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5(D1)-주일예배(2512, 겔37,1-14), '화장(火葬) 예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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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dH-lYlZnds

 

시작

 

故 권성조와 故 김정자, 두 분의 이장(移葬) 관련, 두 번째 예배인 화장(火葬)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606장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1절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

 

2절

찬란한 주의 빛 있으니

거기는 어두움 없도다

우리들 거기서 만날 때

기쁜 낯 서로가 대하리

 

후렴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설교

 

애석하게도 성경에는 오늘날의 이런 화장처럼 고인의 유골을 납골을 위해 불로 태워 빻아 가루로 만드는 예가 없습니다. 무엇을 태워 빻아 가루로 만드는 예를 굳이 찾자면 아래와 같은 경우인데요,

 

4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왕하23:4-6)

 

이처럼 우상과 제단, 그리고 우상숭배 때 사용된 모든 제기(祭器)라면 몰라도 사람의 유골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런 새로운 화장 및 납골 문화는 매장지가 부족한 오늘날 현실적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므로 굳이 무슨 영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 싶고, 그래서 이 시간엔 특별히 ‘’에 대하여 아래 에스겔 본문을 가지고 살피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7:1-14)

 

마른 뼈’(the dry bones) 본문으로 유명한 이 본문은 사실은 사람의 거듭남을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사람의 거듭남이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한평생 천국 생활에 합당하게 잘 준비되어 사후(死後), 천국에 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실은 생전 그 사람의 상태가 천국 상태여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지옥은 이미 그 상태가 지옥인 사람이 가는 곳이고요. 이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곳들은 사실은 시공간의 나라가 아닌, 상태와 그 상태변화의 나라입니다. 상태란 천국과 지옥 등 영계 전체와 이 자연계를 모두 다스리시는 만유의 대 주재이신 주님께 대한 상태를 말합니다. 한평생 살면서 그 주님을 얼마나 닮은 상태인가에 따라 사후 운명이 정해지는 것이지요. 영계라는 곳은 비슷하면 가까이, 다르면 멀어지는 곳인데요, 그래서 주님을 닮은 사람, 주님과 비슷한 사람은 천국, 즉 천국 상태에 있게 되고, 주님을 안 닮은 사람, 주님과 비슷한 점이 없는 사람은 정반대인 지옥, 즉 지옥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위 에스겔 본문에서 말하는 ‘생기’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생명이며, 14절,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에 나오는 ‘’과 같은 말입니다. 영어로는 같은 ‘spirit’인데 한글 번역을 이렇게 다르게 했네요. ‘’란 이 생명이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처음 태어날 때, 바로 이 ‘’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렇게 태어나 누구는 일찍 하나님을 만나고, 누구는 한평생 하나님을 못 만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 곧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곧 그분의 생명을 받아 위 본문의 뼈들처럼 마침내 ‘살아나는’ 것을 말하지요. 그것이 다른 말로는 ‘거듭남’(regeneration)이며, 이 상태가 바로 천국을 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은 상태인 것이지요.

 

주님은 우리가 모두 지상 생활을 마치고 천국에 갈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치고 처음부터 지옥 가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한테서 비롯되는데요, 즉 모든 영혼의 근원은 주님이신데, 그래서 주님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책임을 지십니다. 부디 비록 뼈 상태로 출발은 하여도 하늘 아버지 되어 우리네 인생 끝까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동행하시며 보살피시는 주님을 붙드시고, 인생 마칠 때 영광의 하늘나라에 무사히 들어가시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찬송

 

3절

이 세상 작별한 성도들

하늘에 올라가 만날 때

인간의 괴롬이 끝나고

이별의 눈물이 없겠네

 

4절

광명한 하늘에 계신 주

우리도 모시고 살겠네

성도들 즐거운 노래로

영광을 주 앞에 돌리리

 

후렴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아멘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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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5(D1)-주일예배(2511, 창50,25-26), '개장(開葬) 예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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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JYaOyLF6ic

 

 

 

시작

 

우리의 아버지요 할아버지셨던 故 권성조와 어머니요 할머니셨던 故 김정자, 두 분의 이장(移葬) 관련, 그 첫 번째 시작 예배인 개장(開葬)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시간, 두 분의 자손들이 이렇게 모여 모실 곳을 새롭게 천묘(遷墓)코자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 예를 갖추고자 하오니 이 예배를 도우시며, 또한 받으시고, 오늘 하루 모든 일정을 순적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1절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님 

성 삼위일체 우리 주로다

 

2절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보좌 앞에 

모든 성도 면류관을 벗어 드리네

천군 천사 모두 주께 굴복하니 

영원히 위에 계신 주로다

 

 

설교

 

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50:25-26)

 

 

두 분의 생(生), 졸(卒) 및 그 열매를 짧게 말씀드리면, 고 권성조는 1923년 생, 2015년 졸, 만 91세를, 고 김정자는 1926년 생, 2005년 졸, 만 79세를 각각 향(享)하시는 동안, 슬하에 아들, 딸, 사위, 며느리 및 친, 외 모든 손주와, 손주사위, 며느리, 그리고 증손들 포함 총 26명을 남기셨습니다.

