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사람들, 곧 태고 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 사람들에게 처음 나타나신 주님은 사람(The Human)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태고인들은 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고, 감히 자신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 사람이십니다. 작품은 그 작가를 표현하듯, 그래서 주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 안에는 이 사람 형태가 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세계인 천국 역시 그래서 당연히 사람 형태이며, 각 천국을 구성하는 수많은 공동체들 역시 사람 형태이고, 각 공동체의 구성원인 천사들 역시 사람 형태입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천국과 상응하며, 그래서 당연히 지상의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천국과 상응합니다

사람의 심장은 천적 천국과, 사람의 폐는 영적 천국과... 하는 식으로, 사람의 모든 장기와 신체가 천국과 서로 상응합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이해는 천국에 대한 모든 아케이나(arcana, 秘義)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천국은 잠시 후면 우리 모두가 가서 영원히 살 곳입니다. 옆 나라 살러 갈 때도 사전 준비를 해야 하듯, 천국 역시 그렇습니다

앞으로 금요일 오후마다 천국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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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3

 

1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And Abram went up out of Egypt, he and his wife, and all that he had, and Lot with him, toward the south. 2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And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in silver, and in gold. 3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And he went according to his journeys from the south and even to Bethel, unto the place where his tent was at the first, between Bethel and Ai. 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Unto the place of the altar which he had made there in the beginning; and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5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And Lot also, who went with Abram, had flock and herd, and tents. 6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And the land was not able to bear them that they might dwell together, for their substance was great, so that they could not dwell together.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And there was strife between the herdmen of Abram’s cattle and the herdmen of Lot’s cattle; and the Canaanite and the Perizzite were then dwelling in the land.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And Abram said unto Lot, Let there be no contention, I pray, between me and thee, and between my herdmen and thy herdmen, for we are men brethren.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Is not the whole land before thee? Separate, I pray, from me; if to the left hand, then I will go to the right; or if to the right hand, then I will go to the left.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And Lot lifted up his eyes, and saw all the plain of Jordan, that it was all well watered, before Jehovah destroyed Sodom and Gomorrah, like the garden of Jehovah, like the land of Egypt in coming to Zoar.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And Lot chose him all the plain of Jordan; and Lot journeyed from the east; and they were separated, a man from his brother.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Abram dwelt in the land of Canaan, and Lot dwelt in the cities of the plain, and pitched his tent as far as Sodom. 13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And the men of Sodom were wicked and sinners against Jehovah exceedingly.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And Jehovah said unto Abram, after that Lot was separated from him, Lift up now thine eyes, and look from the place where thou art, northward, and southward, and eastward, and westward.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For all the land which thou seest, to thee will I give it, and to thy seed, forever.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And I will make thy seed as the dust of the earth; so that if anyone can number the dust of the earth, then shall thy seed also be numbered.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Arise, walk through the land, in the length of it and in the breadth of it; for unto thee will I give it.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And Abram pitched his tent, and came, and dwelt in the oak groves of Mamre, which are in Hebron, and built there an altar unto Jehovah.

 

내용

The Contents

 

1535. 이 장은 주님 안에 있는 겉 사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겉 사람은 그분의 속 사람과 합쳐질 예정이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of the external man in the Lord which was to be conjoined with his internal man.

 

겉 사람은 인성(人性, the human essence), 속 사람은 신성(神性, the Divine essence)입니다. The external man is the human essence, the internal is the Divine essence.

 

전자가 여기서 롯(Lot)으로, 후자는 아브람(Abram)으로 각각 표상(表象)되고 있습니다. The former is here represented by Lot, but the latter by Abram.

 

 

1536.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상태, 곧 어린 시절, 처음 지식[시엔티피카 에 코그니시오네스, scientifica et cognitiones, 학문과 지식]을 흠뻑 접하신 후, (1-4절) 속 사람과 함께 하시고자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심에 관한 설명입니다. There is here described the state of the external man such as it was in childhood, when first imbued with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that it thence advanced more and more to conjunction with the internal man (verses 1 to 4).

 

 

1537. (5-7절) 그러나 그의 겉 사람 안에는 결합을 지연시키는 것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8-9절) 주님은 이런 것들에게서 분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But that there were still many things in his external man that impeded the conjunction (verses 5 to 7); from which, however, he desired to be separated (verses 8, 9).

 

 

1538. (10-13절) 겉 사람이 주님에게 나타났습니다. 속 사람과 결합했을 때는 아름답게, 결합하지 못했을 때는 그땐 또 그렇게 말이죠. That the external man appeared to the Lord such as it is in its beauty when conjoined with the internal; and also such as it is when not conjoined (verses 10 to 13).

