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8-25, AC.131–137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THE CONTENTS

 

131. 태고교회의 후예, 후손(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자신들의 고유 본성을 향해 기울어졌던(inclined to their own) 저들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루고 있습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주3) is here treated of.

 

 

132. 사람은 주님의 인도하심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에 더해 자기 자신과 세상, 즉 자신의 고유 본성으로도(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인도받기를 원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여기서는 사람에게 허락된 그의 고유 본성(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다루고 있습니다. (18)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133. 그리고 먼저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에 대한 애정과 진리에 대한 지식(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아는 것이 그에게 주어졌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는 자신의 고유 본성으로 이끌립니다. (19-20)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134.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신의 고유 본성 상태(a state of his own)에 놓이게 되며, 이때 어떤 본성(an own)이 그에게 제공되는데, 본문에서는 이 본성을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the rib built into a woman)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21-23)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은 사람의 고유 본성(the man’s own)에 인접, 하나(a one)로 나타납니다. (24)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136. 그리고 주님으로 말미암는 이노센스(innocence from the Lord)가 이 본성에 서서히 심어지고(instilled into this own), 그렇게 해서 이 본성은 계속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25)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THE INTERNAL SENSE

 

137. 창세기 처음 세 장은 전반적으로는 태고교회, 사람(man [homo])이라고 하는, 태고교회의 첫 시기부터 끝, 곧 멸망하던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 장 전반부에서는 이 교회가 가장 융성하던 상태(its most flourishing state), 곧 천적 인간이었던 때(when it was a celestial man)를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인 여기에서는 자신들의 본성에 이끌린 사람들(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그들의 후손을 다루고 있습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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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7, AC.126-130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Verse 17.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 17절 속뜻

 

주님의 신비는 오직 퍼셉션으로만 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적인 것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126. 이 말씀은 방금 설명한 말씀과 함께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는데요, 그것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퍼셉션(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을 가지고 참되고 선한 것(what is true and good)에 익숙해지는 것은 허용되지만, 자아와 세상에서 나오는(from self and the world) 걸 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는, 즉 우리는 감각과 기억에 속한 것들(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가지고 신앙의 신비들(the mysteries of faith)을 알아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신앙의 천적인 것(the celestial of faith)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These words, taken together with those just explained, signify that it is allowable to become acquainted with what is true and good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 but not from self and the world; that is, we are not to inquire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for in this case the celestial of faith is destroyed.

 

 

127. 감각과 기억에 속한 걸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알아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다음 장에서 다룰,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 몰락(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의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교회가 그렇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생활, , 생명(life)의 거짓뿐 아니라 악도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A desire to investigat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was not only the cause of 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 but it is also the cause of the fall of every church; for hence come not only falsities, but also evils of life.

 

 

128. 세속적이고 육적인 사람(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肉的)은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만일 신앙과 그 관련된 모든 걸 감각(the things of sense), 즉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게 해서 나로 하여금 믿게 하거나, 아니면, 기억(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즉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일반 상식을 가지고 나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거나 하지 않으면 나는 안 믿을꺼야라고 말이지요. 또 그는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서로 절대 반대일 리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굳게 확신하는데요, 그는 이렇게 천국과, 그리고 신에 속한 것(what is celestial and Divine)을 감각에 속한 걸 가지고 배우기를(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원하는데, 이는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는 더욱더 스스로를 눈멀게 하여 결국엔 아무것도, 심지어 어떤 영적인 것(anything spiritual)의 존재와 영생(eternal life)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믿지 않게 되는데요, 이런 결과는 그가 가정하고 있는 원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이며, 누구든지 더 많이 먹을수록 그는 더욱 죽게 되지요. 그러나 세상이 아닌, 주님을 통해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곧 말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들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는 이런 원리로 자신의 생각(thoughts)을 조절하며, 계속해서 이성, 지식, 감각 및 자연에 속한 것들을 통해(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결국 자신의 선택이 맞다 확신합니다. 아니다 싶은 것들은 버리면서 말입니다.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says in his heart, If I am not instructed concerning the faith, and everything relating to it,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so that I may see, or by means of 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so that I may understand, I will not believe; and he confirms himself in this by the consideration that natural things cannot be contrary to spiritual. Thus he is desirous of 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in what is celestial and Divine, which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for the more he desires to grow wise by such means, the more he blinds himself, till at length he believes nothing, not even that there is anything spiritual, or that there is eternal life. This comes from the principle which he assumes. And this is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of which the more anyone eats, the more dead he becomes. But 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 says in his heart that the Lord must be believed, that is, the things which the Lord has spoken in the Word, because they are truths; and according to this principle he regulates his thoughts. He confirms himself 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and those which are not confirmatory he casts aside.

