 자체는 아직 질서 안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 proprium이 자기중심으로 굳어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타락의 방향이 열리게 됩니다.

 

 

 

AC.151, 창2:22,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는 주님’(AC.151-15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창2:22) AC.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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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22)

 

AC.151

 

만드시고(build)는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뜻입니다. ‘갈빗대(rib)는 아직 살아나지 않은 사람의 own을 뜻하며, ‘여자(woman)는 주님에 의해 살아난 사람의 own을 뜻합니다.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he brought her to the man)는 그 own이 그에게 허락되었음을 뜻합니다. 이 교회의 후손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천적 인간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own의 인도 아래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own으로 기울어졌고, 그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었으나, 다만 주님에 의해 살아난 own이었기 때문에 여자(woman)라 하였고, 이후에는 아내(wife)라 하였습니다. By to “build” is signified to raise up what has fallen; by the “rib,” man’s own not vivified; by a “woman,” man’s own vivified by the Lord; by “he brought her to the man,” that what is his own was granted him. The posterity of this church did not wish, like their parents, to be a celestial man, but to be under their own self-guidance; and, thus inclining to their own, it was granted to them, but still an own vivified by the Lord, and therefore called a “woman,” and afterwards a “wife.”



해설

 

AC.151은 창세기 2장에서 ‘여자가 만들어지는 사건’을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해 주는 단락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이 장면을 타락의 시작이나 단순한 보조적 존재의 창조로 보지 않고, ‘own에 대한 주님의 허락과 질서 부여’로 해석합니다.

 

먼저 ‘만드시고’로 옮긴 ‘짓다’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이는 무에서 창조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운다’는 뜻입니다. 앞 단락들에서 인간은 자기의 own으로 기울어졌고, 그 결과 ‘갈빗대’, 곧 생명 없는 own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주님은 이 상태를 제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다시 세우십니다. 이것이 ‘build’입니다.

 

갈빗대’와 ‘여자’의 대비는 결정적입니다. 갈빗대는 살아 있지 않은 own이고, 여자는 ‘주님에 의해 생명을 받은 own’입니다. 즉, 문제는 own 자체가 아니라, 그 own이 ‘어디에서 생명을 받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이 own을 전혀 갖지 않도록 만들지 않으시고, own을 갖되 그것이 주님에게서 살아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는 표현은, 이 살아난 own이 인간에게 실제로 ‘주어졌음’을 뜻합니다. 이는 시험이나 잠정적 상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허락된 상태입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태고교회의 초기 조상들이 아니라, ‘그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천적 인간으로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요구를 즉시 파멸로 돌리지 않으십니다. own을 허락하시되, ‘여전히 주님에 의해 살아난 상태’로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이 own은 ‘여자’라 불리고, 더 나아가 ‘아내’라 불립니다. 이는 질서 안에 있는 결합, 곧 이후에 나타날 외적, 내적 결합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이 단락은 매우 미묘한 균형 위에 서 있습니다. 인간의 자기 인도 욕망은 이미 위험을 내포하지만, 주님은 그 욕망을 즉각 제거하지 않으시고, ‘생명으로 감싸서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후 3장에서 드러날 긴장의 출발점입니다.

 

 

심화

 

1. 갈빗대라는 own여자라는 own으로

 

 

AC.151, 심화 1, ‘갈빗대’라는 own이 ‘여자’라는 own으로

AC.151.심화 1. ‘갈빗대’라는 own이 ‘여자’라는 own으로 그러니까 위 본문은 두 종류의 own, 즉 사람에게 두 종류의 own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처음 own, 즉 ‘갈빗대’라는 own이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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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0, 창2:21, ‘깊은 잠’, 자신의 own으로 산다 여기는 상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50 사람이 own 안에 있을 때, 곧 자신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여길 때의 상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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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0.심화

 

5.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고백의 무게와 근본적인 중요성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라는 고백은 단순히 경건한 종교 문구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이것은 인간 존재 전체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고백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겉으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는 나로부터 산다, 내 힘으로 산다(I live from myself)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생각도 내가 하고, 결정도 내가 하고, 사랑도 내가 하고, 움직임도 내가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느껴져야 하지만, 실제(real truth)는 인간 안의 생명 자체가 순간순간 주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정도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 생명의 근원은 제 자신 안에 있지 않습니다’라는 존재론적 고백입니다. 곧, ‘저는 닫힌 독립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받는 존재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이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믿기 시작하는 순간, proprium이 굳어지고, 선과 진리조차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바뀌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의 무게는 단순 겸손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나는 내 힘으로 산다’는 감각 안에서는 결국 자기 사랑과 두려움과 경쟁이 중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생명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잃는 것이 곧 자기 붕괴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고백 안에서는,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닫힌 근원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생명이 계속 주님께로부터 온다고 보기 때문에, 자기 존재를 끝없이 움켜쥐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스베덴보리가 evil falsity를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인간이 악과 거짓을 단순히 접촉’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appropriates한다고 말합니다. 즉, 자기 존재 중심 안으로 끌어들여 내 것’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문을 여는 것이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산다’는 믿음입니다. 반대로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 안에 서기 시작하면, 인간은 악과 거짓을 자기 존재의 본질로 동일시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들어와도 이것이 진짜 생명의 근원은 아니다’라고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주 놀라운 점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의 균형입니다. 인간은 자유와 사랑을 위해 반드시 자기 삶처럼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유 안에서 실제로는 내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proprium은 점점 주님께 열린 방향으로 재형성됩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단순 사상 하나가 아니라, 거듭남 전체의 중심축이 됩니다.

 

결국 저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삽니다’라는 고백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주인으로 보지 않고, 주님의 생명을 받는 존재로 자신을 다시 자리 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에게서 천국이란 바로 이 진리가 사랑 안에서 완전히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천사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자기감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가장 강한 생명감과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 모든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기쁨으로 지각합니다. 그래서 이 한 문장은 단순 경건 표현이 아니라, proprium에서 천국 질서로 넘어가는 문과도 같은 고백입니다.

 

 

 

AC.150, 창2:21, ‘깊은 잠’, 자신의 own으로 산다 여기는 상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1) AC.150 사람이 own 안에 있을 때, 곧 자신이 자기로부터 산다고 여길 때의 상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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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0, 심화 4, ‘For a number of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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