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Verses 14–17.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33. 무슨 사랑이라는 게 전혀 없다면 삶이라는 게 절대 불가능하며, 사랑에서 나오는 무엇이 없으면 기쁨이라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정말 누가 안 가르쳐줘도 잘 압니다. It is in everyone’s power very well to know that no life is possible without some love, and that no joy is possible except that which flows from love.
사랑이라는 거, 삶이라는 거, 즐거움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만약 누가 사랑이라는 것들을, 같은 말이지만, 무슨 원하는 것들을, 이런 게 다 사랑에 속한 건데요, 이런 걸 만약 제거할 수 있어 정말 그랬다고 하면, 그 즉시 그는 무슨 사고,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게 되어, 그는 마치 제가 저세상에서 보아 온 무슨 죽은 사람처럼 되고 말 겁니다. Such however as is the love, such is the life, and such the joy: if you were to remove loves, or what is the same thing, desires—for these are of love—thought would instantly cease, and you would become like a dead person, as has been shown me to the life.
※ 이런 사실을 믿지 않는 영이 있어 그를 모든 입류(入流, influx,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로 흘러드는 어떤 것)로부터 일시 차단된 상태에 있게 하자 그는 그 즉시 마치 무슨 뭍으로 나온 바닷속 해파리처럼 되어 살짝살짝 그저 꿈틀대기만 하더랍니다. 그는 그동안 자기 힘과 능력으로 버젓이 활동도 하며, 이것저것을 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입류로 그랬던 것입니다.
자기 사랑(the loves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s of the world)은 그 안에 뭔가 삶과 즐거움 비슷한 게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잘 보면 이 둘은 참사랑(true love)하고는 완전 정반대인데요, 참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이 주님을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하는 것이며, 또한 자기의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은 사실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움이지요. 사람이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는 그에 비례해서 이웃을, 그리고 그 결과 주님을 미워하게 됩니다. The loves of self and of the world have in them some resemblance to life and to joy, but as they are altogether contrary to true love, which consists in a man’s loving the Lord above all things, and his neighbor as himself, it must be evident that they are not loves, but hatreds, for in proportion as anyone loves himself and the world, in the same proportion he hates his neighbor, and thereby the Lord.
참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참된 삶은 주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이며, 참된 기쁨은 참된 삶을 살아갈 때 맛보는 기쁨입니다. Wherefore true love is love to the Lord, and true life is the life of love from him, and true joy is the joy of that life.
참사랑은 오직 하나만 존재하며, 그래서 참된 삶도, 그 삶에서 맛보는 참된 기쁨,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역시 그러하며, 바로 이 모든 것을 천국 천사들은 누리고 있습니다. There can be but one true love, and therefore but one true life, whence flow true joys and true felicities, such as are those of the angels in the heavens.
34. 사랑과 신앙은 분리가 허락된 적이 없습니다. 이 둘은 하나가 되어 같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명체’가 처음 언급될 때, 그들은 하나로 간주되었으며, 그래서 이르기를,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Let there be [sit]) 하신 것입니다. Love and faith admit of no separation, because they constitute one and the same thing; and therefore when mention is first made of “luminaries” they are regarded as one, and it is said, “Let there be [sit]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 우리말 번역은 복수형이지만 라틴 표현은 sit, 즉,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라틴 sum의 현재 능동태 접속법 3인칭 단수형입니다.
이런 정황과 관련, 주님의 허락으로 후술되는 다음 내용들은 정말 놀라운 내용들입니다. Concerning this circumstance it is permitted me to relate the following wonderful particulars.
천적 천사(天的, the celestial angels)들은 천적 사랑(the celestial love)을 힘입어 모든 것을 주님으로 말미암는 천사들입니다. 그들은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 안에서 이 사랑으로 말미암으며, 지상의 언어로는 표현하기가 여의치 않은 그런 어떤 삶과 지성의 빛 가운데 있습니다. The celestial angels, by virtue of the celestial love in which they are from the Lord, are from that love in all the knowledges of faith, and are in such a life and light of intelligence that scarcely anything of it can be described.
그러나 이와 달리, 신앙의 교리 관련 지식들은 많이 알면서도, 그러나 사랑은 없는 그런 영들의 경우, 천국 마당의 첫 번째 문턱조차 도저히 넘지 못한 채, 도로 달아나버려야 하는, 어떤 냉기 어린 삶이나 희미한 빛 가운데 있습니다. But, on the other hand, spirits who are in the knowledge of the doctrinals of faith, without love, are in such a coldness of life and obscurity of light that they cannot even approach the first threshold of the court of the heavens, but flee back again.