 

 

1539. (14-17절) 겉 사람이 속 사람과 결합했을 때, 즉 주님의 인성이 주님의 신성과 결합했을 때, 모든 힘과 권세[포테스타스 potestas]가 주님에게 주어지리라는 약속 A promise that when the external man was conjoined with the internal, that is, when the Lord’s human essence was conjoined with his Divine essence, all power and authority [potestas] should be given to him (verses 14 to 17).

 

(18절) 주님의 내적 퍼셉션에 관하여 Concerning the Lord’s interior perception (verse 18).

 

속뜻

The Internal Sense

 

1540.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앞장인 12장 말씀부터는 실제 역사의 시작,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The true historicals of the Word began, as before said, with the foregoing chapter—the twelfth.

 

그 시점까지, 그러니까 에벨까지는 꾸민 역사, 스토리 텔링입니다. Up to that point, or rather to Eber, they were made-up historicals.

 

※ 지금까지 밝혀진 지질학적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 전후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시작, 곧 이 행성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아브라함 전까지 일어난 일을 모두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역사책일 필요가 있나요? 이런 몇 가지 이유로, 이 긴 역사를 짧게 스토리 텔링 식으로 요약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속뜻으로는, 여기 계속되는 아브람 관련 실제 기록은 사실은, 주님, 특히 주님의 일생 중 처음 시절을 의미하는데, 이때는 주님이 아직 겉 사람이 속 사람과 하나로 결합하시기 전, 그러니까 겉 사람이 천적(celestial), 신적(Divine)이 되는 것과 비슷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 기록입니다. In the internal sense, the historicals here continued respecting Abram are significative of the Lord, and in fact of his first life, such as it was before his external man had been conjoined with the internal so as to make one thing; that is, before his external man had been in like manner made celestial and Divine.

 

이 실제 기록들은 주님에 관한 표현입니다. 기록들 자체는 표현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미입니다. The historicals are what represent the Lord; the words themselves are significative of the things that are represented.

 

그러나 실제 기록이기 때문에, 마치 무슨 과거 일지를 읽는 것 같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마음이 속뜻을 생각할 수 없으며, 오늘날은 특히나 더 사람들 대부분이,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거기에 속뜻이, 심지어 모든 단어에도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명백히 보여드린 대로, 속뜻이 있다는 것은 사실임에도 불구,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를 인정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속뜻이 글자의 뜻으로부터 너무 물러가 거의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며, But being historical, the mind of the reader cannot but be held in them; especially at this day, when most persons, and indeed nearly all, do not believe that there is an internal sense, and still less that it exists in every word; and it may be that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internal sense has been so plainly shown thus far, they will not even now acknowledge its existence, and this for the reason that the internal sense appears to recede so far from the sense of the letter as to be scarcely recognized in it.

 

※ 이것은 마치 길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그 안의 영은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겉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리기 때문인데, 이처럼 성경 말씀도 그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고 재미있어 그만 그 겉모습에 푹 빠져들고 말지, 예를 들어, 요셉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속에 속뜻도 함께 읽기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겉 이야기는 말씀의 몸, 속뜻은 말씀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 실제 기록들이 그들에게 말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은 그저 다음과 같은 사실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성경 구절이 속뜻으로부터 분리되면 거기엔 더 이상 무슨 신성이 들어 있지 않아 여느 실제 있었던 일과 다를 바 없는 단순한 일지 수준의 기록물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 말입니다. 성경 구절을 성언(聖言)으로 만드는 것은 속뜻, 내적 의미(internal sense)이기 때문입니다. And yet that these historicals cannot be the Word they might know from the mere fact that when separated from the internal sense there is no more of the Divine in them than in any other history; whereas the internal sense makes the Word to be Divine.

 

[2] 속뜻이 말씀 그 자체라는 사실은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마2:15)와 같은, 지금까지 밝혀진 많은 구절들로부터 분명합니다. 이 말고도 다른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That the internal sense is the Word itself is evident from many things that have been revealed, as “out of Egypt have I called my son” (Matt. 2:15); besides many others.

 

또 주님 자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자기에 관하여 어떻게 기록하였는지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걸 볼 때, 말씀에 기록된 내용이 주님과 주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에 관한 게 아니면 말씀이라 할 수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The Lord himself also, after his resurrection, taught the disciples what had been written concerning him in Moses and the prophets (Luke 24:27); and thus that there is nothing written in the Word that does not regard him, his kingdom, and the church.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27)

 

말씀에는 영적, 천적인 것들이 있습니다만 글자의 뜻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대부분 세속적, 육체적, 그리고 땅에 속한 것들이어서 절대로 주님의 말씀을 만들 수 없습니다. These are th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of the Word; but the things contained in the literal sense are for the most part worldly, corporeal, and earthly; which cannot possibly make the Word of the Lord.

 

이 시대 사람들은 그런 것 밖에 무슨 다른 걸 지각하지 못하며, 그래서 영적, 천적인 것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거의 금시초문, 듣도 보도 못 한 것들입니다. At this day men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y perceive nothing but such things; and what spiritual and heavenly things are, they scarcely know.

