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서는, 날과 해, 그리고 수량, 수치들의 숫자들은 그로 말미암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5절,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493

’과 ‘’가 때와 상태를 의미한다는 건 이제 다음과 같은 추가적 언급 말고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 싶은데요, 그것은 세상에서는 시간과 수량을 숫자로 표현하기 위한 필요성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들이 자연의 끝단들(the ultimates of nature), 곧 자연계의 가장 근본을 이루는 특징들이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말씀에서는, 날과 해, 그리고 수량, 수치들의 숫자들은 그로 말미암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That by “days” and “year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needs no further explication, except to say that in the world there must needs be times and measures, to which numbers may be applied because they are in the ultimates of nature; but whenever they are applied in the Word, the numbers of the days and years, and also of the measures, have a signification abstractedly from the times and measures, in accordance with the signification of the number; as where it is said that there are six days of labor, and that the seventh is holy, of which above; that the jubilee should be proclaimed every forty-ninth year, and should be celebrated in the fiftieth;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20:9)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11) (AC.395)

 

8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10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레25:8, 10)

 

이 외에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주님의 열두 제자 및 that the tribes of Israel were twelve, and the apostles of the Lord the same; that there were seventy elders, and as many disciples of the Lord;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24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25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민11:16, 24-25)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눅10:1)

 

그리고 다른 많은 경우 역시 모두 이렇게 구체적 숫자가 적용되었을 때, 그것으로 인해 어떤 특별한 의미들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숫자가 의미하는 상태입니다.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where the numbers have a special signification abstractedly from the things to which they are applied; and when thus abstracted, then it is states that are signified by the numbers.

 

※ 영계라는 곳은 일단 시공간(視空間)에 대한 개념이 전무(全無)하다고 합니다. 자연계에 사는 우리에게나 친숙한 이 시공간 개념은 해(태양, sun)를 기준으로 비롯되는 것인데, 영계에는 이 자연계의 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계는 대신 상태(狀態, state)와 상태의 변화가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말씀에 사용된, 시간 관련 표현들에 대해서 우리는 시간개념으로 읽지만, 천사들은 상태개념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도 우리는 ‘속히’, 즉 ‘어서, 금방, 곧’으로 읽지만, 천사들은 ‘반드시, 꼭’으로 읽는 것처럼 말입니다. 천국의 상태들은 지상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이렇게 시공간 개념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 그래서 여기 ‘’과 ‘’ 등 시간 관련 표현들 역시 상태, 그리고 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 ‘때와 상태를 나타낸다’는 건...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1950년 6월 25일’이라는 과거 어떤 특별한 날을 접하면 외국인들에겐 뭐, 70여 년 전 무슨 날인가 보다 하겠지만, 우리 민족에겐 정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잊을 수 없는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이 시작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저는 1961년생으로, 6.25 전쟁 발발 10년 후에 태어나 실제로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 풍요와 안락을 누리는 요즘 세대와는 다르게 전쟁이라는 게 어떤 것이라는 걸 나름 찐하게 느끼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그 민족 간 전쟁의 결과, 이후 나라 전체의 삶이 얼마나 빈곤, 빈궁과 결핍에 쩔어 살았는지를 어린 시절,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는 이런 걸 잘 압니다. ‘1950년 6월 25일’이라는 이 날짜 표현 하나에 몇 날 며칠을 얘기해도 다 담지 못하는 엄청난 사연들, 각 개인과 나라, 민족 전체의 상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특별한 어떤 ‘’을 언급했을 뿐인데, 우리 부모 세대는 그 ‘’ 그 시절, 몸서리쳐지는 ‘상태’를 느끼시는 것입니다.