그들 중 더러는 그분의 계명대로 살지 않았으면서도 말하기를, 자기들은 주님을 믿어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마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Some of them, while not living according to his precepts, say that they have believed in the Lord, and it was of such that the Lord said in Matthew: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1-22, 끝까지) Not everyone that saith unto me, Lord, Lord,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the heavens, but he that doeth my will: many will say to me in that day, Lord, Lord, have we not prophesied through thy name. (Matt. 7:21–22, to the end)
[2] 그래서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은 또한 신앙 안에 있으며, 그렇게 해서 또한 천국적 삶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은 신앙 안에 있다 말은 하면서도 사랑의 삶 가운데 있지는 않은 사람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ose who are in love are also in faith, and thereby in heavenly life, but not those who say they are in faith, and are not in the life of love.
사랑 없는 신앙생활은 열 없는 햇빛과도 같습니다. 겨울, 아무 것도 자라지 못 하는, 만물이 무기력하게 죽은 것 같은 그런 겨울과도 같은 것입니다. 반면, 참신앙은 사랑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그런 건데요, 봄철 햇빛과도 같은 것입니다. 봄이 되면 겨울과 달리 빛 외에도 열이 있어 이 해의 열, 곧 햇볕의 결과, 만물이 소생하여 자라고 번성합니다. 대지로 하여금 열매 맺고 비옥하게 하지요. The life of faith without love is like the light of the sun without heat, as in the time of winter, when nothing grows, but all things are torpid and dead; whereas faith proceeding from love is like the light of the sun in the time of spring, when all things grow and flourish in consequence of the sun’s fructifying heat.
이것은 영적이고 천국적인 것과 관련하여 정확히 일치하는데요, 말씀에서 세상과 지표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It is precisely similar in regard to spiritual and heavenly things, which are usually represented in the Word by such as exist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신앙이 없거나 사랑 없는 신앙을 또한 주님은 ‘겨울’로 비유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주님이 시대의 끝, 종말, 완성을 미리 말씀하실 때, No faith and faith without love are also compared by the Lord to “winter,” where he foretell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in Mark: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막13:18-19)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for those shall be days of affliction. (Mark 13:18–19)
하셨는데요, 여기서 ‘이 일’(flight, 비행, 들림, 휴거)은 마지막 때를, 그리고 또한 모든 사람이 자기가 죽는 때를 의미하지요. “Flight” means the last time, and also that of every man when he dies.
※ 휴거는 특히 개신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겉 글자의 뜻 그대로 이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본문의 마태복음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24:31)
AC.4060을 보면, 이 말씀은 새 교회의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택하신 자들’은 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방에서’는 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교회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들을 각각 의미합니다.
즉, 휴거란 종말의 때임에도 불구, 여전히 사랑과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주님의 새 교회를 세우시는 걸 의미하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갑자기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고 하는 게 아닙니다. 태고교회 종말의 때에, 그런 암흑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노아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주님 신앙을 이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그들을 리메인스처럼 보관하셨다가 나중에 쓰신 것입니다.
‘겨울’은 사랑이 결핍된 삶을, ‘환난의 날’은 저세상 삶의 끔찍한 상태를 말합니다. “Winter” is a life destitute of love; the “day of affliction” is its miserable state in the other life.
35. 사람에게는 두 가지, 타고나는 능력이 있는데, 바로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입니다. Man has two faculties: will and understanding.
후자가 전자에 의해 다스려질 때, 이 둘은 한 마음이 되며, 그것은 곧 하나의 삶, 겉과 속이 같은 삶이 됩니다. 그때 사람은 자기가 의도하고 생각하는 것을 또한 마음먹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When the understanding is governed by the will they together constitute one mind, and thus one life, for then what the man wills and does he also thinks and intends.
그러나 만일 후자, 곧 이해가 의지와 모순되고 서로 상충될 때, 이때가 바로 말로는 신앙을 가졌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신앙과 모순되게 살고 있을 때인데, 이때는 하나였던 마음이 둘로 나뉘게 됩니다. 이때는 마음 하나는, 즉 말로는, 머리로는 천국을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여 천국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만, 다른 마음, 곧 의지로는 지옥을 향하는 경향을 띠게 됩니다. 이 경우, 의지가 모든 행위에 있어 행위자(doer)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은 만일 주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면 지옥으로 곤두박질쳐지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But when the understanding is at variance with the will (as with those who say they have faith, and yet live in contradiction to faith), then the one mind is divided into two, one of which desires to exalt itself into heaven, while the other tends toward hell; and since the will is the doer in every act, the whole man would plunge headlong into hell if it were not that the Lord has mercy on him.
36. 신앙을 사랑으로부터 분리해 온 사람들, 신앙 따로, 사랑 따로인 사람들은 사실은 신앙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They who have separated faith from love do not even know what faith is.