 

하지만 반면, 태고 교회와 고대 교회 사람들의 경우, 그들도 그 시대에 살면서 말씀을 읽었지만 오히려 겉 글자의 뜻에 대해서는 전혀, 마치 허공을, 무(無)를 쳐다보듯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반면, 속뜻에 대해서는 정반대였습니다. It was otherwise with the men of the most ancient and of the ancient church, who, had they lived at this day, and had read the Word, would not have attended at all to the sense of the letter, which they would look upon as nothing, but to the internal sense.

 

그들은 누군가는 말씀을 다른 식으로 지각한다는 사실에 까무러칠 듯 놀랍니다. They wonder greatly that anyone perceives the Word in any other way.

 

그래서 고대인들의 책들은 모두 그 속뜻 안에 겉 글자의 뜻과는 다른 의미를 갖도록 기록되었습니다. All the books of the ancients were therefore so written as to have in their interior sense a different meaning from that in the letter.

2021-10-29(D6)-매일예배(2223, AC.1535-1540, 창13), '창13, 내용, 속뜻'.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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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QYnGWzsg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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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1장부터 11장까지는, 정확히는 에벨까지는 상응(相應, correspondence), 곧 이야기로, 12장부터는 실제 역사, 곧 실제 있었던 일로 기록된 말씀(The Word)입니다

 

어떤 글이나 말이 말씀이 되려면 그 모든 일점일획에 세 가지, 곧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한 아케이나(arcana, 秘義, 속뜻, internal meaning)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모두 주님을 표상하며, 개별적으로는, 아브라함은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 인간을, 이삭은 영적 인간을, 그리고 야곱은 자연적 인간을 각각 표상합니다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란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무대를 내려가 실제 사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무대 위에서는 자기가 맡은 어떤 인물을 대신 표현하는 배우들처럼 말입니다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을, 사래는 선과 함께한 진리를, 롯은 주님의 겉 사람을... 등등 모든 인물은 어떤 형태로는 주님을 표상하기 때문에, 말씀에 등장하며, 말씀에 기록된 것입니다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 문장과 단어, 글자는 말씀으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엔, 그저 이야기일 뿐이어서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접하게 된 아케이나는

 

주님의 어린 시절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주님 역시 여느 어린이들과 같은 배움을 시작하셨지만, 주님은 처음부터 천적인 것을 목표로 정주행, 한눈팔지 않으셨습니다

 

지식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그 순서는 주님-천적-영적-지성적-이성적-자연적입니다. 이 순서를 주님의 질서(Divine order)라 합니다

 

위 질서에 따라 모든 지식은 그 방향이 최종적으로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곧 그 지식 추구를 통해 주님께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 모든 단계의 쓰임새입니다

 

이 쓰임새를 벗어난 지식 추구는 마치 쭉정이와 같아 때가 되면 불에 던져 사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신 주님 말씀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다음 장인 창세기 13장은 롯과 아브람, 곧 주님의 겉 사람과 속 사람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빛 비춰주셔서 말씀 깊이 보관된 이 아케이나를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 내면을 열어주셔서 담을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https://youtu.be/zeIBSeGl-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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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98. 20절,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Verse 20.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and his wife, and all that he had.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음을, ‘그의 아내와’,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로부터도 떠났음을, ‘그의 모든 소유를’,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도 떠났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and his wife” signifies that they also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and all that he had”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 창12부터는 실제 역사요, 이후 끝장인 50장까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이지만 이들 모두 한 분 주님을 표상하며, 특히 아브라함은 천적 인간, 이삭은 영적 인간, 그리고 야곱은 자연적 인간을 각각 표상합니다.

 

특히, 창12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 상태를 표상합니다. 표상이란,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무대 위 배우들처럼, 실제 모습이 어떠하든 무대 위에서는 주어진 배역에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499.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이 표현이,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의미인 것은, 기억-지식들이라는 ‘바로’의 의미와, 또한 지성적인 것들이라는 ‘사람들’의 의미로부터 분명합니다. (앞서 보여드린 158번 글처럼) That this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Pharaoh,” as being memory-knowledge; and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men,” as being intellectual things (as before shown, n. 158).

 

여기 ‘사람들’은 바로(Pharaoh) 혹은 기억-지식의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되는 지성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The men” here, because attributed to Pharaoh, or to memory-knowledge, signify intellectual things adapted thereto.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것은 이런 얘깁니다. As regards memory-knowledges leaving the Lord, the case is this.

 

천적인 것들과 지성적인 진리들 사이에 결합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래서 후자가 천적이 되어갈 때, 비어 있는 모든 것, 즉 결합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은 스스로 소멸됩니다. 천적인 것의 본성에는 이런 특성도 있습니다. When celestial things are being conjoined with intellectual truths, and these are becoming celestial, then all things that are empty are dissipated of themselves; this is in the nature of the celestial.