 

 

129. 인간은 그가 세운 원리, 원칙(the principles he assumes)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다 아는데요, 심지어 그 원칙이 거짓이어도 그의 모든 지식과 이성 능력은 그 원칙을 편듭니다(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그 원칙을 지지하려는 수많은 생각(innumerable considerations)이 그의 마음에 더해지고, 그렇게 해서 그는 그 거짓 원칙을 확신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원칙, 가령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돼!(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와 같은 원칙을 가진 사람은 결코 믿음이라는 걸 가질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거나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된 질서, 순서(the true order)는 사람이 주님, 곧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뒤따르는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는 것(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눈이 밝아지는데(enlightened), 심지어 이성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까지도 그렇게 됩니다. 그런다고 무슨 과학 배우는 걸 결코 금하거나 하지는 않는데요, 과학은 삶에 매우 유용하며 즐겁기 때문이며, 심지어 그가 신앙 안에 있지만 세상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그렇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믿기(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라는 원칙 안에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자연적 진리를 가지고 학자들 세계에서 쓰는 말로 영적, 천적 진리들을 확증해야 한다는 것(to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입니다. 그렇게 그의 출발점은 주님이셔야 하며, 결코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죽음이기 때문이지요. Everyone may know that man is governed by the principles he assumes, be they ever so false, and that 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for innumerable considerations tending to support them present themselves to his mind, and thus he is confirmed in what is false. He therefore who assumes as 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 can never believe, becaus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cannot be seen with the eyes, or conceived by the imagination. But the true order is 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 and he is enlightened even 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For it is by no means forbidden to learn the sciences, since they are useful to his life and delightful; nor is he who is in faith prohibited from thinking and speaking as do the learned of the world; but it must be from this principle—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 and, so far as possible,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 Thus his starting point must be the Lord, and not himself; for the former is life, but the latter is death.

 

 

130. 세상을 통해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은 그의 동산(garden)에 감각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이 있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이 그의 에덴(Eden)이며, 그의 동쪽(east)은 서쪽, 곧 자기 자신(himself)입니다. 그에게 있어 유브라데 강(river Euphrates)은 그가 가진 모든 기억-지식인데 이는 정죄 받는 것(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입니다. 그의 두 번째 강(second river), 거기에 앗수르(Assyria)가 있는데,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거짓을 낳는 논리 능력(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입니다. 그의 세 번째 강(third river), ‘구스(Ethiopia)지요, 악과 악으로 말미암는 거짓에 관한 원리들인데, 이게 그가 가진 신앙 지식들(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입니다. 그의 네 번째 강(fourth river)은 거기서 나오는 지혜(the wisdom thence derived)이며, 말씀에서는 이걸 마법(magic)이라고 하지요. 이런 이유로 애굽(Egypt), 애굽은 기억-지식을 말하는데, 이는 나중에 마법이 되는 지식들(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을 말하지요, 결론적으로 애굽은 그런 사람, 곧 말씀에서 볼 수 있듯, 자아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에 관해 에스겔에서는, 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 has for his “garden”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re his “Eden”; his “east” is the west, or himself; his “river Euphrates” is 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 his “second river,” where is “Assyria” is 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 his “third river,” where is “Ethiopia” is 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 his “fourth river” is the wisdom thence derived, which in the Word is called “magic.” And therefore “Egypt”—which signifies 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 signifies such a man, because, as may be seen from the Word, 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 Of such it is written in Ezekiel:

 

3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9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겔29:3, 9) Thus hath said the Lord Jehovih,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who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it for myself. And the land of Egypt shall be for a solitude, and a waste, and they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because he hath said, The river is mine, and I have made it. (Ezek. 29:3, 9)

 

같은 선지서에서, 그런 사람들을 ‘지옥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trees of Eden in hell)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본문에서 바로(Pharaoh), 애굽인이지요, 바로 역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Such men are also called “trees of Eden in hell,” in the same prophet, where also Pharaoh, or the Egyptian, is treated of in these words: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겔31:16, 18) When I shall have made him descend into hell with them that descend into the pit; to whom art thou thus made like in glory and in greatness among the trees of Eden? yet shalt thou be made to descend with the trees of Eden into the lower earth,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with them that be slain by the sword. This is Pharaoh and all his crew, (Ezek. 31:16, 18)

 

여기서 ‘에덴의 나무들’(the trees of Eden)은 말씀에서 나오는 지식들(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을 가리키는데, 저들, 곧 스스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지식들조차 이성 능력을 발휘(by reasonings),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만 가까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말씀, 곧 주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where the “trees of Eden” denote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 which they thus profane by reaso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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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6, AC.125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Verse 16.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 우리말 번역은 원문에는 없는 ‘열매’를 추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라 함으로써 아르카나가 더욱 흐릿하게, 안 보이게 하는 아주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성경 번역자들이 말씀을 속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 16절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퍼셉션을 늘 공급하시되 마치 해가 대지를 환히 늘 비추듯 원 없이 누리게 하셨습니다. 천적 인간은 천지에 가득한 주님의 신성에 하늘의 천사들처럼 이 퍼셉션을 가지고 반응하였습니다.

 

 

125.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되’(To eat of every tree)는 퍼셉션(perception)을 통해 선하고 참된 것(what is good and true)을 아는 것입니다. 앞에서 관찰한 것처럼, ‘나무’(a tree)는 퍼셉션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To “eat of every tree” is to know from perception what is good and true; for, as before observed, a “tree” signifies perception.