 

※ 태고시대,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런 식의 표현법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을지 실제로는 모르는, 그리고 천국 관점에서는 굳이 지상의 후대(後代)가 그걸 꼭 알아야 하나 싶은 장구한 한 세월, 한 시대를 오늘 본문의 이런 식, 곧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처럼 ‘구백삼십’(930)이라는 숫자 표현 하나에 다 담은 것이고, 천사들은 이 숫자를 읽을 때 그 안에 담긴 모든 ‘때와 상태’를 읽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에벨’의 때까지는 등장하는 모든 사람 이름과 나이 등은 이런 식, 곧 사람 이름은 어떤 특정 한 개인이 아닌, 교회를, 그 시대 교리 및 신앙으로, 나이 등은 때와 상태를 표현하는 용도로 사용된, 그래서 우리는 실제 역사는 아브라함 이후부터임을 염두에 두고 창세기를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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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 (years, )(times)와 상태(states), ‘사람의 죽음은 그런 퍼셉션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

 

5절,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492

여기 ‘(days)과 ‘(years, )는 위에서처럼(AC.482, 487, 488) 때(times)와 상태(states)를, ‘사람의 죽음’은 그런 퍼셉션(perception)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By “days” and “years” are he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as above; by “man’s dying” is signified that such perception no longer ex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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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 4, 7, 10, 13, 16, 19, 26  30절 등에 나오는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의 속뜻 선과 진리이며, 이는 그 시절, 퍼셉션으로 지각되었고, 태고교회는 이 퍼셉션으로만 설명 가능한 교회였으며, 이 퍼셉션은 이후 이어지는 모든 교회의 원리요, 부모였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91

본 장 4, 7, 10, 13, 16, 19, 26 및 30절 등에 나오는 ‘아들’과 ‘’은 같은 걸 상징합니다. 이런 것이 교회요, 이런 것이 ‘자녀들’’(sons and daughters), 즉 이런 것이 선과 진리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린 진리와 선은 뚜렷하게 지각된 것인데요, 태고교회가 바로 이것들로 설명이 되며, 다른 모든 이어지는 교회들의 원리요, 부모였기 때문입니다. The same things are signified by “sons” and “daughters” in this chapter (verses 4, 7, 10, 13, 16, 19, 26, 30), but such as is the church, such are the “sons and daughters,” that is, such are the goods and truths; the truths and goods here spoken of are such as were distinctly perceived, because they are predicated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e principal and parent of all the other and succeeding chu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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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서 (daughters)은 종종 선을 가리킨다.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을 (daughter)로 설명하며, 그래서 교회를 선으로 말미암아 (daughters)이라 한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90

말씀에서 ‘(daughters)은 종종 선을 가리킵니다. 시편입니다. In the Word “daughters” frequently denote goods; as in David:

 

10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14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17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45:10-17) Kings’ daughters were among thy precious ones; at thy right hand doth stand the queen in the best gold of Ophir; the daughter of Tyre with a gift; the king’s daughter is all glorious within; of eyelet work of gold is her raiment; instead of thy fathers shall be thy sons, (Ps. 45:10-17)

 

여기서는 사랑과 신앙의 선과 아름다움을 ‘(daughter)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선으로 말미암아 ‘(daughters)이라 합니다. 이사야 37장 22절과 다른 많은 데서 ‘딸 시온’, ‘딸 예루살렘’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 딸 백성’(사22:4), ‘딸 다시스’(사23:10), ‘딸 시돈’(사23:12) 및 ‘들에 있는 딸’(겔26:6, 8)이라고도 합니다. where the good and beauty of love and faith are described by the “daughter.” Hence churches are called “daughters” by virtue of goods, as the “daughter of Zion” and the “daughter of Jerusalem” (Isa. 37:22, and in many other places); they are also called “daughters of my people” (Isa. 22:4), the “daughter of Tarshish” (Isa. 23:10), the “daughter of Sidon” (verse 12), and “daughters in the field” (Ezek. 26:6, 8).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사37:2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사22:4)

 

10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12이르시되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23:10, 12)

 

6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8그가 들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너를 치려고 사다리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방패를 갖출 것이며 (겔26: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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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sons and daughters),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을 의미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처럼 영어로는 복수형이나 번역은 단수로 합니다. 우리말로는 좀 어색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필요할 경우, 괄호 안에 영어 복수형을 표기합니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9

