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

 

460. 이 장은 특별히 거의 홍수 전까지 죽 이어진 세대들을 통해 태고교회가 퍼져나간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461. 태고교회 자체는,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는데, ‘사람’(아담, man, [homo])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일컬음을 받는 교회입니다. (1절)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verse 1)

 

※ 천적이라 함, 곧 어떤 사람을 가리켜 천적 인간이다, 어떤 천사를 가리켜 천적 천사다 하는 것은, 그를 다스리는 주된 동기가 사랑인 사람이나 천사를 말합니다. 사랑, 선, 가슴 및 의지 등은 모두 천적 특성들이고, 반면, 신앙, 진리, 머리 및 이해력 등은 영적 특성들입니다. 주님은 천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의지 안으로 직접 들어가시지만, 영적인 사람들한테는 그의 이해력(understanding)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들어가십니다.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62. 태고교회처럼 그렇게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이름하여 ‘셋’이라 합니다. (2-3절)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verses 2–3)

 

※ 여기 3절의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은 그 아담이 아니라, ‘셋’의 부모 교회인 ‘아다와 씰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속뜻이며, 말씀에서 이런 반복이 나올 때는 무슨 다른 상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얼핏 2장에서 또 한 번 반복되는 그런 경우인데,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영적 사람의 거듭남을, 2장의 창조는 천적 사람의 거듭남을 각각 가리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아담(homo)과 그의 아내’라는 표현은 지금 보고 있는 교회의 부모 교회를 상징하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해서, 이 3절의 아담은 4장 1절의 그 아담과 하와가 아닌, 바로 ‘아다와 씰라’를 가리킨다 보는 것입니다.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463. 세 번째 교회는 ‘에노스’(6절)라는 이름으로, 네 번째는 ‘게난’(9절),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12절), 여섯 번째는 ‘야렛’(15절), 일곱 번째는 ‘에녹’(18절), 그리고 여덟 번째는 ‘므두셀라’(21절)로 각각 불렀습니다. A third church was called “Enosh” (verse 6); a fourth “Kenan” (verse 9); a fifth “Mahalalel” (verse 12); a sixth “Jared” (verse 15); a seventh “Enoch” (verse 18); and an eighth church “Methuselah” (verse 21).

 

※ 여기 나오는 ‘날’과 ‘해’, ‘자녀들’ 및 ‘몇 세를 살고’ 하는 표현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날’(日, days)은 일반적으로, ‘해’(年, years)는 구체적으로, 각각 때와 상태를 상징하며, ‘자녀’(sons and daughters)는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을 상징합니다. 또한 ‘팔백 년’, ‘구백삼십 세’ 같은 표현들의 아케이나는 해당 교회의 수많은 상태 변화들을 의미하는데, 그 수가 아주 크다는 뜻입니다. 이런 큰 수의 속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1’에서 ‘12’까지 기본적인 수에 대한 아케이나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하여튼 여기 나오는 이런 큰 수들은 해당 교회들에게 있었던 수많은 상태와 그 변화들을 상징하는 것이지 우리가 알던 겉뜻대로, 어느 한 개인의 실제 수명이 그렇게 천 년 가까이 오래 살았다는 그런 뜻이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464. ‘에녹’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에 계시되고, 지각된 것들로부터 골격이 짜여진 교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고 대신 후손들의 사용을 위해 보전되었습니다. The church called “Enoch” is described as framing doctrine from what was revealed to and perceived by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doctrine, although of no use at that time, was preserved for the use of posterity.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2-24절) This is signified by its being said that “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verses 22–24)

 

※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에녹은 그때까지 계시되고, 지각된 태고교회의 교리 혹은 신학, 가르침들을 가지고 일종의 조직신학처럼 다듬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앞서 시대를 뛰어넘은 것이었던지 이때는 쓰임을 받지 못하고 후대를 위해, 사실은 홍수 후 세대이지요, 나중 세대를 위해 따로 보관하신 것이며,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에녹은 일종의 리메인스, ‘남은 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465. 아홉 번째 교회는 ‘라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25절)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verse 25)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466. 열 번째 교회, 이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로서, 이름하여 ‘노아’라 하였습니다.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이 교회를 고대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28-29절)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verses 28–29)

 

※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태고교회(아담교회, 아담에서 홍수 전까지), 고대교회(노아교회, 홍수 후부터 모세까지), 이스라엘교회(모세에서 주님 초림 때까지), 기독교회(주님 승천 후 재림 때까지), 끝으로 주님 오셔서 시작하실 새 교회(새로운 기독교회)가 있습니다.