 

※ 지성적인 진리들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가 들어 있어야 천적인 것들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천적인 것은 사랑과 체어리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지성적인 진리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보니 겉만 그런 건 알아서 사라지게 됩니다.

 

 

1500. 그의 아내와 And his wife.

 

이것이, 그들이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을 떠났음에 대한, 즉 기억-지식들이 그들을 떠났음에 대한 의미라는 것은, ‘아내’의 의미가 천적인 것과 결합한 진리인 것과(위에서 언급한), 방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that is to say,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m,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ife” as being truth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spoken of above), and also from what has just been said.

 

속이 텅빈 기억-지식들이 천적인 것들을 떠나가는 것은 마치 무익한 것들이 늘 지혜를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마치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굳은살과 피부 딱지들 같습니다. Empty memory-knowledges leave celestial things, as vain things are wont to leave wisdom; they are as crusts and scales that separate themselves of their own accord.

 

 

1501. 그의 모든 소유를 And all that he had.

 

이것의 의미가 그들이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떠났다라는 것임이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follows in the series.

 

 

1502. 이 모든 것으로부터 이제 분명한 건, 아브람의 애굽 체류는 주님, 실제로는 주님 어린 시절 배움 말고 다른 걸 표현하거나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From all this it is now evident that Abram’s sojourn in Egypt represents and signifies nothing else than the Lord, and in fact his instruction in childhood.

 

이것은 또한 호세아 및 마태복음의 말씀으로도 확인이 되는데요, This is also confirmed by what is said in Hosea: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호11:1)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2:15) Out of Egypt have I called my son; (Hos. 11:1; Matt. 2:15)

 

또 출애굽기 말씀에서도 and again from what is said in Moses:

 

40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41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12:40-41) The dwelling of the sons of Israel who dwelt in Egypt was thirty years and four hundred years;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he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it came to pass on the selfsame day, that all the armies of Jehovah went out from the land of Egypt; (Exod. 12:40–41)

 

위 사백삼십 년이라는 햇수는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부터가 아닌, 아브람의 애굽 체류 때부터 센 기간입니다. which years were not reckoned from Jacob’s going down into Egypt, but from the sojourning of Abram in Egypt, counting from which the years were four hundred and thirty.

 

그래서 ‘애굽에서 불러낸 아들’(호11:1)은 그 속뜻으로는 주님을 의미합니다. Thus by the “son out of Egypt” (in Hosea 11:1) in the internal sense is signified the Lord.

 

이것은 말씀에서는 ‘애굽’의 의미가 기억-지식이라는 사실(AC.1164-1165, 1462에서 보여드린 대로)로 더욱 확실해집니다. This is further confirmed by the fact that in the Word “Egypt” signifies memory-knowledge (as shown, n. 1164–1165, 1462).

 

[2] 이런 아케이나가 들어 있음은, 아브람의 경우, 이번엔 블레셋 체류 때 또 아내를 누이라 한 사례(창20:1-18)와, 이삭의 경우도 그가 블레셋에 체류할 동안 그 역시 아내를 누이라 한 사례(창26:6-13)들로부터도 분명합니다. And that these arcana are contained is also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same is said of Abram during his sojourn in Philistia, namely, that he called his wife his sister (Gen. 20:1–18); and similar things are said of Isaac when he also was sojourning in Philistia, in that he too called his wife his sister (Gen. 26:6–13).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아비멜렉이 그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4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창20:1-18)

 

6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26:6-13)

 

이런 일들은 그 안에 아케이나가 들어 있지 않았으면 말씀과 관련되는 대신 거의 유사 상황들로 정리되었을 겁니다. These things would not have been related in the Word, and with almost the same circumstances, unless these arcana had been concealed within them.

 

게다가 이건 주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그 안에 주님에 관한 어떤 내적 의미, 속뜻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어떤 생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Moreover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which can in no wise have any life, unless there is an internal sense that has regard to him.

 

[3] 이런 일들 안에 보관되어 있는 아케이나는, 블레셋 체류 시절, 아브람과 이삭에 관한 내용에도 있는 것처럼, 주님의 인성이 신성과 어떻게 결합하였는지, 또는 같은 말이지만, 주님이 어떻게 인성에 대하여까지도 여호와가 되셨는지, 그리고 이런 일이 주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등의 내용입니다. The arcana which lie stored up in these things, as also in those said concerning Abram and Isaac in Philistia, are—how the Lord’s human essence was conjoined with his Divine essence, or what is the same, how the Lord became Jehovah as to his human essence also; and that his inauguration went on from childhood, which inauguration is here treated of.

 

여기에 더해 더 엄청난 것들, 곧 사람의 믿음조차 초월하는 심오한 아케이나가 들어 있는데, 그 내용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서 아예 아무 내용도 없다 할 정도입니다. Moreover these things also involve more arcana than man can ever believe; but those which can be told are so few as to be almost nothing.

