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정치 뉴스에 민감한 교인들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 중에는 정치 뉴스·유튜브에 지나치게 민감해지거나 감정적으로 요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특정 세력에 대한 분노, 민감성, 확증 편향은 영적 생활 전체를 뒤흔들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정치 과몰입이 아니라 내적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영적·심리적 기류를 바로잡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아래 내용은 목사님께서 교인들과 대화하시거나, 설교·상담·소그룹에서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스베덴보리적인 지침들입니다.

 


Ⅰ. 사람의 내적 상태가 혼란하면 외적 현상(정치)을 과장하여 받아들인다

 

정치에 민감한 교인은 정치가 문제라기보다 내면이 흔들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내면이 평화로울 때는 외부의 혼란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내면이 혼란할 때는 작은 외부 자극도 큰 폭풍처럼 느껴진다. 정치에 예민한 교인은 사실 정치보다 마음의 상태가 더 큰 문제입니다.

 


Ⅱ. 목회자의 3대 원칙

 

1) 정면 충돌 금지

 

정치적으로 과열된 성도에게 그 뉴스 너무 보지 마세요”라든지, 편향되셨습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반발과 방어가 일어납니다. 스베덴보리 관점에서 정념에 빠진 사람은 정념을 보호하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2) 정치가 아니라 내적 상태로 초점을 이동시키기

 

예를 들면, 정치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요,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드신가요?”나, 그 뉴스를 보면 어떤 감정이 올라오세요?”처럼 하면, 정념을 건드리지 않고, 감정을 진리의 빛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3) 교인의 ‘두려움’을 먼저 다루기

 

분노는 두려움의 2차 감정입니다. 정치 분노의 밑바닥에는 혹시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까 두려움, 혹시 정의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아니면 악한 자가 승리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두려움을 영적 진리를 가리는 안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분노를 직접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뿌리를 진리로 비춰줘야 합니다.

 


Ⅲ. 교인들의 유형별 지도 방법

 

1) 분노형

 

악한 정치인들 때문에 못 살겠다”, 저놈들은 지옥 갈 놈들이다” 하시는 분들인데, 이런 분들한테는 직접 반박은 금물, 대신 그 일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네요”라며, 그 분들의 감정을 먼저 인정하셔서, 그분들로 하여금 분노에서 두려움으로 그 뿌리가 내려가게 하시는 게 필요합니다. 그후,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조명하면서, 그 분노는 선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이 너무 커지면 교회 생활이 어렵지 않나요?” 하는 순서로 대응하시는 게 좋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노가 선한 동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인정해야 교인이 스스로 내려오게 됩니다.

 

2) 공포형

 

나라가 망할 것 같아요”, 악한 세력이 완전히 장악했어요” 하시는 분들인데, 이런 분들은 공포를 사실로 반박하는 건 금물이고요, 대신 스베덴보리식으로, “악은 허용될 뿐, 결국 진리가 반드시 승리합니다”라고 선언하시면서, 정치 상황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내적 평화를 해치고 있다고 알려주시면 좋습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 계획을 같이 세워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공포형 교인은 설교자가 ‘내면의 평화’를 강조할 때 금방 안정됩니다.

 

3) 확증 편향형

 

특정 유튜브 채널을 절대 신뢰하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형입니다. 이분들하고는 절대 싸우시면 안되고, 일단 이분들이 신뢰하는 정보 출처를 무조건 먼저 인정하세요. 좋습니다, 그 내용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보시는 동안 마음의 평화는 어떠셨나요?”라며, 관심을 정보에서 마음의 상태로 이동시키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진리가 들어가려면 먼저 마음이 평온해야 한다.

 


Ⅳ. 설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지

 

목사님이 설교에서 간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정치적 과민반응 치유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외부의 혼란보다 내면의 질서가 우선입니다

 

정치 혼란을 외부 현상으로 언급하고, 우리 마음의 질서 회복이 더 중요하다고 연결하십시오.