 

※ ‘나무의 열매’라고 번역했지만, 사실은 그냥 ‘나무’입니다. 원본엔 없는 ‘열매’를 추가한 건 실제로 ‘나무’를 먹는다고 하면 굉장히 이상하고 어색해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런 게 말씀을 속뜻, 그러니까 아르카나(arcana)를 전혀 모른 채 겉뜻으로만 번역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퍼셉션을 받았고, 그 퍼셉션으로 자기들 기억 속 소중히 여기고 있던 것들의 참되고 선한 여부를 들여다보다가(reflected on) 그 가운데 혹시 무슨 거짓된 것이 드러나면, 즉시 그 사실을 지각, 피했고, 심지어 공포심을 느낄 정도였는데요, 그런 게 또 천사들의 상태이지요. 그러나 태고교회의 이 퍼셉션을 대신해서 그 후 이 참되고 선한 것에 관한 지식은 전에 계시되어 온 것으로부터 계승되더니, 계속해서 그 다음에는 말씀 안에 계시된 것으로부터 계승되었습니다. They had from the Lord continual perception, so that when they reflected on what was treasured up in the memory they instantly perceived whether it was true and good, insomuch that when anything false presented itself, they not only avoided it but even regarded it with horror: such also is the state of the angels. In place of this perce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owever, there afterwards succeeded the knowledge [cognitio] of what is true and good from what had been previously revealed, and afterwards from what was revealed in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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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5, AC.122-124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Verse 15,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 15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주신 모든 것은 소유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천적 인간은 소유가 아닌 누림의 사람입니다.

 

 

122. 에덴동산은 설명드린 대로, 천적 인간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가 의미하는 것은, 곧 그가 그 모든 것을 누리는 건(to enjoy all these things) 허락하시지만, 그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건(to possess them as his own) 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By the “garden of Eden” are signified all things of the celestial man, as described; by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is signified that it is permitted him to enjoy all these things, bu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because they are the Lord’s.

 

 

123. 천적 인간(The celestial man)은 모든 것이 전체적이든 개별적이든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acknowledges)합니다. 그가 그런 사실을 퍼셉션으로 지각(perceives)하기 때문이지요. 영적 인간(The spiritual man)도 마찬가지로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는 입으로(with the mouth) 합니다. 그는 그걸 말씀에서 배워서(has learned) 하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이고 육적인 인간(The worldly and corporeal man)은 기꺼이로도 억지로도 당최 인정하지를 않는데요(neither acknowledges nor admits), 그는 무엇이든 자기한테 있으면 자기 것(his own)이라고 하며, 만일 그걸 잃으면 자기는 완전히 망할 걸로 여깁니다. The celestial man acknowledges, because he perceives, that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re the Lord’s. The spiritual man does indeed acknowledge the same, but with the mouth, because he has learned it from the Word.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neither acknowledges nor admits it; but whatever he has he calls his own, and imagines that were he to lose it, he would altogether perish.

 

 

124. 지혜, 지성, 이성, 그리고 지식(wisdom, intelligence, reason, and knowledge [scientia])이 사람에게서가 아닌 주님에게서임은 주님이 가르치신 모든 걸 보면 아주 분명한데요, 마태복음에서, 주님이 자신을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를 두르고, 농부들에게 세로 준 집주인에 비유하신 것과(21:33), That wisdom, intelligence, reason, and knowledge [scientia] are not of man, but of the Lord, is very evident from all that the Lord taught; as in Matthew, where the Lord compares himself to a householder who planted a vineyard, and hedged it round, and let it out to husbandmen (21: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마21:33)

 

아래 요한복음에서 하신 말씀들처럼 말입니다. and in John: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16:13-14) The Spirit of truth shall guide you into all truth; for he shall not speak of himself, but what things soever he shall hear, he shall speak; he shall glorify me, for he shall receive of mine, and shall declare it unto you. (John 16:13–14)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3:27) A man can receive nothing except it be given him from heaven. (John 3:27)

 

이것이 정말 그렇다는 것은 천국 아르카나(the arcana of heaven)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That this is really so is known to everyone who is acquainted with even a few of the arcana of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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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4, AC.118-121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Verse 14,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 14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세 번째, 네 번째 특징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의 합리적 영역으로 흐르는 이성과 그 경계인 지식, 세상 팩트에 기반을 둔 지식입니다.

 

 

118. 힛데겔 강(The river Hiddekel)은 이성, 즉 이성의 명석함(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입니다. ‘앗수르(Asshur)는 이성적인 마음(the rational mind)이고,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은 이성의 명석함이 주님에게서 나와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의 이성적인 마음(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안으로 들어가는 걸 의미합니다. ‘유브라데(Phrath, or Euphrates)는 기억-지식(memory-knowledge), 즉 맨 끝, 경계(the ultimate or boundary)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119. 앗수르가 이성적인 마음, 즉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 에스겔 같은 선지서를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That “Asshur” 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겔31:3-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이성을 ‘레바논 백향목’이라 하고 있으며,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은 기억 지식들, 곧 이 매우 큰 곤경 가운데 있는 지식들입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 “cedar in Lebanon”;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 개역개정 4판 번역이 좀 엉뚱한데요, 영어 표현 번역은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즉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난 새 가지’입니다.

