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D1)-제9권42호통425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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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86. 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Verse 17. And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and his house, because of the word of Sarai, Abram’s wife.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기억-지식들이 파괴되었음을, ‘그 집에’, 그가 모았던,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천적인 것에 인접해 있어야 했던 진리 때문에를 각각 의미합니다.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signifies that the memory-knowledges were destroyed; “and his house” signifies which he had collected; “because of the word of Sarai, Abram’s wife” signifies because of the truth that was to be adjoined to the celestial.

 

※ 주님의 허락으로 영안이 열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영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우리처럼 그 사람의 몸을 보고 있지만 말입니다. 또한 이처럼 우리 안의 천사들은 말씀을 속뜻으로 읽습니다. 비록 우리 눈을 통해 겉 글자로, 사람의 언어로 읽지만 말입니다.

 

※ 말씀의 아케이나에 접근 혹은 도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스베덴보리도 최대한 쉽게 풀어쓰려고 쓴 것이겠지만...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이 아파트만한 돌더미, 흙더미를 죽을힘을 다해 뒤져 겨우 엄지손톱만 한 금광석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발견이라도 하면, 아니 반드시 발견하게 하시는데, 그때 그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 이제부터라도 라틴어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포츠(Potts, 1888-1902)는 왜 클라우즈(Clowes, 1774-1806)의 초역을 재역했을까요? 그리고 NCE(2010)를 낸 쿠퍼(Cooper)는 왜 바로 라틴 원전(1749-1756)으로 갔을까요? 책 ‘천국과 지옥’을 번역한 김은경은 수많은 영역본이 있었음에도 왜 바로 라틴 원전으로 한(韓)역했을까요? 번역은 가급적 원전을 가지고 직접 해야지 역본을 가지고 하면 아주 엉뚱한 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 전달 게임’처럼 말이지요. 한글 성경도 개역의 경우, 영역, 한(漢)역을 가지고 한 결과, 많은 오역이 있어 이번 개역개정의 경우는 직접 히브리어, 헬라어 원전으로 번역한 것처럼 말입니다.

 

 

1487.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And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이것이 기억-지식들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함이라는 것은 ‘바로’의 의미가 일반적으로는 기억-지식이며, 결과적으로는 그런 지식에 속한 기억-지식이라는 것을 보면, 그리고 ‘큰 재앙을 내리심’의 의미가 파괴됨이라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 memory-knowledges were destroye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Pharaoh” as being memory-knowledge in general, consequently the memory-knowledges that belong to such knowledge;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being “smitten with plagues” as being to be destroyed.

 

기억-지식들과 관련하여 이 경우는 이렇습니다. As regards memory-knowledges the case is this.

 

어린 시절, 이 기억-지식들은 그저 단순히 알려는 목적 외에 무슨 다른 거 없이 습득되지만, 주님의 경우는 진리에 대한 기쁨과 애정으로 습득되었습니다. In childhood they are acquired for no other end than that of knowing; with the Lord, they were acquired from the delights and affection of truth.

 

어린 시절 습득한 기억-지식들은 그 수가 엄청나지만, 나중에 주님에 의해 쓰임 받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배치됩니다. 먼저는, 생각하는 능력이 생기게 하시려고, 두 번째는, 생각의 재료가 될 수 있게 하시려고, 끝으로, 이게 그 원하시는 건데요, 다시 말해서, 삶 자체가 쓰임새로 구성되며, 쓰임새의 삶이 되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The memory-knowledges acquired in childhood are very numerous, but are disposed by the Lord into order so as to serve for use; first, to give the ability to think; then that they may be of use by means of thought; and lastly that this may take effect, that is to say that the very life may consist in use, and be a life of uses.

 

※ 쓰임새의 삶을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좋은 예는, 예를 들면,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기 위해 법을 공부하여 판검사가 되고자 하는 경우, 또는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자 하는 경우 등이 있겠습니다.

 

이것이 어린 시절 습득한 기억-지식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게 없으면, 겉 사람은 결코 속 사람과 상호결합할 수 없으며, 동시에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These are the things performed by the memory-knowledges that are acquired in childhood; and without them the external man can never be conjoined with the internal, and at the same time become use.

