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수준, 즉 상태가 서로 다른 가족이 사후에 재회할 수 있는가?
스베덴보리는 영계를 왕래하면서 “영적으로 다른 상태의 가족이 서로를 만나느냐”는 질문을 수백 명에게 받았고, 또 실제 장면들을 여러 번 보면서 그 답을 아주 정교하게 정리했습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영적 수준, 즉 상태가 달라도 일시적 재회는 가능하다. 그러나 영원한 결합은 오직 영적 친화성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즉, “만남은 가능”, 그러나 “함께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가지를 매우 정확하게 구분했습니다.
1. 스베덴보리가 본 실제 장면 - “다른 수준에 살더라도, 사랑하면 찾아온다”
스베덴보리는 어느 남성과 어머니의 관계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아들은 지상에서 신앙을 진실하게 살았고, 천국의 한 공동체로 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지상에서는 신앙을 고백했지만, 내적 삶은 그렇지 못해 중간영계에서 오랫동안 정화 과정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천국 공동체에 이미 소속된 상태였지만, 어머니가 중간영계의 한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는 사랑의 인도하심으로 그곳에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기록합니다. “그는 어머니가 있는 곳에 곧바로 나타났고, 그녀는 즉시 아들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들이 “천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흐름이 그를 어머니의 상태로 ‘임재’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영계의 자연스러운 원리입니다.
2. 만남은 가능하지만, ‘함께 사는 것’은 영적 친화성에 달려 있다
스베덴보리는 여러 사례를 관찰하면서 확인했습니다. 서로 다른 천국 층위에 있어도 서로의 상태에 맞출 수 있으면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수준 차이’가 공간적 거리가 아니라 상태의 밀도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함께 사는 것(거처를 함께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선과 진리의 수준을 가진 이들과 자연히 함께 살게 된다.” 즉, 잠시 만나는 것은 사랑으로 가능, 그러나 영원한 결합은 본질(affectional state)에 따라 결정이 원리입니다.
3. 스베덴보리가 본 세 가지 재회 형태
스베덴보리는 수많은 재회 장면을 관찰한 뒤, 이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① 서로 사랑했지만 영적 수준이 달랐던 가족 - “일시적 재회는 가능”
예를 들면, 신앙적으로 깊이 살았던 자녀와 신앙이 얕았던 부모, 도덕적으로는 선했지만 신앙적으로는 약한 형제, 경건했던 배우자와 세속적이었던 배우자 등은 중간영계에서 충분히 서로를 만납니다. 이 만남은 지상에서의 감사, 못다한 대화, 사랑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후 각자 자기 본질에 맞는 천국의 공동체로 들어가면 영원한 동거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슬픔이 없는 헤어짐”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간 영혼은 타인의 상태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 영적 수준이 상당히 비슷했던 가족 - “천국에서도 교류가 계속된다”
이 경우는 같은 종류의 선, 같은 방식의 신앙, 비슷한 내적 애정을 가진 가족입니다. 이들은 종종 천국에서도 서로 가까운 공동체에 들어가며, 정기적으로 서로 교류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가족은 천국에서 더욱 가까워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영적 친화성이 만들어내는 결합입니다.
③ 지상에서는 가족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경우 - “만남 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지상에서는 가족관계였지만, 한 사람은 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애·권력욕·증오를 사랑했다면, 이 둘은 중간영계에서도 서로를 자연스럽게 떠나게 됩니다. 이때의 ‘이별’은 지상적 슬픔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천국인은 악을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할 수 없다. 그 사랑은 천국의 사랑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4. 영적 수준이 달라서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사랑의 기억”은 존중된다
천국의 사람들은 지상의 가족관계를 완전히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지상적 집착이 아니라 감사와 자비의 형태로 남습니다. “그가 나에게 해준 사랑이 있었다.”, “우리는 지상에서 함께 걸어갔다.”, “그때 나는 보호받았다.” 이런 기억은 천국에서 빛처럼 따뜻하게 반짝입니다. 그러나 “왜 내 가족은 천국에 오지 않았는가?”라는 슬픔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단호히 말합니다. “천국에는 슬픔이 없다. 슬픔을 남기는 기억은 주님이 제거하신다.”
5. 결정적 통찰 - ‘영적 수준 차이’는 재회를 막지 않지만, ‘본질의 차이(사랑의 종류)’는 영원한 결합을 막는다
스베덴보리가 수천 건의 사례에서 얻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만나게 되고, 본질(선)은 함께 살게 한다. 그러나 악은 결합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즉, 만남은 사랑에 의해, 결합은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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