 

※ ‘이 매우 큰 곤경 가운데 있는(which are in this very plight)이라는 이 부분 역시 지금의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서술입니다. 에스겔 31장 전체를 읽어보면, 애굽에 대한 책망을 하시면서, 앗수르가 이러했음에도 그 역시 이랬거든 하물며 너는... 이라는, 그 속뜻으로는 인간의 이성조차 이랬거든 하물며 기억-지식에 불과한 너는... 이라는 내용이어서 이런 전반적인 문맥을 통해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이것은 이사야를 보면 더욱 명료해집니다.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사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애굽’은 위 본문과 다른 여러 구절에서 기억-지식(memory-knowledges)을, ‘앗수르’는 이성(reason)을,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성(ntelligence)을 의미합니다.By “Egypt” 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 “Asshur” reason, and by “Israel” intelligence.

 

 

120. 애굽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또한 기억-지식(memory-knowledges) 및 이들 지식이 나오는 감각적인 것들(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미가 같은 선지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As by “Egypt,” so also by “Euphrates,” are signified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This is evident from the Word in the prophets, as in Micah: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미7:10-12) My she-enemy hath said, Where is Jehovah thy God? The day in which he shall build thy walls [macerias], that day shall the decree be far removed; that day also he shall come even to thee from Asshur, and to the cities of Egypt, and to the river [Euphrates]. (Micah 7:10–12)

 

그래서 선지서들에서 주님의 오심(the coming of the Lord)과 관련하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사 그로 하여금 천적 인간과 같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입니다.So did the prophets speak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who should regenerate man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In Jeremiah: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렘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Egypt, to drink the waters of Sihor? Or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Asshur, to drink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Jer. 2:18)

 

여기서 ‘애굽’과 ‘유브라데’는 함께 기억-지식을, ‘앗수르’는 이런 기억-지식을 가지고 하는 합리적 사고능력, 추리, 추론(reasonings thence derived)을 의미합니다. 시편입니다. where “Egypt” and “Euphrates” likewise signify memory-knowledges, and “Asshur” reasonings thence derived. In David: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여기서 ‘강’(the river Euphrates)의 의미는 감각적인 것과 기억에 속한 것(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입니다. 유브라데는 앗수르를 향한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였는데, 이는 기억 지식(the knowledge of the memory)이 영적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의 경계인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 또한 같습니다. where also the “river Euphrates” 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 For the Euphrates was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as the knowledge of the memory is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The same is signified by what was said to Abraham: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이들 두 경계는 같은 걸 의미합니다. These two boundaries have a like signification.

 

 

121. 천적 질서의 본질(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곧 생명은 어떻게 진행하는가(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하는 것은 이들 강들로부터, 이신 주님으로부터(from the Lord, who is the East)임이 분명하며, 주님으로부터 지혜(wisdom), 지혜를 통해 지성(intelligence), 지성을 통해 이성(reason), 그리고 그렇게 이성을 사용하여 이번에는 기억 지식(the knowledges of the memory)이 생생해지는 등 이런 순서로 진행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질서, 순서(the order of life)이며, 그런 것이 천적 인간들(celestial men)이고,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the elders of Israel)이 천적 인간들을 표상했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wise, intelligent, and knowing)이라 한 것입니다(1:13, 15). 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or 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is evident from these rivers, namely, from the Lord, who is the “East,” and that from him proceeds wisdom, through wisdom intelligence, through intelligence reason, and so by means of reason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are vivified. This is the order of life, and such are celestial men; and therefore, since the elders of Israel represented celestial men, they were called “wise, intelligent, and knowing” (Deut. 1:13, 15).

 

13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5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신1:13, 15)

 

그래서 궤를 만든 브살렐을 이렇게 말한 것이지요. Hence it is said of Bezaleel, who constructed the ark, that he was: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출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출35:31)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출36:1-2) Filled with the spirit of God, in wisdom, in understanding, and in knowledge [scientia], and in all work. (Exod. 31:3; 35:31; 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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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3, AC.116-117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Verse 13,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 13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두 번째 특징은,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으로, ‘기혼’이라 하였으며, 이런 걸 담을 수 있는 천적 인간의 마음의 역량을 가리켜 ‘구스 땅’이라 하였습니다.

 

 

116. 기혼(Gihon)이라 하는 둘째 강(The second river)은 지식(the knowledge [cognitio])을 의미하는데, 이 지식은 선한 것과 참된 것(the good and the true),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을 말합니다. ‘구스 땅(the land of Cush)은 마음, 즉 역량(the mind or faculty)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로 되어 있는데요, 첫째 강에 관해 드린 말씀이 의지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 둘째 강은 이해에 관한, 즉 선에 관한 지식을 이해하고, 진리에 관한 지식을 이해하는(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of good and of truth) 내용입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117. 더욱 구스 땅’, 즉 에디오피아는 금과 보석 및 향신료(spices)로 풍부했는데요, 이는 전에 말씀드린 대로, 선과 진리 및 여기서 나오는 감사할 만한 것들(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곧 사랑과 신앙 관련 지식에서 나오는 것들(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을 말합니다. 이는 위 113번 글에서 인용한 구절들(60:6, 2:1, 11, 72:15)을 보면 분명합니다. The “land of Cush,” 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말씀에서 ‘구스’나 ‘에디오피아’(Ethiopia), 그리고 또 ‘스바’(Sheba)가 의미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은 스바냐 같은 선지서들을 보면 분명한데요, 가령, 스바냐에 ‘구스 강’(the rivers of Cush)이라고 언급된 부분입니다.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 “Cush” or “Ethiopia,” and also by “Sheba,”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 “rivers of Cush” are mentioned: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습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그리고 다니엘에서 북으로는 리비아, 남으로는 구스의 왕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여기 ‘애굽’(Egypt)은 세상에서 학습하는 지식인 기억-지식(memory-knowledges)을, ‘구스’(the Ethiopians)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지식(knowledges)을 가리킵니다. where “Egypt” 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 “Ethiopians” knowledges.

