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새 교회의 의미, 유대교회의 내적, 외적 양면성, 라헬은 내적, 레아는 외적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2

이 새 교회가 어떤 유형의 교회인지는 유대교회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유대교회는 내적(內的, internal), 외적(外的, external) 양면성을 가진, 곧 천적, 영적인 것들로 이루어진 내적 교회와, 자연적인 것들로 구성된 외적 교회로 된 교회였습니다. 내적 교회는 라헬로, 외적 교회는 레아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 아니 오히려 말씀에서 야곱으로 이해된 그의 후손은 오직 외적인 그런 것들만 원하거나 겉으로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레아가 라헬보다 먼저 야곱에게 주어졌습니다. 눈이 침침한 레아로는 유대교회를, 라헬로는 이방의 새 교회를 표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야곱은 예언서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전도된(顚倒, perverted) 상태 가운데 있는 유대교회를,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의 참된 외적 교회를 가리킵니다. 내적 교회를 의미할 때는 이스라엘이라 하는데,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더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How the case was with this new church may be seen from the Jewish church, which was both internal and external; the internal church consisting of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nd the external church of natural things. The internal church was represented by Rachel, and the external by Leah. But as Jacob, or rather his posterity understood by “Jacob” in the Word, were such as to desire only external things, or worship in externals, therefore Leah was given to Jacob before Rachel; and by blear-eyed Leah was represented the Jewish church, and by Rachel a new church of the gentiles. For this reason “Jacob” is taken in both senses in the prophets, in one denoting the Jewish church in its perverted state, and in the other the true external church of the gentiles. When the internal church is signified, he is called “Israel”; but of these matters,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more will be said he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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씰라’, 두발가인,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 구리’, ’, 나아마, 두발가인의 누이’의 속뜻

 

22절,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And Zillah, she also bare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and the sister of Tubal-Cain was Naamah.

 

421

씰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새 교회의 자연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두발가인,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는 자연적 선과 진리의 교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구리’(brass, 銅)는 자연적 선을, ‘’(iron, 鐵)는 자연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나아마, 두발가인의 누이는 어떤 비슷한 교회, 곧 그 교회 밖에 있는 자연적 선과 진리의 교리를 의미합니다. By “Zillah” is signified, as previously stated, the mother of the natural things of the new church; by “Tubal-Cain, an instructor of every artificer in brass and iron,”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brass” denoting natural good, and “iron” natural truth. By “Naamah, the sister of Tubal-Cain” is signified a similar church, or the doctrine of natural good and truth outside of tha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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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에 그렇게나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는 이유

 

21절,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420

말씀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며, 다들 저마다의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 의미들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그때그때 적절한 곳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시편 말씀으로만 말씀드립니다. In the Word mention is made of various instruments, each having its own signification, as will be shown, of the Lord’s Divine mercy, in its proper place; here however we shall adduce only what is said in David: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6) I will sacrifice in the tent of Jehovah sacrifices of shouting, I will sing, yea, I will sing praises unto Jehovah, (Ps. 27:6)

 

여기 ‘장막(tent)은 천적인 것을, ‘즐거운(shouting), ‘노래하며(singing), 그리고 ‘찬송하리로다(singing praises)는 거기에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표현합니다. where by “tent” is expressed what is celestial, and by “shouting,” “singing,” and “singing praises,” 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Again:

 

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4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시33:1-4) Sing unto Jehovah, O ye righteous, for his praise is comely for the upright; confess ye to Jehovah on the harp, sing unto him with the psaltery, an instrument of ten strings. Sing unto him a new song, play skillfully with a loud noise; for the Word of Jehovah is right, and all his work is in the truth, (Ps. 33:1–4)

 

다음과 같은 내용에 관한 신앙의 진리들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denoting the truths of faith, concerning which these things are said.

 

[2] 영적인 것들, 곧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은 수금과 비파(psaltery, 14, 5 세기 현악기의 일종), 그리고 찬송 및 관련 악기들을 가지고 찬양하였던 반면, 신앙의 거룩한 천적인 것들은 트럼펫 같은 관악기를 가지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전에서 왜 그렇게나 많은 악기들이, 그리고 그렇게나 자주 사용되었는지 하는 이유인데요, 그것은 이런저런 찬양의 주제들마다 해당 특정 악기로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Spiritual things, or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the harp and psaltery, with singing and analogous instruments, but the holy or celestial things of faith were celebrated with wind instruments, such as trumpets and the like; and this was why so many instruments were used about the temple and so often, in order that this or that subject might be celebrated with certain instruments; and in consequence of this the instruments came to be taken and understood for the subjects that were celebrated with them.