 

 

467. ‘라멕’은 태고교회가 즐겁게 누리던 퍼셉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로 그려지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29절)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verse 29)

 

※ 이 퍼셉션(perception, 지각)은 홍수 전과 후를 나누는 아주 중요한 인류의 특징인데요, 이게 있으면 태고교회, 이게 없으면 나머지 교회들입니다. 즉, 홍수 후에 일어난 모든 교회들은 이게 없으며, 대신 양심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 자체가 사실 불가능하며, 아무리 설명을 한들 현생 인류는 못 깨달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퍼셉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내적 호흡(internal respiration)인데, 설명 불가, 천사들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홍수 전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선물을 기본적으로 타고나던 사람들, 인류였습니다.

 

 

468. 이전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들을 볼 때 분명한 것은, 이름은 이교(異敎, heresy)나 교리(敎理, doctrine)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들, 곧 현 맥락에서는 태고교회로부터 바로 이 ‘노아’ 때까지, 변화를 겪으며 내려오면서도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부른 것입니다.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 ‘남은 자’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 혹은 ‘중간에’, ‘땅에’ 있다고도 합니다.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 안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나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기 때문입니다.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은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사람은 죽게 됩니다.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로 상징된 사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 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보통,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사4:3-4)

 

위 구절에서 남은 자들을 거룩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교회의 리메인스와, 또 교회에 속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 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다시 Again: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사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렘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미5:7)

 

[4] 한 사람 혹은 한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 분의 일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 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십’(10)은 리메인스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사6:12-13)

 

여기 남아 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아모스에서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암5:3)

 

이들과 다른 많은 구절들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고 있는 ‘리메인스’가 속뜻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한 도시가 그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이 들은 내용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창18:32)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532. ‘라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황폐해진 교회를 상징합니다. By “Lamech,” as before said, is signified the church vastated.

 

‘자녀들’은 그와 같은 교회를 계속해서 잉태 및 해산하였음을 상징합니다. (30-31절)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such a church. (verses 30-31)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534. ‘노아’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대교회(古代敎會, the ancient church)를 상징합니다. By “Noah,” as has been said,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셈, 함, 야벳’은 ‘노아’라는 고대교회를 부모로 하는, 세 고대교회를 상징합니다. (32절) By “Shem, Ham, and Japheth” are signified three ancient churches, the parent of which was the ancient church called “Noah.” (verse 32)

 

 

535. ‘노아’라는 교회는 홍수 전에 있었던 교회들 중 하나로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2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That the church called “Noah” is not to be numbered among the churches that were before the flood, appears from verse 29, where it is said that it should “comfort them from their work and the toil of thei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안위하다, 위로하다’는 것은 살아남아 견디는 것입니다. The “comfort” was that it should survive and endure.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But concerning Noah and his son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536. 선행 페이지들에서, 홍수 전에 존재한 교회들에게 소유되었던 퍼셉션에 관한 많은 내용을 말씀드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은 퍼셉션에 관해 전혀 알려진 바 없어 어떤 사람들은 퍼셉션을 일종의 계시의 지속으로, 혹은 사람들 안에 심긴 어떤 것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상상일 뿐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어떤 걸로 등 이렇게 온갖 의견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그리고 퍼셉션은 주님이 사랑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천적인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광범위한 천국 전체의 끝없는 다양성 안에는 이 퍼셉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등, 이런 여러 이유로, 사람들 안에 퍼셉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하심을 받아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수많은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의 주된 종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As in the foregoing pages much has been said about the perception possessed by the churches that existed before the flood, and as at this day perception is a thing utterly unknown, so much so that some may imagine it to be a kind of continuous revelation, or to be something implanted in men; others that it is merely imaginary, and others other things; and as perception is the very celestial itself given by the Lord to those who are in the faith of love, and as there is perception in the universal heaven of endless variety: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ay be among men some conception of what perception is, of the Lord’s Divine mercy I may in the following pages describe the principal kinds of perception that exist in the heavens.

2021-09-02(D5)-매일예배(2181, 아케이나말씀리딩.창5), '아담의 계보, 에녹, 하나님과 동행, 노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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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a8R-fVJwyQ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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