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2026/06/28, 창3:8-13, AC.218-233), ‘네가 어디 있느냐 - 타락 이후에도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즐겨찾기/한결같은교회.예배 2026. 6. 27. 21:56※ 오늘(2026/06/28)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찬82, ‘성부의 어린 양이’입니다.
오늘은 창3 네 번째, 본문은 창3:8-13이고, AC 글 번호로는 218번에서 233번입니다.
먼저 본문,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6-7)
제목은
네가 어디 있느냐 - 타락 이후에도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이며, 다음은 AC.218-233입니다. 그전에 먼저 오늘 범위에 대한 요약 설명 후, 전체 글 중 특별히 몇몇 글을 리딩하겠습니다.
먼저 요약입니다.
오늘 리딩할 본문 전체의 큰 흐름은 창세기 3장 8절로 13절까지, 곧 타락한 인간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숨는 장면’에서 시작,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 그리고 ‘여자’, ‘뱀’에게 책임을 돌리는 인간 내면의 구조까지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숲속에 숨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퍼셉션을 잃어 가면서도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은 상태, 곧 마지막 남은 퍼셉션과 자연적 선 가운데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 글인 AC.218은 이 장면을 ‘타락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퍼셉션의 마지막 흔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먼저 8절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귀로 들리는 외적 소리가 아니라 ‘내적 딕테이트’(interior dictate), 곧 사람 안에 남아 있던 퍼셉션의 희미한 잔재로 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본래 주님의 뜻을 직접 지각하던 사람들이었지만, 타락이 진행되자 그 지각, 즉 퍼셉션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마치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음성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음성을 기쁨으로 듣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듣습니다. 이는 주님이 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상태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주님의 음성이 순수한 상태에서는 평안과 기쁨이지만, 악을 의식하는 상태에서는 책망과 두려움으로 경험됩니다.
‘그날 바람이 불 때’는 단순한 저녁 시간이 아니라, 교회가 아직 완전한 밤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낮의 빛을 잃어 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곧 아직 얼마간의 퍼셉션이 남아 있어 자신들이 타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태입니다. 완전히 악에 빠진 사람은 숨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숨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이 숨음은 절망의 표시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아직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는 말도 주님의 진노를 피해 달아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의 얼굴’은 자비, 평화, 사랑, 모든 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피한 것은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 자비의 얼굴이었습니다. 이상하지요? 자비의 얼굴을 피하다니요! 문제는 주님의 얼굴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상태였습니다. 악을 의식하는 사람은 사랑의 빛조차 불편하게 느끼며, 자기 상태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얼굴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얼굴을 돌린 것입니다. 참고로, ‘자비’는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이, ‘은혜’는 머리가 겸손한 사람들이 찾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자연적 선 안으로 물러난 상태로 봅니다. 이미 천적 이노센스와 밝은 퍼셉션은 잃었지만, 아직 자연적 선은 남아 있었습니다. 이 자연적 선은 완전한 영적 선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줄 알고, 악을 악으로 느끼며, 자기 상태를 어느 정도 의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선한 바탕입니다. 특히 ‘나무’가 단수로 언급되는 것은, 이전에는 많았던 퍼셉션의 풍성함이 이제 거의 사라지고 단 하나의 희미한 흔적처럼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본문의 해당 부분도 ‘수많은 퍼셉션 가운데 단 하나의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9절과 10절에서는 주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주님이 아담의 위치를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상태를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시는 질문입니다. 주님은 강제로 회개시키지 않으십니다. 먼저 사람에게 자기 상태를 보게 하시고, 스스로 말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질문은 장소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너는 지금 어떤 사랑 안에 있느냐?’, ‘너는 지금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상태를 묻는 영적 질문입니다.
AC.227과 228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퍼셉션, 내적 딕테이트, 양심이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합니다. 사람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늘 영들과 천사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악한 영들이 사람을 악과 거짓으로 끌어가려 할 때, 천사들은 그것을 막고 선과 진리를 보존하려 합니다. 이때 사람 안에는 내적 전투가 일어나며, 이것이 태고교회 사람에게는 퍼셉션으로, 후대의 사람에게는 양심으로, 거듭나는 사람에게는 내적 딕테이트로 느껴집니다. 천사들은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생각과 애정이 ‘신앙의 진리’와 ‘사랑의 선’에 맞는지, 반대되는지를 사람 자신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지각합니다.
