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 설명, '리메인스'(remains, 남은 자)에 관하여 (2024/6/1)
그러니까 유형(有形),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진짜라 믿고, 그런 삶을 추구하던 사람이 어떤 일을 계기로 ‘아, 무형(無形), 즉 보다 가치로운 삶, 윤리, 도덕, 사람다움, 더 나아가 영적인 삶이라는 게 있구나!’ 깨닫는 걸 말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 첫 계기가 고3 때 모친 교통사고 사망이 아니었나 합니다. 저는 그전까지는 아인슈타인처럼 대학교수가 되어 캠퍼스 내 교수 사택에서 살며, 평생 학자의 길을 걷는 걸 목표로 하였으나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별(死別)로, 그동안 추구하던 삶에 대해 ‘아, 내게 있는 이 모든 것, 내가 꽉 쥐고 있는 이것들은 언제든 갑자기 나를 떠날 수 있는 것들이구나!’ 깨닫게 되었고, 이후 그전까진 한 사람의 흔한 모태(母胎) 신앙인, 그러니까 교회를 그냥 일종의 문화생활, 써클활동 정도로만 다니던 신앙생활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데요, 곧 관점의 변화, 전엔 내 삶의 행복을 위해 신앙은 그저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 옵션이었다면, 이후엔 신앙을 이용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그러니까 신앙이라는 옵션을 선택한 후, 그 안에서 내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한 단계 올라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표현들이 살짝 좀 이상하지요? ‘신앙을 이용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이라... 그러니까 신앙도 내가 천국 가기 위해서이고, 말씀 가까이하는 것도 내가 병 낫고, 복 받고, 내 삶의 형통과 핏줄들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 내 두드러진 활동, 우아하고 세련된 매너 등을 통해서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받는 걸 좋아하면서 하는 신앙생활 말입니다. 물론, 이런 게 다 조금씩은 필요한 거긴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하지요? ㅎㅎㅎ
네, 아직 이런 상태가 바로 한 사람의 거듭남 초기 상태이며, 기특하게도 신앙생활이라는 걸 시작은 했지만, 아직은 머리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가슴 신앙으로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죠.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이 다 그 연약함으로 인해 이런 순서로밖에는 진행될 수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이런 잘난 체와 실수를 허락하십니다. 제가 선을 넘지 않도록 보살피시면서 말이죠...
고3, 대1 때 시작된 이런 상태변화가 6학년 3반이 된 지금 돌아보면 몇 번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때그때 혹시 필요하면 더 나누겠습니다.
오늘 내용대로라면, 저 유명한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의 비유 앞부분,
11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15:11-19)
에서, ‘스스로 돌이켜’ 부분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하는 부분들 등이 바로 이 사람 안에 주님이 넣어두신 리메인스를 주님이 이때 꺼내쓰신 예가 아닐까 싶고,
또, 스베덴보리를 통해 주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아담으로 시작, 나중에 므두셀라, 라멕으로 이어지는 태고교회, 이 교회의 변질과 타락, 황폐화로 인한, 자기 사랑, 세상 사람의 광풍 한 가운데 종말의 때에 등장하는 ‘노아’ 말인데요, 이 ‘노아’가 바로 첫 교회시대인 태고교회의 리메인스라고 합니다. 한 개인에 있어 리메인스가 하는 저런 역할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창세기 아브라함 전까지는 그 등장하는 모든 인물명은 사실은 신앙명, 교리명, 교회명을 말하는데요, 그러니까 ‘아담’하면 ‘아담’이라는 신앙을 가진 교회, ‘셋’하면 ‘셋’이라는 신앙을 가진 교회 등등 말이죠. ‘노아’ 역시 그 당시 정말 희귀했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앙을 끝까지 붙든 사람들과 그 교회, 그 신앙을 말합니다. 그런 신앙의 사람들, 그런 교회를 ‘노아’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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