자녀(sons and daughters)는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을 의미하며, 실제로 ‘아들’은 진리를, ‘’은 선을 의미하고 있음은 예언서들에 나오는 많은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말씀을 보면, 고대에도 그랬지만, 교회의 잉태와 해산(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을 가리켜 ‘자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처럼 말입니다. That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had a perception of, and indeed by “sons” truths, and by “daughters” goods,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prophets; for in the Word, as also in olden time, the conceptions and births of the church are called “sons and daughters,” as in Isaiah: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사60:3-5)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lift up thine eyes round about and see; all they gather themselves together and come to thee; thy sons shall come from far, and thy daughters shall be nursed at thy side; then thou shalt see and flow together, and thy heart shall be amazed, and shall be enlarged, (Isa. 60:3–5)

 

위 본문에서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and “daughters” goods.

 

[2] 시편입니다. In David:

 

11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12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시144:11-12) Deliver me and rescue me from the hand of the sons of the stranger, whose mouth speaketh vanity; that our sons may be as plants grown up in their youth, that our daughters may be as cornerstones hewn in the form of a temple, (Ps. 144:11–12)

 

여기 ‘이방인(the sons of the stranger)은 거짓된 진리들, 곧 거짓들을, ‘우리 아들들’은 진리의 교리들을, ‘우리 딸들’은 선의 교리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stranger” signify spurious truths, or falsities; “our sons” signify doctrinals of truth; “our daughters,” doctrinals of good.

 

[3]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8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43:6, 8) I will say to the north, Give up, and to the south, Keep not back; bring my sons from far,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bring forth the blind people, and they shall have eyes; the deaf, and they shall have ears, (Isa. 43:6, 8)

 

위 구절에서, ‘아들들’은 진리를, ‘딸들’은 선을, ‘보지 못하는 백성(the blind)은 진리를 볼 사람들을, ‘듣지 못하는 백성(the deaf)은 진리를 순종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in which passage “sons” signify truths; “daughters,” goods; the “blind,” those who would see truths; and the “deaf,” those who would obey them.

 

[4]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렘3:24) Shame hath devoured the labor of our fathers from our youth; their flocks, their herds,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Jer. 3:24)

 

여기 ‘아들들’과 ‘딸들’은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where “sons” and “daughters” signify truths and goods.

 

자손’과 ‘아들들’이 진리를 의미함은 이사야를 보면 명백합니다. That “children” and “sons” signify truths is plain from Isaiah:

 

22야곱이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겠고 그의 얼굴이 이제는 창백해지지 아니할 것이며 23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24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사29:22-24) Jacob shall not now be ashamed, neither shall his face now wax pale; for when he shall see his children the work of my hands in the midst of him, they shall sanctify my name, and shall sanctify the Holy One of Jacob, and shall fear the God of Israel; they also that erred in spirit shall know understanding, (Isa. 29:22–24)

 

여기 ‘야곱의 거룩한 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주님을, ‘자손(children)은 거듭난 사람들, 곧 이 본문이 설명하고 있는 대로 선과 진리를 이해하게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holy one of Jacob, the God of Israel,” signifies the Lord; “children” signify the regenerate, who have the understanding of good and truth, as is indeed explained.

 

[5] 다시 Again: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사54:1) Sing, O barren, thou that didst not bear, for more are the sons of the desolate than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Isa. 54:1)

 

여기 ‘홀로 된 여인의 자식(the sons of the desolate)은 초대교회(the primitive church), 즉 이방인들의 교회에 속한 진리를, ‘남편 있는 자의 자식(the sons of the married wife)은 유대교회에 속한 진리들을 말합니다. where the “sons of the desolate” signify the truths of the primitive church, or that of the Gentiles; the “sons of the married wife,” the truths of the Jewish church.