 

사람이 쓰임새의 사람이 될 때, 즉 그가 모든 걸 그 쓰임새에 따라 생각하고, 그 쓰임새대로 행할 때, (만일 대세를 따르지 않고, 대신 그런 쓰임새의 실천을 통해 습득된 성품에서 나오는 조용함 가운데 있다면, 그 처음 용도, 곧 사람으로 하여금 합리와 이성의 사람이 되게 하려던) 기억-지식들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어 파괴됩니다. When man becomes use, that is, when he thinks all things from the end of use, and does all things for the end of use—if not by manifest reflection, still by tacit reflection from a nature acquired by so doing—then the memory-knowledges which have served the first use—that the man may become rational—being no longer of service, are destroyed; and so on.

 

※ ‘대세를 따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지식의 습득과 추구를 자기 사랑을 위해 한다는 것이며, ‘합리와 이성의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은 그 지식이 머리에만 저장되어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 ‘기억-지식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쓰임새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회유와 저급한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 주님으로 말미암은 공동선 앞에서는 세속과 세상의 얄팍한 잔머리는 설 데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여기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들입니다. These are the things here meant by the words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1488. 그 집에 And his house.

 

이것이 그가 수집한 기억-지식이라는 것은 ‘집’의 상징, 곧 ‘수집되어 이곳에서 기억-지식이 되는’이라는 의미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which he had collecte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house,” as being, in this place, the memory-knowledges that are collected.

 

※ Potts 역(1888-1902)의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Cooper 역(2012)에서는 ‘사실’(fac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지식’이란 무엇인가가 은근, 참 중요합니다. 참고로, Potts는 앞서 다른 분의 번역, 곧 Clowes 역(1774-1806, from the Original Latin)을 개정, 편집하였지만, Cooper는 Clowes처럼 라틴 원전을 직접 번역했습니다.

 

기억-지식을 수집하고, 그걸로 겉 사람의 틀을 만들어 세워가는 과정은 실제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 여러 곳에서는 그걸 ‘건축’이나 ‘가옥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처럼 말입니다. To collect memory-knowledges, and by their means frame the external man, and build it up, is not unlike building a house; and therefore such things are signified in many passages of the Word by “building,” and by “building houses,” as in Isaiah: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사65:17, 21-22) I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y shall build houses, and inhabit them; and they shall plant vineyards, and eat the fruit of them; they shall not build and another inhabit; (Isa. 65:17, 21–22)

 

여기서 ‘가옥’은 거기 지혜와 지성이 있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이 본문은 주님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다루고 있습니다. here “houses” mean where there are wisdom and intelligence, thus where there are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for the Lord’s kingdom is here treated of, namely,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렘29:5) Build ye houses and dwell in them; and plant gardens, and eat the fruit of them; (Jer. 29:5)

 

그 의미가 유사하지요. where the meaning is similar.

 

시편입니다. In David: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시112:1, 3) Blessed is the man that feareth Jehovah, that delighteth greatly in his commandments; wealth and riches are in his house, and his righteousness endureth forever; (Ps. 112:1, 3)

 

‘부와 재물’은 지혜와 지성, 즉 지식에 관한 부와 재물을 가리키는데, ‘그의 집에’, 즉 이 지식이 그의 안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where “wealth and riches” denote the wealth and riches of wisdom and intelligence, thus knowledges; which are “in his house,” that is, are in him.

 

[2] ‘집’이 스바냐에서는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House” is used in the opposite sense in Zephaniah:

 

그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그들의 재물이 노략 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습1:12-13) I will visit upon them that say in their heart, Jehovah hath not done good, and hath not done evil; and their wealth shall be for a spoil, and their houses a desolation; and they shall build houses and shall not inhabit them, and they shall plant vineyards but shall not drink the wine thereof. (Zeph. 1:12–13)

 

학개에서는 In Haggai: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학1:8-10) Go up into the mountain, and bring wood, and build the house. Ye looked for much, and lo, it came to little; and ye brought it into the house, and I did blow it away. Why? saith Jehovah. Because of my house, which is deserted, while ye run everyone to his own house; therefore upon you are the heavens shut from dew; (Hag. 1:8–10)

 

‘집’은 머리를 써서 거짓에 이른 기억-지식을 가리킵니다. “houses” denote memory-knowledges by which, through reasoning, come falsities.

