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
 Author’s Preface

 

1

주께서 제자들 앞에서 세상 끝(the consummation of the age, 시대의 종말, 완성, 마지막 때), 곧 교회의 마지막 시기에 대하여(1) 말씀하시면서, 사랑과 신앙에 관한 그 연속적 상태들을 예언하신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2) The Lord, speaking in the presence of his disciples of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ich is the final period of the church,1 says, near the end of what he foretells about its successive states in respect to love and faith:2

 

 

1. [별도 언급이 없는 한, 이번 판의 모든 참조는 엠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 관한 것이며, 스베덴보리가 작성한 것입니다. 시대의 종말(완성)은 교회의 마지막 때, 시기입니다. [References in this edition, unless otherwise noted, are to Emanuel Swedenborg’s Arcana Coelestia and were made by Swedenborg.] The consummation of the age is the final period of the church (n. 4535, 10622).

 

2. 주께서 마지막 때와 주님의 오심, 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회가 어떻게 황폐해져 갈 것과, 최후의 심판 등에 대해 예언하신 내용(24, 25)이 창세기 26장에서 40장까지 각 서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The Lord’s predictions in Matthew (24 and 25), respecting the consummation of the age and His coming, and the consequent successive vastation of the church and the final judgment, are explained in the prefaces to chapters 2640 of Genesis (n. 33533356, 34863489, 36503655, 37513757, 38973901, 40564060, 42294231, 43324335, 44224424, 46354638, 46614664, 48074810, 49544959, 50635071).

 

 

29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4:29-31) Immediately after the tribulation of those days the sun shall be darkene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nd the stars shall fall from heaven, and the powers of the heavens shall be shaken. And then shall appear the sign of the Son of man in heaven; and then shall all the tribes of the earth mourn; and they shall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reat glory. And he shall send forth his angels with a trumpet and a great sound; and they shall gather together his elect from the four winds, from the end to end of the heavens. (Matt. 24:29–31)

 

이 말씀을 문자적 의미(sense of the letter), 그러니까 기록된 겉 글자의 뜻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the final judgment)이라 불리는 그 마지막 시기에 이 모든 일이 문자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곧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주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주께서 천사들과 나팔 소리와 함께 구름 가운데 친히 나타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곳에 예언된 바와 같이, 눈에 보이는 온 우주가 멸망하고, 그 후에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생겨날 것이라고 여깁니다. 오늘날 교회 안의 대부분 사람들의 견해가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말씀의 각 부분 속에 감추어진 아르카나(arcana)를 알지 못합니다. 말씀의 모든 부분에는 영적이며 천적(天的, heavenly)인 것들을 다루는 내적 의미(internal sense, 속뜻)가 있습니다. 문자적 의미인 겉뜻이 다루는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지 문장 전체의 의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낱말 하나하나에도(주3) 해당합니다. 말씀은 전적으로 상응(correspondences)(4)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내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라틴 Arcana Coelestia, 영어 Secrets of Heaven, 天界秘義, 1749-1756, , 출 속뜻 주석,  10,837개 글)에서 말하고 보여 준 모든 것들로부터 알 수 있으며, 또한 백마(白馬, White Horse, 1758), 곧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흰말에 대한 소책자와 거기 나오는 그 모든 인용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Those who understand these words according to the sense of the letter have no other belief than that during that latest period, which is called the final judgment, all these things are to come to pass just as they are described in the literal sense, that is, that the sun and moon will be darkened and the stars will fall from the sky, that the sign of the Lord will appear in the sky, and he himself will be seen in the clouds, attended by angels with trumpets; and furthermore, as is foretold elsewhere, that the whole visible universe will be destroyed, and afterwards a new heaven with a new earth will come into being. Such is the opinion of most men in the church at the present day. But those who so believe are ignorant of the arcana that lie hidden in every particular of the Word. For in every particular of the Word there is an internal sense which treats of things spiritual and heavenly, not of things natural and worldly, such as are treated of in the sense of the letter. And this is true not only of the meaning of groups of words, it is true of each particular word.3 For the Word is written solely by correspondences,4 to the end that there may be an internal sense in every least particular of it. What that sense is can be seen from all that has been said and shown about it in Arcana Coelestia [published 1749–1756]; also from quotations gathered from that work in the explanation of the White Horse [of the Apocalypse, published 1758] spoken of in Revelation.



