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71.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Verse 12.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 기억-지식들이 천적 지식들을 볼 때, 그 모습이 어떨 것인가에 대한 묘사입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 Egyptians shall see thee” signifie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which is described as to what it is when they see celestial knowledges;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그 기억-지식들이 이르기를, 저 지식들은 천적이다 하리라는 뜻입니다. that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signifies that they will call the knowledges celestial;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그들, 그 기억-지식들은 천적인 것들엔 관심이 없고, 대신 오직 단순한 지식들, 그들이 얻었으면 하는 지식들에만 관심을 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and they will kill me, and will make thee to live,” signifies that they would not care for the celestial things, but only for the mere knowledges, which they would carry off.

 

2021-09-30(D5)-매일예배(2202, AC.1471, 창12,12), '창12,12 브리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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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3ConurvJ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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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65. 11절,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Verse 11. And it came to pass, when he drew nigh to come into Egypt, that he said unto Sarai his wife, Behold I pray, I know that thou art a woman beautiful to look upon.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주님이 배우기 시작하셨을 때를 말합니다. ‘애굽’,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식들 중 기억-지식을 [스키엔티아 코그니티오눔] 말합니다. And it came to pass, when he drew nigh to come into Egypt” signifies when he began to learn; “Egypt,” as before said, mean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scientia cognitionum];

 

※ 주님도 어린 시절, 여느 어린이들과 같이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겉 사람(the external man)은 지식이 아니고서는 속 사람(the internal man)과 상응하고 일치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겉 사람은 유형의 신체를 가진 감각적인 것입니다. 마치 땅에 심기듯 지식이 겉 사람 안에 심기지 않으면 겉 사람은 그 어떤 천적, 영적인 것도 받을 수 없지요. 즉, 이 지식은 천적인 것이 담기는 그릇입니다.

 

이 지식은 반드시 말씀에서 와야 합니다. 말씀에서 오는 지식은 주님 자신으로부터 열린, 즉, 이 지식을 통해서 주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지식이기 때문이며, 말씀 자체가 주님에게서 나와 천국을 두루 통하고, 주님의 생명이 말씀 안 모든 것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 시절, 말씀 말고 다른 지식으로는 자신을 가득 채우시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자신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향해 열려 있고,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며, 주님이 결합하셔서 하나가 되실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말씀은 그 가장 안쪽, 가장 내적 의미로도 오직 주님에 관한 것뿐이며, 무엇이든지 오직 맨 처음 주님으로부터 온 것뿐입니다. 휴먼 에센스, 곧, 인성이라는 것은 그저 영원부터 계신 디바인 에센스, 곧, 신성에 보태어진 뭔가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AC.1461)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천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진리에 관하여 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음을 말합니다. he said unto Sarai his wife” signifies that he so thought concerning the truths to which celestial things were adjoined;사래’, 아내로서의 ‘사래’는 주님 안에 있는 천적인 것들에 인접해 있는 진리입니다. Sarai” as a wife is the truth adjoined to the celestial things that were in the Lord;

 

※ ‘아내’에 대한 말씀의 속뜻은 선과 결합한 진리 말고는 없습니다. 선과 진리의 결합은 정확히 결혼이라는 상황과 같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남편’은 선을, ‘아내’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닌 ‘사람’을 뜻할 때는 반대로 남편은 진리를, 아내가 선을 뜻합니다. 이것은 말씀 어디에서나 항상 같습니다. (AC.915)

 

여기서는 아브람이라는 이름이 나오면서 그의 아내 사래가 나오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사래는 진리입니다. 아브람이 자기 아내 사래에게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속뜻으로는, 진리를 천적인 것과 결합한 진리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갈 때, 아내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실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의 모든 실제 있었던 일들은 표상이며, 사용된 모든 말은 어떤 의미들을 가집니다. 말씀에 기록된 어떤 일, 사건들도, 그 순서와 말들 모두 이런 아케이나를 표현하기 위한 속뜻을 갖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AC.1468)

 

※ 아내로서의 ‘사래’는 천적인 것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진리이며, 이 천적인 것은 주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천적인 것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진리’라 하는 것은, 모든 진리는 주님이 그것을 가르치시기 전에 이미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적인 것은 늘 함께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둘 사이를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이 마치 빛이 불에서 나오는 것과 같지요. 이 진리는 주님의 속 사람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신성(Divine), 곧 신적 진리였습니다. 주님이 배우신 지식은 진리가 아니었고, 단지 뭘 담아두는 그릇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억 속 무엇이 들어 있든 그건 진리가 아닙니다. 비록 그리 불려도 말입니다. 진리는 그 안에, 곧 그릇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릇 자체는 진리가 아니고, 그릇 안의 내용물이 진리인 것입니다. 이 그릇은 말씀 관련 지식의 범주 안에서 주님에 의한 가르침을 통해 형성됩니다. 어쩜 열린다는 게 더 나은 표현이지 싶습니다. 천적인 것이 그 안으로 스며들 수도, 이런 식으로 신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인성 관련된 것들이 신성과 똑같이 될 수 있도록 신성과 인성을 결합하셨기 때문입니다. (AC.1469)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그 출처, 기원이 천적인 진리는 정말 기분 좋다, 정말 마음에 든다는 뜻입니다. Behold I pray, I know that thou art a woman beautiful to look upon” signifies that truth from a celestial origin is delightful.