 

이사야에서는 In Isaiah: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사5:7-9) Woe unto them that join house to house, that cause field to draw near to field, till there be no place, and ye dwell alone in the midst of the land. Shall not many houses be for a desolation, great and good, without an inhabitant? The vineyard of Jehovah is the house of Israel; (Isa. 5:7–9)

 

이 또한 사용한 결과, 거짓에 이른 기억-지식을 가리킵니다. also denoting memory-knowledges by means of which come falsities.

 

아모스에서는 In Amos:

 

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므로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지리라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암6:11-12) Behold, Jehovah commandeth, and will smite the great house with breaches, and the little house with clefts. Shall horses run upon the rock? Will one plow there with oxen? But you have turned judgment into gall,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into wormwood; (Amos 6:11–12)

 

‘집’은 같은 의미로 거짓과 거기서 나오는 악을, ‘말’은 머리 쓰는 것(reasoning)을, ‘정의’는 ‘쓸개로 바뀌는’ 진리를, ‘공의의 열매’는 ‘쓴 쑥으로 바뀌는’ 선을 각각 가리킵니다. where “houses” denote in like manner falsities and the derivative evils; “horses,” reasoning; “judgment,” truths, which are “turned into gall”;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goods which are “turned into wormwood.”

 

[3] 그래서 말씀 전반에 ‘집’은 인간의 마음을, 그 안에 지성과 지혜가 있어야 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Thus throughout the Word, “houses” denote human minds, in which there should be intelligence and wisdom.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본문의 ‘바로의 집’은 이걸 써서 지성이 오고, 그렇게 해서 또 지혜가 오는 기억-지식을 가리킵니다. In the passage before us, “the house of Pharaoh” denotes memory-knowledges by means of which comes intelligence, and thereby wisdom.

 

또 같은 내용이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도 상징되고 있습니다. The like is also signified by the house which Solomon built for the daughter of Pharaoh (1 Kings 7:8, etc.).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왕상7:8)

 

‘집’은 마음, 그 안에 지성과 지혜가 있고, 그 안에 의지에 속한 애정이 있는 마음을 가리키기 때문에, 말씀에 나오는 ‘집’이라는 단어는 폭넓은 상징을 갖는 단어입니다만, 특별히 어떤 때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그것이 서술하고 있는 그 대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Because “houses” denote minds, in which are intelligence and wisdom, and in which are affections belonging to the will, the word “house” in the Word is of a wide signification; but what its specific signification is, may be seen from the things of which it is predicated.

 

또 사람 자신을 일컬어 ‘집 한 채’ 또는 ‘어떤 집’이라고도 합니다. Man himself is also called “a house.”

 

 

1489.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Because of Sarai, Abram’s wife.

 

이 표현이 ‘천적인 것에 인접해 있었어야 할 진리 때문에’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내’와, 결과적으로 위 12절과 관련된, 천적인 것에 인접해 있을 진리로서의 ‘아내 사래’가 상징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because of the truth that was to be adjoined to what is celestial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wife,” and consequently of “Sarai the wife,” as being truth that is to be adjoined to the celestial, concerning which above, at verse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2절)

 

이 경우는 이런데요, 사람의 어린 시절, 쓰임새 수행의 결과 그를 이성적인(rational) 사람이 되게 한 지식의 경우, 파괴되어 지워지지 않는 한, 진리는 천적인 것과 결코 결합할 수 없습니다. The case is this: unless the knowledges which in childhood have performed the use of making the man rational are destroyed, so that they are as nothing, truth can never be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 여기서 말하는 ‘이성적인, 합리적인’이라는 말은 다분히 지식을 추구하는 동기가 불량한 사람, 즉 아는 건 많은데 이기적이고,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런 식으로 사용된 지식은 파괴되고, 지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걸 극복해야 다음 단계인 영적, 천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 첫 기억-지식들은 대개 땅에 속하고, 육체적이며, 세속적입니다. These first memory-knowledges are for the most part earthly, corporeal, and worldly.

 

어린아이가 배우는, 계명에 가까운 가르침들이 사실은 신성(Divine)일지라도, 어린아이는 여전히 이런 지식들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그런 것 말고 거기서 무슨 다른 아이디어를 얻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이들 가장 낮은 수준의 지식들이 이 아이 마음에 달라붙어 있고, 얘는 오직 거기서만 무슨 아이디어를 얻고 있는 한, 이 아이의 마음은 다음 단계로 고양될 수가 없습니다. However Divine may be the precepts that a child learns, he still has no other idea concerning them than that which is obtainable from such knowledges; and therefore, so long as those lowest knowledges cling to him, from which are his ideas, his mind cannot be elevated.

