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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14 6. 눅1:67-75, '사가랴의 예언 (1)' 1

 

사가랴의 예언 (1)

 

 

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눅1:67-75)

 

 

사가랴는 아이가 태어난 지 팔 일째 되는 날,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고,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혀가 풀리면서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이어지는 본문 67절로 75절입니다.

 

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아시는 것처럼, 사가랴는 천사를 만난 다음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는데요, 천사가 전하는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다가 아이의 할례 때, 서판에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적은 후에야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주께서 천사를 통해 하신 말씀을 온전히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사가랴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영적 의미로 어떤 뜻일까요? 그것에 대해 우리는 지난 시간에 충분히 말씀을 나눴는데요, 그동안 사가랴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은 그 속뜻으로는 사가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 변화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영적 변화들인 것인데요, 이를테면, 사가랴-엘리사벳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받는 것이며, 말씀을 통해 새로운 신앙이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고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는 것은 신앙의 결실을 보는 것, 다시 말하면, 신앙으로 사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그의 내면에 선을 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냥 사가랴라 하지 않고, ‘그 부친 사가랴’라 하는데요, 이는 새삼스럽게 사가랴가 요한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일까요? 말씀에서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선을 뜻합니다. 아버지가 선을 뜻하는 까닭은, 선으로부터 진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태양의 열기로부터 빛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선이 진리보다 앞선다는 것이죠. 그래서 말씀에서는 선을 아버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는 표현은, 사가랴로 표상되는 사람들에게 있는 선 가운데로 진리가 흘러들어와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때 사가랴는 예언을 시작합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처음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다음에는 진리를 바탕으로 선을 획득하는 과정이 따르고요, 그러고 나면, 다시 그 선을 통해 이번에는 진리를 획득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그동안 출애굽기 말씀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사실입니다.

 

※ 이순철 목사님은 2016년 당시 청주 새 교회 담임을 하시면서 격주로, 그러니까 누가복음과 출애굽기를 격주로 강해하셨는데요, 위 말씀은 이런 배경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처음에는 진리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이 끝나자 곧 선의 시험이 왔고요, 그러고 나서 다시 진리의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시험과 선의 시험이 반복되면서, 주님으로부터 한번은 진리를 획득하고, 한번은 선을 획득하는 과정이 계속됩니다. 그런 식으로 내면에서 끊임없이 영적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들, 즉 사가랴와 같은 사람들에게 주님은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요, 그에게 예언을 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했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가랴의 예언은 어떤 것입니까? 사가랴의 예언은 한마디로, 성령이 사가랴의 입을 통해서 세상에 오실 주님을 증언하는 것인데요, 이제 그 증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68절입니다.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그냥 하나님을 찬송하라 하지 않고,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라 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오실 주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을 찬송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당신 자신을 한 번도 여호와라고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그렇게 부르셨다면, 주님은 아마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도 전에 유대인들로부터 큰 화를 당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여호와라 하시지 않고, 그러한 사실을 우회적으로만 밝히셨습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12장 29절인데요,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12:29-30)

 

여기서 ‘’라는 표현은 주님 자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주님에 대해 ‘’라고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신명기 6장 4, 5절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거기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4-5)

 

앞에서 마가복음 12장 29절의 말씀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다만 구약의 여호와라는 표현을 주님이라고 바꾼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오신 주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위한 가장 첫 번째 진리이기 때문에, 오늘 사가랴는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도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69, 70절에서 사가랴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말씀은 모두 세상에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집’은 주님이 세우실 새 교회를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진리로 세상에 오시는 주님을 표상하기 때문인데요, ‘다윗의 집’은 주님께서 새로 세우시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뿔’은 진리를 통해서만 발현되는 선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님의 전능하심을 뜻합니다. 주님은 그 전능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고자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하신 것이지요. 사가랴는 계속해서,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라고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구약의 모든 예언서에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일관되게 밝히신 진리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생긴 이래로 주님께서 줄곧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오셔서 이루신 일은 어떤 것입니까?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주님은 유대교회가 타락해 종말로 치달을 때, 그리고 교회가 만들어내는 악과 거짓 진리가 인간의 양심을 질식시킬 때, 그 악과 거짓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내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에서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악과 거짓을 말합니다. 그것으로부터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72절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는 모든 일은 오직 주님의 자비에서 비롯되는 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한순간도 인간을 미워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인간은 죄를 짓거나 할 때, 주님께서 벌을 내리시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때가 많은데요, 그런데 주님은 한 번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요, 인간들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을 내시거나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가엾게 여기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인간의 무지함이 가엾고요, 악과 거짓을 상대로 늘 넘어지고, 좌절하는 모습을 측은히,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기억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비밀’ 9849번 글에서는 주님이 기억하신다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은 가엽게 여기시는 것이며, 그러므로 당신의 자비로 보호하시고 구해내시는 것을 뜻한다. (이순철 역) remembering,” when said of the Lord, denotes to have compassion, and thus from mercy to preserve or deliver