 

주님에 관한 가장 심오한 아케이나 외에도 거기엔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으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여 천적 인간이 될 수 있게 하는 아케이나도, 또한 마찬가지로 사람을 가르치고 거듭나게 하여 이번에는 영적 인간이 될 수 있게 하는 아케이나도, 그리고 보통은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를 가르치는 것도 포함됩니다. Besides the most profound arcana concerning the Lord, they also involve arcana concerning the instruction and regeneration of man, that he may become celestial; as also concerning his instruction and regeneration, that he may become spiritual; and not only concerning the instruction of the individual man, but also concerning that of the church in general.

 

그리고 더 나아가 거기에는 천국에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커리큘럼 아케이나 등 한 마디로, 주님의 이미지와 형상을 닮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 관한 커리큘럼 아케이나가 포함됩니다. And, further, they involve arcana concerning the instruction of little children in heaven; in a word, concerning the instruction of all who become images and likenesses of the Lord.

 

이런 것들은 겉뜻, 글자 상으로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역사 서술이 이런 아케이나를 베일로 가려 흐릿하게, 모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케이나는 오직 속뜻, 내적 의미로만 나타납니다. These things do not at all appear in the sense of the letter, for the reason that the historical narrative veils them over and obscures them; but they appear in the internal sense.

 

 

※ 이상으로, 오늘 본문 20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속뜻)

주님이 질서를 따라 어린 시절에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시려 하자 그동안 함께 했던 세상 지식들이 주님도, 주님과 함께 해야 하는 진리도, 그리고 천국과 관련된 모든 것도 다 떠났다

 

※ 즉, 얼핏 보기에는 유익할 것 같았던 세상 기억-지식들이 그러나 주제가 영적으로 옮겨지면 본색이 드러나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6:24 참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2021-10-27(D4)-매일예배(2221, AC.1498-1502, 창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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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eIBSeGl-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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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98. 20절,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Verse 20.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and his wife, and all that he had.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음을, ‘그의 아내와’,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로부터도 떠났음을, ‘그의 모든 소유를’,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도 떠났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and his wife” signifies that they also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and all that he had”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1499.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이 표현이,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의미인 것은, 기억-지식들이라는 ‘바로’의 의미와, 또한 지성적인 것들이라는 ‘사람들’의 의미로부터 분명합니다. (앞서 보여드린 158번 글처럼) That this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Pharaoh,” as being memory-knowledge; and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men,” as being intellectual things (as before shown, n. 158).

 

여기 ‘사람들’은 바로(Pharaoh) 혹은 기억-지식의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되는 지성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The men” here, because attributed to Pharaoh, or to memory-knowledge, signify intellectual things adapted thereto.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것은 이런 얘깁니다. As regards memory-knowledges leaving the Lord, the case is this.

 

천적인 것들과 지성적인 진리들 사이에 결합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래서 후자가 천적이 되어갈 때, 비어 있는 모든 것, 즉 결합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은 스스로 소멸됩니다. 천적인 것의 본성에는 이런 특성도 있습니다. When celestial things are being conjoined with intellectual truths, and these are becoming celestial, then all things that are empty are dissipated of themselves; this is in the nature of the celestial.

 

※ 지성적인 진리들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가 들어 있어야 천적인 것들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천적인 것은 사랑과 체어리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지성적인 진리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보니 겉만 그런 건 알아서 사라지게 됩니다.

 

 

1500. 그의 아내와 And his wife.

 

이것이, 그들이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을 떠났음에 대한, 즉 기억-지식들이 그들을 떠났음에 대한 의미라는 것은, ‘아내’의 의미가 천적인 것과 결합한 진리인 것과(위에서 언급한), 방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that is to say,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m,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ife” as being truth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spoken of above), and also from what has just been said.

 

속이 텅빈 기억-지식들이 천적인 것들을 떠나가는 것은 마치 무익한 것들이 늘 지혜를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마치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굳은살과 피부 딱지들 같습니다. Empty memory-knowledges leave celestial things, as vain things are wont to leave wisdom; they are as crusts and scales that separate themselves of their own accord.

 

 

1501. 그의 모든 소유를 And all that he had.

 

이것의 의미가 그들이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떠났다라는 것임이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follows in the series.

