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5, AC.163-167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Verse 25.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 25절 속뜻

 

천적 인간의 본성은 주님의 손길로 이노센스의 상태 가운데 있을 수 있었습니다.

 

 

163. 그들의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naked and not ashamed)이라는 것은 그들이 순진무구했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그들의 본성 안으로 오랫동안 순진무구함을 스며들게 하셨기(had instilled) 때문인데요, 그들의 본성이 이런 순진무구함(innocence, 이노센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걸(being unacceptable) 방지하시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Their being “naked and not ashamed” signifies that they were innocent, for the Lord had instilled innocence into their own, to prevent its being unacceptable.

 

 

164. 인간의 본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그저 악할 뿐이며, 만일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날 경우, 그야말로 기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체어리티와 이노센스가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들면(when charity and innocence from the Lord are instilled into the own), 그때는 선하고 아름답게 보이는데요, 앞서 154번 글에서 보신 것과 같습니다. 체어리티와 이노센스는 그 본성, 즉 사람 안에 있는 악하고 거짓된 것을 안 보이게 가릴 뿐 아니라(not only excuse the own) 마치 없어진 것 같게도 하는데요(as it were abolish it), 마치 유아들한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유아들한테서는 악과 거짓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즐거운 무슨 놀이처럼 보이기까지도 하는데요(in whom what is evil and false is not merely concealed, but is even pleasing), 그들이 자기들의 부모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한, 그리고 자기들의 유아적 이노센스가 드러나는 한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처럼, 왜 사람이 어느 정도의 이노센스를 소유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지 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The own of man, as before stated, is mere evil, and when exhibited to view is most deformed, but when charity and innocence from the Lord are instilled into the own, it then appears good and beautiful (as before observed, n. 154). Charity and innocence not only excuse the own (that is, what is evil and false in man), but as it were abolish it, as may be observed in little children, in whom what is evil and false is not merely concealed, but is even pleasing, so long as they love their parents and one another, and their infantile innocence shows itself. Hence it may be known why no one can be admitted into heaven unless he possesses some degree of innocence; as the Lord has said:

 

14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막10:14-16)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and forbid them not, for of such is the kingdom of God. Verily I say unto you, whosoever sha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as a little child, he shall not enter therein. And he took them up in his arms, put his hands upon them, and blessed them. (Mark 10:14–16)

 

 

165. 부끄러워하지 아니한 벌거벗음(the nakedness of which they were not ashamed)이 이노센스를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증명되는데요, 온전함(integrity)과 이노센스가 떠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벌거벗었음을 부끄러워했고,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수치를 느꼈으며, 그래서 자신들을 숨겼다는 사실입니다. 영들의 세계에 있는 표상(表象, the representations in the world of spirits)으로도 마찬가지인데요, 영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하고, 죄 없음을 증명하고 싶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이노센스를 증언하기 위해 스스로 벌거벗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국에 있는 순진무구한 사람들한테서 이런 게 두드러지는데요, 그들은 그들의 이노센스한 본성에 따라 화환으로 장식된 벌거벗은 유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정도의 이노센스까지는 아닌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이따금 보았던 천사들처럼 다이아몬드 실크라 할 수 있는 빛나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That the “nakedness of which they were not ashamed” signifies innocence is proved by what follows, for when integrity and innocence departed they were ashamed of their nakedness, and it appeared to them disgraceful, and they therefore hid themselves.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representations in the world of spirits, for when spirits wish to exculpate themselves and prove their guiltlessness, they present themselves naked in order to testify their innocence. Especially is it evident from the innocent in heaven, who appear as naked infants decorated with garlands according to the nature of their innocence; while those who have not so much innocence are clad in becoming and shining garments (of diamond silk as you might say), as the angels were occasionally seen by the prophets.

 

 

166. 이런 것이 본 장 말씀에 들어있는 일부인데요, 그러나 이것들은 사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기서 천적 인간을 다루었는데요, 사실 오늘날 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여기서 다룬 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조차 어떤 사람들한테는 모호하고 흐릿하게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Such are some of the things contained in this chapter of the Word, but those here set forth are but few. And as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who at the present day is known to scarcely anyone, even these few things cannot but appear obscure to some.