3. 말씀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속뜻, 혹은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Both in the wholes and particulars of the Word there is an internal or spiritual sense (n. 1143, 1984, 2135, 2333, 2395, 2495, 4442, 9048, 9063, 9086).

 

4. 말씀은 오직 상응으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말씀은 그 안에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 어떤 영적인 의미들을 갖게 됩니다. The Word is written solely by correspondences, and for this reason each thing and all things in it have a spiritual meaning (n. 1404, 1408, 1409, 1540, 1619, 1659, 1709, 1783, 2900, 9086).

 

 

위에 인용된 구절에서 주께서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하신 말씀은 이러한 내적 의미에 따라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는 사랑에 관한 주님을(5) 뜻하고, 은 신앙에 관한 주님을(6), 별들은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7),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는 신적 진리의 나타남을,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는 진리와 선, 곧 신앙과 사랑에 속한 모든 것들을(8),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은 말씀 안에서의 주님의 현존과 계시를(9) 뜻합니다. 여기서 구름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10), 영광은 말씀의 내적 의미를(11) 뜻합니다.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는 하늘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를(12)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교회의 마지막 때, 곧 사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결과 신앙도 없는 때에, 주께서 말씀의 내적 의미를 여시고, 천국의 아르카나를 계시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음 페이지들에서 밝히려는 아르카나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사후 인간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속한 사람은 천국과 지옥, 그리고 사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이 말씀 안에 제시되고, 묘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조차 마음속으로 그 세상에 가 보았다가 우리에게 말해 준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하며, 믿기를 거부합니다. 특히 세상적 지혜를 많이 가진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부정의 영(spirit of denial)이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부정의 영이 마음이 단순한 자들과 신앙이 단순한 자들까지 감염, 타락시키는 걸 막게 하시려고, 주님은 저를 불러 저로 하여금 천사들과 함께 거하며, 사람과 사람이 말하듯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허락하셨고, 또한 천국과 지옥에 있는 것들을 직접 보는 것을 허락하셨는데, 이런 경험이 지난 십삼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주님은 저로 하여금 제가 보고 들은 바를 따라 이것들을 기술하도록 허락하셨는데, 이는 무지가 밝혀지고, 불신이 흩어지기를 바라셔서입니다. 오늘날 허락된 이러한 즉각적 계시는, 이것이 곧 주님의 오심(the coming of the Lord)으로 의미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It is according to that sense that what the Lord says in the passage quoted above respecting his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is to be understood. The “sun” there that is to be darkened signifies the Lord in respect to love;5 the “moon” the Lord in respect to faith;6 “stars”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or of love and faith;7 “the sign of the Son of man in heaven” the manifestation of Divine truth; “the tribes of the earth” that shall mourn, all things relating to truth and good or to faith and love;8 “the coming of the Lord i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lory” his presence in the Word, and revelation,9 “clouds” signifying the sense of the letter of the Word,10 and “glory”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11 “the angels with a trumpet and great voice” signify heaven as a source of Divine truth.12 All this makes clear that these words of the Lord mean that at the end of the church, when there is no longer any love, and consequently no faith, the Lord will open the internal meaning of the Word and reveal arcana of heaven. The arcana revealed in the following pages relate to heaven and hell, and also to the life of man after death. The man of the church at this date knows scarcely anything about heaven and hell or about his life after death, although all these matters are set forth and described in the Word; and yet many of those born within the church refuse to believe in them, saying in their hearts, “Who has come from that world and told us?” Lest, therefore, such a spirit of denial, which especially prevails with those who have much worldly wisdom, should also infect and corrupt the simple in heart and the simple in faith, it has been granted me to associate with angels and to talk with them as man with man, also to see what is in the heavens and what is in the hells, and this for thirteen years; so now from what I have seen and heard it has been granted me to describe these, in the hope that ignorance may thus be enlightened and unbelief dissipated. Such immediate revelation is granted at this day because this is what is meant by the coming of the Lord.