 

두 분의 평생, 고요하고 은은한, 온유하고 성실, 진실하셨던 사랑 덕분에 이렇게 그 자손 된 저희 모두 그 복을 누리며 사는 줄 믿고, 오늘 두 분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자 모인 것입니다.

 

장인, 장모 되시는 두 분의 지난날 장례를 모두 집례했던 제가 이렇게 이제 이장까지 집례하면서 이장 관련해서는 성경에 무슨 예가 있나 찾아보니 그 첫 번째가 바로 오늘 본문, 창세기 그 유명한 요셉의 예였습니다.

 

다들 아시듯 요셉은 부유한 가나안 족장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가문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의 첫째 아들로, 그러나 라헬이 둘째를 낳다 죽어, 어린 시절, 아버지의 특별한 편애를 받으며 자라다가, 다른 모든 배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아버지 모르게 애굽으로 팔려 갔던, 그리고 그곳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 졸지에 노예의 삶을 살게 되었던, 그리고 외모가 준수하고 용모가 아름다워 안주인의 유혹이 거듭되던 중 결국 그걸 거절하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갇혀야 했던, 그리고 그곳에서 왕의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 일로 나중에 애굽 왕 바로의 꿈도 해석, 그 일로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곧 시작되는 일곱 해 풍년과 이어질 일곱 해 흉년을 지혜롭게 대비, 애굽은 물론, 당시 근방 모든 나라를 살린 전천후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이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表象, representative)입니다. 표상이란, 역할 대행을 말합니다. 무대 위에 올라 맡은 역을 연기하는 배우들 같은 것이지요. 인류의 죄 문제, 정확히는 지옥의 광기와 그로 인한 피조 세계 전체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친히 성육신(聖肉身, incarnation)하신 주님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그 요셉이 백십 세를 살고 숨을 거두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언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즉,

 

너희가 지금은 사정상 이렇게 타국살이를 하고 있으나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너희를 다시 고국 고토(故土),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그때 너희가 이곳을 나갈 때 반드시 나의 유골 또한 챙겨 그곳에 이장하도록 하라

 

고 말이지요.

 

이 가나안 땅과 시온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에게 있어 주님의 나라(The Lord’s Kingdom), 천국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가나안 땅, 가나안 땅 했던 것이며, 조금 확장하면,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전쟁도 그 뿌리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은 단지 영적인 의미, 표상, 상징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바람에 시작된, 그리고 지난 2천 년 동안 주인 없는 땅에 들어와 살았던 중동 유목민 족속 팔레스타인 간 비극인 것이지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요셉의 이장은 기억된 바 되었다가 430년 후, 모세의 출애굽 때 시행되었고, 이후 광야 생활 40년을 비롯, 여호수아 가나안 정복기 말미에 비로소 요셉의 유골을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함으로써 이 대략 5백 년 걸린 유언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수24:32)

 

오늘 두 분의 이장은 이런 성경적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달라 어떤 특정 장소가 천국을 상징하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두 분의 이장으로 모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분의 유골은 세상에 남기고 가신 유일한 흔적이기 때문이며, 이 흔적으로 우리는 두 분과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부모,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의 대행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 가운데 사실은 온 인류의 영적 아버지이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 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모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그대로 주님에 대한 태도로 이해하십니다. 물론 부모들 중에는 전혀 주님의 대행자로서의 역할에 한참 역량 미달이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에 대한 건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자녀 된 도리만 다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주님을 성경 말씀으로 알지 못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이를 ‘’(孝)로 표현했습니다. 부모는 그 영적 실상으로는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대할 때, 부모님의 모습에서 하늘의 하나님, 곧 주님을 볼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의 인생은 크게 형통할 것입니다.

 

그 생생한 예가 여기 계신, 장녀 선자와 큰아들 내외이신 용진, 혜경 부부입니다. 여기 장녀 선자께서는 출가 전, 두 분 제과점과 가게로 바쁘시던 시절, 동생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 건사, 집안일 일체를 돌보셨으며, 여기 형님, 형수님은 두 어른 살아생전 참으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효성으로 어머님 땐 어머님을, 아버님 땐 아버님을, 그 모든 병수발과 대소변을, 그것도 집에서 직접 시중드셨고, 그걸 또 여기 있는 세 자녀 소현, 도윤, 그리고 막내 상윤이 생생하게 곁에서 보면서 자랐는데요, 그러니 그 복이 어디 가겠습니까? 다른 자녀들과 그 자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어머님 김정자의 모습으로, 아버님 권성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그 모든 섬김을 받으셨으며, 그래서 약속하신 하늘의 복을 그 자손 천 대까지 베푸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며 약속하시기를,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하셨는데요, 어떤 일을 할 때, 잔머리 굴리지 않고,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십계명을 비롯, 성경 말씀에 맞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고 부끄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정직하고 의롭기 때문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참고로, ‘천 대’란 ‘very much’를 말하며,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할 땐 ‘forever’라는 뜻입니다.