 

2) 악이 드러나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정화입니다

 

교인 대부분이 나라 망한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화라는 관점을 제시하면 두려움이 크게 줄어듭니다.

 

3) 악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 문장 하나로 교회 내 정치 갈등의 상당 부분이 정리됩니다.

 

4) 진리는 조용하고, 악은 시끄럽습니다

 

정치 뉴스의 소란스러움과 진리의 고요함을 비교하면 교인들은 자연히 조용한 쪽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5) 주님은 인간의 자유를 보존하시되, 악을 통해 더 큰 선을 준비하십니다

 

허용적 섭리(permissive providence)를 설교에 녹여 정치에 요동하는 마음을 안정시키십시오. 허용적 섭리란, 주님께서 어떤 일을 원하시지는 않지만, 그 일을 허용하심으로써 더 큰 선을 이루시는 방식을 말합니다.

 


Ⅴ.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줄 수 있는 내적 삶 훈련

 

교인들의 정치적 감정은 말씀 몇 번 한다고 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식으로는 내적 습관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1) 뉴스를 텍스트 모드로 보기

 

영상은 감정을 자극합니다. 텍스트는 감정 자극이 적습니다.

 

2) 매일 평화 점검 1

 

오늘 정치 뉴스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렸는가?, 내적 평화가 유지되었는가?살피는 것입니다.

 

3) 양심의 소리 듣기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진리는 양심을 통해 속삭인다. 성도들에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십시오.

 

4) 정치 이야기 대신 말씀 묵상 나눔으로 방향 전환

 

잡담이 정치로 흐를 때, 말씀 묵상 이야기로 연결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Ⅵ. 결론 - 교인들을 정치로부터 지키는 목회자의 역할

 

교인들은 정치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질서가 약해졌기 때문에 흔들린다. 정치와 직접 싸우지 말고, 교인의 마음 상태를 먼저 다루라. 분노·공포·확증 편향은 모두 동일한 ‘정념의 흔들림’이다. 설교는 정치 해설이 아니라 내적 질서 회복이다. 작은 습관들(뉴스 줄이기, 평화 점검)이 교인의 내면을 크게 안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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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치적 분노가 설교와 목회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방법

 

정치 상황 때문에 분노가 치밀고, 그 감정이 설교나 목양의 분위기 속으로 슬며시 스며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특히 목회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내적 상태 관리의 원리를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이 내용을 깊이 이해하시면 목사님 마음의 평화뿐 아니라 설교의 맑은 영적 흐름도 지킬 수 있습니다.

 


Ⅰ. 설교의 질은 설교자의 내적 상태(state)1:1로 비례한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 전달의 능력은 설교자의 내면 상태가 어떤 영에 열려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분노, 혐오, 정치적 정념이 설교자의 내면에 남아 있으면, 설교는 자연히 감정의 불순물이 섞이게 됩니다. 설교 내용이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그 감정적 파동이 설교의 질감으로 새어 나옵니다. 이것을 스베덴보리는 영적 분위기(spiritual sphere)라고 합니다.

 


Ⅱ. 정치적 분노가 설교에 스며드는 징후

 

목사님이 혹시 아래 중 하나라도 느낀 적이 있다면, 이미 감정이 설교의 질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설교 중 분별이 아니라 격한 톤이 종종 나온다. 2) 특정 집단(불신자, 특정 개인이나 정당, 사회, 세상)을 향한 언급이 날카로워진다. 3) 말씀 주제와 직접 관계없는 비판적 문장이 슬며시 나온다. 4) 설교 중 위기의식·경계 메시지가 필요 이상 강조된다. 5) 설교 후 피로감이 유독 심해진다 등... 스베덴보리의 표현으로 하면, 이러한 상태는 정념의 섞임(mixture of passions)입니다. 오직 주님을 대신하는 참된 설교에는 진리의 빛이 있어야 하고, 그러므로 이런 정념의 그림자는 최소화되어야 합니다.

