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8

 

이들은 이 생각 안에 상당한 시간 동안 천적 천사들에 의해 머물게 되며, 그 뒤에 천적 천사들이 떠나고, 이 소생 중인 자들은 다음으로 영적 천사들에게 맡겨져 그들과 교통하게 됩니다. 이 사이에 이들은 여전히 자신이 육체 안에서 살고 있다는 어렴풋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In this thought they are kept for a considerable time by the celestial angels before these angels depart, and those who are being resuscitated are then left to the spiritual angels, with whom they are next associated. Meanwhile they have a dim idea that they are living in the body.

 

 

해설

 

이 단락은 소생 과정이 ‘단계적이며 질서 정연한 이행’임을 아주 분명히 보여줍니다. 앞 단락에서 천적 천사들이 죽음의 순간에 사람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생각 안에 붙들어 두었다면, 여기서는 그 상태가 ‘상당한 시간’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소생이 순간적 전환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상태가 새 질서에 적응하도록 배려된 과정임을 뜻합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천적 천사들이 떠난 뒤 영적 천사들이 이어서 맡는다는 구조’입니다. 이는 천적 상태에서 영적 상태로의 하강이나 퇴보가 아니라, 인간이 점차 의식과 이해의 차원을 회복해 가는 자연스러운 전개입니다. 천적 천사들은 사랑과 의지의 가장 깊은 중심을 보호하며, 그 역할이 끝나면, 이해와 사고의 차원에 속한 영적 천사들이 교통의 주체가 됩니다. 이는 인간이 깨어나는 순서가 사랑의 중심에서 이해의 중심으로 옮겨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연합된다’(the spiritual angels, with whom they are next associated)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인간은 홀로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천사적 공동체와의 교통 안에 있습니다. 단지 그 공동체의 성격이 바뀔 뿐입니다. 이 연속성은 소생 과정 전체가 주님의 섭리 아래 놓여 있음을 다시 한번 확증합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점에서도 그들이 ‘자신이 육체 안에서 살고 있다고 어렴풋이 생각한다’는 대목입니다. 이는 죽음 직후에 인간이 곧바로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무지는 혼란이나 공포가 아니라, ‘완충 장치’에 가깝습니다. 지상에서의 삶과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자각이 갑자기 밀려오지 않도록, 의식은 서서히 전환됩니다.

 

이 어렴풋한 관념은 또한, 인간의 정체성이 단절되지 않고 연속된다는 느낌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는 여전히 ‘나’로서 생각하고 느끼며, 다만 그가 의존하던 육체적 틀은 점차 배경으로 물러나고 있을 뿐입니다. 이로써 소생은 충격이 아니라, 점진적인 깨어남의 과정이 됩니다.

 

AC.178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천적 보호의 단계에서 영적 교통의 단계로 넘어가며, 인간은 여전히 지상의 자기 인식을 부분적으로 유지한 채, 새로운 생명의 질서로 이끌립니다. 이는 주님의 섭리가 인간의 연약함을 얼마나 깊이 고려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세한 증언입니다.

 

 

심화

 

1. ‘어렴풋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이에 이들은 여전히 자신이 육체 안에서 살고 있다는 어렴풋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Meanwhile they have a dim idea that they are living in the body. (AC.178)

 

지금 스베덴보리가 주님의 허락으로 하고 있는 이런 경험을 모든 사람도 임종의 순간에 동일하게 하나요? 그러니까 아, 지금은 천적 천사들이 와 있구나... 아, 지금은 영적 천사들이 와 있구나... 아, 지금 천적 천사들이 내가 이 생각 안에 머물도록 붙들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요.