 

※ 천적이거나 천적인 것에서 나온 모든 진리는 속 사람에게는 행복이요, 겉 사람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것입니다. 천적 천사들에게도 그렇게 지각됩니다. 그러나 그 근원이 천적이지 않으면 정반대입니다. 속 사람 안에 두 종류의 행복이 있는데 그에 상응하여 겉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는 선이요, 다른 하나는 진리입니다. 천적 행복과 즐거움은 선으로 되어 있고, 영적 행복과 즐거움은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진리 자체가 행복과 즐거움을 수반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진리가 오직 천적 기원을 가지려면 이건 필수입니다. 그때 진리 자체가 천적이 되고, 천적 진리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비교해서 말씀드리면, 그때 진리는 마치 봄철 태양 빛과도 같습니다. 그 안에 열이 있어 땅 위 모든 것을 자라나게 하고, 활동하게 하는 빛 말입니다. 이 천적 진리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의 의미입니다. 이 표현에 담긴 더 많은 아케이나가 이어지는 주된 내용이 될 것입니다. (AC.1470)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1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주님이 말씀에서 오는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셨을 때, 주님은 그 지식에 담기는 진리가 천적인 것과 아주 가깝고, 정말 기분 좋은, 매우 마음에 드는 진리라고 생각하셨다

 

2021-09-29(D4)-매일예배(2201, AC.1465-1470, 창12,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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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rWLBLC-Z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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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59.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Verse 10. And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And Abram went down into Egypt to sojourn there; because the famine was grievous in the land.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어린 시절 주님은 아직 지식이 부족하셨음을 의미합니다.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signifies a scarcity of knowledges as yet with the Lord when a child;

 

※ 지식이란 무엇일까? 지식의 형성 과정에 대하여...

 

본래 모든 것은 위로부터, 곧, 주님으로부터 나와 천계를 적시고, 이 자연계로 흘러들어 옵니다. 이걸 인플럭스(influx, 入流)라 하며, 이런 순서로 들어오는 걸 간접 입류, 주님에게서 직접 오는 것을 직접 입류라 합니다. 즉, 이렇게 영계에서 자연계로 흐르는 것이 정상인데, 어린 시절엔 그게 어려우니까 살짝 순서를 달리해서, 먼저 감각,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그리고 만지는 오감을 통해서 영계의 것이 자연계로 쉽게 흘러들어 올 수 있도록 길을 닦습니다. 마치 우물물을 퍼 올리는 마중물처럼 말이지요. 비록 어리더라도 사람이 스스로 의도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하여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오감, 특히 어린 시절엔 듣기를 통해서 들어오는데, 이렇게 사람 안에 들어온 기억들이 모여서 지식이 되며, 이 지식을 통해서 영계의 것들, 곧 주님에게서 나온 것들이 자연계, 곧 사람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의 육체가 아닌, 사람의 영에 저장됩니다. 육체는 그야말로 물질일 뿐이기 때문이며, 사람의 사후, 몸이 썩어 없어져도 모든 기억이 고스란히 남는 것을 보면, 이 모든 기억과 지식은 육체가 아닌 영에 저장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때 사람의 영도 겉과 속이 있어 우리가 습득하는 모든 기억과 지식은 영의 겉, 곧 겉 사람 안에 저장되는 것이며, 정리하면, 주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은 사람의 속 사람을 거쳐 사람의 겉 사람에 최종 도착해야 하는데, 어린 시절엔 그게 어려워 먼저 감각을 사용하여 그 길을 먼저 닦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주님도 여느 어린이와 똑같이 성장 과정을 밟으셨으므로, 모든 평범한 어린이들에게 일어나는 이런 지식형성과정이 어린 시절 주님 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경우는, 주님의 속 사람 안에 있는 것, 곧, 주님의 내면은 천적(天的, the celestial)이셨다는 것과, 이것이 주님의 겉 사람 안에 있는 그릇들로 하여금 지식을 담는 그릇이 되게 했고, 이런 식으로, 이 지식은 나중에 신성을 받는 그릇들이 되었다, 즉, 주님의 속 사람은 천적이어서 주님의 겉 사람도 신성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속 사람이 천국 질서를 따르면, 천국이 우리 안에 견고히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멘, 할렐루야!