 

주님의 경우도 같았습니다. 주님도 여느 아이들처럼 태어나셨고, 여느 아이들처럼 교육받으셨기 때문입니다만 그러나 앞서 죽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은 신적 질서를 따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With the Lord it was the same, because he was born as are other men, and was to be instructed as are others, but according to Divine order, which is such as has been stated.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는 이런 이야기 안에 바로 신적 질서, 신성한 플랜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겉 사람이 어떻게 속 사람과 결합하고, 그래서 겉이 어떻게 신성이 되는지 하는 것입니다. In these things which are said concerning Abram in Egypt, there is described the Divine order—how in the Lord the external man was conjoined with the internal, so that the external also might become Divine.

 

※ 곧 유전 악을 지닌 인성을 입고 태어나신 주님이 어떻게 그 인성(Human)을 벗으시고 신적 인성(Divine Human)을 입으시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7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속뜻)

지식의 사명은 사람을 자연적, 지성적, 영적, 천적 순서를 거쳐 주님에게 이르게 함인데, 이 사명을 수행하지 않는 지식이 있어 파괴되고 지워졌다

 

※ 사람은 혹시 자신의 지식이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어 잘못된 길로 자기를 이끌고 있을 경우, 이걸 바로잡아야만 다음 단계인 영적, 천적 단계로 올라 주님께 이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잘못된 길’이란, 그 지식을 쓰면 쓸수록 주님하고는 멀어지는 걸 말합니다.

 

※ 이것이 인생에게 지식을 주시는 주님의 뜻이요, 목적이고 질서입니다. 사람은 지식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하며, 주님도 어린 시절, 이 과정을 밟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 정하신 신적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2021-10-17(D1)-주일예배(2214, AC.1486-1489, 창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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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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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눈 수술이 작은 수술이 아니었나 봅니다... ^^

 

보통은 백내장 같은 하나의 수술로 마치는데 저는 메인 수술은 유리체 수술이었고, 백내장 수술은 겸사, 하는 김에 하는 수술이었거든요. 보통 유리체 수술을 하면 거진 다 곧 백내장이 따라온다시며 같이 하기를 권하셨고... 또 백내장이 조금 진행되기도 하셨다셔서... 그래서인지 수술 18일차인 오늘까지도 눈이 좀 잔잔히 아프고, 빛에 노출되는 게 좀 힘들어 대체로 눈을 감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상이 좀 살짝 불편하기는 합니다... ^^

 

그래서인지 더욱 뭘 좀 보고픈 게 더 많아졌습니다. 말씀도, 아케이나 주석도, 그리고 이런저런 세상 뉴스, 특히 유튜브 미 대선소식 및 국내외 이런저런... 그러나 폰이든 컴퓨터든 뭘 조금만 봐도 금새 눈이 충혈되고 아픕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기보다는 귀로 듣는 편이 되어 가고 있어요.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쓰고 있네요. 아이고... ^^

 

그런 말들을 하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미 대선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참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제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도 보면, 그 넓은 신문지 그 많은 글자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아는 글자만 보여요 ^^

 

이런 비슷한 패턴이 천국 구성원들 가운데서도 나타납니다. 천국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요, 보통은 삼층천, 곧 주님의 신성에 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누구는 가장 내적인 삼층천, 누구는 중간인 이층천, 누구는 가장 외적인 일층천으로 가게 됩니다.

 

사람들의 내면은 세 단계로 구성되는데요, 어느 단계까지 열렸느냐에 따라 각각 해당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즉, 세 번째 단계까지 열린 사람은 삼층천으로, 두 번째 단계는 이층천, 첫 번째 단계만 열렸으면 일층천으로 갑니다. 어느 천국이든 자기 역량으로는 맞기 때문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가 되는 것입니다 ^^

 

만일 가장 외적 천국인 일층천 사람이 이층천 또는 삼층천에 들어가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나는데요, 하나는, 그곳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정작 이 사람 눈엔 아무도 안 보이며,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은 큰 고통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역량을 벗어나기 때문인데, 내적 시야 역시 일층천 시야를 가진 이 사람한테는 이층천 또는 삼층천 시야까지는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과 육, 육과 영으로, 또는 겉 사람 external man, 속 사람 internal man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옷처럼 입고 있는 이 몸을 벗고, 사후 영계에서 깨어나면 그 즉시 우리는 내적 시야, 내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영이며, 이 지상 생활과 관련된 모든 외적 기억들은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반면, 그 외적 기억들로 말미암은 내적 기억들과 함께 전혀 차원이 다른 놀라운 삶을 살게 됩니다.

