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10-08(D1)-주일예배(2507, 눅13,10-17),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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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8(D1)-주일예배.축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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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OmvD61wZjY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10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눅13:10-17)

 

 

주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주님에 대한 표상들이 사라졌을 때,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날이 되었고, 또한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하는 날이 되었으며, 구원과 영원한 삶에 대해 묵상하는 날이 되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날이 되었다. (참된 기독교 301)

 

 

말씀에는 주님께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회당은 주님 당시 유대교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율법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렸으며, 교리의 해석을 둘러싼 이견들을 조율했습니다. 때로는 율법을 어긴 사람들을 그곳에서 벌하기도 했지요.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희생과 번제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의 침략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바빌론 등지로 유배되면서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지역마다 회당을 짓고,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유대교회의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런 식으로 자기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은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지요.

 

회당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대부분 회당장이라는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수행했는데, 가끔은 외부에서 랍비들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주님은 이렇다 할 학벌이나 지위가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을 뿐 아니라,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그곳에 귀신 들려 앓으며 장애를 가진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11절에는 그 여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1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말씀에서 여자는 교회를 뜻하기도 하고 자아를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봐야 합니다. 교회를 뜻한다 하는 것은, 그녀가 주님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이고, 자아를 뜻한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직 주님보다 자신의 자아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주님과 인간의 자아를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자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자아를 통해 들어오는 지옥의 귀신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한 싸움이었고, 그러므로 거룩한 싸움이었습니다. 그것을 말씀에서는 열여덟 해 동안 싸운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열여덟은 3과 6을 곱한 수로, 3은 거룩한 것을 뜻하고 6은 내적 싸움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싸웠음에도 여자는 아직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리를 펴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하늘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여전히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여자는 아무리 주님을 바라보려 해도 지옥에 붙잡혀 있어서 마음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 앓고 있는 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여자를 보시고, 그에게 다가가셔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12절과 13절에서는 주님이 병을 고치시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12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주님이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는 것은 주님 혼자 병을 치유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능력이 나와 여자에게 전해지고, 여자가 겸손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이끄시고 인간이 겸손하게 따름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때 여자의 허리가 즉시 펴졌습니다. 허리를 펴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만 바라보던 사람이 이제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26장 13절의 말씀처럼 주님께서 “그의 멍에와 빗장을 부수고 바로 서서 걷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병의 치유가 주님으로부터 이루어졌음을 고백하고 모든 공을 주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악을 끊거나, 또는 선을 행할 때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선하고 지혜롭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영적 질병들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습니다. 곧 또 다른 시험이 오고, 싸움이 다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아주 작은 악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주님이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보고 회당장이 분개했습니다. 14절에서는 그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는데요,

 

14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회당장이 주님께 화를 낸 까닭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그들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진짜 이유가 뭘까요? 회당장은 유대교회의 거짓 교리 안에 있는 사람이고, 주님은 진리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거짓, 참과 거짓은 절대로 화합할 수 없고, 대신 반목하거나 대립합니다. 그래서 회당장은 주님을 미워하고 주님에게 분노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회의 거짓된 교리가 진리를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회당장이 분노하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5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유대교회의 회당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말씀을 왜곡, 거짓 교리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지키게 했는데요, 그것은 진리를 방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겉으로는 진리의 편인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는 진리를 반대하는, 불편해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너희는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소와 나귀는 선과 진리에 대한 애정을 뜻하고, 물은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 물을 먹이는 것은 자아라는 감옥에 갇혀 선과 진리에 목말라하는 자들을 풀어내 마음껏 선과 진리를 마시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린 여자가 귀신에서 놓여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자아 사랑에 가로막혀 주님을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이 오랜 싸움 끝에 주님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일이 안식일에 이루어지는 것은 안식일은 영적 싸움이 끝나는 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소와 나귀를 안식일에 풀어 물을 먹이듯 귀신에 매인 여자를 안식일에 풀어 주는 것이 어째서 합당하지 아니하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17절에는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시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했다고 합니다.

 

17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왜곡해 진리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그럴듯한 말로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고, 그것으로 교인들을 현혹, 진리를 대적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적 진리로 오실 때, 인간이 만든 모든 거짓은 참 진리이신 주님의 빛 아래 설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주님이 말씀하시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이 부끄러워했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열여덟 해 귀신 들린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진리 가운데 들어온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지만, 주님을 과연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스로 물어볼 때가 많습니다. 잘못된 습관을 끊지 못해 계속 끌려다닙니다. 주님의 일보다는 세상의 일 때문에 늘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작은 불행이나 손실에는 크게 낙심하면서 이웃의 불행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은 자아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옥의 영들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의 영들과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마치 열여덟 해 귀신 들린 여자처럼 그렇게 싸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주님이 어느 날 문득 여자의 병을 고쳐주신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는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안식일이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아 사랑을 부추기는 지옥의 영들과 열여덟 해 동안이나 싸웠습니다. 주님이 안수하실 때 겸손하게 주님께 몸을 맡겼습니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그는 지옥의 영들이 놓은 덫에서 벗어나 안식일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주님이 손을 내미실 때 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을 통해 교리를 가르치실 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들,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과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레26:13)

 

아멘

 

원본

2020-11-22(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10-08(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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