 

 

5. 말씀에서 ‘’는 사랑 관점에서 본 주님을 상징하며, 그 결과, 주님 사랑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the “sun” signifies the Lord in respect to love, and in consequence love to the Lord (n. 1529, 1837, 2441, 2495, 4060, 4696, 7083, 10809).

 

6. 말씀에서 ‘’은 신앙 관점에서 본 주님을 상징하며, 그 결과, 주심 신앙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the “moon” signifies the Lord in respect to faith, and in consequence faith in the Lord (n. 1529, 1530, 2495, 4060, 4696, 7083).

 

7. 말씀에서 ‘’은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stars” signify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n. 2495, 2849, 4697).

 

8. ‘모든 족속들’은 세상 모든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 관련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Tribes” signify all truths and goods in the complex, thus all things of faith and love (n. 3858, 3926, 4060, 6335).

 

9. 주의 오심은 말씀 속 현존과 계시를 상징합니다. The coming of the Lord signifies His presence in the Word, and revelation (n. 3900, 4060).

 

10. 말씀에서 ‘구름’은 겉 글자에 들어있는 말씀이나 겉뜻을 상징합니다. In the Word “clouds” signify the Word in the letter or the sense of its letter (n. 4060, 4391, 5922, 6343, 6752, 8106, 8781, 9430, 10551, 10574).

 

11. 말씀에서 ‘영광’은 천국에 있을 때의 신적 진리 및 말씀의 속뜻으로 있을 때의 신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In the Word “glory” signifies Divine truth as it is in heaven and as it is in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n. 4809, 5922, 8267, 8427, 9429, 10574).

 

12. ‘큰 나팔’은 천국의 신적 진리 및 천국으로부터 계시된 신적 진리를 상징합니다. 소리 역시 같은 걸 상징합니다. A “trumpet” or “horn” signifies Divine truth in heaven, and revealed from heaven (n. 8158, 8823, 8915); and “voice” has a like signification (n. 6771, 9926).  

 

 

해설

 

 HH.1은 스베덴보리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1758)이라는 책을 왜, 어떤 문제의식으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를 ‘서문 한 장’ 안에 다 압축해 둔 글입니다. 처음 접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걸려 넘어지는 지점은 보통 이것입니다. ‘24에 나온 말씀이면, 세상 끝날 때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이 떨어진다는 말 아닌가요? 그러면 실제로 그런 우주적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대부분의 교회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읽는다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방향을 틀어, ‘그렇게 읽는 것은 말씀의 속뜻’(내적 의미)을 모르는 데서 오는 오해’라고 말합니다. 즉, 이 글의 출발점은 ‘문자 그대로의 종말론’을 논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문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원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제시하는 핵심 원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말씀(성경)은 낱말 하나하나까지도 내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 둘째, ‘그 내적 의미는 상응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상응(correspondence)이라는 말이 낯선 분들은 이렇게 이해하면 가장 안전합니다. ‘성경의 자연적 표현(해, 달, 별, 구름, 나팔 같은 단어들)은 단지 자연 현상을 말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라, 그 자연 현상이 표상하는 영적 현실을 함께 담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세상 이야기처럼 보이는 겉옷 아래에 영적 상태를 말한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을 ‘우주 과학책’이나 ‘미래 예언의 천문학 보고서’처럼 읽지 않고, ‘인간과 교회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계시’로 읽습니다. 그러니 마태복음 24장의 장엄한 종말 언어를 ‘물리적 파괴’로만 읽으면, 성경이 실제로 말하려는 핵심에서 벗어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끝’이 무엇인가요?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교회의 마지막 시기’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교회’는 단순히 건물이나 교단이 아니라, ‘사람 안에, 공동체 안에 살아 있는 사랑과 신앙의 질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끝’은 ‘지구의 끝’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답지 않게 되는 끝’입니다. 즉, 사랑이 식고, 그러니까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꺼지고, 그 결과로 신앙도 껍데기만 남는 상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랑과 신앙을 언제나 붙여 말합니다. 사랑이 먼저이고, 신앙은 사랑에서 살아납니다. 사랑이 죽으면 신앙은 지식이나 주장으로만 남고, 결국 분열과 논쟁과 자기 확증의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HH.1은 바로 그 상태를 ‘해가 어두워짐, 달이 빛을 내지 않음, 별이 떨어짐’으로 풀어 읽습니다.