 

주님의 속 사람에는 여느 어린이들과 달리 그의 아버지이신 여호와로부터 온 신성(Divine)이, 주님의 겉 사람에는 그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로부터 온 인성(human)이 있었을 뿐, 어린 시절 주님은 여느 어린이들처럼 평범한 지식의 결핍 가운데 계셨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AC.1460)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지식은 지식인데 특별히 말씀-오리엔티드된 지식으로 교육받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애굽’, 지식[스키엔티아 코그니티오눔]에 관한 기억-지식을, ‘거류하려고’, 교육받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Abram went down into Egypt to sojourn” signifies instruction in knowledges from the Word; “Egypt” is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scientia cognitionum]; “to sojourn” is to be instructed;

 

※ 영의 겉, 곧 겉 사람은 육체적, 감각적입니다. 영의 속, 곧 속 사람과 육체 사이에서 둘을 연결하기 때문이지요. 이때 중요한 건, 이런 겉 사람이 반드시 속 사람 쪽으로 기울어지는 건데요, 그 유일한 방법은 오직 지식을 통해서이며, 그것도 오직 말씀에서 오는 지식을 통해서입니다. 속 사람은 주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주님의 신성이 흘러들어 오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일종의 땅과도 같습니다. 각종 채소와 나무가 자라는 땅 말입니다. 천적, 영적인 씨들이 이 땅에 뿌려져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자랍니다. 정착하는 것이지요. 이때 이 땅, 곧 지식은 오직 말씀에서 오는, 오직 말씀으로 말미암는 지식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연결되고 결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린 시절, 오직 말씀에 관한 지식 말고 다른 세상 지식 습득하는 일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곧장 정주행을 하셨고, 그래서 단기간에 유전 악을 타고난 인성을 벗으시고,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을 입어 여호와와 결합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것이 지식의 올바른 기능이며, 또 지식에 대한 우리의 참된 자세입니다. 우리 역시, 온갖 잡다한 세상 지식에 너무 두리번거리는 대신 세월을 아껴 주님처럼 오직 말씀에 관한 지식, 주님과 연결되고 결합할 수 있는 지식을 얻는 일에 전념해야 하겠습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오며, 모든 것이 그것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25-33)

 

부연하여, 주님의 휴먼 에센스, 곧, 인성은, 영원부터 계신 주님의 디바인 에센스, 곧, 신성에 첨가된 어떤 것일 뿐입니다. (AC.1461)

 

※ 고대에 이집트 외에도 많은 곳에 교회가 있었으나 특별히 이집트에서 지식, 특히 기억-지식이 번창했습니다. 이 지식은 주로 세상 학문 등을 통해 학습한 지식인데, 문제는, 이들이 이런 세속적 지식을 가지고 천적, 영적 지식들, 곧, 하늘의 신비와 주님 신앙의 비밀들을 탐구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마술이 나왔고, 이로부터 악과 거짓이 나오게 되어 이후 ‘애굽’하면 이런 것들을 상징하게 된 것입니다. (AC.1462)

 

※ 본문의 ‘이집트’는 이와는 달리 유용한 기억-지식을 말합니다. 본문의 이집트는 천적, 영적 지식들을 담는 그릇으로 봉사합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19장 13절 말씀 중에,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 하여, 애굽을 ‘종족들의 모퉁잇돌’이라 표현하였는데 이는 ‘종족들’로 표현된 신앙을 받쳐줌, 곧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모는 것에 대한 섬김을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AC.1462)

 

※ 말씀에서 ‘체류’, ‘이주’ 등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표현을 천사들이 읽을 때, 그들은 상태가 바뀌고 있다, 변하고 있다로 읽습니다. 영계에서 상태가 바뀌는 것은 가르침, 교육을 통해서이며, 태고 교회 사람들은 ‘체류’를 통해서 이런 걸 지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가 말씀-오리엔티드된 지식으로 교육을 받으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AC.1463)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주님의 겉 사람 안에 있는 심한 결핍을 의미합니다. because the famine was grievous in the land” signifies much scarcity in his external man.

 

※ 이 표현에는 간략히 말씀드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케이나가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주님은 영적인 것을 배우시기 전, 먼저 천적인 것들부터 배우셔야 했다는 사실, 또 주님의 겉 사람 안에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악이 있으셨다는 사실 등... 이것들 말고도 무수합니다. (AC.1464)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0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주님은 아직 영적, 천적 지식이 부족하셨다 주님은 특별히 말씀 지향적인 지식으로 배우셨다 어린 시절 주님의 겉 사람은 심한 결핍 가운데 계셨다

 

2021-09-26(D1)-주일예배(2200, AC.1459-1464, 창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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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7eHWXAbJ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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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6(D1)-제9권39호통422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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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모든 천국은 전체적으로

한 사람을 반영한다

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

 

 

59. 천국 전체가 한 사람 모습이라는 사실은 세상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비의(秘義, arcanum)이지만, 그러나 천국에서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That heaven in its whole complex reflects a single man is an arcanum hitherto unknown in the world, but fully recognized in the heavens.

 

이 사실과, 이와 관련된 세부사항들을 아는 것이 천국 천사들의 지성을 이루는 핵심입니다. 천사들이 이 사실을 그들의 보편원리로 삼지 않으면, 거기 의존하는 많은 것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To know this and the specific and particular things relating to it is the chief thing in the intelligence of the angels there, and on it many things depend which without it as their general principle would not enter distinctly and clearly into the ideas of their minds.