 

[2] 에스겔에서도 그렇습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같은 식으로 이들을 가지고 신앙 관련 지식(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을 의미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시편에서도 주님에 대해, 그리고 그 결과, 천적 인간에 대해 말하면서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앞뒤 구절들과 함께 살펴보면, 이 말씀들은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celestial things of faith)을 의미합니다. 스바 여왕에 관한 말씀 또한 그런데요, 열왕기상을 보면 그녀는 솔로몬 왕에게 와서 어려운 것들을 물으며, 그에게 향신료와 금, 그리고 보석들을 가져왔습니다. (왕상10:1-2).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2)

 

이는 선지서들을 비롯, 말씀의 역사 관련 부분들(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에 들어있는 모든 것은 아르카나(arcana, 秘義)를 의미, 표상 및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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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별세 소식에 불현듯 지난날 유신고 시절인 1980년 9월 30일 밤, 당시 기숙사 사감이셨던 ○ 선생님 전화 받고 우리 A동 같은 방 모두 사감실 올라가 내 어머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접하고는, 룸메이트들이었던 자네와  , 이 등과 함께 전원, 그 밤, 성 빈센트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간 기억이 마치 비디오를 보듯 생생하게 떠오르더군... 벌써 햇수로 43년 전 일이야 ^^

 

목사로서 몇 가지만 간단히 적음세.

 

① 오늘이 사흘째지? 이제 어머니께서는 영계에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눈을 뜨시게 되고, 몇 가지 절차를 밟으신 후, 드디어 생전에 먼저 떠나보내셨던 모든 그리운 분들, 곧 부모님 및 여러 혈육들, 친구, 지인들 등, 먼저 가신 모든 분과 재회하시는 너무나 반가운 시간들을 가지실 걸세.

 

② 처음엔 지상의 모습 그대로이셔서 어머니를 기억하던 모든 분들이 알아보시겠지만 서서히 어머니의 내면, 곧 속 사람이 주가 되고, 외면, 곧 겉 사람은 휴면 상태에 들어가면서 어머니는 천국으로 올라가실 준비를 마치게 되지. 이때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생전에 결코 본 적 없던 놀랍도록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라네. 어머니의 일생이 선한 삶이셨다면 말일세.

 

③ 우리의 육체는 사실 우리의 영이 잠시 이 지상 생활을 하기 위해 빌려 입었던 거라, 이렇게 말하면 좀 불경스러울까?, 무슨 특별한 의미는 없어. 죽음이란 다음 세계인 영계로 이사 가는 거니까 말일세.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굳이 지상에 묻어둔 육체를 다시 찾을 일은 없어. 육체의 다시 살아남, 곧 우리가 부활이라 믿고 있는 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 주님의 부활로 족하며,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네. 우리의 부활은 이렇게 지상에서 잠들었다가 영계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하지.

 

④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슬퍼하고, 보내드리는 예를 다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동안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와 애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라네. 거듭 부모는 사실은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계셨던 주님이시며, 그래서 부모에 대한 태도는 곧 주님에 대한 태도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더러 십계명에서조차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하신 것이네.

 

거듭 모친을 떠나보내는 자네와 모든 유족을 주님이 크게 위로하시며, 또 이후 모든 일정에 크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하네.

 

어머니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였을 참 진실한 친구 에게 주께서 천 대까지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하오며...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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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12, 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Verses 11, 12.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 11, 12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첫 번째 특징은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지성이라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의 마음은 마치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르듯 주님의 선과 진리로 촉촉합니다.

 

 

110. 첫째(The first), 첫 번째 강 비손(Pishon)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은 마음(the mind), ‘(gold)은 선을, ‘베델리엄과 호마노(bdellium and the onyx stone)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이 두 번 언급된 이유는 이 금이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the good of faith from love)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베델리엄과 호마노역시 하나는 사랑의 진리(the truth of love),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from love)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천적 인간(the celestial man)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The “first” river, or “Pishon,” signifies 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the land of Havilah” signifies the mind; “gold” signifies goo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truth. “Gold” is mentioned twice because it signifies the good of love and the good of faith from love; an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are mentioned because the one signifies the truth of love, and the other the truth of faith from love. Such is the celestial man.