 

주님은 긍휼과 자비로 그렇게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겠다 하십니다. 그러면 거룩한 언약은 어떤 것입니까? 주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요, 그렇게 해서 인간을 모두 빠짐없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여기서 ‘우리 조상’은 인류 최초의 교회인 태고교회를 말합니다. 그 교회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에서 주님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여기서 아브라함은 천적인 것, 다시 말하면, 주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태고교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고교회 사람들은 오직 주님만 사랑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일은 오직 주님만을 사랑했던 태고교회 이래로 줄곧 주님께서 맹세하신 일입니다. 인간이 하는 맹세는 거짓이지만, 주님께서 하시는 맹세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리입니다. 맹세라는 것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으며,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진리를 맹세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5장 17,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7-18)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의 주님에 관한 모든 예언은 가능성으로서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잠재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일 뿐, 아직 실현되지 않은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그 모든 가능성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이렇게 자연적인 이 세상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는 우리 삶 가운데서, 삶의 구체적 행위 가운데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을 뿐, 우리의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오심으로써 그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하셨는데요, 여기서 율법은 모세가 기록한 말씀이고요, 선지자는 구약의 모든 예언서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나 선지자는 바로 주님의 말씀 전체입니다. 주님은 그 말씀의 진리를 실현키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원수의 손’이란 조금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악과 거짓의 위세를 뜻합니다. ‘원수의 손’이라고 할 때, 손은 능력을 뜻합니다. 악과 거짓에게도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영적 싸움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힘만으로 대처하고자 할 때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무시무시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 앞에서는 마치 바람 앞에 티끌처럼, 먼지처럼, 그리고 빛 앞에 짙은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것이 악과 거짓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악과 거짓이 신앙인들에게 얼마나 위력적이며, 두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이미 배운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앞에는 홍해가 버티고 있고, 뒤로는 애굽의 기병과 전차가 쏜살같이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영적 시험 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는 위기의 상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를 압도하는 악과 거짓의 위력 앞에서 우리는 늘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천국의 비밀’ 2826번 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순철 역) to “fear” is to distrust, or not to have faith and love.

 

저는 가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외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주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다만 저 자신을 믿지 못할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아직 주님보다는 나를 더 신뢰하고, 주님보다는 세상의 감각적인 것들을 더 사랑하는 모습이 분명히 보입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라며 절망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네가 종신토록 내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너무나도 든든하고 마음에 힘이 되었습니다. ‘성결과 의로 섬긴다’는 것은 ‘신앙과 삶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말씀에서 ‘성결하다’는 것은 진리, 또는 신앙에 대해 하는 말이고요, ‘의롭다’는 말은 사랑, 또는 선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결과 의로 섬기는 것, 두려움 없이 섬기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될 수 없고, 오직 주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일을 하시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기 마음속 애정을 늘 살피면서 자아가 하려는 일을 끊임없이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몇 주 동안, 사가랴가 겪은 일들은 어쩌면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리를 믿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사가랴와 같이 성령이 함께 하시고,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언이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이 주신 진리를 그대로 이웃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멀리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주님께서 주신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전하는 것이 꼭 말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 하는 모든 일 가운데 성령이 저절로 역사하시도록 하면 됩니다. 아마 그것이 사가랴가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예언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며, 그러므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진리를 전하려고 하다 실패했던 지난날 여러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지 않고, 내가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가랴의 입을 통해 성령이 가르치신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세상에 오신 주님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여호와 하나님을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는 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서 아들은 진리로 세상에 오신 주님이시며, 아버지는 주님 안에 신적 선으로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예언은,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주 오래전, 아담으로 상징되는 태고교회 때부터 주님께서 약속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 일으키신 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말씀하신 것이며,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그 맹세를 지키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가랴의 세 번째 예언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것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는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고, 종신토록 주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섬기게 하려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종신토록’이란 말과, ‘두려움 없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 한결같지 않고, 또 늘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요, 나의 자아가 어디로 움직일지 몰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고 합니다. 각 사람에게 오셔서 타고난 자아를 천국의 자아로 바꾸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의와 성결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가랴를 통한 성령의 은혜가 우리 성도님께도 꼭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1)

 

아멘

 

 

원본

2016-07-10(D1)

청주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3-02(D5)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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