 

자기들의 소사이어티들과 함께 모든 천국들도 각각 한 사람 모습임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천국을 가리켜 가장 큰 사람, 신적 인간(神人, the Divine man)(주60)이라 합니다. 신적(神的, Divine)이라 하는 이유는, 천국을 이루는 것이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이기 때문입니다. (AC.7-12) Knowing that all the heavens with their societies reflect a single man they call heaven the greatest man and the Divine man(주60)—Divine because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see above, n. 7–12).

 

 

60. 영적이고 천적(heavenly)인 것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천적(celestial)이고 영적인 것들이 이런 형태와 이미지로 배열되고 결합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That into such a form and imag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re arranged and joined cannot be seen by those who have no right idea of spiritual and heavenly things.

 

그런 사람들은 사람의 가장 바깥을 구성하는 흙과 물질적인 것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그런 걸 떠나서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Such think that the earthy and material things of which man’s outmost nature is composed are what makes the man; and that apart from these man is not a man.

 

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사람인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이해하고, 선을 의도하는 능력 때문에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But let them know that it is not from these that man is a man, but from his ability to understand what is true and to will what is good.

 

그런 이해함과 마음먹음이야말로 사람을 이루는 영적, 천적인 것들입니다. Such understanding and willing are th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of which man is made.

 

더욱이, 모든 사람의 퀄러티는 각 개인의 이해와 의지의 퀄러티로 결정되며, 그 사람의 이 세상 몸은, 세상에서 그의 이해와 의지를 섬기기 위해, 그리고 자연계의 가장 바깥에서 그들의 쓰임새를 잘 성취하기 위해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Moreover, it is known that everyone’s quality is determined by the quality of his understanding and will; and it can also be known that his earthly body is formed to serve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in the world, and to skillfully accomplish their uses in the outmost sphere of nature.

 

이런 이유로, 몸은 스스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대신 이해와 의지에 철저히 종속되어 늘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혀와 입술로 말하는 정도이고, 사람이 의도하는 것을 몸과 팔다리로 행할 정도이지요. 이런 걸 보면, 이해와 의지가 행하는 것이지, 몸이 스스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For this reason the body by itself can do nothing, but is moved always in entire subservience to the bidding of the understanding and will, even to the extent that whatever a man thinks he speaks with his tongue and lips, and whatever he wills he does with his body and limbs, and thus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are what act, while the body by itself does nothing.

 

그래서 이해와 의지에 속하는 것들이 사람을 이루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에 작용하듯, 이런 것들이 몸의 구석구석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적용되는 것을 보면, 분명 영과 육은 같은 형태이며, 이런 이유로, 사람을 일컬어 내적 인간, 영적 인간 하는 것입니다. Evidently, then, the things of the understanding and will are what make man; and as these act into the minutest particulars of the body, as what is internal into what is external, they must be in a like form, and on this account man is called an internal or spiritual man.

 

천국은 가장 광대하고, 가장 완벽한, 그런 사람의 형태입니다. Heaven is such a man in its greatest and most perfect form.

 

 

61. 사람에 대한 천사들이 가진 생각이 그렇기 때문에, 천사들은 사람이 그 몸으로 행한 것들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그런 행위를 왜 했는지 그 동기만 봅니다. Such being the angelic idea of man, the angels give no thought to what a man does with his body, but only to the will from which the body acts.

 

천사들은 이 의지가 그 사람 자신이라고 하며, 이해의 경우는, 의지와 일치하는 선에서만 그 사람이라 합니다.(주61) This they call the man himself, and the understanding they call the man so far as it acts in unison with the will.(주61)

 

 

62. 사실, 천사들은 천국 전체가 사람 모습인 것을 못 봅니다. 천국 전체는 어떤 천사의 뷰에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만 수천의 천사들로 구성된 멀리 떨어진 소사이어티들이 사람 형태인 것을 가끔 보기 때문에, 그들은 그 소사이어티를 일부로 하는 천국도 사람 모습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The angels, it is true, do not see heaven in its whole complex in the human form, for heaven as a whole does not come within view of any angel; but remote societies, consisting of many thousands of angels, they sometimes see as a one in the human form; and from a society, as from a part, they draw their conclusion as to the general, which is heaven.

 

가장 완벽한 형태에서는, 그저 둘 사이 크기만 다를 뿐, 전체는 부분과, 부분은 전체와 같은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성(神性, the Divine)이 가장 내적으로, 혹은 가장 높이 모든 것을 보시기 때문에, 주님의 시야로는 천국 전체가 사람 형태일 것임이 틀림없다고 말입니다. For in the most perfect form generals are like the parts, and parts are like the generals, with simply such a difference as there is between like things of greater or less magnitude; consequently, the angels say that since the Divine from what is inmost or highest sees all things, so in the Lord’s sight heaven as a whole must be in the human form.