 

여기서 상징 해석이 시작됩니다. ‘’는 사랑에 관한 주님을 뜻합니다. ‘’은 신앙에 관한 주님을 뜻합니다. ‘’은 선과 진리의 지식들,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뜻합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해가 밝다’는 것은 사랑이 살아 있고 따뜻하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살아 있으면 사람의 내면이 따뜻해지고, 그 따뜻함 속에서 진리가 ‘’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해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사랑이 식어 차가워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사람은 진리를 진리 자체로 사랑하기보다, 자기 입장을 지키는 도구로 쓰기 쉽고, 신앙도 살아 있는 신뢰라기보다 ‘말과 주장’으로 남기 쉽습니다. 그러면 ‘’, 즉 신앙의 빛도 희미해집니다. ‘’, 즉 지식들은 더 심각합니다. 별은 ‘하늘의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하는데, 영적으로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한 바른 지식’이 삶을 인도합니다. 그런데 사랑과 신앙이 약해지면 그 지식이 ‘머리 속 정보’로만 남거나, 왜곡되거나, 아예 떨어져 나가 버립니다. 이것이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입니다. 그러니 이 문장은 ‘천문학적 재난’이 아니라 ‘영적 내전’에 가깝습니다.

 

그다음 ‘인자의 표적, 징조가 하늘에 보인다’는 구절을 스베덴보리는 ‘신적 진리의 나타남’이라고 풉니다. ‘인자’는 성경에서 ‘진리’의 측면, 곧 ‘말씀의 진리’와 깊이 연결됩니다. 그래서 ‘인자의 표적’은 ‘진리가 다시 나타나고 드러나는 징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공간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시야’, ‘영적 시각’을 뜻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즉 ‘하늘에 보인다’는 것은 ‘영적 차원에서 드러난다’, ‘내적 의미에서 드러난다’와 맞물립니다.

 

또 ‘땅의 모든 지파가 애통한다’는 말은 흔히 ‘세상 사람들이 슬퍼한다’로만 읽히지만, 스베덴보리는 ‘지파’를 ‘신앙과 사랑의 모든 요소들’의 총합으로 봅니다. ‘지파’는 ‘교회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입니다. 사랑에 속한 것, 신앙에 속한 것, 선에 속한 것, 진리에 속한 것들이 다 ‘지파’로 표상됩니다. 그러니 ‘모든 지파가 애통한다’는 것은 ‘교회 안의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슬퍼할 상태가 된다’, 또는 ‘진리와 선이 상실되어 그 결핍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시 말해 감정적 장면이 아니라, 상태의 진단입니다.

 

가장 핵심은 ‘구름을 타고 오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주님의 오심’을 ‘말씀 안에서의 주님의 현존과 계시’로 정의합니다. 초심자들이 제일 혼란스러워하는 대목인데, 차근히 풀면 이렇습니다. ‘구름’은 말씀의 문자적 의미입니다. 구름은 빛을 가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빛을 담아 전달하기도 합니다. 문자적 의미는 때로는 거칠고, 역사 이야기 같고, 서로 모순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진리를 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문자 속에 ‘영광’이 있습니다. ‘영광’은 내적 의미입니다. 즉, ‘구름 + 영광’은 ‘문자 속에 감춰진 내적 빛’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은 ‘주님이 성경의 문자 속에 임재하시며, 그 문자를 통하여 내적 의미를 계시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이게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재림’의 핵심 정의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이 열리는 사건’이 재림입니다.

 

