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구하는 자에게 성령, 곧 거룩한 진리와 생명을 주시는 주님
5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알을 달라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5-13)
성령을 주시는 것은 신성한 진리로 깨달음을 주시는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생명을 주시는 것을 뜻한다. 그 생명은 총명과 지혜의 생명이다. (AC.9818:24, 출28:3 주석 중) In Luke: If ye, being evil, know how to give good thing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shall the Father who is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em that ask him? (Luke 11:13); “to give the Holy Spirit” denotes to enlighten with Divine truth, and to endow with the life thence derived, which is the life of intelligence and wisdom. (AC.9818:24)
사람이 진리를 배우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성으로 진리를 추론(推論), 경험의 지식을 통해 진실을 검증하는 방법이고요, 다른 하나는 추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각(知覺)하는 방법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책을 통해 진리를 배울 때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주님으로부터 진리의 영감을 받아 깨달음을 얻을 때의 방법입니다. 그때는 마치 전등에 불이 켜지듯 불시에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것을 논어에서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는 기쁨, 즉 ‘멀리 있는 친구가 불현듯이 찾아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역시 친구가 찾아오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5, 6절입니다.
5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일정을 짜고 그에 따라 예산을 세우고 필요한 물품들을 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남의 여정에서도 선과 진리 같은 영적 자산들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잘 배분해 사용합니다. 그런데 거듭남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가끔 선과 진리의 균형이 깨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은 많은데 진리가 부족하거나, 진리는 많은데 선이 부족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여행하는 친구가 찾아와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를 나타냅니다. 즉 진리는 있는데 선이 없는 상태입니다. 자신에게 진리만 있고 선이 없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입니까? 이웃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보일 때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진정한 회개가 어려울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기 안에 선이나 사랑이 없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럴 때는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저에게 선이 없으니 선을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선을 구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떡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밤’은 선이 없는 때를, 그리고 ‘떡’은 선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선이 없는 사람이 주님 앞에 나아가 선을 구할 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실까요? 7, 8절입니다.
7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진리만 있고 선이 없을 때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연결하는 내면의 문이 닫힙니다. 그래서 속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들이 겉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올 수 없고, 그러므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문이 닫혀있는 것이며, 주님으로부터 떡을 받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고 했습니다. ‘침실’은 속 사람을 나타내고, ‘아이들’은 속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으로부터 선을 얻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그가...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의 친구는 진리 안에 있는 사람, 즉 진리를 이해하고 믿는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선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진리를 믿기는 하는데 주님으로부터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로부터 믿기 때문입니다. 자아로부터 주님을 믿는 사람은 진리를 믿으면서도 주님의 나라에는 뜻이 없고, 세상의 권세와 부귀에만 뜻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고,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구에게는 주지 아니할지라도 간청하는 사람에게 요구대로 선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9, 10절에서는,
9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주님께 ‘구하는 자, 찾는 자, 문을 두드리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무조건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저에게 사랑이 없으니 사랑을 주십시오’하는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아에서 나오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으로 선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 가운데 있는 사람에 대해 ‘계시록 해설’ 815번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주님의 나라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어떤 것을 구한다면 그의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이 아니다. (AE.815)
주님은 우리가 세상 사는 동안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것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필요한 만큼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입니다. 그것을 구할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 안에 있는 것이고, 주님 앞에 간청하는 자, 문을 두드리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 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계시록 해설’ 815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당신으로부터 오는 믿음을 산을 바다에 던지는 능력에 비유하셨다. 왜냐하면 산은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을 뜻하고, 바다는 지옥을 뜻하기 때문이다. (AE.815)
주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이라야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생명이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11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알을 달라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천국의 비밀’ 9818번 글에서는 ‘성령을 주시는 것은 신성한 진리로 깨달음을 주시는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생명을 주시는 것을 뜻한다. 그 생명은 총명과 지혜의 생명이다. (AC.9818:24)’라며, 눅11:13 말씀을 풀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주님께 구하는 모든 기도의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성령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은 모든 어둠을 흩어버리는 깨달음의 빛이며 지혜의 영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종류의 악과 거짓을 몰아내는 신성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생명으로 인하여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거룩한 것을 원하게 하시고 구하게 하시며 그것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성령의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축원합니다.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21-22)
아멘
원본
2020-01-12(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7-11(D3)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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