 

 

167. 만일 누군가 말씀 각 구절마다 얼마나 많은 아르카나가 담겨있는지를 안다면 그는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과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 엄청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인데요(for the number of arcana contained is past telling), 이런 사실이 겉 글자 상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and this is very little shown in the letter). 이걸 좀 간단히 말씀드리면,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에서는 말씀의 겉 글자들은 정확히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질서정연하게, 생생하게 표현, 표상됩니다. 영들의 세계는 표상의 세계(a world of representatives)이기 때문인데요, 거기서 생생하게 표상되는 것은 무엇이든 이번에는 이층천 천사적 영들(the angelic spirits who are in the second heaven)에 의해 그 표상들에 들어있는 아주 세밀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지각되며, 그리고 그렇게 이층천 천사적 영들에 의해 지각된 것들은 이번에는 삼층천 천사들(the angels who are in the third heaven)에 의해 도저히 표현 불가한 천사적 아이디어로 풍성하게, 그리고 꽉 차게 지각됩니다. 최종적으로 이것은 주님의 선하신 즐거움(the Lord’s good pleasure)에 따라 무한히 다양하게 지각되기 때문인데요, 이런 게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If anyone could know how many arcana each particular verse contains, he would be amazed, for the number of arcana contained is past telling, and this is very little shown in the letter. To state the matter shortly: the words of the letter, exactly as they are, are vividly represented in the world of spirits, in a beautiful order. For the world of spirits is a world of representatives, and whatever is vividly represented there is perceived, in respect to the minute things contained in the representatives, by the angelic spirits who are in the second heaven; and the things thus perceived by the angelic spirits are perceived abundantly and fully in inexpressible angelic ideas by the angels who are in the third heaven, and this in boundless variety in accordance with the Lord’s good pleasure. Such is the Word of the Lord.  

 

※ 각 천국의 역량마다 감당할 수 있는 지혜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상 언어로 기록된 말씀 안에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다 들어있지만, 지상에서 육체로 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지혜는 가장 낮은 등급인 요만큼인 반면, 사후 일층, 이층, 삼층천 천국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확장되고, 더욱 크게 초월적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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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4, AC.160-162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Verse 24.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 24절 속뜻

 

주님의 허락으로 천적 인간의 속 사람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즉 겉 사람과 함께 있게 되었는데, 같이 있는 그 둘의 모습이 마치 ‘한 몸을 이룬’ 것처럼 보였습니다.

 

 

160. 부모를 떠나(To leave father and mother)는 속 사람(the internal man)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인데요, (the external)을 잉태하고 낳는 것은 속(the internal)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와 합하여(to cleave unto his wife)는 속이 겉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to be one flesh)는 그들, 곧 겉과 속이 거기 같이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속 사람과 속에서 나온 겉이 영이었지만(were spirit), 지금은 이 둘은 육이 되었기(have become flesh) 때문입니다. 그렇게 천적, 영적 생명은 하나처럼 보이는 본성(the own)에 인접해 있게 되었습니다. To “leave father and mother” is to recede from the internal man, for it is the internal which conceives and brings forth the external; to “cleave unto his wife” is that the internal may be in the external; to “be one flesh,” that they are there together; and because previously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from the internal were spirit, but now they have become flesh. Thus was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djoined to the own, that they might be as one.

 

 

161. 이들 태고교회의 후손은 악하지 않았고, 여전히 선했는데요, 그렇지만 그들은 그러면서도 겉 사람 안, 즉 그들의 본성 가운데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주님은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의 자비로 그런 그들 안으로 영적, 천적인 것들이 스며들듯 심어지면서 말입니다. 속과 겉이 어떻게 하나로 움직이는지, 어떻게 하나로 나타나는지 하는 건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인플럭스(the influx of the one into the other, 入流)라는 걸 모르면 알 수 없는데요, 이걸 알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나 생각해 보면, 어떤 행위에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즉 사랑과 신앙, 그리고 그 안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 한, 그 행위는 체어리티의 일, 즉 신앙의 열매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This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not evil, but was still good; and because they desired to live in the external man or in their own, this was permitted them by the Lord; what is spiritual celestial, however, being mercifully instilled therein. How the internal and external act as a one, or how they appear as a one, cannot be known unless the influx of the one into the other is known. In order to conceive some idea of it, take for example an action. Unless in an action there is charity, that is, love and faith, and in these the Lord, that action cannot be called a work of charity, or the fruit of faith.  

 

※ 주님, 사랑, 신앙은 속(the internal), 그것이 체어리티의 행위로 표현되는 건 겉(the external)이라는 뜻입니다.