 

 

63. 천국이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주님에 의해 마치 한 사람이 다스려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로 다스려집니다. Heaven being such, it is ruled by the Lord as a single man is ruled, thus as a one.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람은 전체든 각 부분이든 수많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체로는 사지와 기관, 그리고 내장들로, 부분으로는, 일련의 섬유와 신경, 그리고 혈관들로, 또 지체 안에 지체가, 부분 안에 부분 식으로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움직일 때, 그는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입니다. For although man, as we know, consists of an innumerable variety of parts, not only as a whole but also in each part—as a whole, of members, organs, and viscera; and in each part, of series of fibers, nerves, and blood vessels, thus of members within members, and of parts within parts— nevertheless, when he acts he acts as a single man.

 

천국도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아래 이와 똑같습니다. Such likewise is heaven under the auspices and direction of the Lord.

 

 

※ 각주

 

60. 천국 전체가 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래서 천국을 ‘가장 큰 사람’(the Greatest Man)이라 합니다. Heaven in the whole complex appears in form like a man, and for this reason heaven is called the Greatest Man (n. 2996, 2998, 3624–3649, 3741–3745, 4625).

 

 

61. 사람의 의지가 그의 생명 바로 그 자체[에세]이며, 사람의 이해는 거기서 나오는 그의 생명의 출발[이그지스테레]입니다. The will of man is the very being [esse] of his life, and his understanding is the outgo [existere] of his life therefrom (n. 3619, 5002, 9282). 사람의 주된 생명은 그의 의지의 생명이며, 여기서 이해의 생명이 나아갑니다. The chief life of man is the life of his will, and from that the life of the understanding proceeds (n. 585, 590, 3619, 7342, 8885, 9282, 10076, 10109, 10110). 사람은 그의 의지와 그 의지로 말미암는 이해로 사람입니다. Man is man by virtue of his will and his understanding therefrom (n. 8911, 9069, 9071, 10076, 10109, 10110).

 

HH.1.8.59-63.'8장, 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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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PV8ATkF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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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56. 9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Verse 9. And Abram journeyed, going and journeying toward the south.

 

 

점점 옮겨갔더라’, 더 깊이 나아감을 말합니다. And Abram journeyed, going and journeying” signifies further progression;

 

※ 고대인들에게는 ‘여행’(travels), ‘여정’(journeys) 및 ‘체류’(sojournings)는 단순히 단어의 뜻 말고 무슨 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서도 이들 표현은 단순히 그 단어의 뜻밖엔 무슨 속뜻이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즉, ‘점점 옮겨갔더라’가 더 깊이 나아감을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go’와 ‘journey’의 뜻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여느 일반인처럼 지식을 향한 나아감이 시작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눅1:8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2:40)

 

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2:46-49)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주님도 다른 어린이들처럼 정상적인 교육을 받으시고 배우신 것입니다. (AC.1457)

 

 

남방으로’, 선과 진리 가운데로,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면이 빛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게 하시려고를 말합니다. toward the south” signifies into goods and truths, and thus into a state of light as to the interiors.

 

※ ‘’(南, the south)은 빛의 상태를 말합니다. 영계에서는 방위(quarters)도, 시간도 없고, 대신 방위와 시간으로 상징되는 ‘상태’(states)가 있습니다. 지적인 것들(intellectual things)의 상태는 날(the day)과 해(the year)의 시간(때)들의 상태 및 방위의 상태들과 같습니다. 날의 상태들은 저녁, 밤, 아침 및 정오의 상태들이 있고, 해의 상태들은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의 상태들이 있습니다. 방위의 경우는 해(the sun)의 상태들과 같은데, 서(西, the west), 북(北, the north), 동(東, the east) 및 남(南, the south)과 관련된 상태들이 있습니다.

 

지적인 것들의 상태가 이와 유사합니다. 놀라운 것은, 천국에서는 지혜와 지성(intelligence)의 상태 가운데 있는 이들이 곧 빛 가운데 있습니다. 정확히 그들의 상태에 따라 말이지요. 가장 높은 지혜와 지성 가운데 있는 이들은 가장 큰 빛 가운데 있습니다. 지혜는 사랑과 체어리티의 빛 가운데, 지성은 주님 신앙의 빛 가운데 있습니다. 천국의 빛은 지상의 빛 가지고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빛입니다. (AC.1521-1534, 1619-1625) 천국에는 빛과 지성 사이 이런 상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말씀에 나오는 ‘’은 이것 말고는 무슨 다른 속뜻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은 지식을 사용하여 아주 어렵게 구한 지성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천적, 영적 진리들인데, 천국에 있는 수많은 빛의 복사(輻射, radiations)가 바로 이것이며, 이지식은 앞서 말한 대로, 천국에서는 빛의 형태로 눈에 보이게 나타납니다. 주님이 지금 이 지식을 가지고 자신을 가득 채우고자 하심은, 나중에 주님의 인성(人性, the human essence)에 대해서도 주님 자신 실제 천국의 빛이 되고자 하심이며, 이것을 일컬어 여기 9절 오늘 본문에서는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하신 것입니다.

