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14,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를 ‘홍수’(Flood)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이유
즐겨찾기/스베덴보리 with ChatGPT 2026. 2. 9. 09:55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AC.307에서 스베덴보리는 ‘홍수’가 자연적 재난이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태고교회 말기에 인간 내면에서 일어난 전면적 붕괴 상태’를 가리킨다고 분명히 합니다. 그 붕괴의 핵심이 바로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왜곡된 욕구와 확신)입니다. 여기서 홍수는 물의 범람이 아니라, 왜곡된 욕구와 확신이 인간의 내면(internal, 속) 전 영역을 덮어 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즉, 인간의 의지와 이해가 더 이상 위에서 아래로 질서 있게 작동하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뒤집혀 폭주하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먼저 ‘insane cupidities’는 태고교회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난 ‘의지의 붕괴’를 뜻합니다. 태고교회는 본래 사랑으로부터 직접 진리를 지각하는 천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욕구 자체가 질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사랑은 주님을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욕구는 더 이상 제어되지 않는 상태로 변했습니다. 이 욕구들은 단순히 강해진 것이 아니라,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분별할 능력 자체를 잃었기 때문에 ‘광적’(insane)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에 결합된 것이 ‘persuasions’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잘못된 생각이나 오류가 아니라, ‘자기 욕구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느끼게 만드는 내적 확신’입니다. AC.307의 문맥에서 이 확신은 외부의 어떤 진리도, 주님의 어떤 경고도 침투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설득될 수 없는 존재’가 되며,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만이 전부라고 굳게 믿습니다. 이 확신은 의지의 광기와 결합하여, 악을 악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그것을 지혜와 자유로 착각하게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홍수를 바로 이 상태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이 두 요소가 인간 전체를 ‘완전히 잠식’하기 때문입니다. 홍수처럼 물이 점점 차오르듯, 왜곡된 욕구와 확신은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작용하다가, 결국 인간의 사고, 감정, 기억, 판단을 전부 덮어 버립니다. 이 상태에서는 어떤 진리도 숨 쉴 공간이 없으며, 남아 있던 내적 생명의 통로들이 모두 차단됩니다. 그래서 홍수는 ‘죽음’의 상징이 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홍수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솟아났다는 점’입니다. 물은 성경에서 보통 진리나 지식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진리가 완전히 전도되어, 인간의 기억 지식과 감각적 사고가 통제 없이 넘쳐흐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지식들은 본래 질서 안에서는 유익했으나, 자기 사랑과 결합되자 생명을 살리는 물이 아니라, 질식시키는 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가 곧 ‘홍수’가 되는 이유입니다.
AC.307에서 이 상태는 창3:24의 생명나무 길 차단과 직접 연결됩니다. 이런 상태의 인간이 생명나무에 접근한다면,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선과 진리를 자기 욕구와 확신으로 오염시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홍수를 허용하시고, 동시에 새로운 인간 유형, 곧 노아로 상징되는 영적 인간을 일으키십니다. 이는 멸망이 목적이 아니라, ‘완전한 붕괴를 막기 위한 최종적 분리와 재구성’입니다.
결국 AC.307에서 ‘홍수’는 역사 이전의 한 사건이 아니라, ‘천적 인간이 자기 인도로 완전히 전도될 때 도달하는 종말 상태’를 뜻합니다.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는 그 상태의 정확한 내적 정의이며, 홍수는 그것이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총체적 상징입니다. 이 점에서 홍수는 심판이기 이전에, 주님의 섭리가 더 이상 그 상태를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는 표지입니다.
이 해석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신앙이 자기 확신과 욕구에 완전히 잠식될 때, 인간은 여전히 살아 있으나 내적으로는 홍수 가운데 있는 상태가 됩니다. AC.307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해, 홍수라는 강렬한 상징으로 우리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SC.13, ‘their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AC.307, 창3:24)의 속뜻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their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에서 ‘cupidities’는 단순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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