 

 

162. 모든 진리 및 올바름의 법(All the laws of truth and right)은 그 기원이 천적이거나(from celestial beginnings) 천적 인간의 생활 질서에(from the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있습니다. 천국 전체가 천적 인간이기 때문인데, 이는 주님만이 천적 인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모든 천국과 천적 인간의 모든 것 되시기 때문에, 그래서 이 모든 진리 및 올바름의 법을 천적이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 및 올바름의 법이 천적 기원, 즉 천적 인간의 생활 질서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결혼의 법(the law of marriages) 역시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그렇습니다. 이는 지상의 모든 결혼이 그 기원을 두거나 따라야 하는 천적(혹은 천국적 heavenly) 결혼인데, 이는 한 분 주님과 하나의 천국, 즉 한 분 주님과 하나의 교회, 주님을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가 있는 그런 결혼입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결혼의 법은 한 남편과 한 아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그 부부는 천적 결혼(the celestial marriage)을 표상하며, 천적 인간의 한 전형이 됩니다. 이 법은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계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속 사람에게 새겨져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때는 한 남자는 한 명의 아내만 가졌고, 그렇게 그들은 한 가정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속 사람 되기를 중단, 겉 사람이 되면서 그들은 여러 명의 아내와 결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결혼에 있어 천적 결혼을 표상했기 때문에, 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가 그들에게 일종의 천국과 천국적 행복이었지만, 그 교회가 기울어졌을 때, 즉 쇠퇴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결혼애가 주는 행복 대신, 숫자, 곧 겉 사람의 쾌락인 숫자가 주는 즐거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마음의 완악함(hardness of heart)이라 하셨는데요, 주님 친히 가르치시기를, 이것이 그들이 여러 명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모세로 하여금 허락하게 하신 이유라 하셨습니다. All the laws of truth and right flow from celestial beginnings, or from the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For the whole heaven is a celestial man because the Lord alone is a celestial man, and as he is the all in all of heaven and the celestial man, they are thence called celestial. As every law of truth and right descends from celestial beginnings, or from the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so in an especial manner does the law of marriages. It is the celestial (or heavenly) marriage from and according to which all marriages on earth must be derived; and this marriage is such that there is one Lord and one heaven, or one church whose head is the Lord. The law of marriages thence derived is that there shall be one husband and one wife, and when this is the case they represent the celestial marriage, and are an exemplar of the celestial man. This law was not only revealed to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but was also inscribed on their internal man, wherefore at that time a man had but one wife, and they constituted one house. But when their posterity ceased to be internal men, and became external, they married a plurality of wives. Because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 their marriages represented the celestial marriage, conjugial love was to them a kind of heaven and heavenly happiness, but when the church declined they had no longer any perception of happiness in conjugial love, but in pleasure from a number, which is a delight of the external man. This is called by the Lord “hardness of heart,” on account of which they were permitted by Moses to marry a plurality of wives, as the Lord himself teaches:

 

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막10:5-9) For the hardness of your heart Moses wrote you this precept,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 For this caus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twain shall be one flesh; wherefore they are no more twain but one flesh; what therefore God hath joined together let not man put asunder. (Mark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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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5(D1)-주일예배(2513, 마7,24-27), '납골(納骨) 예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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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j86WPkVc_E

 

시작

 

故 권성조와 故 김정자, 두 분의 이장(移葬) 관련, 마지막 세 번째 예배인 납골(納骨)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23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1절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원에 살겠네

 

2절

앞서간 우리의 친구들

광명한 그 집에 올라가

거룩한 주님의 보좌 앞

찬미로 영원히 즐기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찬미로 영원히 즐기네

 

 

설교

 