 

 

111. 하지만 이런 것들을 그 속뜻 상태 그대로(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설명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 오늘날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faith from love)이라는 게 뭔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지혜와 지성(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이라는 건 또 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겉의 사람들, 외적이기만 한 사람들(external men)은 기억-지식 밖에는(anything but memory-knowledge) 거의 아는 게 없는데, 그들은 이런 걸 지혜와 지성, 신앙으로 부르고들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게 뭔지 모르며, 또 의지와 이해가 뭔지, 그리고 이 둘이 합쳐 하나의 마음(one mind)을 이룬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것들은 저마다 구별됩니다. , 정말 확실하게 구별되는데요, 천국 전체(the universal heaven)를 주님은 사랑과 신앙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이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It is however a very difficult matter to describe these things 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for at the present day no one knows what is meant by faith from love, and what by 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 For external men scarcely know of anything but memory-knowledge, which they c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faith. They do not even know what love is, and many do not know what the will and understanding are, and that they constitute one mind. And yet each of these things is distinct, yea, most distinct, and the universal heaven is ordinated by the Lord in the most distinct mann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which are innumerable.

 

 

112. 더욱 다음과 같은 사실은 알려져야 하는데요, 사랑에서(from love) 나오지 않은 지혜, 그러니까 주님한테서(from the Lord) 나오지 않은 지혜라는 것은 없으며(there is no wisdom),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지성,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지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은 선,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오지 않은 선 또한 없으며,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진리,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진리 역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것들을 실제로는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러나 사실은 모두 가짜입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113. 말씀에서 지혜나 사랑의 선(the good of wisdom or of love)(gold)으로 상징, 표상되는 것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법궤, 성전, 향단, 촛대, 그릇들 및 아론의 의복 등에 사용된 모든 금은 지혜나 사랑의 선을 상징하고 표상했습니다. 에스겔에서처럼 선지서들에서도 그렇습니다.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 “gold.” 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지혜와 지성에서 ‘금과 은’(gold and silver), 즉 선과 참(the good and the true)이 나온다는 것인데요, 여기 ‘은’은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법궤와 성전에서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이사야입니다.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 “gold and silver,” or the good and the true, for “silver” 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그래서 또 Thus also: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서도 ‘황금’(gold)은 선을, ‘유향과 몰약’(frankincense and myrrh)은 참 감사한 것들(things that are grateful)을 의미하는데요, 이는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것들로서, 그래서 ‘여호와를 찬송’(the praises of Jehovah)이라 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시편에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입니다. Here also “gold” 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 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 “the praises of Jehovah.” 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114. 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precious stones)으로 상징, 표상되는데요, 판결 흉패(the breastplate of judgment)와 아론의 에봇 어깨받이(the shoulders of Aaron’s ephod)에 있는 보석들처럼 말이지요. 흉패 짜는 재료인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은 사랑에 속한 것들을, 거기 물릴 보석들(the precious stones)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표상합니다. 에봇 어깨받이 위 두 기념 보석(the two stones of memorial)처럼 말입니다. 이 기념 보석은 호마노이며, 금테에 물린 것이지요. (28:9-22) The truth of faith is signified and represented in the Word by precious “stones,” as by those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and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In the breastplate, “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 represented such things as are of love, and the precious “stones” such as are of faith from love; as did likewise the two “stones of memorial” on the shoulders of the ephod, which were onyx stones, set in ouches of gold (Exod. 28:9–22).

 

9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출28:9-22)

 

이 보석들의 의미는 에스겔에서도 분명한데요, 에스겔은 천국의 부(heavenly riches), 곧 지혜와 지성(wisdom and intelligence)을 소유한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이르기를 This signification of precious stones is also plain from Ezekiel, where, speaking of a man possessed of heavenly riches, which are wisdom and intelligence, it is said:

 

12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5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겔28:12-13, 15)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thou hast been in Eden, the garden of God; every precious stone was thy covering, the ruby, the topaz, the diamond, the beryl, the onyx, and the jasper; the sapphire, the chrysoprase, the emerald, and gold; the workmanship of thy tabrets and of thy pipes was in thee; in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they were prepared; thou wast perfect in thy ways from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Ezek. 28:12–13, 15)

 

모두에게 분명한 것은 위 말씀은 보석(stones)이 아닌, 신앙에 속한 천적 영적인 것들(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을 의미한다는 사실인데요, 네, 그렇지요, 여기 각각의 보석은 신앙의 어떤 본질적인 것(some essential of faith)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which words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do not signify stones, but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yea, each stone represented some essential of faith.

 

 

115. 태고인들은 (lands) 하면 땅 그 자체가 아닌, 그 땅이 상징하는 게 무엇일까 하는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가나안 땅, 시온산 하면, 그게 어디 있는지 그 위치나 그 산이 있는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닌, 천국(heaven)을 말하는 걸로 이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본문의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이 바로 그런데요, 이는 이스마엘 자손들에 대한 언급 부분인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거주하였더라(창25:18,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에 다시 나옵니다.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천적 사고 가운데 있는 사람들(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은 이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만 지각하는데요(perceive), 그래서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둘렀다’(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고 하는 본문의 이 ‘두르다’(to compass)라는 표현을 통해 이들은 어떤 흘러드는 걸(a flowing in)지각합니다. 아론의 에봇 어깨받이 위 금테로 둘러싸인 호마노(출28:11)를 통해서도 이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온다(should inflow into) 지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다른 많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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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아는 데 도움 되는 사전 지식들’ (2023/10/15)

 

천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스베덴보리 저, 김은경 역, ‘천국과 지옥’ 44장 ‘중간 영계란 무엇인가(What the World of Spirits Is)에 나오는 글이며, 이어지는 글들은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도움말들입니다.