 

오늘 이 이장 예배를 통해 오직 주님과의 결합, 그 연결 고리를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죽으나 나중에 반드시 가나안 땅에 묻혀 끝까지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려고 몸부림을 쳤던 요셉처럼 말입니다. 아멘

 

 

찬송

 

3절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빛난 영광 

모든 죄인 눈 어두워 볼 수 없도다

거룩하신 이가 주님밖에 없네 

온전히 전능하신 주로다

 

4절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천지 만물 모두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성 삼위일체 우리 주로다

 

 

광고

 

 

마침 기도

 

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신 말씀대로 우리도 주님과 늘 연결되어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후 개장과 화장 및 납골에 이르기까지 애쓰시는 업체분들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순적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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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3, AC.156-159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Verse 23.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 23절 속뜻

 

천적 인간은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차이, 그리고 그 상호관계를 분명히 압니다. 천적 인간의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하나 됨, 곧 결혼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156.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은 겉 사람의 본성을 말하며, 여기서 (bone)는 이 본성이 생기가 거의 없음을, ‘(flesh)은 생기 있는 본성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자는 속 사람을 의미하며, 이어지는 구절에 보면 이 속 사람은 겉 사람과 결합하기 때문에, 앞서 여자(woman)라고 했던 본성을 여기서는 아내(wife)라고 합니다. ‘이제(Now)는 이 시점에서 이렇게 되었음을 말하는데요, 이때 상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y the own of the external man; “bone,” this own not so much vivified, and “flesh,” the own that is vivified. Man, moreover, signifies the internal man, and from his being so coupled with the external man as is stated in the subsequent verse, the own which was before called “woman” is here denominated “wife.” “Now” signifies that it was thus effected at this time because the state was changed.

 

※ 우리말 개역개정에는 이 ‘이제’에 대한 번역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157.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이 그 안에 인터널(the internal, 속에 해당하는 것, 內的인 것)이 있는 겉 사람의 본성을 의미하는 한, 그래서 고대에는 자신들의 본성(their own [proprii])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게 한 가족(one house)이든, 가계(one family), 기타 어떤 종류의 관계(any degree of relationship)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라반도 야곱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Inasmuch as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ied the own of the external man in which was the internal, therefore in ancient times all those were called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who could be called their own [proprii], and were of one house, or of one family, or in any degree of relationship. Thus Laban said of Jacob,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29:14)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Gen. 29:14)

 

그리고 아비멜렉 또한 자기 어머니의 혈육들(his mother’s brethren)과 외가 사람들(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And Abimelech said of his mother’s brethren, and of 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삿9:2) Remember that I am your bone and your flesh. (Judges 9:2)

 

이스라엘 지파들(The tribes of Israel)도 다윗에게 자신들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tribes of Israel also said of themselves to David,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삼하5:1) Behold, we are thy bone and thy flesh. (2 Sam. 5:1)

 

 

158. 사람(man, 아담)은 속 사람, 즉 같은 말이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사41:28)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Isa. 41:28)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요. 예레미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5:1)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Jer. 5:1)

 

정의를 행하는 자(One who executes judgment)는 지혜로운 사람을, ‘진리를 구하는 자(one who seeks the truth)는 총명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159. 그러나 천적 인간의 상태(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천적 인간 안에서 속 사람은 겉 사람과 구별되되, 실제로는 너무도 구별되어 속 사람, 겉 사람에게 속한 것은 각각 무엇이며, 겉 사람이 속 사람을 통해 주님에 의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천적 인간은 지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천적 인간의 후손들의 상태(the state of the posterity of this celestial man)는 자신들의 본성, 곧 자신들의 겉 사람에게 속한 본성을 징그럽게 원한 결과, 너무도 변질, 더 이상은 겉 사람과 속 사람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속 사람이라는 거하고 겉 사람이라는 거하고 같은 거 아냐? 할 지경이 되었는데요, 이런 일은 사람이 자신의 본성으로 기울어질 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not easy to perceive how the case is with these things unless 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 is understood. In the celestial man the internal man is distinct from the external, indeed so distinct that the celestial man perceives what belongs to the internal man, and what to the external, and how the external man is governed through the internal by the Lord. But the state of the posterity of this celestial man, in consequence of desiring their own, which belongs to the external man, was so changed that they no longer perceived the internal man to be distinct from the external, but imagined the internal to be one with the external, for such a perception takes place when man inclines to hi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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