11절로 13절에서는 책임 전가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네가 먹었느냐?’ 물으시자 아담은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변명 장면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뱀’은 실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 파트, 곧 보고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가장 바깥 부분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이성은 자기 사랑 때문에 이 감각 파트에게 속임을 당했고, 결국 주님과 말씀을 그대로 믿기보다 먼저 자기 감각과 자기 판단으로 확인하려 하였습니다.
이후 AC.230-232는 그 타락의 뿌리를 더 넓게 설명합니다. 태고교회 말기의 주된 악은 세상 사랑보다 자기 사랑이었습니다. 곧 재물을 쌓으려는 욕망보다, 자기 판단을 주님의 말씀보다 높이 두려는 욕망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 악이 모든 시대의 교회에 반복된다고 말합니다. 홍수 이전 교회, 홍수 이후 고대교회, 유대교회, 주님 이후의 교회,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까지, 근본 악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말씀보다 자기 자신과 자기 감각을 더 믿는 것입니다.
AC.232는 이 문제를 현대적으로 더 무겁게 만듭니다. 옛사람들은 감각으로 불신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기억 지식과 과학적 지식으로 그 불신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지식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지식이 주님을 섬기려 하는 대신, 주님을 재판하는 법정이 될 때 어둠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AI와 과학 문명의 시대에도 매우 날카롭게 들립니다. 문제는 지식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으로 ‘주님 없이도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 AC.233은 이 흐름의 결론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 지식만으로 파악하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연계의 작은 것 하나도 완전히 알기 어려운데, 하물며 영적이고 천적인 생명의 신비를 감각과 철학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사람은 악한 영들의 영향 아래 악으로 기울지만, 그것을 사랑하고 동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책임을 집니다. 반대로 선은 천사들을 통해 주님에게서 오지만, 사람은 그것을 마치 자기 스스로 행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합니다. 이 구조는 감각적 사고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에게는 인간 자유와 주님의 인플럭스가 함께 보존되는 핵심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전체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뒤에도 곧바로 완전히 버려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음성은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퍼셉션과 자연적 선을 통해 여전히 들립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악을 의식할 때, 주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두려워하고 숨습니다. 주님은 그런 인간을 정죄하기보다 먼저 부르시고, 스스로 자기 상태를 인정하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계속 자기 감각과 자기 지식을 주님보다 위에 두면, 그 희미한 빛마저 어둠으로 바뀌고, 마침내 신앙과 체어리티를 잃게 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단지 에덴의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질문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너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감각과 자기 지식 속에 숨어 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아래는 오늘 본문에 해당하는 전체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218, 창3: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AC.218-225)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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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9, 창3:8,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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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0, 창3:8, ‘거니시는 소리’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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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1, 창3:8, ‘그 날 바람이 불 때’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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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2,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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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3,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낯’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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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4, 창3:8, ‘숨은지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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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5, 창3:8, ‘동산 나무 사이’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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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6, 창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AC.226-228)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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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7, 창3:9-10, 지각(perception), 내적 딕테이트(internal dictate), 양심(conscience) 및 시험(temptations)의 기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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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8, 창3:9-10, '천사들의 지각(perception)의 정교함'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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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9, 창3:11-13,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AC.229-233)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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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0, 창3:11-13, ‘태고교회 말기 사람들을 지배하던 사랑’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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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1, 창3:11-13, ‘모든 교회 시대를 꿰뚫는 근본 악의 뿌리’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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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2, 창3:11-13, ‘옛 시대보다 훨씬 더 악한 오늘날’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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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3, 창3:11-13, ‘감각과 기억 지식만으로는 신앙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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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님,
오늘 우리는 에덴동산에 숨은 아담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변함없이 자비와 평화의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지만, 우리는 때때로 두려움과 자기 생각 속에 숨어 주님의 음성보다 우리 자신의 판단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시며, 오늘도 ‘네가 어디 있느냐?’ 사랑으로 부르고 계심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선과 진리를 지켜 주시고, 주님의 말씀 앞에서 늘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지식과 판단보다 주님의 지혜를 더 신뢰하게 하시고, 숨거나 변명하지 않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명이시며 빛과 평화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6-28(D1)
주일예배(2026/06/21, 창3:6-7, AC.207-217),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인간의 내면 상태’
※ 오늘(2026/06/21)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5, ‘큰 영화로신 주’, 찬81, ‘주는 귀한 보배’입니다. 오늘은 창3 세 번째, 본문은 창3:6-7이고, AC 글 번호로는 207번에서 217번입니다. 먼저 본문, 6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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