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예배(2023/7/13, 눅11:14-23), '말 못하게 하다, 강한 자, 더 강한 자,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의 속뜻'
즐겨찾기/한결같은교회.예배 2023. 7. 13. 10:5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말 못하게 하다, 강한 자, 더 강한 자,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의 속뜻
14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눅11:14-23)
‘육정’(肉情, the will of the flesh)과 ‘사람의 뜻’(the will of man)(요1:13)은 떼어놓는 것(what disjoin)인 반면,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은 결합하는 것(what conjoin)이며, 그래서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sons of God)이라, 그분의 ‘자손’(seed)이라 하셨는데, 그것은 이들에게 천국을 주시겠다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AC.1608:2) For the will of the flesh and the will of man are what disjoin; but love and the derivative faith are what conjoin; therefore they in whom are love and the derivative faith, are they who are born of God. And because they are born of God, they are called “sons of God,” and are his “seed,” to whom is given the heavenly kingdom. (AC.1608:2)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은 4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13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11:4, 13)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바울 시대에도 이단적인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은 그것을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이며,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복음에 대해 잘못 가르치기는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류 교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삼위일체를 말하면서 속으로는 아버지 하나님 따로, 아들 하나님 따로, 성령 하나님 따로 이렇게 세 분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 전부터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비록 그럴 의도는 없었을지라도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이른바 대속과 믿음만의 신앙을 만들어 내어 이 역시 비록 그럴 의도는 없었을지라도 실제로는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어 죽임당하시고 부활하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가 아닌,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속(代贖)이란 대신하셨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를 통해 주님이 밝히신 바에 따르면, 구원받는 것,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무슨 표를 받거나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 입국 요건만 충족되면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는 그런 것입니다. 그 입국 요건이란 다름 아닌, 당사자의 속 사람, 곧 영의 상태가 천국 상태이면 되는 것입니다. 영계는 상태와 그 변화의 나라이기 때문인데, 어떤 사람의 사후 영의 상태가 천국에 맞으면 천국으로, 지옥에 맞으면 지옥으로 배정되는, 그런 시스템인 것이지요. 중요한 건, 각 사람의 영, 곧 속 사람의 상태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과 결정의 영역이지 이걸 누가 대신, 곧 주님이라도 대신 해주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원 문제에 있어 주님이 해주실 수 있는 범위는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는 배경, 즉 선악 간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自由)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즉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이 세상 삶이 지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면 그걸 주님이 오셔서 바로잡아 주셨고, ‘자, 그동안은 태생적으로 어려웠지만 이제는 전적으로 네 결정과 선택에 달렸으니 잘 해보렴. 내가 네 평생 네 곁에서 끝까지 도와주마...’ 하시는 것이지요. 이 정도가 ‘대속’과 ‘구속’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은 방금 말씀드린 ‘자유’와 ‘구속’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구속이란 인류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영적 자유를 되찾는 일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 인간의 영적 상태는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유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아를 부정하고 주님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직접 세상에 오셔서 부활하심으로 해서 지옥을 완전히 이기시고, 지옥에 눌려있던 인간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자유의 회복이며, 인간의 구속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통해 스스로 하는 것처럼, 즉 자신의 의지로 자아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스스로 하듯, 즉 자기 의지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하시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열매는 선한 삶의 행위를 뜻합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복음서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주님이 가르치시지 않은 진리, 즉 ‘대속’의 복음과 ‘오직 믿음’의 교리를 전하고, 또 그렇게 믿는 이유가 뭘까요? 그들의 내면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인 체어리티(charity, 仁愛, 이웃 사랑)의 신앙을 가로막는 지옥의 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영들은 사람들의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을 통해 우리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와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마음대로 지배합니다. 그러므로 자아와 세상에 대한 입장과 주관, 집착과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체어리티의 신앙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그런 상태에 있는 신앙인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본문 14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14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주님이 말을 못 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합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체어리티의 신앙이 참된 신앙임을 인정 못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진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그동안 그의 안에 있는 지옥의 영들이 진리를 방해했기 때문인데, 만약 그가 주님 앞에 진심으로 겸손해진다면, 그리고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주님은 그에게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 주십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아버지는 사랑 자체이신 주님이시고, 아들은 그 사랑으로부터 빛나는 진리시라는 것과,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둘이 아니라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신앙과 체어리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됩니다. 그것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에게서 풀려나 비로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한다는 것’은 주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체어리티를 동반한 신앙이 온전한 신앙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체어리티의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주님에 대해, 그리고 체어리티의 신앙에 대해 고백할 때, 잘못된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체어리티의 신앙을 이단 신앙이라고 비난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이라는 근거가 무엇이냐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15절과 16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5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주님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냈을 때, 주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알세불이란 ‘높은 거처의 주인’이란 뜻으로 자세한 건 인터넷에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누군가 체어리티의 신앙을 고백할 때, 그것은 지옥의 바알세불로부터 오는 신앙, 즉 이단 신앙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을 시험하여 하늘의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늘의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체어리티의 신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이라는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12장에서
3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마12:39-40)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요나가 사흘 밤낮을 물고기 배 속에 있는 것은, 주님이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해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주님보다 자신의 자아를 더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아무리 큰 기적을 보여 주시더라도 체어리티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기적을 보여 주시지 않고,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하신 것입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은 주님이 모진 시험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표상하는데요,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도 체어리티의 신앙을 가지고 지옥의 시험을 견디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때 그런 우리의 신앙이 하늘로부터 오는 신앙이며, 구원 신앙이라는 것이 저절로 증명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18절에서 또 말씀하십니다.
18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체어리티의 신앙은 바알세불의 신앙이 아니라 지옥의 바알세불과 맞서 싸우는 신앙임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바알세불의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은 체어리티의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체어리티의 신앙을 공격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알세불의 신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21절과 2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21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이 말씀에서는 인간의 자아를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서 ‘강한 자’는 바로 인간의 자아를 뜻합니다. 그리고 ‘무장’은 자아에서 나오는 선과 진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강한 자가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킨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진리와 선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믿는 것입니다. 가끔 자신의 판단력과 의지만으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영적으로 거듭날 수 있다 믿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나오는 선은 겉으로만 선하게 보일 뿐 본질에 있어서는 악하고 거짓된 것이며, 그렇기에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는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강한 자’는 지옥의 영들을 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지옥의 영들이 와서 우리를 꼼짝 못 하게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에게서 나오는 선이나 진리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도움 없이 인간 혼자서는 어떻게 해도 지옥의 영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옥의 영들에 의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과 진리마저 모두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믿던 무장과 재물을 모두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3절에서 주님께서는
23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즉 ‘나와 함께해야 한다’ 하시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반대하는 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가 된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헤치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신앙인들은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주님만 믿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 혼자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주님과 함께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있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체어리티의 신앙 안에 견실하게 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주님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 하려고 하는 걸까요?
주님과 함께하는 길은 나를 버리는 길이며, 나를 희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게 하시더라도 순종하며 따라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길을 자꾸 멀리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하는 길이야말로 의로운 길이고, 구원의 길, 진정한 지름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주님은 또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과 화합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셋이 아니라 한 분 주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체어리티와 신앙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님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흩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파당을 지어 사람들을 흩어지게 합니다. 한 분 주님을 세 하나님으로 나눕니다. 신앙에서 체어리티를 분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해야 하고, 모든 것을 모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흔들림 없이 체어리티의 신앙을 고백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주님의 그러하신 은혜가 오늘 이 메시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35:6)
아멘
원본
2020-01-26(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7-13(D5)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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