 

422. ...사람 안에 있는 천국(The state of heaven in man)은 바로 그 사람 안의 선과 진리가 하나된 상태(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다. 또 사람 안의 지옥은 그 사람 안의 악과 거짓이 하나된 상태다. 영인(靈人, a man-spirit) 안에서 선이 진리와 하나되면 그는 천국에 이른다. 이미 말했듯이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 안에서 악이 거짓과 하나되면 그는 지옥에 이른다.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됨의 과정은 중간 영계(the world of spirits)에서 일어난다. 사람은 그때 중간 상태(an intermediate state)에 있기 때문이다...

 

※ ‘영인’이란 사후 영이 되었지만, 아직 천국 상태도, 지옥 상태도 아닌 상태의 영을 말합니다.

 

※ 천국이든 지옥이든 사람이 100% 선하거나 악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100% 선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나라, 지옥은 100% 악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100% 상태를 윗글에서는 ‘하나됨’이라고 표현했네요.

 

※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후 일단은 이 중간 영계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곧 중간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아직 천국도, 그리고 지옥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아주아주 희귀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선과 악이 조금씩은 섞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아주아주 희귀한 이 몇몇의 사람은 살아생전에 이미 이 100% 상태가 완료된 사람들로서, 이들은 중간 영계에서 깨어나는 즉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뛰어듦으로서 괜히 이 중간 영계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중간 영계를 합쳐 ‘영계(靈界)라 하는데. 이 영계는 지상 자연계처럼 무슨 시공간(視空間)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와 이 상태 변화의 나라입니다.

 

※ 사람의 일생은 사실은 천국을 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는 ‘거듭남을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이 거듭남을 위한 과정을 통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 ‘역량’이라 표현한 이유는 천국은 준비된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업무역량도 없으면서 무슨 낙하산으로 초우량기업에 들어간들 버틸 수 없어 얼마 못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윗글에서 계속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이 ‘(good)과 ‘진리(truth)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천국이 이 ‘’과 ‘진리’, 곧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사랑이라는 천국의 해로부터 선이라는 열과 진리라는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천국에 충만한 그런 나라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이란 모든 악과 거짓에서 물러나 이 선과 진리로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만 세상, 세속 진리와 주님의 진리가 다른 점은, 주님의 진리에는 주님의 선을 행할 능력이 있지만, 세상 진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세속적 진리에 정통한 사람들이 그러나 정작 주님을 위한 선한 삶을 살지는 못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과 ‘진리’로 연결됩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선한 의지로 올바른 생각을 하지만, 지옥에 속한 사람은 악한 의지로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행위’로, 사람의 이해, 생각은 ‘’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의 하는 행위와 하는 말을 보면, 그가 천국과 지옥 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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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10-15(D1)-주일예배(2508, 눅13,18-21),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pdf
0.36MB
2023-10-15(D1)-주일예배.축도.pdf
0.22MB

https://youtu.be/rHHowQJxzbs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18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눅13:18-21)

 

 

악과 결합한 거짓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사회 안으로 흘러들어오면 그때 곡식 가루와 포도즙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작용이 일어난다. 이 발효로 인해 서로 맞지 않는 것은 분리되고, 맞는 것은 합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회가) 정화되고 맑아진다. (하나님의 섭리 25)

 

 

오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하는 내용인데요, 본문을 살피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스베덴보리 저, 김은경 역, ‘천국과 지옥’ 44장 ‘중간영계란 무엇인가?’(What the World of Spirits Is)에 나오는 글들입니다.

 

422.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은 바로 그 사람 안의 선과 진리가 하나된 상태다. 또 사람 안의 지옥은 그 사람 안의 악과 거짓이 하나된 상태다. 영인(靈人) 안에서 선이 진리와 하나되면 그는 천국에 이른다. 이미 말했듯이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 안에서 악이 거짓과 하나되면 그는 지옥에 이른다.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됨의 과정은 중간영계에서 일어난다. 사람은 그때 중간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 천국이든 지옥이든 사람이 100% 선하거나 악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100% 선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나라, 지옥은 100% 악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100% 상태를 윗글에서는 ‘하나됨’이라고 표현했네요.

 

※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후 일단은 이 중간영계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곧 중간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아직 천국도, 그리고 지옥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아주아주 희귀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선과 악이 조금씩은 섞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중간영계를 합쳐 ‘영계’(靈界)라 하는데. 이 영계는 지상 자연계처럼 무슨 시공간(視空間)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와 상태변화의 나라입니다.