이곳은 이제 두 분을 새롭게 모실 새로운 곳입니다. 저쪽 포천 황동묘원 때와는 달리 이곳은 이제 언제든지 자유롭게 오실 수 있는 곳이어서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 그래도 수도권에 사시며, 가까이들 사시니까요. 두 분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사랑, 함께함이 생각나실 때마다 오시기 바랍니다. 오셔서 바쁘고 복잡한 세상일에서 잠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영원과 사후세계를 생각하시는 시간들 가지시기를 권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러나 사후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곳은 천국이며, 그래서 지상에 남기고 가는 이 유골은 지상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자손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이미 천국에 들어가신 분들에게는 전혀라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즉 조상이 후손에게 무슨 복을 주고 그러거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다는, 그래서 이런 말씀이 살짝 좀 불편하시고 이상하시더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즉 세상 떠나신 고인들의 경우, 기억하는 것은 우리이지, 그분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아니 못하신다 말씀드리는 이유는, 사람이 사후 육체를 떠나 천국에 들어간다는 건 뭐랄까... 일종의 초기화, 리셋(reset) 된다고나 할까요? 생전의 모든 자연적 기억과 경험들이 모두 휴면 상태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다시 꺼내어져 재생되지만 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사람의 영뿐이며, 이 영은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으로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저 세상 살면서 학습을 통해 지식으로 습득하기만 한 걸로는, 그래서 그걸 통해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지역 사회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 및 나라와 민족, 인류에게 무슨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지는 않았던, 즉 그걸 통해 창조주가 원하셨던 무슨 쓰임새의 삶을 살지는 않았던 사람들, 그 지식과 경험, 환경 가지고 그저 자기만 사랑하고, 세상 사랑하는 데만 전념했던 사람들은, 사후에는 자기가 그동안 생전에 그렇게 애써 익혔던, 그리고 성취했던 모든 지식과 경험이 자기 것, 곧 영이 되어 있지를 않아, 미안하지만 자신과 분리가 되어 모두 휴면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그래서 천국에는 가지고 가실 수 없는 상태가 되며, 그래서 당연히 이런 사람의 영은 함량 미달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실상은 들여보내 줘도 본인이 못 견디고 뛰쳐나오는 건데요, 마치 글로벌 초우량 기업에 낙하산으로 입사한들 실제 본인의 업무역량이 안 받쳐주면 못 견디고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 놀라운 얘기이지요? 보통은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 천국 갈 수 있다 가르치고 그렇게 배우기 때문인데요, 물론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절반만 맞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러면서 또한 ‘듣고 행하는’ 삶이 뒤따라야 하는데요, 왜냐하면, 사람의 영, 천국에 들어가는 영은 ‘듣고 행할’ 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진리라는 건, 그냥 글자 형태로만 있으면 그냥 ‘진리’일 뿐이지만, 그 진리가 실천되는 순간, ‘’이 됩니다. 진리를 실천하면서 살 때, 그 사람의 영은 천국을 향해 무럭무럭 자라나며, 천국은 이런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이런 걸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7:24-27)

 

이 말씀 자체가 한 편의 설교, 정수(精髓)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무엇이며, 사람의 임종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사람이 천국 또는 지옥에 가는 그 과정과 절차는 어떤지, 더 나아가 천국은 어떤 곳이며, 지옥은 어떤 곳인지 등에 대해 정말 많은 걸 알려 드릴 수 있으나 오늘은 시간 관계상 어렵고, 다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그리고 두 분의 이장 관련 예배이니만큼 절제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천국은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된 영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천국 가기를 원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영 준비’에 신경 쓰셔야 합니다. ‘자신의 영을 준비한다’는 것은, 일단 천국은 영의 나라요, 육신은 이 세상에 벗어버리고 가기 때문이고요, 영이란 ‘듣고 행한’ 걸로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자신의 영을 천국을 위해 잘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며, 주님은 사랑이셔서 그 기간을 넉넉히, 아주 충분히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영원한 곳입니다. 사람의 영은 천국에서 가장 젊을 때의 상태로 지내게 되는데요, 수백, 수천 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젊어진다고 합니다. 그 모습 또한 가히 지상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는데요, 두 분은 각각 91세, 79세의 노인으로 생을 마감하셨으나 지금 계신 곳에서는 눈이 부시다 못해 도저히 뜨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우신 모습들이실 줄 믿습니다. 두 분 생전에 옷처럼 입고 지내신 육신은 지금 이렇게 뼛가루가 되어 유골함에 모셔져 있지요. 즉 살아생전 건강에 신경 쓰시는 것도 좋지만, 너무, 잠시 후 벗어버리고 갈 육체에 너무 그러지 마시고, 더욱 중요한 게 무엇일지, 곧 자신의 영인데요, 이 영 준비에 가급적 올인하시라는 말씀입니다.

 

부디 남은 삶, 자신의 영, 자신의 속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시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그래서 나중에 천국에서 두 분, 영광 가운데 큰 기쁨으로 재회할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

 

3절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4절

우리의 일생이 끝나면

영원히 즐거운 곳에서

거룩한 아버지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도우심의 그 은혜와 사랑이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두 분 고 권성조, 고 김정자의 이장에 참여, 두 분을 기억하며, 주신 세 번의 말씀 마음으로 받아 새 힘, 새 결심하고 떠나는 모든 심령 가운데, 그리고 생활과 삶 가운데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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