 

2021-10-26(D3)-매일예배(2220, AC.1498-1501, 창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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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XiMxqGt0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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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 고유의 유전 악 때문에, 부른 적이 없는데도 알아서 찾아온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거듭거듭 말씀드렸습니다

 

귀신 등 심령 괴기, 혹은 음란, 혹은 살인과 폭력 등, 내 취향에 맞는 성향에 따라 코드가 맞는 영들이 찾아와 우리 안에 둥지를 트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안에 깃든 악한 영을 여러 해 전, 주님의 허락으로 본 적이 있는데, 이에 관한 약간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사람의 경우, 죽는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래서 사실 주님 또한 우리 평생 우리를 대신하여 이들과 싸우시느라 쉬지를 못하십니다

 

우리의 거듭남이 완성단계에 들어가면 그때는 악한 영들이 무슨 짓을 해도 더 이상 우리는 속지 않으며, 주님 사랑하는 마음의 중심이 요동치 않게 됩니다

 

이때 악한 영들은 비로소 우리를 포기, 우리에게서 물러납니다. 즉, ‘아, 이 사람은 도저히 지옥으로 끌고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포기하자...’ 하는 것이지요

 

한쪽이 항복을 선언하고 떠났으므로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어 대신 쉼과 안식의 상태가 시작됩니다. 이 상태를 창세기 1장과 2장 처음에서,

 

창조 여섯째 날 및 일곱째 날, 안식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그 속뜻으로는 한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여섯 단계와 상태로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 대신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그래서 쉼과 안식에 들어가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안식의 참된 의미이며, 그래서 안식일의 주인이 주님이신 겁니다

 

거듭남의 전 과정은 보통은 평생에 걸친 지난(至難)한 과정이며, 우리 각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한, 주님과 천사들의 결코 쉼 없으신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모든 악과 거짓 앞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정말정말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신성(神性)의 나라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가 하나로 융합된 상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성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히 이 그릇의 크기를 키우며, 또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될 천국은 이 그릇의 크기만큼만, 그릇에 담긴 신성의 량만큼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늘 우리를 주님의 신성의 빛으로 환히 비추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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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오른눈 시야가 환해졌습니다. 할렐루야! 이젠 글씨를 또렷이 읽을 수 있으며, 심지어 바닥 머리카락도 볼 수 있습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치 오른 눈앞에 티슈 한 장 덧대고 사물을 보는 것 같이 뿌옜는데 말이죠...

 

혹시 몰라 며칠 더 지켜보고 나서 ‘아, 확실히 돌아왔구나!’ 싶어 오늘 이 소식, 함께 나눕니다 ^^

 

그간 여러모로 함께하시며, 절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이젠 정말 이 눈을 아껴 쓸 생각입니다. 허튼 거 보느라 낭비하지 않고 말이죠.

 

제 안 천사들도 저의 이 육안 통해 보며, 그리고 주님 역시 천사들 통해 제가 보는 걸 함께 보시는데... 이젠 정말 천사는 물론, 주님 민망해하실 그런 거에서 일체 물러나고자 합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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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장

그래서 각 천사도 완벽한 사람 형태입니다

Therefore Every Angel Is in a Complete Human Form

 

 

75. 현재 수년간의 제 모든 경험상, 제가 아주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사실은, 천사들은 외관상 완전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얼굴, 눈, 귀, 몸, 손과 발을 가졌으며, 들을 줄도, 볼 줄도 알고, 서로 대화도 나누는 등, 사람과 달리 육체적 몸만 입지 않았을 뿐 한 마디로 외관상 사람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From all my experience, which is now of many years, I am able to say and affirm that angels are wholly men in form, having faces, eyes, ears, bodies, arms, hands, and feet; that they see and hear one another, and talk together, and in a word lack nothing whatever that belongs to men except that they are not clothed in material bodies.

 

저는 그동안 그들을 그들 고유의 빛으로 보아왔습니다. 그 빛은 지상 정오의 빛보다 몇 배나 더 밝은 빛이어서 그 빛으로 보면 그들의 모든 특징이 지상에서 보는 사람 얼굴을 볼 때보다 훨씬 더 또렷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I have seen them in their own light, which exceeds by many degrees the noonday light of the world, and in that light all their features could be seen more distinctly and clearly than the faces of men are seen on the earth.

 

저는 또 허락을 받아 가장 내적 천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It has also been granted me to see an angel of the inmost heaven.

 

그의 얼굴은 더 낮은 천국 천사들보다 훨씬 더 밝고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He had a more radiant and resplendent face than the angels of the lower heavens.

 

저는 그를 깊이 살폈는데 그의 모습은 정말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I observed him attentively, and he had a human form in all completeness.

 

 

76.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람은 절대 육안으로는 천사를 볼 수 없고, 오직 그의 안에 있는 영안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주70) 그 이유는, 그의 영은 영계에, 그 몸에 속한 모든 것은 자연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But it must be remembered that a man cannot see angels with his bodily eyes, but only with the eyes of the spirit within him,(주70) because his spirit is in the spiritual world, and all things of the body are in the natural world.

 

육은 육, 영은 영, 서로 같은 쪽의 것만 볼 수 있습니다. Like sees like from being like.