 

[6]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렘10:20)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of me, and are not, (Jer. 10:20)

 

여기 ‘자녀(sons)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다시 where “sons” signify truths. Again: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렘30:20) His sons shall be as aforetime, and their congregation shall be established before me, (Jer. 30:20)

 

여기 ‘자손(sons)은 고대교회의 진리들을 말합니다. 스가랴입니다. where “sons” signify the truths of the ancient church. In Zechariah: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슥9:13) I will stir up thy sons, O Zion, with thy sons, O Javan, and make thee as the sword of a mighty man, (Zech. 9:13)

 

사랑의 신앙에 속한 진리들을 의미하면서 signifying the truths of the faith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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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개념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그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상태개념이다. 본 장에서 아주 자주 언급되는 ‘(days)과 ‘(years)에 대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8

(days)은 일반적인 상태들을, ‘해, 연한(years)은 구체적인 상태들을 의미한다는 것은(AC.482, 487) 말씀, 에스겔에 보면 나옵니다. That “days” signify states in general, and “years” states in special, appears from the Word, as in Ezekiel: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겔22:4) Thou hast caused thy days to draw near, and art come even unto thy years, (Ezek. 22:4)

 

혐오스러운 짓들을 저지르고, 자기들의 죄를 꽉꽉 채우는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상태를 일반적으로는 ‘’로, 구체적으로는 ‘연한’으로 기술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편에 speaking of those who commit abominations, and fill up the measure of their sins, of whose state in general are predicated “days,” and in special “years.” So in David: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시61:6) Thou shalt add days to the days of the king, and his years a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Ps. 61:6)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 중에 나오는 ‘장수(, days)와 ‘나이(, years) 역시 그 나라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where also “days” and “years” signify the state of his kingdom. Again: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시77:5) I have considered the “days of old,” the years of the ages, (Ps. 77:5)

 

여기 ‘옛날(the days of old)은 태고교회의 상태를, ‘지나간 세월(the years of the ages)은 고대교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days of old” signify states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years of the ages,” states of the ancient church.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인데, 여기 ‘원수 갚는 날(the day of vengeance)은 일종의 저주 상태를, ‘구속할 해(the year of the redeemed)는 일종의 축복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last times, where the “day of vengeance” signifies a state of damnation, and the “year of the redeemed” a state of blessedness. Again: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61:2) To proclaim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and the day of vengeance of our God; to comfort all that mourn, (Isa. 61:2)

 

여기 ‘’과 ‘’ 둘 다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where both “days” and “years” signify states. In Jeremiah: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여기 보면 분명히 상태를 의미합니다. where state is plainly meant.

 

[2] 요엘입니다. In Joel:

 

1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욜2:1-2) The day of Jehovah cometh, for it is nigh at hand, a day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a day of cloud and of obscurity; there hath not been ever the like, neither shall be after it, even to 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Joel 2:1–2)

 

여기 ‘’(day)은 ‘어둡고 캄캄한(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짙은 구름이 덮인(of cloud and of obscurity) 상태를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의 상태를, 일반적으로는 전체적인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가랴입니다. where “day” signifies a state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of cloud and of obscurity, with each one in particular, and with all in general. In Zechariah:

 

9내가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슥3:9-10) I will remove the iniquity of that land in one day; in that day shall ye cry a man to his companion under the vine, and under the fig tree. (Zech. 3:9–10)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슥14:7) It shall be one day which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Zech. 14:7)

 

여기 역시 상태를 의미함이 분명한데요,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인 어떤 날이 있을 것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표현들 가운데에도 같은 게 나옵니다. where it is plain that state is meant, for it is said that there shall be a day that is “neither day nor nigh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The same appears from expressions in the Decalogue: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신5:16; 25:15) Hono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prolonged, and that it may be well with thee upon the ground, (Deut. 5:16; 25:15)

 

여기 ‘네 날이 길리라(the days prolonged)는 것은 생명의 길이가 아닌, 어떤 행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where to have the “days prolonged” does not signify length of life, but a happy state.

 

[3] 겉뜻, 겉 글자의 뜻으로는, ‘’은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꼭 있습니다만, 그러나 속뜻으로는, ‘’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그들은 말씀의 속뜻, 내적 의미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게 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시간을 구분하게 해주는 해와 달이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들은 날(days)이 뭔지, 해(years)가 뭔지를 모르며, 대신 상태들과 그 상태들의 변화만 압니다. 그래서 천사들, 말씀의 속뜻, 내적 의미 안에만 있는 천사들 앞에서는, 여기 에스겔에 나오는 말씀 구절의 속뜻처럼 무슨 일이나 시공간에 관련된 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에스겔 이 구절의 겉 글자의 뜻처럼 말입니다. In the literal sense it must needs appear as if “day” signifies time, but in the internal sense it signifies state. The angels, who are in the internal sense, do not know what time is, for they have no sun and moon that distinguish times; consequently they do not know what days and years are, but only what states are and the changes thereof; and therefore before the angels, who are in the internal sense, everything relating to matter, space, and time disappears, as in the literal sense of this passage in Ezekiel: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 (겔30:3) The day is near, even the day of Jehovah is near, a day of cloud; it shall be the time of the nations, (Ezek. 30:3)