 

육의 눈 관련,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내적 시야, 곧 속 사람의 일들과 사람이란 무엇인가, 영과 육의 커뮤니케이션 같은 주제를 주로 연구하고 깊이 살피게 되네요...

 

나중에 우리가 영원히 살러 갈 곳, 천국에 관해 부지런히 배워서 미리미리 잘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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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같은 지방회, 발 수술하신 어느 선교사님 근황에 단 답글입니다 ^^

 

네, 선교사님, 감사한 소식입니다.

 

저는 오늘 퇴원 2주 만에 처음 제대로 제 손으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았습니다. 병원에서 오늘부터는 안대 안 해도 되고, 세수 및 머리도 감으셔도 된다 하셔서요 ^^

 

두피가 거진 떡이 되다시피 하여... '나는 몸신이다'에서 알려준 대로 좀 제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할렐루야! 아유... 너무너무 개운합니다 ^^

 

선교사님도 2주 후 제대로 발 씻으실 때, 마찬가지로 참 개운하시겠지요. 아멘, 할렐루야!

 

겉 사람처럼 우리 속 사람도, 좀 제발 여러 날 매일 매일 청소와 소제를 제대로 안 하면 근질근질하고 악취가 나서 못 견디겠는, 그런 영성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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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웬만한 빛에도 우안(右眼)이 눈이 부시고, 찌릿찌릿 눈을 못 뜨겠어서 가급적 눈을 감고 지낼 때가 많고, 특히 스탠드 조명도 아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저녁에 또 그래서 눈 좀 가라앉혀야지 하고 누웠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아내의 기척으로 깼습니다. 밤 10시, 마지막 안약 넣을 시간이 된 겁니다.

 

한 방울 넣고 다시 5분을 기다리는 사이 아내가 크게 하품을 합니다. 최근 아이돌봄 일을 재개해서인지 무척 피곤해 하시는군요...

 

‘여보, 내가 주님이시라면, 내가 남편의 모습으로 당신 곁에 있는 주님이시라면... 당신은 하늘 상급이 클 거에요. 주님 눈에 이렇게 정성을 다해 안약을 넣어준 상급 말이에요...’

 

졸려 하던 아내가 빵 터지며, 크게 웃습니다. 저도 제가 말을 하고서도 왠지 좀 웃겨서 함께 소리 내어 웃습니다. 할렐루야!

 

지상은 천국과 상응(相應, correspondence)합니다. 지상의 무엇이든지 다 천국의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지상의 혈연관계는 천국의 무엇과 상응할까요? 주님은 지상 혈연을 통해 천국의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천국은 수많은 공동체, 소사이어티(society)로 이루어지는데요, 이 소사이어티들은 바로 주님의 선(善, good)의 종류이며,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무한에 가깝고 다양합니다.

 

같은 선을 가진 사람들은 비록 첫 만남이어도 동시에 서로 끌리며, 마치 오랜 고향 친구 만난 듯 친밀감을 느끼지만, 선이 다르면, 길가의 행인 만나는 느낌, 낯선 외국인 만나는 느낌이 납니다.

 

비록 지상에서는 한 가정, 한 패밀리로 지냈어도 이 선의 종류가 다르면, 천국에서는 서로 흩어집니다. 사후 천국에서도 같이 지내려면 이 선의 종류가 같거나 아주 유사해야 합니다.

 

지상에서 한 가정을 이루어 아이낳기가 있다면, 천국에서는 두 마음이 한 마음 됨을 통해 선들과 진리들의 생겨남이 있습니다. 지상 혈연관계는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후 서로 다른 공동체로 흩어질 거라면 왜 굳이 이렇게 가족으로, 혈연으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게 하신 걸까요?