 

※ 사람의 일생은 사실은 천국을 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며, 그것을 다른 말로 ‘거듭남을 위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이 거듭남을 위한 과정을 통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 윗글에서 계속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이 ‘선과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천국이 이 ‘선과 진리’, 곧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사랑이라는 해로부터 선이라는 열과 진리라는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천국에 충만한 그런 나라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이란 모든 악과 거짓에서 물러나 이 선과 진리로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만 세상, 세속 진리와 주님의 진리가 다른 점은, 주님의 진리에는 주님의 선을 행할 능력이 있지만, 세상 진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속적 진리에 정통한 사람들이 주님을 위한 선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good)과 ‘진리(truth)로 연결됩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선한 의지로 올바른 생각을 하지만, 지옥에 속한 사람은 악한 의지로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행위’로, 사람의 이해, 생각은 ‘’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의 하는 행위와 하는 말을 보면, 그가 천국과 지옥 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입니다.

 

18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으며, 각 사람의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요, 땅에 있는 것은 교회이며,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입니다. 신앙과 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고, 교회마다 다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교리인데, 교회마다 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고,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들은 각자의 신앙과 사랑의 특성에 따라 천국의 수많은 사회 중 하나와 결합하고, 그것을 통해 주님과 결합합니다. 신앙과 사랑으로 주님과 결합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진정한 교회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 천국은 무슨 평평한 곳에 다함께 모여 있는 데가 아닙니다. 오히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동체, 크고 작은 사회로 되어 있는데요, 이는 주님의 선의 종류가 이렇게 많기 때문이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후 각자 자신의 선과 맞는 곳으로 배정됩니다. 사실은 본인은 못 느끼지만, 생전에도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선의 종류와 맞는 천국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무지하고 지혜가 없다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교회가 아직 주님과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진정한 주님의 나라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방법으로 교회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실까요? 그것에 대해 본문 19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통해 겨자씨를 구경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겨자씨를 실제로 보면 아시겠지만, 겨자씨는 들깨만큼이나 작은 씨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신 것은, 그것이 작은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거창한 일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진리에 따라 작은 선을 행하더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길에다 담배꽁초나 일회용 컵을 버리지 않는다든가, 일을 할 때 두 번 손이 가지 않도록 꼼꼼하게 한다든가, 이웃을 보면 밝게 웃으며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천국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작은 진리들을 하나씩 실천할 때 그의 진리는 큰 나무가 되어 씨를 많이 품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자신의 밭에도 떨어지고 이웃의 밭에도 떨어져 끝없이 씨를 퍼뜨립니다. 진리는 이렇게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지만 무한히 천국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문제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 자아의 저항과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진리라 하더라도 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자아와의 싸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겨자씨 한 알의 진리가 큰 나무로 자라고 그곳에 새가 둥지를 틀고 날아다닙니다. 씨가 나무로 자라는 것은 작은 진리로부터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새가 둥지를 틀고 날아다닌다고 했는데, 그것은 주님이 주신 지성을 뜻합니다. 새는 진리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생각과 추론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내면의 교회에서 천국의 새들이 날아다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지금 내가 있는 곳, 이 직장, 이 현장이 오늘 본문의 ‘채소밭’일 수 있으며, 나의 생각 하나, 나의 일처리 하나, 나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다 ‘겨자씨 한 알’일 수 있습니다. 나는 비록 무슨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단지 주님을 사랑해서 그렇게 하지만, 주님은 그걸 씨앗 삼아 나중에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천국을 다르게 비유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여기서 여자는 교회를 뜻하고, 가루는 진리인데 선이 들어있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면 누룩은 뭘까요? 누룩은 악과 결합한 거짓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거짓이 아니라 진짜 거짓, 즉 악의적인 거짓이 누룩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가루 속에 누룩을 넣는 것은 주님께서 영적인 발효를 통해 교회를 정화시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인 시험을 통한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영적인 발효를 통한 방법입니다. 영적인 발효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 25항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악과 결합한 거짓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사회 안으로 흘러들어오면 그때 곡식 가루와 포도즙 안에서 발효 작용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발효로 인해 서로 맞지 않는 것들은 분리되고, 맞는 것은 합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회가 정화되고 맑아진다.” 사람 안에 수많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들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그렇게 선과 악, 진리와 거짓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으면 사람도 사회도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순수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바탕이 순수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악과 거짓들을 이용해 선과 진리를 도발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누룩이 포도즙을 발효시킬 때 원액은 원액대로, 찌꺼기는 찌꺼기대로 모여 서로 분리되는 것처럼 선과 진리가 모이고, 악과 거짓이 따로 모여 두 진영 사이에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교회가 내적으로 정화되고 맑아집니다. 그것이 영적인 발효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발효가 내면에서 일어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영적인 발효와 시험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이념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사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음 차례는 우리 한반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의 두 나라처럼 우리도 지금 좌우가 갈려 극심한 대립 가운데 있으며, 특히 북한 때문입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으로는 악과 거짓의 유혹과 맞서 싸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적인 발효를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선을 순수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의 교회가 새들이 둥지를 틀고 날아다니는 큰 나무와 같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거듭날 때 비로소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의 무지에서 벗어날 때 그들을 통해 새 교회의 진리가 세상 밖으로 끝없이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찾아 몰려올 것입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2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겔17:22-23)

 

아멘

 

 

원본

2020-12-06(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10-15(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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