 

※ 그러므로 무슨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 다양한 컨텐츠를 보면 귀신이 나오고, 등장인물들이 귀신을 보고, 또 귀신이 산 사람을 해코지하고 그러는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두 세계 사이 무질서한 오고 감을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걸 자발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인해, 그 사람 안에 있던 악한 영들이 깨어나서, ‘어? 저건 뭐지? 나는 저런 걸 볼 시도조차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런 장면이 내 눈에 보이는 거지? 그럼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디인 거야? 지금까지 내 건 줄 알고 즐기던 이 모든 악한 기억들이 내 것이 아니었던 거야? 오... 그렇단 말이지? 음, 그렇다면... ^^’ 하고는 자기가 와있는 사람의 영을 작정하고 파괴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악한 영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을 파괴하여 그 영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절대, 절대 이런 컨텐츠를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주의하여 그만 자기 안에 와있는 악령들을 깨운 상태가 되었고, 그래서 인터넷과 미디어 기술이 급 발전 중인 이 세상이 점점 초고속으로 지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만일, 주님 신앙 가운데 있으면서 그만 부주의하여 이런 컨첸츠를 가까이하였다면, 이후 회개 및 단단한 결심과 더불어 이런 컨텐츠에 대한 끌림에 저항하고, 손을 떼고 제대로 물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주님 편에 서며, 주님이 대신 내 안의 악과 싸워주시기를 요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약속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악을 직접 상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우리 대신 싸워주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게다가 눈 같은 시각 관련 신체 기관은 너무 조야(粗野)해서 다들 아시는 대로, 확대경 없이는 자연의 아주 작은 것조차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계를 초월하는 것, 곧, 영계에 속한 모든 걸 본다는 건 아예 불가능하지요. Moreover, as the bodily organ of sight, which is the eye, is too gross, as everyone knows, to see even the smaller things of nature except through magnifying glasses, still less can it see what is above the sphere of nature, as all things in the spiritual world are.

 

그럼에도 불구, 이런 것을 사람은 그가 육안 대신 영안이 열리면 볼 수 있게 되는데요, 이런 일은 주님이 원하셔서 사람이 이런 거 보는 걸 기뻐하시면 언제든지 즉시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사람은 자기 육안으로 보는 줄로만 압니다. Nevertheless these things can be seen by man when he has been withdrawn from the sight of the body, and the sight of his spirit has been opened; and this can be effected instantly whenever it is the pleasure of the Lord that man should see these things; and in that case man does not know but what he is seeing them with his bodily eyes.

 

아브라함, 롯, 마노아 및 선지자들이 그렇게 천사를 보았고요, 주님 역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도 그렇게 본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이런 식으로 천사를 보았습니다. Thus were angels seen by Abraham, Lot, Manoah, and the prophets; and thus, too, the Lord was seen by the disciples after the resurrection; and in the same way angels have been seen by me.

 

선지자들이 이런 식으로 보았기에 그들을 일컬어 ‘보는 자’(seers)라 하였고, ‘선견자’(삼상9:9; 민24:3)라고도 하였으며, 우리가 읽었던 내용 중, 엘리사의 종의 경우처럼, 그들로 하여금 그런 식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그들의 눈을 여신다’고 하였습니다. Because the prophets saw in this way they were called “seers,” and were said “to have their eyes opened” (1 Sam. 9:9; Num. 24:3); and enabling them to see thus was called “opening their eyes,” as with Elisha’s servant, of whom we read: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삼상9:9)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민24:3)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6:17) Elisha prayed and said, Jehovah, I pray Thee open his eyes that he may see; and Jehovah opened the eyes of the young man and he saw, and behold the mountain was full of horses and chariots of fire round about Elisha. (2 Kings 6:17)

 

 

77. 저와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선한 영들은 천국과 영 및 천사의 실상에 관한 교회 안 이런 무지로 인해 깊은 슬픔에 사로잡힌 나머지 아주 마음이 상해 제게 당부하기를 자기들은 무슨 형태 없는 것도, 공기 중 무슨 에테르 같은 것도 아닌, 바로 사람 형상 그대로이며, 그들이 세상 살 때와 똑같이 보고, 듣고, 느끼는 존재들임을(주71) 제발 좀 분명히 선포해달라 부탁했습니다. Good spirits, with whom I have spoken about this matter, have been deeply grieved at such ignorance in the church about the condition of heaven and of spirits and angels; and in their displeasure they charged me to declare positively that they are not formless minds nor ethereal breaths, but are men in very form, and see, hear, and feel equally with those who are in this world.(주71)

 

 

※ 각주

 

70. 사람은 그 내면으로는 영입니다. In respect to his interiors man is a spirit (n. 1594). 그리고 영은 그 사람 자신이고, 몸은 영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And that spirit is the man himself, and it is from that spirit that the body lives (n. 447, 4622, 6054).