나팔과 큰 소리로 천사들을 보낸다’도 같은 흐름입니다. 나팔은 ‘하늘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진리의 선포’를 뜻합니다. ‘하늘이 증언하는 진리’, ‘더 높은 차원에서 내려오는 분명한 알림’입니다. 그러니 천사들은 ‘하늘의 매개’, ‘하늘의 증언자’ 역할을 합니다. 결국 이 전체 장면은 ‘교회의 마지막 때에, 주님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열어 하늘의 진리를 다시 들리게 하신다’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런 계시가 필요하다고 하나요? 스베덴보리는 교회가 ‘천국과 지옥’, ‘사후의 삶’에 대해 사실상 무지해졌다고 진단합니다. 더 놀라운 건, 성경 안에 그것들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데도, 교회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조차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신의 대표 문장을 하나 제시합니다. ‘누가 저 세상에서 와서 말해 주었느냐?’ 이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겠다’는 냉소이기도 하고, ‘현세만이 현실’이라는 실용주의이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세상적 지혜(worldly wisdom)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태도가 강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세상적 지혜’는 학문 자체를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보이는 것만을 현실로 인정하는 사고’로 굳어졌을 때의 위험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위험이 ‘단순한 마음’, ‘단순한 신앙’을 오염시켜 버릴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독특한 위치를 밝힙니다. ‘저는 천사들과 교제했고, 천국과 지옥을 보았고, 이것이 십삼 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래서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여기서 ‘이게 자기주장 아닌가?’라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반응을 예상하듯, 이 체험을 ‘자기 명성’의 재료로 내놓는 대신, ‘무지를 밝히고 불신을 흩기 위한 허락’이라고 규정합니다. 즉, 개인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장치가 아니라, 교회의 시대적 상태, 즉 사후를 부정하는 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결정적입니다. ‘이러한 즉각적 계시가 오늘날 허락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주님의 오심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님의 오심’은 곧 ‘이 시대에 허락된 즉각적 계시, 곧 내적 의미의 개방’입니다.

 

이 글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성경의 종말 예언은 우주 파괴의 예고장이 아니라, 교회의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는 영적 상태를 말하며, 주님의 재림은 물리적 강림이 아니라 말씀의 내적 의미가 열려 하늘의 진리가 다시 계시되는 사건이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저서, ‘천국과 지옥’을 바로 그 ‘계시의 내용’으로 제시합니다. 이 책이 단순한 교리서가 아니라, ‘주님의 오심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결과로 ‘천국, 지옥, 사후 삶’을 밝혀 주려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성경은 겉으로는 역사와 비유와 예언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옷 아래에 인간의 내면과 천국의 질서를 말하는 살아 있는 뜻이 숨겨져 있다. 구름은 옷감이고, 영광은 그 옷 속에서 비치는 빛이다. 재림은 하늘 어딘가에서 새로운 장면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의 안쪽이 열려 빛이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하늘의 먹구름도 비록 이쪽은 흐리지만, 저쪽은 햇빛으로 빛납니다. 이편은 보이는 쪽으로 말씀의 겉뜻이라면, 저편은 비록 우리 눈엔 안 보이지만, 주님의 신적 진리로 빛나는 속뜻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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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19

 

앗수르(Asshur)가 사람의 이성적 마음(rational mind), 곧 인간의 이성(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예언서들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에스겔에서 말하기를, That “Asshur” 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31:3, 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여기서 이성(rational)레바논 백향목(cedar in Lebanon)이라 불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개역개정 번역이 좀 이상함,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는 가지)은 기억 지식들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훨씬 더 명료합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 “cedar in Lebanon”;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이 구절과 다른 많은 곳에서 애굽은 기억 지식들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이성(reason)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은 지성을 의미합니다. By “Egypt” 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 “Asshur” reason, and by “Israel” intelligence.

 

 

해설

 

이 글은 AC.118에서 제시된 ‘힛데겔 강 = 이성의 명석함’, ‘앗수르 = 이성적 마음’이라는 정의를, 예언서 전체를 가로지르는 상응의 증언으로 확증하는 자리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개념 설명으로 끝내지 않고, 말씀이 스스로 이 해석을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에서 앗수르가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백향목은 곧고 높으며,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나무입니다. 이는 이성이 가진 구조적 힘과 통찰력을 나타냅니다. 이성은 인간 정신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능력이며, 사유의 높이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나무가 자라는 조건은 분명히 제시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라지 않았고, ‘물들’과 ‘깊은 물’, 그리고 ‘강들’로 인해 자랐습니다. 다시 말해, 이성은 유입에 의해 살아납니다.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개역개정 번역이 좀 이상함,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있는 가지)이 기억 지식들을 의미한다는 설명은, 이성이 작동하는 실제 내부 구조를 보여 줍니다. 기억 지식들은 이성의 토양이자 재료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방향을 갖지 못합니다. 이성은 이 기억 지식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고 연결하지만, 그 이성 자체도 위로부터의 흐름 없이는 왜곡되기 쉽습니다.

