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눅22:63-65)

 

영어 성경에는 주님의 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얼굴을 가리고 때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서 주님의 얼굴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에는 주님께서 아론에게 명하시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할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하십니다. 즉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4-26)

 

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사랑과 자비는 모든 악과 거짓을 이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주님의 얼굴을 가리고 때리는 것은, 타락한 교회들이 말씀을 왜곡, 말씀의 생명인 사랑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교리가 바로 사랑 없는 믿음만의 교리, 오직 믿음의 교리입니다.

 

이 ‘오직 믿음’(Faith Alone) 교리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주님은 스베덴보리를 통해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심판의 대상이 모두 이 ‘오직 믿음’ 교리에 함몰된 교회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저는 이 교리가 왜 이토록 위험한 교리일까 좀 생각해 봤는데요, 그것은... 천국은 속 사람의 상태로 가는 곳인데, 이 ‘오직 믿음’ 교리로는 이런 사실을 가볍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즉 평소 속 사람의 상태 관리에 소홀,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1, 22)

 

즉 우리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속 사람의 상태 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직 믿음’ 교리에 취해 속 사람의 상태에 소홀히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없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얘깁니다.  

 

참고로, 이 ‘오직 믿음’ 교리의 출처는 로마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디모데전서 등 주로 사도들의 서신서입니다만, 그러나 이들은 사실은 ‘말씀’(The WORD)이 아닙니다. ‘말씀’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속뜻, 그러니까 내적 의미가 있어야만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성경 66권 중 말씀(The Word)은...

성경 66권 중에서 속뜻(internal sense, inner meaning)이 있는 성경을 '말씀'(The Word, 총 34권)이라 하며,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 : 창, 출, 레, 민, 신, 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시, 사, 렘, 애, 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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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눅22:63-65)

 

아타나시우스 신조(the Athanasian Faith)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제작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도신경, 니케아 신조와 함께 초대교회 3대 신경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신조의 주된 내용은 삼위일체와 성육신입니다.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스웨덴)는 그의 유작,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첫 라틴 출간 1785-1789, 쓰기는 1757, 계19:10에서 멈춤)에서 이 신조를 다루고 있는데, 아래 내용은 그중 어떤 게 ‘말씀을 더럽히는 것’인지 당시 종교, 특히 교황 교회(the papal church, 스베덴보리식 표현, the papal religion이라고도 함)의 부패상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의 뼈와 무덤에 거룩함이 있다는 것, 시체가 기적을 행한다는 것, 사람이 자신의 부를 우상이나 수도원에 성별(聖別)하지 않으면 나중에 연옥에서 고통을 당한다는 것, 천국과 지옥의 권세를 가졌으므로 사람이 신이라는 것 even that there is holiness in the bones of the dead and in sepulchers, that carcasses perform miracles, that man will be tormented in purgatory if he does not consecrate his wealth to idols or to monasteries, that men are gods because heaven and hell are in their power

 

위 하나하나의 사례는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듯 당시 아주 지독하게 부패한 교황 교회의 폐단들이며, 결국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사례들입니다.

 

위 본문은 또한 교회의 마지막 때, 타락한 교회의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니까 말씀을 앞세우는 목적이 주님 사랑이 아닌, 저들 교황 교회들처럼 말씀을 그저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삼는 일체의 종교적 행위가 곧 말씀을 더럽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전체가 이런 건 아닙니다. 기독교 안에 정교회, 카톨릭, 개신교(발생순) 등 여러 기독 신앙이 있는데, 그중 삶은 소홀히 하고, ‘오직 믿음’에 치우친 나머지 그 사고와 언행이 매우 세속화된 모든 교회들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오직 믿음’의 뿌리는 의외로 그 기원이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표현만 마틴 루터 때 생겨났을 뿐, 그 본질은 아벨을 죽인 가인한테까지 올라갑니다. 아벨의 속뜻이 사랑과 신앙이 하나 된 교회, 곧 신앙고백이라면, 가인은 사랑 따로, 신앙 따로의 교회요,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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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눅22:63-65)

 

위 본문은, 겉뜻으로는 기록된 대로 이들이 주님을 괴롭히며 욕보이고 있는 것이지만, 속뜻으로는 말세에 타락한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The WORD)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힘’이라는 건 말씀에 손을 댄다는 것으로, 주님의 말씀에 사람이 무엇을 섞는 것, 곧 자의적으로 해석, 곡해, 왜곡하는 걸 말합니다. 말씀은 오직 말씀하신 분만이 푸실 수 있으며, 이를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계시받은 자만이 풀 수 있으며, 이때에도 푼다고 하지 않고, 전달한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오직 전달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전달자는 자신의 상태를 순도 100%로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절대로 결코 뭘 섞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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