 

 

스베덴보리 흐름으로 보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임종 순간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지금 스베덴보리처럼 ‘구조적으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것이 스베덴보리 체험의 특별한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주님의 특별한 허락 아래, 보통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는 영적 과정을 ‘깨어 있는 의식’ 안에서 관찰하도록 허락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즉 대부분 사람도 실제로는 천사들의 돌봄과 영적 질서 안에서 죽음 과정을 통과하지만, 그것을 이렇게 분석적으로 ‘지금 천적 천사들이 와 있구나’, ‘지금 심장 영역과 연결되고 있구나’, ‘지금 영들의 세계와의 communication이 끊기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자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평생 동안에도 이미 영계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임종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들은 함께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단지 어떤 평안, 빛, 사랑, 보호받는 느낌, 혹은 사랑하는 존재의 presence 정도로만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구조 자체를 doctrinal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자비이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죽는 순간 영계 구조 전체를 너무 직접적으로 보게 된다면, 많은 사람은 두려움과 혼란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주님은 인간을 overwhelm하지 않으십니다. 각 사람 상태에 맞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가 AC.170-178에서 하고 있는 일은, 일종의 ‘의식적 관찰 리포트’에 가깝습니다. 그는 평소 인간에게는 거의 unconscious하게 일어나는 죽음 전이 과정을, 특별히 깨어 있는 awareness 안에서 경험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보통 사람이 죽을 때 실제로 일어나는 영적 질서’를 관찰하도록 허락받은 셈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천적 천사들과 영적 천사들의 presence 자체도, 보통 사람에게는 지금 목사님과 제가 말하는 doctrinal language로 경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엄청 평안했다’, ‘두려움이 사라졌다’, ‘사랑으로 감싸인 느낌이었다’, ‘누군가 보호하는 것 같았다’ 정도로 느낄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라면 그것 뒤에 실제 천사적 influx와 공동체 질서가 있다고 설명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임사체험(NDE) 이야기들과도 어느 정도 연결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빛이 있었다’, ‘말은 없었는데 이해되었다’, ‘엄청난 평안이 있었다’,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요. 스베덴보리라면 이런 경험들 뒤에도 더 깊은 영적 질서와 천사적 인도가 있을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그는 그것을 단순 감정 체험 수준이 아니라, 매우 정교한 천국 질서 안에서 설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결국 AC.178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도 실제로는 주님의 돌보심과 천사들의 인도 안에서 죽음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처럼 그 과정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단계와 구조까지 분별하는 경우는 특별한 허락 아래 이루어진 예외적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AC.177, 창2 뒤,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하는 생각’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7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품고 있던 경건하고 거룩한 생각들 속에 천사들에 의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77.심화

 

1.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생각하며

 

죽어 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구원이나 행복보다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생각하며, and it was also instilled that those who are dying usually think about eternal life, and seldom of salvation and happiness, (AC.177)

 

위 기술은 악인들의 경우에도인가요? 그리고 좀 의외인 게, 보통 기독교인들, 개신교인들은 임종의 자리에도 무슨 미사를 비롯, 구원의 확신을 주입하거든요. 마치 그걸 놓치면 지옥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스베덴보리 흐름으로 보면, 네, 어느 정도는 악인의 경우에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 가까운 순간에는 인간 안에서 매우 깊고 본질적인 층위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세상 일, 경쟁, 체면, 욕망 속에 살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나는 완전히 끝나는가?’, ‘나는 계속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AC.177은 인간이 죽어갈 때, 보통 ‘eternal life’를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deliberately salvation and happiness’와 ‘eternal life’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인간이 임종 때 가장 먼저 붙드는 것은 종종 ‘내가 계속 존재하는가?’ 하는 존재 자체의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즉 ‘천국 갈까 지옥 갈까’ 이전에, 인간은 먼저 자기 존재의 연속성과 생명의 지속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느끼신 개신교 문화와의 긴장도 굉장히 실제적입니다. 많은 개신교 전통에서는 임종 순간을 거의 ‘최종 판정 직전’처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고백, 마지막 회개, 마지막 확신, 마지막 기도에 굉장히 집중하지요. 어떤 분위기에서는 정말 ‘이 순간 놓치면 영원히 끝난다’는 긴장감까지 생깁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구원을 훨씬 더 ‘삶 전체의 방향성과 사랑 상태’로 봅니다. 그래서 임종 순간 몇 마디를 mechanically 붙잡는 것으로 인간 운명이 갑자기 결정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이 평생 무엇을 사랑하며 살았는가가 훨씬 근본적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임종의 영적 돌봄이나 기도가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죽음 순간이 매우 섬세한 transition이라고 보기 때문에, 평안과 주님 신뢰를 주는 atmosphere는 중요하게 여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그것이 ‘지금 이 말을 공식적으로 안 하면 지옥 간다’ 같은 공포 중심 형태와는 quite 다릅니다.

