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5:13, 14)

 

AC.509

 

여기서 단지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것들이 교회의 상태와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점입니다. It is here only to be remarked, that all things are determined by their relation to the state of the church.

 

 

해설

 

이 글은 분량은 짧지만, 스베덴보리의 성경 해석 전체를 떠받치는 아주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어요. 그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 표현도 그 자체로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교회의 상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의미가 정해진다고 봅니다. 이 점을 놓치면, 성경은 쉽게 평면적인 기록으로 보이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상태란 제도나 조직의 외형을 뜻하지 않아요. 그 안에 살아 있는 퍼셉션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같은 말씀이 주어져도, 교회의 퍼셉션이 살아 있고 분명할 때와, 퍼셉션이 일반화되었을 때는 그 말씀이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언제나 표현 자체보다 상태와의 관계를 먼저 보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 원리는 창세기 5장을 읽을 때 특히 중요합니다. 이름들, 날과 해의 숫자들, 자녀들, 그리고 죽음에 대한 표현까지도, 교회의 상태와 연결되지 않으면 그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아요. 상태를 보지 않고 읽으면 그저 족보처럼 보이지만, 상태를 중심에 두고 읽으면 교회의 생명이 어떻게 이동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말해 보자면, 성경에 나오는 어떤 표현도 단독으로 선이나 진리, 생명이나 소멸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언제나 교회의 상태에 따라 달라져요. 같은 ‘’이라는 말도 어떤 상태에서는 새 생명의 시작을 가리키고, 다른 상태에서는 쇠퇴나 끝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의미는 표현 안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태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원리는 아주 실제적인 기준이 됩니다. 같은 본문을 설교하더라도, 회중의 상태가 다르면 강조점과 적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설교자가 임의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상태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성경 해석의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방식으로 봅니다.

 

개인의 신앙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돼요. 같은 말씀을 읽어도 어떤 날에는 위로로 다가오고, 어떤 날에는 마음을 찌르는 경고로 들립니다. 말씀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는 사람의 상태가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모든 것은 상태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AC.509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표현을 붙잡고 씨름하기보다, 지금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상태로 이 말씀을 듣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라는 초대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성경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상태에 따라 말하는 말씀이 됩니다.

 

 

 

AC.508, 창5:13-14,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 세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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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그 교회의 상태에 대한 그들의 관계로 결정된다

 

13-14절,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509

여기서 꼭 주목했으면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은 그 교회의 상태에 대한 그들의 관계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It is here only to be remarked, that all things are determined by their relation to the state of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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