 

그리고 요엘서에도 나오는데요 and of this in Joel: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욜1:15) Alas for the day! For the day of Jehovah is at hand, and as vastation shall it come, (Joel 1:15)

 

여기 ‘구름의 날(a day of cloud)은 구름, 즉 거짓을, ‘나라들의 때(the day of the nations)는 나라들, 즉 사악함(邪惡, wickedness)을, ‘여호와의 날(the day of Jehovah)은 황폐함(荒廢, vastation)을 의미합니다. 시간개념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그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상태개념입니다. 본 장에서 아주 자주 언급되는 ‘(days)과 ‘(years)에 대한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where a “day of cloud” signifies a cloud, or falsity; the “day of the nations” signifies the nations, or wickedness; the “day of Jehovah” signifies vastation. When the notion of time is removed, there remains the notion of the state of the things which existed at that time. The case is the same with regard to the “days” and “years” that are so often mentioned in this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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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백 년’, 구백삼십 세의 속뜻, 숫자들은 그 교회의 여러 상태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나 평가. 이들 숫자들에는 오랜 시간 설명해야 하는 아르카나(arcana), 숨겨진 지혜(秘義)가 들어있다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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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이 일반적으로 때와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1장에서(AC.23) 보여드렸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창조의 ‘’은 무슨 다른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을 가지고 ‘항상(all time, all units of time)을 표현하는 건 굉장히 자주 있는 일입니다. 본 구절과 이어지는 구절들(5, 8, 11, 14, 17, 20, 23, 27, 31절)을 보면 아주 분명한 것처럼 말입니다. 위 구절들을 보면, 각 구절마다 해당 시대들의 일반적 상태들(the states of the times) 역시 ‘’을 가지고 표현하며, 여기에 ‘(years)까지 등장하면, 이 일련의 해(the seasons of the years), 곧 이 해로 표현된 기간(the time spans)을 통해서는 그 당시 상태들의 퀄러티(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e nature of the states), 그러니까 특별한 상태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That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was shown in the first chapter, where the “days” of creation have no other signification. In the Word it is very usual to call all time “days,” as is manifestly the case in the present verse, and in those which follow (5, 8, 11, 14, 17, 20, 23, 27, 31); and therefore the states of the times in general are likewise signified by “days”; and when “years” are added, then by the seasons of the years are signified 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us states in special.

 

※ 예를 들어, 아담의 경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5절) 하고 있는데, 여기 나오는 ‘구백삼십’이라는 숫자는 실제 사람 나이가 아닌, 그 시대, 곧 ‘아담’이라는 태고교회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즉 천사들은 ‘구백삼십’이라는 숫자를 통해 ‘아, 태고교회는 저런 교회였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단지 ‘구백삼십’이라는 겉 글자, 겉뜻, 숫자만 보일 뿐이지만, 천사들한테는 오히려 이런 숫자는 안 보이고, 대신 그 속에 담긴 속뜻, 곧 아르카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태고인들은 자신들의 어떤 특별한 숫자들을 가지고 그걸로 그 교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상징했습니다. 그 숫자들은 예를 들면, ‘’(3), ‘일곱’(7), ‘’(10), ‘열둘’(12) 및 이들을 서로 섞어서 생성되는 많은 숫자들인데, 그들은 이 숫자들을 가지고 그 교회의 상태들을 요약, 설명했지요. 이런 이유로, 이들 숫자들에는 오랜 시간 설명해야 하는 아르카나(arcana), 숨겨진 지혜(秘義)가 들어있습니다. 숫자들은 그 교회의 여러 상태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나 평가였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heir numbers, by which they signified various things relating to the church, as the numbers “three,” “seven,” “ten,” “twelve,” and many that were compounded of these and others, whereby they described the states of the church; wherefore these numbers contain arcana which would require much time to explain. It was an account or reckoning of the states of the church.