 

그리고 AC.177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이 죽음 앞에서 surprisingly 단순해진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 복잡한 교리 계산보다, ‘나는 계속 살아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혼자인가?’ 같은 더 근원적 질문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많은 임종 사례들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단순 doctrinal formula보다, 사랑하는 존재들, 빛, 평안, 계속 존재함 같은 감각을 더 말하지요.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인간 존재 가장 깊은 층이 영원성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언급하신 개신교 임종 문화에 대해 스베덴보리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실제로 어떤 사랑 안에서 살았는가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단순 판정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사랑하는 상태 자체와 corresponding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AC.177은 죽음을 ‘시험 마지막 1’처럼 보지 않고, 인간 존재 전체가 영원한 생명 쪽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과정 안에서 인간을 단순 법정 피고처럼 다루시기보다, 가능한 한 부드럽고 자비롭게 다음 상태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AC.177, 창2 뒤,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하는 생각’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7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품고 있던 경건하고 거룩한 생각들 속에 천사들에 의해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7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품고 있던 경건하고 거룩한 생각들 속에 천사들에 의해 붙들려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주입되었고, 또한 죽어 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구원이나 행복보다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생각하며, 그러므로 천사들은 그들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생각 안에 머물게 한다는 사실도 주입되었습니다. It was instilled to me that man is kept engaged by the angels in the pious and holy thoughts which he entertained at the point of death; and it was also instilled that those who are dying usually think about eternal life, and seldom of salvation and happiness, and therefore the angels keep them in the thought of eternal life.

 

 

해설

 

이 단락은 소생 과정에서 ‘인간의 마지막 생각이 갖는 결정적 중요성’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천사들이 죽어 가는 사람에게 새로운 생각을 강제로 주입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이미 ‘죽음의 순간에 품고 있던’ 생각들 속에 그를 붙들어 둔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후의 첫 상태가 전혀 낯선 무엇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형성된 내적 방향의 연속선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강조되는 것은 ‘경건하고 거룩한 생각들’입니다. 이는 특정한 교리 문장이나 신학적 개념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 전체를 통해 형성된, 주님과 이웃,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하고 내적인 지향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바로 이 지점을 붙듭니다. 다시 말해, 죽음의 순간에 인간이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 있었는지가 소생의 첫 상태를 규정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덧붙여 말하는 관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구원’이나 ‘행복’을 거의 생각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구원과 행복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개념으로 느껴질 수 있는 반면, 영원한 생명은 보다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내가 행복해질까’보다는, ‘나는 계속 살아 있는가’, ‘이 삶이 끝나는가 아니면 이어지는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그들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생각’ 안에 머물게 합니다. 이는 교육이나 설득이 아니라, 보호의 행위입니다. 인간이 이미 향하고 있는 방향을 존중하고, 그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입니다. 이로써 죽음의 순간은 공포나 혼란이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질문이 조용히 지속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 단락은 또한, 죽음 직후의 상태가 심판이나 평가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먼저 있는 것은 ‘유지와 연속’입니다. 천사들은 인간을 시험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가 지상에서 형성한 가장 내적인 생각의 자리 안에 머물게 합니다. 그 자리에서 인간은 점차 새로운 생명의 질서로 깨어나게 됩니다.

 

AC.177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은 새로운 생각을 강제로 부여받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형성된 가장 깊은 생각이 마지막으로 보호받고 지속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인간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심화

 

1.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생각하며

 

 

AC.177, 심화 1,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생각하며’

AC.177.심화 1.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생각하며’ 죽어 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구원이나 행복보다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생각하며, and it was also instilled that those who are dying usually think about eternal life, a

bygrace.kr

 

 

 

AC.178, 창2 뒤, ‘천적 천사들이 떠나고, 영적 천사들에게 맡겨짐’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8 이들은 이 생각 안에 상당한 시간 동안 천적 천사들에 의해 머물게 되며, 그

bygrace.kr

 

AC.176, 창2 뒤, ‘심장 영역의 맥박’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76 그사이에 저는 심장 영역이 천적 천사들과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지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