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진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 어느 날 이 생각, 곧 언어 생활에서 주님을 사랑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하며, 깊이 고민 중에 불쑥 다음과 같은 내적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어라. 물론 사랑 안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주님이 듣고 싶어 하시는 말씀을 드리는 게 참 사랑이요, 참 신앙고백임을 알겠고, 가족을 포함한 이웃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그들의 사정을 잘 아시는 주님이시라면 하실 법한 말을 해주는 게 이웃 사랑임을 알겠더군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모를 때에도 잠깐 주님께 마음을 모으면 과연 해야 할 말을 생각나게 하심을, 그리고 그때 그 말을 하면, 그 말을 통해 상황이 놀랍게 달라지고 정돈되는 걸 여러 번, 지금도 계속 확인하고 있습니다. 흡사 다음과 같은 주님 말씀하고도 연결이 되는구나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주님이 듣고 싶어 하시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주님 사랑, 이웃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은 이웃 사랑, 자기가 하고픈 말을 하는 건 자기 사랑, 세상이 듣고픈 말을 하는 건 세상 사랑...
아무리 내 생각에 지금 이 말은 저 사람에게 꼭 필요해 싶더라도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오히려 주님의 진리인 말씀이 모독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말입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주님은 입을 열지 말 것을, 대신 그 상태에서 상대방이 듣기 원하는 말, 곧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말할 것을 명하셨고, 지나고 보면 과연 그러길 잘했다 싶었던 때가 많습니다. 주님도 아시지요. 그러나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맞는 말이고, 귀한 권면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소화할 수 없는 상태라면 오히려 그에게 상처가 되며, 더 나아가 폭언, 폭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천국도 우리는 일층천 갈 바엔 이층천을, 이층천 갈 바엔 삼층천 가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러나 고작(?) 일층천까지만 그 내면이 열린 사람한테 덜컥 이층천 입장을 허락, 그로 하여금 좋다고 이층천에 들어서게 하면, 그는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보이고 숨이 막히며 머리가 깨질 듯하여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얼른 뛰쳐나와 다시 자신의 천국인 일층천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 이층천엔 일층천보다 더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지만, 그의 내면이 일층천까지만 열려 있기 때문에, 이층천을 볼 수도, 이층천 지혜를 감당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삼층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천국은 그에 해당하는 단계의 내면이 열려야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질서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우리에게 맞추시며, 우리를 안 아프게 주님께로 구부리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사42:3)의 속뜻처럼 말입니다.
이는 또한 어떤 면에서는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이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자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신 주님의 사랑과 지혜, 섭리와도 연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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