 

남방을 향한 아브람의 계속된 여정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선과 진리를 향한 주님의 나아가심, 그래서 자신의 내면을 빛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게 하심에 관한 상징임을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천적, 영적 진리들이므로 천적,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지식을 통해서 내적 인간이 외적 인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여기서 후자는 그것을 받아 담아놓는 그릇입니다. 후자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있는 만큼 그 수가 많습니다. 이 지식 안, 곧 이들 진리의 그릇들 안으로 천적인 것들이 흘러들어옵니다. (AC.1458)

 

 

※ 이상으로 오늘 본문 9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은 실제 천국의 빛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시려고 계속해서 천적, 영적 지식으로 자신을 채우셨다

 

2021-09-23(D5)-매일예배(2198, AC.1456-1458, 창12,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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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usKmig78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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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49. 8절,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Verse 8. And he removed from thence into the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and spread his tent; having Bethel toward the sea, and Ai on the east.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and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어린 시절 주님의 네 번째 상태, 즉, 사랑의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진행(progression)을 말합니다. ‘벧엘 동쪽 산으로 옮김’이 상징하는 바가 바로 사랑의 천적인 것들입니다. “He removed from thence into the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signifies the Lord’s fourth state when a child, namely, the progression of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signified by being transferred to a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 이 표현이, 어린 시절 주님의 네 번째 상태에 관한 것임은, 앞서 다룬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면, 또한 진행 순서 자체를 보면 분명합니다. 주님은 가장 먼저 유아기 때부터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 채워지셔야 했습니다. 사랑의 천적인 것들이란 여호와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그 사랑 안에 있는 이노센스(innocence)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생명의 더할 나위 없는 근원들이기 때문에, 일반적이든 구체적이든 모든 것이 이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부터 흘러나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단지 그 파생물이지요. 이들 천적인 것들은 사람의 유아기 때, 그에게 집중적으로 스며들기 시작, 어린 시절에 이르기까지 그를 채웁니다. 이때에는 사실 다른 무슨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사람이 사랑이 무엇인지, 어펙션(affection)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주님에게서 나와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 그를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유아들의 상태와 조금 시간이 흐른 어린 시절 초기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 안의 이것이 앞서 여러 번 말씀드린 (AC.468, 530, 560-561, 660-661) 리메인스(remains)입니다. 주님도 여느 사람들처럼 태어나셨기 때문에, 순서대로 실제로 유아기를 거쳐 어린 시절까지 서서히 이렇게 천적인 것들로 채워지셨고, 나중에는 지식들 가운데로 인도되셨습니다. 본 절에서는 이런 일이 주님의 경우에는 어떠셨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AC.1450)

 

※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사랑의 천적인 것들의 진행을 말하는 것임은, ‘’(mountain)이 상징하는 것, 곧, 천적인 것에 관한 내용들(AC.795-796) 및 ‘’(東, the East)이 사랑에 관한 여호와 자신에 관한 상징인 것, 그리고 ‘벧엘’의 상징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임을 보면 분명합니다. 주님은 앞서 살핀 대로(AC.101 등) ‘’ 자체이십니다. 천적인 것들은 사람 안에 지식 없이도 스며들고, 지식과 함께도 스며듭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천적인 것들은 지식 없이도 유아기로부터 어린 시절에 이르기까지 스며들며, 또한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는 지식과 함께 스며듭니다. 주님은 ‘벧엘’이라고 하는,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들 가운데로 곧장 나아가셨기 때문에 본 절에서 표현하길, 아브람이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겼다 한 것입니다. (AC.1451)

 

 

장막을 치니’, 신앙의 거룩한 속성들을 말합니다. and spread his tent” signifies the holy things of faith;

 

※ ‘장막을 치니’, 신앙의 거룩한 속성들을 상징하는 것은, 전에(AC.414) 살핀 대로, ‘장막’(tent)의 상징이 사랑의 거룩한 퀄러티를, 그리고 그 결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거룩한 퀄러티를 상징하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그가 그의 장막을 쳤다’라는 표현은, 이 일이 이제 시작되었음을 상징합니다. (AC.1452)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주님의 상태가 아직 어슴푸레하였음을 말합니다. having Bethel toward the sea, and Ai on the east” signifies that his state was still obscure;

 

※ 주님의 상태가 아직은 어슴푸레, 즉,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관련, 아직 불투명한 상태임을 말합니다. 천적인 것들 가운데 있는 것과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가운데 있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유아 및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천적입니다. 그들은 부모를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노센스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반면, 어른들은 유아와 어린이들에 비해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 가운데 더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 중 상당수는 사랑의 천적인 것들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아직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들을 배우기 전인 사람은 어슴푸레한 상태, 즉, 지식 수준의 상태 가운데 있으며, 이 상태를 가리켜,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한 것입니다. ‘벧엘’은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아이’는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말합니다.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아직 어슴푸레할 때는 ‘서쪽에 있다’ 합니다. 말씀에서, ‘서(西, the west)’는 어슴푸레한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며,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 명료함 가운데 있을 때는 ‘동쪽에 있다’ 합니다. 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은 명료하기 때문입니다. (AC.1453)

 

※ ‘벧엘’과 ‘아이’가 각각 천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과,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을 상징하는 것은 아래 말씀들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벧엘’의 경우입니다.

