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25.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Verse 4. And Abram went as Jehovah spoke unto him; and Lot went with him. And Abram was a son of five years and seventy years when he went forth out of Haran.

 

아브람’, 이미 말씀드린 대로, 휴먼 에센스 측면에서 주님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By “Abram,” as already said, is represented the Lord as to his human.

 

※ 휴먼 에센스(human essence), 이 에센스를 우리말로 옮기기가 살짝 개운치가 않습니다. 굳이 옮기자면, ‘인간으로서의 본질(本質)’ 정도가 되겠습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정수(精髓)’, ‘진수(眞髓)’도 있습니다. 창12는 주님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주님의 인성(人性)이 신성(神性)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 곧 신적 인성이 되어가시는 과정이므로 필요한 곳에서는 단순히 ‘인성’으로 번역하겠습니다.

 

※ ‘아브람’은 주님의 휴먼 에센스 측면을, ‘아브라함’은 주님의 디바인(Divine) 에센스 측면을 각각 표상합니다. (AC.1426)

 

※ 1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 휴먼 에센스를 유전하신 주님이 그러나 자신에게 디바인 에센스 역시 있음을 처음 자각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AC.1407)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신성한 것을 향하신 주님의 진보, 나아가심을 말합니다. And Abram went as Jehovah spoke unto him” signifies his progression toward Divine things;

 

※ 주님의 휴먼 에센스가 디바인 에센스로 되어가는 첫발을 떼신 것, 그 여정의 시작을 말합니다. (AC.1427)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감각적인 것을 말합니다. ‘’ 역시 주님을 표상하는데, 특별히 육체적 감각을 가진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주님을 표상합니다. and Lot went with him” signifies what is sensuous; by “Lot” is represented the Lord as to his sensuous and corporeal man;

 

※ 주님은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것 외에는 여느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몸, 곧 육체적 감각을 가지셨는데, ‘’은 주님의 이런 측면을 표상합니다. 주님은 타고나신 이런 외적 속성들로 하여금 일생을 통해 천적 속성들과 하나 되게 하셔서 결국 신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주님의 인성, 주님의 휴먼은 우리와 달리 나중에 신적 인성, 디바인 휴먼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화, 영광화(glorification)입니다. (AC.1428)

 

아브람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직은 신성이 많지 않으셨음, 충분하지 않으셨음을 말합니다. and Abram was a son of five years and seventy years” signifies that as yet there was not very much of the Divine;

 

※ 말씀에서 ‘’(7), ‘칠십’(70)은 거룩함(AC.395, 433, 716, 881), 특히 주님을 가리키며, 그래서 신적 거룩, 디바인 홀리니스(Divine holiness)를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숫자 ‘’(5)는 ‘적다’를 표시합니다(AC.649). 그래서 ‘칠십오’(75)는 신성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AC.1429)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주님의 불투명한 상태를 말합니다. when he went forth out of Haran” signifies an obscure state of the Lord.

 

※ ‘하란’은 데라, 아브람, 그리고 라반, 곧 우상숭배와 관련된 곳입니다. 즉, 예배가 외적일 뿐이었던 곳이지요. 이런 ‘하란’도 내적 의미로 넘어가면 더 이상 ‘우상숭배’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어슴푸레하다’, ‘불투명하다’ 같은 의미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위 표현이 곧 주님의 불투명한 상태를 표상하는 이유입니다. (AC.1430)

 

※ 이상으로 위 4절의 내적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이 신성(神性, Divine things)을 향하실 때, 주님의 육체적 감각들도 함께 하였으며, 그때는 아직 주님의 신성이 충분하지 않아 어슴푸레한 상태였다.

2021-09-16(D5)-매일예배(2193, 아케이나말씀리딩.창12,4),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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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r2oir1Vy3w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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