 

※ 즉, 숫자들은 해당 교회의 여러 상태들을 평가, 표현하는 어떤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초월, 예를 들면, 우리가 몇 시간을 말해야 하는 내용을 단 한 마디, 단 한 문장으로 전달한다고 하는데 아마 이 숫자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같은 양상이 말씀 여러 군데서 발생하는데요, 특히 예언서입니다. 유대교회의 제의들(祭儀, rites)을 보면, 그 안에도 역시 ‘몇 번(, times) 및 ‘어느 정도의 양(, measures)이라는 두 종류의 숫자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번제(燔祭, sacrifices), 소제(素祭, meat offerings), 봉헌물(oblations) 및 다른 것들과 관련되는 것들인데, 다들 그 드려짐에 따라 그곳의 거룩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팔백’(800)이라는 숫자 및 다음 절에 나오는 ‘구백삼십’(930)이라는 숫자,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들에 나오는 햇수들에 들어있는 것들, 즉 그들 고유의 일반적 상태에 적용된, 그들 교회 상태에 생긴 수많은 변화들은 일일이 나열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다루게 될 부분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기회를 보아 숫자 ‘열둘’(12)까지 단순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드릴 텐데요, 이 단순 숫자들의 의미를 알 수 있기 전까지는, 다른 그보다 더 큰 합성수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The same thing occurs in many parts of the Word, especially the prophetical.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lso there were numbers, both of times and measures, as for instance in regard to the sacrifices, meat offerings, oblations, and other things, which everywhere signify holy things, according to their application. The things here involved, therefore, in the number “eight hundred,” and in the next verse, in the number “nine hundred and thirty,” and in the numbers of years in the verses following—namely, the changes of state of their church as applied to their own general state—are too many to be recounted. In a future part of this work,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ake occasion to show what the simple numbers up to “twelve” signify, for until the signification of these is known, it would be impossible to apprehend the signification of the compound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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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들(, days), ‘해들(, years),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의 속뜻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486

날들(, days)은 일반적으로, ‘해들(, years)은 구체적으로 때들과 상태들(times and states)을 의미하며,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by “years,” times and states in special;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per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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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위 4 25절의 과는 다른 교회, 교리가 다른 교회들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5

여기 ‘’은 위 4장 25절의 ‘’과는 다른 교회라는 사실은 435번 글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교리가 다른 교회들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앞 장 17, 18절에 나오는 ‘에녹’과 ‘라멕’을, 여기 5장 21절과 30절에서는 다른 교회들인데 같은 이름인 ‘에녹’, ‘라멕’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That a different church is here meant by “Seth” from that which was described above (Gen. 4:25), may be seen at n. 435. That churches of different doctrine were called by the same name, is evident from those which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4:17–18) were called “Enoch” and “Lamech,” while here other churches are in like manner called “Enoch” and “Lamech” (Gen. 5:21, 30).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18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창4:17-18)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2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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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h)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흡사했었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4

(Seth)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흡사했었다는 사실은 이 교회에 대하여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 하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모양’이라는 말은 신앙과, ‘형상’이라는 말은 사랑과 관련됩니다. 이 교회가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관하여 태고교회와 같지 않았다는 사실은, 방금 앞서 말씀드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신 말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AC.476), 이 말씀은 여섯째 날 상태에 있는 영적 인간이라는 의미인데요, 여섯째 날 상태에 있는 영적 인간, 즉 사랑이 주 원리라기보다는 여전히 신앙이 사랑과 결합된 상태가 바로 이 사람의 모양이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called “Seth” was very nearly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is evident from its being said that the man begat in his likeness, according to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the term “likeness” having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for that this church was not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regard to love and its derivative faith, is plain from its being said just before,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as was said above, so that the likeness of this man was to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that is, love was not so much the principal, but still faith was conjoined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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