 

3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13:3-4)

 

17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9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28:17, 19)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6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창35:1, 6-7)

 

18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26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삿20:18, 26-27)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삼상7:16)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삼상10:3)

 

27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28이에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 간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와서 벧엘에 살며 백성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더라 (왕하17:27-28)

 

12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암7:12-13)

 

이 외에도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고, 다음은 ‘아이’의 경우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수7:2)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수8:1-2이하 28절까지)

 

3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렘49:3-4)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그 상태에서 아버지께 드린 주님의 외적 예배를 말합니다.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signifies the external worship of his Father from that state;

 

※ ‘제단’에 관한 상징, 곧 예배에 관한 주된 표상에 대해서는 921번 글 참조 (AC.1454)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 상태에서 아버지께 드린 주님의 내적 예배를 말합니다. and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signifies the internal worship of his Father from that state.

 

※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에 관한 글(AC.440) 참조. 여호와께 제단 쌓는 것은 외적 예배, 여호와의 이름 부르는 것은 내적 예배입니다. (AC.1455)

 

 

※ 이상으로 오늘 본문 8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어린 시절, 네 번째 상태로 계속 진행하셔서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 채우시고, 아직 어린 시절이시라 여전히 어슴푸레하시지만 주님은 그 상태에서, 채우신 사랑의 천적인 것들을 가지고 아버지께 외적, 내적 예배를 드리셨다

2021-09-22(D4)-매일예배(2197, AC.1449-1455, 창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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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JIw_avJw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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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1445.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Verse 7. And Jehovah was seen of Abram, and said, 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who was seen of him.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여호와께서 주님이 아직 아이였을 동안 나타나셨음을 말합니다. Jehovah was seen of Abram” signifies that Jehovah appeared to the Lord while yet a child;

 

※ 앞에, 지금까지 다룬 내용들을 통해서, 그리고 ‘아브람’이라는 이름, 곧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표상이라는 것, 또한 주님은 먼저 천적인 것을 얻으신 후, 퍼셉션을 받으시는데, 이런 순서를 통해 ‘여호와께서 나타나심’이 이어지는 것 등을 두루 연결하면, 위와 같은 내적 의미로 정리됩니다. (AC.1446)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천적인 것은 주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야 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and said, 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signifies that celestial things should be given to those who should have faith in him;

 

※ ‘네 자손’의 ‘자손’은 ‘seed’입니다. 또 ‘이 땅을’의 ‘’은 ‘land’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말씀에서 ‘seed’는 주님 신앙을(AC.255, 256), ‘land’는 천적인 것을(AC.620, 636, 662, 1066) 각각 가리킵니다. (AC.1447)

 

※ 겉 글자의 뜻으로는, ‘아브람의 씨’는 야곱으로 말미암은 그의 후손을, ‘’은 가나안 땅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땅을 그들의 소유로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왕국과 교회에 관한 영적, 천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 가운데 표상 교회가 설립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주님께서 그곳에서 태어나시니까요. 그러나 속뜻, 곧 내적 의미로는, ‘’는 주님 신앙 말고는, 그리고 ‘’은 천적인 것 말고는 달리 의미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위 본문의 내적 의미가 ‘천적인 것은 주님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야 받을 수 있음’이 되는 것입니다. (AC.1447)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아버지께 드린 첫 번째 예배를 말합니다.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who was seen of him” signifies the first worship of his Father from the celestial of love.

 

※ ‘제단’은 예배에 관한 주된 표상(representative)입니다. (AC.1448)

 

※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창8:20)는 주님에 관한 표상입니다. 고대교회의 모든 제의는 주님에 관한 표상입니다. 유대 교회의 제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후대에 이르러 제의 중 메인 표상, 즉, 가장 주된 표상이 바로 ‘제단’(altar)과 ‘번제’(burnt offering)입니다. 번제에는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가 각각 그 상징하는 바 표상을 따라 드려졌는데, 정결한 짐승은 체어리티의 선을, 정결한 새는 신앙의 진리를 상징하였습니다. 고대교회의 사람들은 이런 걸 드리면서, 자기들이 주님께 선과 진리의 선물을 드리고 있음을 상징했습니다. 그 밖의 것으로는 사람이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AC.921)

 

 

※ 이상으로 오늘 본문 7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주님은 천적인 것, 곧 하늘에 속한 것은 오직 주님 신앙을 가진 자라야만 받을 수 있음을 퍼셉션으로 아셨고, 그때 주님은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으로 아버지께 첫 예배를 드리셨다

 

2021-09-20(D2)-매일예배(2196, AC.1445-1448, 창12,7),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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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S6YruGTT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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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D1)-제9권38호통421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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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39. 6절,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Verse 6. And Abram passed through the land, even unto the place Shechem, even unto the oak grove Moreh: and the Canaanite was then in the land.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에 이르니’, 주님의 두 번째 상태를 말합니다. 사랑의 천적인 것들, 곧 천국에 속한 것들이 주님에게 명료해졌을 때인데, 이것이 바로 ‘세겜’입니다. Abram passed through the land, even unto the place Shechem” signifies the Lord’s second state, when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became apparent to him, which are signified by “Shechem”;