신앙이라는 걸 떠올릴 때, 어떤 사람들은 그건 단지 생각일 뿐이라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건 주님을 다이렉트로 생각하는 거라고 합니다. 신앙을 생각할 때, 신앙의 교리(the doctrine of faith)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When thinking of faith, some imagine it to be mere thought, some that it is thought directed toward the Lord, few that it is the doctrine of faith.
신앙이라는 것은, 신앙의 교리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일종의 지식과 인정(認定, acknowledgment) 및 그 교리들이 가르치고 있는 모든 걸 또한 복종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But faith is not only a knowledge and acknowledgment of all things that the doctrine of faith comprises, but especially is it an obedience to all things that the doctrine of faith teaches.
신앙이 가르치고 있는, 그리고 사람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이런 신앙 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면 그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The primary point that it teaches, and that which men should obey, is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for if a man is not in this, he is not in faith.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마가복음에서 아주 명료하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This the Lord teaches so plainly as to leave no doubt concerning it, in Mark: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The foremost of all the commandments 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therefore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and with all thy strength: this is the foremo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namely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there is none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막12:29-31)
마태복음에서는, 주님은 이 둘 중 첫째를,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셨고,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1)라고 하셨습니다. In Matthew, the Lord calls the former of these the “first and great commandment,” and says that “on these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Matt. 22:37–41)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1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마22:37-41)
‘율법과 선지자’는 신앙 관련 범 우주적 교리, 곧 말씀 자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The “law and the prophets” are the universal doctrine of faith, and the whole Word.
37. 본문 14절, 광명체들로 하여금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의 경우, It is said that the luminaries shall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여기에는 사실은 현재 수준에서 밝힐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습니다. 글자 상으로는 그런 종류의 비의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도 말이지요. In these words are contained more arcana than can at present be unfolded, although in the literal sense nothing of the kind appears.
여기서는 이제 말씀드리는 내용 정도로도 충분하겠습니다.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 사이 교대(alternations), 반복이라는 게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든 세부적으로든 말이지요. 날의 변화, 해의 변화 같은 것입니다. Suffice it here to observe that there are alternations of things spiritual and celestial,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which are compared to the changes of days and of years.
날의 변화의 경우, 아침, 정오, 그리고 저녁, 밤을 거쳐 다시 아침이지요. 해의 변화도 비슷합니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거쳐 다시 봄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게 있는 것입니다. The changes of days are from morning to midday, thence to evening, and through night to morning; and the changes of years are similar, being from spring to summer, thence to autumn, and through winter to spring.
열과 빛도 그렇고 그래서 그 결과, 땅에서 나는 소산물들도 그렇습니다. Hence come the alternations of heat and light, and also of the productions of the earth.
이 모든 것이 영적, 그리고 천적인 것들의 교대, 반복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To these changes are compared the alternations of things spiritual and celestial.
이런 교대와 변화, 반복, 다양성이 없는 삶은 단일, 획일적이 되며, 그 결과, 그런 삶은 전혀 삶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선과 진리도 전혀 알아차리거나 구분, 심지어 감지조차도 할 수 없게 됩니다. Life without such alternations and varieties would be uniform, consequently no life at all; nor would good and truth be discerned or distinguished, much less perceived.
이런 교대, 반복을 선지서에서는 ‘법도’(ordinances)라 하셨습니다. These alternations are in the prophets called “ordinances” [statuta], as in Jeremiah: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35-36) Said Jehovah, who giveth the sun for a light by day, and the ordinances of the moon and of the stars for a light by night, . . . these statutes shall not recede from before me. (Jer. 31:35–3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렘33:25) Said Jehovah, If my covenant of day and night stand not, and if I have not appointed the ordinances of heaven and earth. (Jer. 33:25)
이 일들에 관해서는, 이 일들은 주님의 신적 자비에 속한 일들인데, 창세기 아래 구절에서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입니다. But concerning these things, of the Lord’s Divine mercy, at Genesis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8:22)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14-17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속뜻)
주님은 속 사람 안에 사랑과 신앙의 불을 켜시고 이것으로 이후 모든 주님의 질서를 베풀고자 하셨습니다. 사랑으로는 사람의 의지와, 신앙으로는 사람의 이해와 각각, 그리고 함께 연동되어 하나가 되게 하시며, 신앙 관련, 수많은 진리의 교리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두 큰 빛을 사람의 마음에 허락하셨습니다.
※ 우리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두 크고 거룩한 빛, 사랑과 신앙의 빛이 환히 켜졌음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비록 아직은 지상에 머물며 살고 있지만, 그러나 천적 천사들 못지않게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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