 


Ⅲ. 정치적 분노가 목회에 미치는 영향

 

스베덴보리는 목회자의 내면의 평화가장 높은 성직적 자질로 봅니다. 정치적 분노가 목회에 들어오면, 교인들의 영적 안전감이 약해지고, 회중 안에 긴장감이 생기며, 목사의 눈빛과 태도에서 엄격함이 증가하고, 기도 인도가 딱딱해지며, 상담에서 사랑보다 판단이 앞설 수 있고, 교회의 영적 분위기가 무거워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영적 흐름(spiritual influx)이 탁해진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Ⅳ. 내적 질서를 회복하기

 

방법은 정치와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합니다.

 

1) 감정은 진리에 종속되어야 한다

 

정치 뉴스가 감정을 흔들어놓으면, 그 즉시 감정이 진리를 압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감정이 진리를 앞서면 그 감정은 지옥에서 온다. 그러나 진리가 감정을 다스리면 그 감정은 선의 도구가 된다. 목사님께는 이 원리가 정치적 분노 관리의 핵심이 됩니다.

 

2) 설교 전에 내적 정화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설교자에게 필요한 영적 준비는 자료 준비가 아니라 마음 준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설교는 지식이 아니라 설교자의 내면에서 주님에게 열린 문을 통해 흐르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 전, 반드시 다음과 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세상 뉴스로 인해 느낀 분노·혐오·두려움은 모두 제 마음의 바깥층에 속합니다. 제가 설교할 때는 오직 진리·빛·자비로만 서게 하소서.” 이 기도는 매우 강력합니다. 정말로 내적 정화를 가져옵니다.

 

3) 설교자는 사회를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영적 질서를 보여주는 자

 

정치적 분노에 빠진 목회자는 설교를 통해 사회 분석을 하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설교자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설교자는 사회 문제의 분석가가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빛의 등불이다. 사회 문제는 빛을 비추는 대상일 뿐이며, 해석의 중심이 아닙니다.

 


Ⅴ. 실제적 방법

 

아래는 목사님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정치 분노를 목회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실제적 기술입니다.

 

1) 설교 준비 기간에는 자극적 정치 콘텐츠 최소화

 

특히 토·일은 정치 유튜브를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 뉴스만 간략히 확인하고, 감정이 흔들리는 콘텐츠는 피하십시오.

 

2) 설교 직전에는 ‘내적 상태 점검 30초’

 

30초만으로 충분합니다. 지금 정치 뉴스가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가? 혐오·분노가 남아 있는가? 설교 주제와 상관없는 감정적 잔류물이 있는가? 지금 나는 어떤 영의 기류에 열려 있는가? 이 30초 점검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자기반성(self-examination)의 핵심 기술입니다.

 

3) 설교 중에는 사회적 예시를 쓰더라도 감정 없는 언어 사용

 

예를 들면, 요즘 정치가 혼란합니다”와 같은 표현은 무난하지만, 악한 자들이 판치고 있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감정이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언어는 내면의 영적 흐름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말합니다. 감정이 한 방울 섞이면, 그 흐름이 회중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4) 설교 이후 감정의 흔들림 발견 시 즉각 주님께 돌리기

 

설교 후, ‘왜 나는 힘이 빠질까?’라고 느끼면, 대개 내적 분노가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럴 때 다음과 같이 고백하십시오. 주님, 제게 남아 있는 감정적 잔류물을 거두어 주소서.” 스베덴보리는 이런 작은 기도조차도 내면의 문을 정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Ⅵ. 요약

설교자의 내적 상태가 설교의 영적 질을 결정한다. 분노는 설교에 ‘톤’으로 스며들어 회중에게 손해를 준다. 정치 뉴스는 정념을 자극하므로 설교 전후엔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설교는 사회 분석이 아니라 영적 질서의 빛을 전하는 일이다. 내적 정화를 통해 분노를 제거해야만 영적 흐름이 뚫린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 방향만 바꾸면 된다. 분노 → 소명, 분노 → 기도, 분노 → 진리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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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사는 나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이 항목은 스베덴보리가 정치에 무관심했는가?라는 질문의 실제 답을 보여 줍니다. 그의 저술 속 간접적 단서들을 모아 보면, 그는 결코 무관심도 아니고, 무기력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나라 문제’를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Ⅰ.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내적 구조로 보았다