 

※ 하란을 출발, 가나안을 향한 아브람의 여정은 어린 시절 주님의, 천국에 속한 것들을 향하신 여정입니다. 주님은 출발하셨고, 곁눈질하시거나 두리번거리시지 않는 대신 늘 길을 재촉하시더니, 마침내 도착하셔서 바라시던 바, 곧 천국에 속한 것들을 얻으셨습니다. (AC.1440)

 

※ ‘천국에 속한 것들’, 바로 이 안에 영혼의 빛이 있으며, 이 안에 주님의 신성, 곧 여호와께서 계십니다. 주님이 이것을 얻으신 것은 주님의 휴먼 에센스, 곧 인성과, 주님의 디바인 에센스, 곧 신성 간 결합을 말하며, 그때를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하시는 것입니다. (AC.1440)

 

※ ‘세겜’은 하란에서 출발, 가나안에 진입하는 첫 관문, 곧 입구입니다. ‘세겜 땅에 이르렀다’는 것은, 천국에 속한 것들을 향하신 고단한 여정을 마치시고 결국 도착하심, 마침내 얻으심을 뜻합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에 속한 것들, 곧 모든 천국적인 것들, 천적인 것들을 의미하며, ‘세겜’은 그런 가나안 땅의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세 번째 상태, 즉, 첫 퍼셉션입니다. 이것이 ‘모레 상수리나무’입니다. even unto the oak grove Moreh” signifies the third state, namely, the first perception, which is “the oak grove Moreh”;

 

※ 주님이 천적인 것들을 얻으시자마자, 곧 천적 인간이 되시자마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는데, 이것을 가리켜 퍼셉션을 얻으셨다 하는 것입니다. 모든 퍼셉션은 천적인 것들, 곧 하늘로부터 오며, 누구든지 천적 인간이 되면, 주님으로부터 이 퍼셉션을 받습니다. 퍼셉션이 무엇인지는 글 번호 104, 202, 371, 483, 495, 503, 521, 536, 865를 참조하시고, 태고교회 사람들이 받은 퍼셉션에 관하여는 글 번호 125, 597, 607, 784, 895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AC.1442)

 

※ 천적 인간이 되기 전, 곧 그 앞 단계인 영적 인간의 경우는, 주님으로부터 체어리티를 받습니다. 이것은 퍼셉션과 유사하거나 아니면 양심의 소리 같은 건데, 그 사람의 체어리티가 얼마나 천적이냐에 따라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체어리티 안에 계셔서 체어리티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체어리티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십니다. 이런 일이 주님에게 나타나셨으니 그 정도가 어떠하겠습니까? 주님은 유아에서 출발, 여호와가 되신 분이며, 여호와와 결합, 하나가 되신 분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AC.1442)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주님의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유전한 악을 말합니다. and the Canaanite was then in the land” signifies the evil heredity from the mother in his external man.

 

※ 앞의 1414번 글에 보면, 사람은 부모에게 물려받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로부터 받는 내적인 것,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받는 외적인 것으로, 전자는 영원하고,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도 같았습니다. 주님도 이 둘을 물려받았으나 다만 주님은 아버지, 곧 여호와로부터는 신성을, 그리고 처녀 어머니로부터는 인성, 곧 유전악을 물려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입으신 주님의 일생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이 유전악을 벗으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말씀,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는 주님이 처녀 어머니로부터부터 물려받아 주님의 외적 인간 안에 있는 악을 말합니다. (AC.1444)

 

※ 주님은 이 악과 싸우셨고, 결국 극복하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극심한 유혹과 시험들을 겪으시고, 견디셨습니다. 이에 관하여는 나중에 주님의 허락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이 지옥 전체와 싸우셨습니다. 사람에게 악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시험을 당하지 않습니다. 악은 지옥의 영들로 하여금 흥분하게 하며, 그래서 저들은 사람 안의 악을 보고 달려들어 그를 시험에 빠트리고자 정성을 다하는 것이며, 주님도 아직 이 유전악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것입니다. (AC.1444)

 

※ 다음은 주님의 시험에 관한 본문들입니다.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1:12-13)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1)

 

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눅4:1-2)

 

다음은 가나안 땅 우상숭배의 나라들과 그 가운데 가나안에 관한 본문들입니다. (AC.1444)

 

18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15:18-21)

 

8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17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출3:8, 17)

 

23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28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출23:23, 28)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출33:2)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출34: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신7:1)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신20:17)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수3: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수24:11)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삿3:5)

 

※ 이상으로 오늘 본문 6절의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적(天的, celestial)인 것이 명료해지며, 여호와로 말미암은 퍼셉션이 주님 안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의 외적 인간 안에는 유전 악이 있었다

2021-09-19(D1)-주일예배(2195, 아케이나말씀리딩.창12,6),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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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WVq76zyYls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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