 

각자 자기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을 주께 하듯 사랑하여 천국 생활에 꼭 필요한 사랑 근육을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나라입니다. 사랑 훈련을 해서 사랑 근육이 만들어진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가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깃든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 주님 신성에 대한 예의 바른 태도라 하였습니다.

 

비록 나를 힘들게 하고, 나와 참 안 맞는 사람, 가족, 형제, 친구, 이웃일지라도... 그를 주께 하듯 사랑하며, 내 할 도리만 다하면 나는 그 일로 말미암아 사랑의 근육이 생기고 상을 받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죄에 따라 어떻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딤전5:22)

 

가족은, 남편은, 자식은, 어머니는, 아버지는... 각각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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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후 일과 시간표입니다 ^^

 

4시 반, 기상

6시, 안약 3종, 5분 간격

6시 반, 새벽예배

7시, 식전 공복 약 복용

7시 반, 아침 식사

8시 15분, 식후 30분 약 복용

9시, 혈압약

10시, 안약 3종, 5분 간격

12시, 점심 식사

13시 15분, 식후 30분 약 복용

14시, 안약 3종, 5분 간격

18시, 안약 3종, 5분 간격, 저녁 식사

19시 15분, 식후 30분 약 복용

22시, 안약 3종, 5분 간격

22시 반, 취침 전 눈 연고

 

이외에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거의 약과 함께 하는 일과입니다

 

매시간 인위적 확인이 어려워 스마트폰 알람에 다양한 제목의 알람을 시간대별로 만들어 놓고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내 말이, 웬일로 이렇게 약 시간을 잘 지키시냐고, 병원 다녀오시더니 착한 어린이가 되셨다고! ㅋㅋ 네, 제가 생각해도 제 평생 이렇게 솔선하여 약 시간 지키고 있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3종 안약을 5분 간격으로 제 손으로 넣기가 좀 어려워 아내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예 천정을 보고 드러누워 눈을 최대한 뜨면 아내가 곁에 앉아 5분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고 있는데...

 

네 시간마다 찾아오는 이 시간이 저는 은근히 좋습니다. 5분마다 넣어야 하니 딱히 그새 뭘 할 수도 없어 그저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가령...

 

여보, 가만 내려다보니 나도 제법 잘 생겼지요?

 

여보, 이번 일로 정말 우리 두 사람, 종일 껌딱지처럼 딱 붙어 지내고 있는데... 이거이 참 괜찮지요?

 

우두커니 있지만 말고 여기 내 입술에 뽀뽀 좀 해봐요... ^^

 

등등

 

내 몸 건강할 땐 아내와 함께 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잘 몰랐는데, 이제 내 몸이 힘들어지니 반대로 아내의 소중함이 커지는 것이 마치...

 

육이 왕성할 땐 영이 휴면상태에 있게 되지만 반대로 육이 조용해지면 영이 깨어나는 것과 같음을 보게 됩니다

 

육이 아직 살아있을 땐 우리는 거진 영을 잘 못 느끼지요. 그러나 육을 벗고 저 세상에서 깨어날 때, 그때는 우리는 오직 영으로 깨어나며, 전혀 새로운 차원의 오감을 경험하게 되지요. 아멘, 할렐루야!

 

잠깐의 삶을 마친 후, 우리는 영원히 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리 영적 삶을 준비하는 것, 곧 영성을 추구하는 생활을 힘쓰셔야 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창12:1)

 

아브람은 주님을 가리키며, 이 말씀의 속뜻, 곧 아케이나는 인성을 입고 오신 주님이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바로 육체적이고 세상, 세속적인 일들로부터 물러나시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육체의 일, 세속의 일들로부터 물러나야 하겠습니다

 

사명, 곧 쓰임새의 삶에 필요한 만큼만 관여하시고, 행여 너무 몰두한 나머지 주님도, 천국도, 그리고 교회도 잊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꼭 일정 거리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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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1/20)

SNS/카톡 메시지 2021. 10. 16. 20:33

퇴원했습니다 ^^

 

퇴원수속 밟고 귀가, 옷 좀 갈아 입고, 식사 및 시간 되어 일련의 약들 복용 및 점안을 마치니 오후 3시, 살짝 노곤하니 잠이 쏟아집니다. 긴장이 풀리나 봅니다. 5인실 병실에서는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았고, 또 저의 경우, 내내 앉아서 자야 하여 보통 일이 아니었거든요. 어휴... ^^