 

그는 한 번도 정치인을 욕하거나 파벌을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 나라의 문제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 나라의 영적 상태에서 비롯된다. 즉, 정치 지도자의 부패, 파벌 싸움, 거짓·선동, 불의 등, 이 모든 현상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뿌리는 언제나 진리의 부족, 양심의 약화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정치인의 이름이나 사건보다 그 뒤에 있는 ‘영적 원인’에 집중했습니다.

 


Ⅱ. 그는 나라의 문제를 주님의 섭리 안에서의 정화 과정으로 보았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주님은 악을 원치 않지만, 악을 허용하심으로써 그 악을 드러나게 하고, 더 큰 선을 준비하신다. 정치 혼란이나 국가의 위기는 그 자체가 파멸이 아니라 정화(purification)입니다. 악이 드러나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거짓이 노출되지 않으면 진리를 갈망하지 않는다, 혼란이 없으면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와 같은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나라 스웨덴이 혼란스러울 때, 그것을 심판이 아닌 회복의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Ⅲ.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자기 소명의 필요성과 연결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단지 개인적인 계시 활동이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의 영적 병리를 치유하는 일로 이해했습니다. 즉, 그는 이렇게 보았습니다. 나라가 어둡다’를 진리의 빛이 필요하다’로, 파벌 싸움이 심하다’는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로, 부패가 판친다’는 양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사회가 혼란하다’는 질서(order)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같은 식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정치적 논평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모든 영적 기록(AC, DP, HH)당대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정치가 혼란할 때,  이 시대에는 내가 더 깊이 기록해야 한다고 느낀 것입니다. 목사님께도 지금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Ⅳ. 그는 나라의 문제를 인류 전체의 패턴으로 보았다

 

스베덴보리는 한 나라의 혼란을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겪는 영적 패턴의 일부로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면, 태고 교회의 멸망, 고대 교회의 쇠퇴, 유대교회의 형해화, 기독교 세계의 진리 상실 같은 것입니다. 이런 장대한 흐름 속에서 그는 스웨덴의 혼란도 하나의 패턴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한 나라의 문제는 개별 정치 사건이 아니라 영적 역사 전체 속 작은 흐름으로 본 것입니다. 이 관점은 정치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막강한 힘을 줍니다.

 


Ⅴ. 스베덴보리는 나라의 문제를 개인의 영적 책임으로 돌렸다

 

무슨 뜻인가요? 그는 늘 말했습니다. 한 나라가 악해지는 것은 그 나라의 개인들이 내면에서 선과 진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다. 국민 전체의 영적 상태가 문제다. 따라서 나라를 회복하는 길을 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 각성, 진리 사랑의 회복, 기도와 내적 삶, 말씀의 깊은 이해, 교리의 정립에서 찾았습니다. 이는 그가 평생 했던 일입니다.

 


Ⅵ.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나라가 혼란할수록 정치에서 멀어지고, 계시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가 말년에 거의 완전히 정치적 이야기에서 멀어진 이유는 현실을 피해서가 아니라 그 혼란이 자신의 사명을 더 절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병은 정치가 아니라, 진리의 부재다. 그러므로 나는 진리를 기록한다.” 이 태도는 오늘 목사님께서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며 느끼시는 마음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Ⅶ. 결론

스베덴보리는 나라를 포기한 게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나라 문제를 이렇게 바라봤습니다. 정치인이 아니라 그 사회의 영적 상태가 문제다. 혼란은 파멸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이다. 나라가 어두울수록 진리 기록은 더 절실해진다. 정치적 분노는 소명을 흐트러뜨린다. 영적 진리로 사회를 세우는 것이 가장 깊은 나라 사랑이다. 스베덴보리는 현실 정치보다 영적 병리 치유에 집중함으로써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나라를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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