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2.심화
8. ‘마치 주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말씀은 종종 인간 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치 주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표현하는데, (AC.212 심화 7)
주님은 왜 저렇게 하시죠? ‘이건 네가 한 거야. 내 책임 아니야.’ 주님이 우리처럼 이러시는 걸 상상하니 좀 이상하고 우습기까지 하네요. 우리끼리도 ‘아랫사람 단도리 못한 책임은 상관인 제 책임입니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건가요? 주님의 사랑, 주님의 주권 등으로까지 생각이 전개되네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AC.212만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 전체를 읽을 때, 반드시 만나게 되는 문제입니다. 왜 말씀은 사람이 스스로 한 일을 마치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말할까? 왜 ‘그들이 스스로 눈을 감았다’고 하지 않고,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라’고 표현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주님은 결코 악을 만들거나 거짓을 주입하거나 사람을 억지로 눈멀게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직 선과 진리만 흘려보내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기 own과 자기 사랑으로 인해 그것을 뒤틀고 거부합니다. 문제는 그 결과까지도 결국 주님의 섭리 아래 허용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은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똑같이 빛을 비춥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빛을 이용해 길을 찾고, 어떤 사람은 그 빛 아래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범죄는 태양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태양의 빛이 비치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말씀은 때때로 이런 허용의 차원까지 포함하여 주님께 돌려 말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여러 곳에서, 말씀의 문자 sense는 인간의 외관(appearance)에 따라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 입장에서는 모든 일이 결국 주님의 통치 아래 일어나므로, 허용된 일까지도 마치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라’, ‘악한 영을 보내셨다’ 같은 표현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적 의미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그 상태를 선택한 것이며, 주님은 그것을 억지로 막지 않고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아랫사람 단도리 못한 책임은 상관인 제 책임입니다’라는 비유는 생각보다 깊은 통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단순히 ‘네 책임이야. 나는 몰라.’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말씀 전체를 보면 주님은 인간이 선택한 결과로 생긴 고통까지도 자신이 짊어지시는 분처럼 나타나십니다. 인간이 스스로 떠났는데도 주님은 끝까지 찾으시고, 인간이 스스로 눈을 감았는데도 다시 눈을 열어 주시려 하십니다.
어쩌면 이것은 사랑의 언어인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우리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제가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책임 소재를 따지면 자녀의 책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종종 상대의 책임까지 자기 쪽으로 끌어안습니다.
그래서 말씀 속의 이런 표현들은 법률 문서의 언어라기보다 사랑과 섭리의 언어로 읽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실제로 악을 만들지 않으시지만, 인간이 악을 선택하여 생긴 결과조차도 당신의 섭리 안에서 관리하시고, 끝까지 그것을 선으로 돌리려 애쓰십니다. 그러므로 문자상으로는 마치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목사님께서 ‘주님의 사랑’, ‘주님의 주권’까지 생각이 전개된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 방향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만일 주님이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는 분이라면 성경은 ‘그건 네가 한 일이야. 나는 상관없어.’라고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인간의 실패와 타락의 역사 한가운데서도 주님은 계속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인간이 만든 결과까지도 당신 쪽으로 끌어안으시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표현들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전능보다도 주님의 책임지는 사랑이 먼저 보입니다. 실제 원인은 인간에게 있지만, 주님은 ‘나는 몰라’ 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그 인간을 돌보시고, 회복시키시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붙들려 하십니다. 말씀의 이런 독특한 표현 방식 뒤에는 어쩌면 그런 사랑의 성품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AC.212, 심화 7, ‘사6:10’
AC.212.심화 7. ‘사6:10’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사6:10) Shut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Isa. 6:10), 이 구절을 AC.212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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