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출20:18-21)
①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 ‘흑암’
이스라엘인데도 그들에게 주님이 우레와 번개,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로, 그리고 흑암으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에 정말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 생각엔 밝고 환한 영광의 빛으로, 영롱한 아침 이슬빛으로, 푸른 초장에 생명 주시는 싱그러운 빛으로 나타나시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내면 상태에 맞춰 나타나십니다. 똑같은 햇볕일지라도 봄철 숲을 비추면 그곳에 생명의 소생이 있지만, 거름더미를 비추면 부패가 일어나며 악취가 진동하듯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내면, 우리의 내적 역량, 우리 영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십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이랬기 때문에, 즉 그들은 주님의 진리를 겉 글자로만 알았을 뿐 그 안에 담긴 속뜻, 아케이나(arcana)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에게는 주님의 나타나심이 ‘암흑’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②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우리가 한여름 사막에 뜬 정오의 태양을 맨눈으로 보는 건 대단히 위험한 것처럼, 사람은 주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진리에 그대로 노출될 수 없습니다. 그대로 소멸도 되거니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 수준에 맞춰 외적 형태를 갖춘, 사람 눈높이에 맞춰 많이 다운그레이드시킨, 지상의 언어로 된 진리를 공급하십니다. 그러니 많이 거칠고 탁하지요... 모세가 바로 그런 중재 역할을 표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우신 진리를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주님의 빛을 늘 구해 영적 개안(開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영적 체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참으로 머리(understanding)의 사람, 겉의 사람이었으나 지난 2013년 12월, 제 안의 영을 보는 체험 이후, 한 단계 영적 시프트를 시작, 주님의 은혜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란 말씀의 속뜻에 별 거부감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35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6:35-38)
①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원수’의 속뜻은 악하고 거짓된 사람입니다. 악인과 선인은 그 선대하는 방법이 다른데요, 선인에게는 직접적으로 선을 베풀어야 하지만, 악인에게는 간접적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즉 악인에게는 선과 진리를 가르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벌이나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보복하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손에 맡기셔야 합니다.
②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우리가 먼저 순수해지려고 하면, 주님은 우리를 순수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런 상태, 곧 주님이 만들어 주신 순수한 상태가 바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의 상태이며,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아가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아 선을 행하게 됩니다.
③ ‘비판하지 말라’
‘비판’의 속뜻은 다른 사람의 내면 상태, 영의 상태를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생각이 일어날 때 긴장하시고, 아무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때 이 생각을 덜컥 붙잡으면 그때부터 골치 아파지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셔야 합니다.
자기 내면만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속사정을 간섭하고 오지랖 펴는 걸 주님은 금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내면 살피는 일은 오직 주님의 소관이시기 때문인데요, 그냥 우리는 우리 할 일, 곧 주님 앞에 제 할 도리인 주님 사랑, 이웃 사랑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갑천을 나가보니 이 추위에 철새들이... 어휴! 앞으로는 주머니에 새 먹이들을 좀 가지고 다녀야겠습니다...
15도둑질하지 말라 16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20:15-17)
① ‘도둑질하지 말라’
두 가지 영적 도둑질이 있는데, 그 하나는 타인의 선과 진리를 빼앗는 것으로, 가령, 목회자가 말씀을 모르고 잘못 가르치거나 알고도 무슨 잘못된 신념으로 계속 가르쳐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에 기반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음에도 제힘으로 한 것인 양 버젓이 모든 공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영적 도둑질입니다.
우리는 늘 ‘이 모든 것이 다 주님 덕분입니다’ 겸손히 고백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②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이웃을 사랑함’은 이웃이라는 선을, 곧 이웃 안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는 것’은 선을 악이라 하고, 진리를 거짓이라 하는 것이요, 반대로 악을 선이라 하고, 거짓을 진리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지 말아라’ 하십니다.
③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사람은 자기 안에 와있는 지옥의 영들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탐심이 일어납니다만, 그러나 그때 그냥 그대로 지나가게 내버려 둬야 합니다. 탐심과 같은, 지옥에서 온 것들이 알아서 자기가 왔던 지옥으로 그냥 되돌아가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때 부주의하게 이걸 덥석 붙잡게 되면, 그러면 이제부터 참 곤란한 상황이 전개되는데요, 그건 바로 이게 자신의 의지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생명이 되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이 내면화, 생명화된 악이 튀어나오기 때문인데요, 곧 이렇게 해서 자신의 인격이 되며, 이렇게 해서 악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의 악들이 우리의 생명이 되지 못하도록 정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십계명 전체의 메시지입니다.
정말 추운 날입니다. 이곳 대전 오전 10시 반 현재 영하 12도... 여러분, 몸 따숩게 하고 지내시기 바랍니다. 샬롬!
29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눅6:29-34)
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레24:20)
주님은 보복하는 신이 아니신, 언제나 인간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끊임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신이심을 기억하신다면, 위 레위기 말씀과, 그리고 오늘 본문, ‘이 뺨, 저 뺨’, ‘겉옷, 속옷’ 말씀은 ‘보응의 법칙’(the law of retaliation), 곧 ‘심은 대로 거둔다’, ‘행한 대로 갚는다’는 법칙에 대한 말씀임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당한 어떤 악한 일을 내가 직접 되갚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보응 법칙’으로 인해 그 악이 그 악인에게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②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뺨’의 속뜻은 내적 진리, ‘옷’의 속뜻은 외적 진리입니다. 위 말씀은 악인들은 진리를 공격, 흠집을 낸다는 말씀이며, 그러므로 그들을 상대로 진리 논쟁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진리 논쟁을 할 시간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옥은 오직 진리만 공격합니다. 선 안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며,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듯, 선한 삶, 선행을 힘쓰는 사람들이 가장 안전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③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말씀에서 ‘구하다’, ‘가져가다’, 혹은 ‘빌리다’, ‘빌려가다’는 진리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즉 참 진리를 구하는 자에게 네가 가진 진리를 나누어 주라는 말씀이며, 그때 ‘대가를 바라지 말고 주라’는 말씀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것’은 주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가로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살인하지 말라 14간음하지 말라 (출20:12-14)
오늘은 어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두 번째 시간으로, 어제 못다 한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②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의 속뜻은 주님의 선과 진리, 곧 주님 자신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선과 진리로 거듭나 구원받기 때문인데, 그래서 주님이 사실은 우리의 영원한 ‘부모’이십니다. 천사들은 선을 아버지로, 진리는 어머니로 이해합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는 사실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선과 진리를 그 자체로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이 ‘공경’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살짝 정의롭게 보이거나 명분상 그럴듯해 보여도 주님의 선과 진리를 자신의 어떤 종교적, 경제적 등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 영성, 영성하면서, 신앙, 신앙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야심, 야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주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사람은 나중에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선과 진리의 하나 됨에 힘쓰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는 서로를 표현하는데요, 즉 선은 진리를 표현하고, 진리 역시 선을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표현된 선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배운 진리를 가지고 선한 삶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 이 선과 진리가 하나 된 삶에 정말 진심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참된 제자 됨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 하늘의 천국과 지상의 교회를 말합니다.
‘네 생명이 길리라’, 천국은 선과 진리, 곧 주님의 신성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천국의 기쁨과 생명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데요, 우리가 ‘부모 공경의 삶’을 살면 지상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이 기쁨과 생명을 더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