 

이사야의 인용은 이 질서를 더 넓은 구조 속에 배치합니다. 애굽, 앗수르, 이스라엘이 서로 왕래하며 하나의 복을 이룬다는 그림은, 인간 정신의 삼중 구조를 매우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애굽은 기억 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입니다. 이 셋이 서로 단절되지 않고 연결될 때, 곧 기억 지식이 이성으로 정리되고, 이성이 지성으로 밝혀질 때, 그 전체가 ‘’이 됩니다.

 

특히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라는 표현은, 기억 지식이 이성을 섬겨야 한다는 질서를 말합니다. 정보와 경험은 이성을 지배해서는 안 되며, 이성의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또한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하는 대목은, 이성 자체도 인간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작품’임을 분명히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나의 기업’으로 불리는 것은, 지성이 주님의 목적과 직접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지성은 단순한 이해 능력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분별하고 살아내는 능력이며, 이는 인간 안에서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영역입니다.

 

AC.119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높고 강력하지만, 근원은 아니다. 기억 지식과 지성을 잇는 중간에 서서 섬길 때에만 참되며, 이 삼중 질서가 하나로 움직일 때, 인간 전체가 복이 된다고 말입니다.

 

 

 

AC.118, 창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AC.118-121)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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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2:14)

 

AC.118

 

힛데겔 강(river Hiddekel)은 이성(reason), 곧 이성의 명석함(clearsightedness of reason)입니다. ‘앗수르(Asshur)는 이성적 마음(rational mind)이며,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은 이성의 명석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흘러들어옴을 의미합니다. ‘브랏(Phrath), 곧 유브라데 강은 기억 지식이며, 이는 마지막 단계(the ultimate)이자 경계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해설

 

이 글은 에덴에서 흘러나온 지혜의 강이 ‘이성(reason)과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이라는 두 하위 층위로 더 세분화되는 지점을 다룹니다. 앞선 둘째 강 ‘기혼’이 이해의 인식들을 의미했다면, 셋째 강 ‘힛데겔’은 그 인식들이 ‘이성의 명석함’으로 조직되고 투명해지는 단계입니다.

 

힛데겔’이 이성의 명석함을 의미한다는 말은, 이성이 단순한 계산이나 논증 능력이 아니라, ‘진리의 흐름을 또렷이 보는 능력’임을 전제합니다. 여기서 명석함은 스스로 밝아지는 자율적 능력이 아니라, 위로부터 비췸을 받을 때 생기는 선명함입니다.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앗수르는 종종 이성의 힘과 연결되며, 올바르게 쓰일 때에는 교회의 보호와 질서를 돕지만, 스스로를 절대화할 때에는 교만과 왜곡으로 기울어집니다. 따라서 이성의 명석함이 ‘동쪽’, 곧 주님을 향해 흐른다는 표현은, ‘이성은 근원을 잊지 않을 때에만 참되다’는 조건을 분명히 합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는 구조는 유입의 질서를 정확히 보여 줍니다. 주님 → 속 사람 → 이성적 마음(겉 사람)이라는 흐름입니다. 이성은 출발점이 아니라 ‘경유지’입니다. 이 질서가 유지될 때, 이성은 교만해지지 않고 섬기는 도구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브랏’, 곧 유브라데가 기억 지식이며 ‘경계’라는 설명은, 에덴의 강들이 도달하는 ‘최외곽(the ultimate or boundary), 즉 가장 바깥을 짚어 줍니다. 기억 지식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며 경계입니다.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면 감각과 세속의 영역이 됩니다. 따라서 기억 지식은 위로부터의 유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그릇’으로 기능할 때에만 온전합니다.

 

AC.118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스스로 빛나지 않으며, 기억 지식은 결코 근원이 아니고, 모든 명석함은 주님에게서 시작되어 질서 있게 아래로 흐를 때에만 참된 빛을 가진다고 말입니다.

 

 

 

AC.117, 창2:13, 왜 '구스'(Cush)인가?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 또한 ‘구스 땅’, 곧 에티오피아는 금과 보석, 향료가 풍부하였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진리, 그리고 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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