 

갑자기 주변이 너무 고요, 적막하기까지 하니 이상합니다. 저희 아파트 거실이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군요! ^^

 

여전히 생각이 납니다. 옆 5번 병상 어젯 저녁 들어온 11세 남자 아이, 에고... 어린 나이에 양쪽 눈을! 마음이 많이 안스러웠습니다

 

1번 병상 아저씨, 수술실 들어가 국소 마취까지 끝냈는데 움직임 방지 가로걸쇠를 채우자 호흡곤란 시작, 급 수술 중지! 도로 나오셔서 향후 전신마취 여부 결정 후 재 수술하자 하여 그만 급 퇴원수속하신... 저는 수술 후, 그날 밤 마취 풀릴 때, 눈알이 빠질 정도로 너무나 아팠고, 또 속이 울렁거려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새벽까지 주님을 찾다가 잠깐 한 두어 시간 눈을 붙였거든요. 아이고...

 

3번 병상 아저씨는 망막박리수술을 받으셔서, 계속 엎드리거나 앉아서도 머리를 수그리고 계셔야 했습니다. 저 역시 망막 관련 수술이라 퇴원 후 주의사항이 거진 비슷하지만 저는 그래도 엎드려 지낼 필요는 없는 반면, 그 분은 계속 엎드려 지내야 하는... 어휴!

 

2번 병상 어르신, 어르신 역시 저처럼 계속 앉아서 주무셔야 하는... 거기다 귀가 좀 어두우셔서 간호사들께서 애를 먹으셨지요...

 

의사, 간호사 및 조무사, 보조 등 모든 다른 병원 식구들은 또 어떻게요?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고는 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 강도 높은 대인 관계 및 긴장감 넘치는 모든 선택의 순간들...

 

다른 사람을 돕고 보살피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의료적 훈련을 받았음을 살필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가... 나는 더욱 차원이 다른 영적 세계를 도우며, 목회자라 하면서 실상 저 정도, 그리고 저 이상의 고도의 훈련을 받고 있는지... 많은, 그리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 주님, 이번에 저는 이런 제 모습, 저의 내면의 어떠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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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며, 어떤 태도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까요?

 

첫째, 참된 봉쇄의 삶, 봉쇄 수도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 참된 봉쇄 수도의 삶은 자기를 영적으로 봉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이라는 울타리 밖을 절대로 나가지 않는 태도, 세상이, 세대가 점점 더 악해질수록 반대로 우리는 더욱 더 주님께 힘써 붙어 있으며,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 절대 나오지 않겠다 마음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참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웃 사랑의 아케이나는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 곧 그 사람 안에 깃든 주님의 신성에 대하여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https://youtu.be/7G4gzuQJs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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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끝날 역시 그 시작의 첫 시간을 이렇게 주님께 드릴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은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 하실 때, be 동사 단수 표현을 하셨습니다. ‘광명체들’은 분명 둘 이상 복수 표현인데 말이지요... 주님은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도록 허락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셔요. 이 둘은 오직 하나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광명체’가 처음 언급될 때 그들은 하나로 간주되었으며, 그래서 본문에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한 해 우리를 매일 돌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말씀으로 먹이신 주님께 무한 감사 드립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먹이시며 돌보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https://youtu.be/6SyhX5RnE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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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멍멍하고, 갈피를 못 잡겠는 한 가지가 있으니, 곧 30년 지기 친구 목사님의 갑작스런 사별입니다. 지난 달 아들 결혼식 때도 다녀가고, 또 통화도 몇 번 하고... 그런데 지난 17일(목)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저는 충주봉쇄수도원에 있었고, 하산 후에야 알았습니다. 코로나 검사 후, 19일, 전주 예수병원으로 내려가 천국환송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그의 흔적만 보입니다. 가까운 세종이 집인 그는 수시로 저를 찾아와 밥 같이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지금도 그의 전화가 올 것 같습니다... 그의 주변을 보면 모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 뿐입니다. 한 사람의 빈 자리가 이렇게나 클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이렇게 훌쩍, 마치 무슨 정말 나그네처럼 살다 간 목사님이십니다...

 

https://youtu.be/XecmgsFgl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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