 

71. 각 천사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적 질서를 담는 그릇이므로, 그는 자기에게 담긴 질서에 비례하여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람 형태입니다. Inasmuch as each angel is a recipient of Divine order from the Lord, he is in a human form, perfect and beautiful in the measure of his reception (n. 322, 1880, 1881, 3633, 3804, 4622, 4735, 4797, 4985, 5199, 5530, 6054, 9879, 10177, 10594). 질서가 존재하는 것은 신적 진리에 의해서이며, 신적 선이 그 질서의 본질입니다. It is by means of Divine truth that order exists; and Divine good is the essential of order (n. 2451, 3166, 4390, 4409, 5232, 7256, 10122, 10555).

 

※ 아래는 어제 매일예배 본문 중 ‘질서’에 대한 부분 있어 옮겨 옵니다.

 

1495. [2]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아실 수 있도록, 질서(order)라는 것에 관해 뭔가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That it may be known how these things stand, something shall be said respecting order.

 

질서란, 천적인 것이 영적인 것 안으로 흘러들어 그것을 그 자체에 맞추는 것이며, 그렇게 이번에는 영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 안으로, 이성적인 것은 기억-지식 안으로 흘러들어 각각 그 자체에 맞추는 것입니다. The order is for the celestial to inflow into the spiritual and adapt it to itself; for the spiritual thus to inflow into the rational and adapt it to itself; and for the rational thus to inflow into the memory-knowledge and adapt it to itself.

 

※ ‘그것을 그 자체에 맞추다’, 즉, ‘영적인 것으로 하여금 그 본래의 목적에 맞추게 하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것 안으로 천적인 것이 흘러들어갈 때 일어나는 변화를 말하는 것으로, 영적인 것 본래의 목적, 곧, 영적인 것의 순기능인 주님께 나아가는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감당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영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 안으로, 이성적인 것이 기억-지식 안으로 흘러들어 갈 때 저마다 그 본래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게 되어 올바른 쓰임새들이 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질서’의 의미인 것입니다.

 

HH.1.10.75-77.'10장, Therefore Every Angel Is in a Complete Human Form'.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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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I4ukpHU7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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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8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letter sense)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속뜻, internal sense)

주님은 이제 세상 학문과 헤어지실 때가 되어 깊이 생각에 잠기셨고 많이 슬퍼하셨다. 주님의 천적 진리를 향한 여정에 더 이상 세상 지식은 함께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씀의 육인 본문과 말씀의 영인 속뜻 사이엔 실제 우리 영육 간 간격만큼이나 생소한 큰 어리둥절함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마치 탈북민들이 강 하나 건너 5, 60년을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완전 별천지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과 같은 차이...

 

어차피 나중 언젠가 통일되어 그때 형편 나아지면 되지 굳이 목숨 걸고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게...

 

마치 어차피 나중에 죽어 사후 천국 올라가 알고 누리게 될 걸 굳이 생전에 말씀을 영으로 읽겠다고 저 애 쓸 필요 있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핏 그런가 싶지만 그러나... 이 차이는 실로 크며, 그 결과는 그랜드 캐년의 벌어짐보다도 더 큽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7-8)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13:44-46)

 

비록 아직은 몸 안에 있어 말씀을 영으로 읽는 게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러나 참으로 신실하신 주님은 위 약속의 말씀들대로 결국엔 깨닫게 하시며, 마침내 얻게 하십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https://youtu.be/we7MTCObb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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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낭비하는 동안, 그의 안에 있던 악한 영들은 무척 즐거웠을 겁니다.

 

각 사람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은 오직 그 사람을 미혹, 유혹, 파괴하여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데에서만 즐거움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드디어 궁핍, 그 나라 사람에게 붙어 그가 시킨 돼지 치는 일을 하면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자 하나 주는 자가 없자 비로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리고는 이런 결심을 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눅15:11-32)

 

이때 그전까지 무척 즐거워하던 악한 영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립니다.

 

‘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지 마, 돌이키지 마...’

 

대신 그를 돕던 선한 영들과 천사들은 너무너무 행복해합니다. 악한 영들과 달리 각 사람 안 천사들은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걸 가장 행복해하기 때문이지요.

 

둘째 아들의 회심, 곧 그가 예전에 알던, 그리고 허랑방탕 추구하던 일체의 것들에서 손을 떼고 돌이키는 것, 그 허망의 정체를 깨닫고, 이젠 하늘에 속한 것, 영원에 속한 것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발을 떼는 것!

 

이것은 악한 영들을 좌절케 하며, 자아와 세상 및 세상 지식들을 좌절케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큰 재앙’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란 이런 것입니다. 그저 전엔 안 다니던 교회를 이젠 다니는 그 정도가 아니라 관점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까지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이성, 지성까지 회심하는 것, 그것이 참된 회심,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금덩어리가 전과 달리 이제는 희미하게 보이는 반면, 그러나 그 거룩한 쓰임새가 점점 생생하고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우리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땅에서 하늘로, 짐승에서 사람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행복한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https://youtu.be/Y6bBrcimT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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