 

[3] 또 Again:

 

2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3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시71:22-23) I will confess to thee with the psaltery, even thy truth, O my God; unto thee will I sing praises with the harp, O thou holy one of Israel; my lips shall sing when I sing praises unto thee, and my soul which thou hast redeemed, (Ps. 71:22–23)

 

여기서도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where also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Again: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시147:7) Answer to Jehovah in confession, sing praises upon the harp unto our God; (Ps. 147:7)

 

감사(confession)는 신앙의 천적인 것들에 대한 존중, 그래서 ‘여호와’가 언급되는 것이며, ‘수금으로 찬양함’은 신앙의 영적인 것들과 관련, 그래서 ‘하나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시 confession” has respect to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and therefore mention is made of “Jehovah”; and to “sing praises upon the harp”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wherefore “God” is spoken of. Again: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9:3) Let them praise the name of Jehovah in the dance, let them sing praises unto him with the timbrel and harp, (Ps. 149:3)

 

여기 ‘소고’(timbrel, 탬버린)는 선을, ‘수금’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선과 진리는 그들이 찬양하는 것으로, 곧 주님이십니다. where the “timbrel” signifies good, and the “harp” truth, which they praise.

 

[4] 다시 Again:

 

3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3-5) Praise God with the sound of the trumpet; praise him with the psaltery and harp; praise him with the timbrel and dance; praise him with stringed instruments and the organ; praise him upon the loud cymbals; praise him upon the cymbals of shouting. (Ps. 150:3–5)

 

이들 악기들은 찬양의 주제들인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을 가리킵니다. 이걸 모르면, 사람들은 이 각각의 악기들이 무슨 특별한 의미 없이도 여기 이렇게나 많이 언급되었다 믿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언급하면서, These instruments denote the goods and the truths of faith which were the subjects of praise; for let no one believe that so many different instruments would have been here mentioned unless each had a distinct signification. Again, referring to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43:3, 4) O send out thy light and thy truth, let them lead me, let them bring me unto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and to thy habitations, and I will go in to the altar of God, unto God, the gladness of my exultation; yea, I will confess unto thee upon the harp, O God, my God. (Ps. 43:3, 4)

 

[5] 이사야에서, 신앙에 속한 것들과 그에 관한 지식들을 언급하시면서 In Isaiah, referring to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사23:16) Take a harp, go about the city, play well, sing many songs, that thou mayest be called to remembrance. (Isa. 23:16)

 

같은 내용이 계시록에서는 계속해서 훨씬 더 명료하게 표현됩니다. The same is expressed still more plainly in John: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5:8) The four animals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 fell down before the lamb, having every one of them harps, and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which are the prayers of the saints, (Rev. 5:8)

 

여기 누가 보아도 이 말씀은 생물들과 장로들이 글자 그대로 거문고를 갖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대신, ‘거문고(harps)는 신앙의 진리들을,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신앙의 선들을 의미하는 말씀이라는 게 분명합니다. where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that the animals and elders had not harps, but that by “harps” are signified the truths of faith, and by “golden vials full of incense offerings,” the goods of faith.

 

시편에서는 이들 악기들의 퍼포먼스들을 ‘찬송(praises)과 ‘감사’(confessions)라 하고 있습니다. (시42:5; 69:30-31) 그리고 계시록 다른 곳에서 In David the performances on the instruments are called “praises” and “confessions.” (Ps. 42:5; 69:31) And in another place in John:

 

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14:2-3) I heard a voice from heaven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I heard the voice of harpers harping with their harps, and they sang a new song. (Rev. 14:2–3)

 

또 다른 구절에서 And in another place: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계15:2) I saw them standing by the sea of glass having the harps of God. (Rev. 15:2)

 

천사들과 영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자기들의 차이에 따라 사운즈, 곧 노래 및 악기 연주 소리뿐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구분하며, 또 사운즈 및 그로 인한 악기 소리들과, 선과 진리의 본성과 본질(the nature and essence of the good and the true) 사이 어떤 일치가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똑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인정한다는, 이런 사실들은 언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It is worthy of mention that angels and spirits distinguish sounds according to their differences with respect to good and truth, not only those produced in singing and by instruments, but also those of voices; and they admit none but such as are in accord, so that there may be a concord of the sounds, and consequently of the instruments, with the nature and essence of the good and the true.

 

※ 즉 천국 그 수많은 천사와 영들 중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구성원은 철저히 그 선과 진리의 하나 됨이 다 다르기 때문이며, 천국에서 소리, 즉 사운드(sound)라는 것은 바로 이 선과 진리의 하나 됨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천국은 ‘똑같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입니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42:5)

 

시69:30-31

30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69: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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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금’, 현악기, 그 속뜻은 영적 진리, 퉁소’, 현과 관의 중간, 영적 선

 

21절,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419

천적인 것들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인 것처럼, 영적인 것들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입니다. 참이 무엇이며, 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건 신앙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둘 다 신앙의 지식들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가르침대로 되는 건 천적인 일입니다. 신앙에 이 둘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들이 두 개의 악기, ‘수금과 퉁소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듯, ‘수금(The harp)은 현악기이며, 그래서 영적 진리를 의미하는 반면, 현악기와 관악기의 중간인 퉁소(the organ)는 영적 선을 의미합니다. As celestial things are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so spiritual things are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for it belongs to faith to understand not only what is true, but also what is good. The knowledges of faith involve both. But to be such as faith teaches is celestial. As faith involves both of these, they are signified by two instruments, the harp and the organ. The harp, as everyone knows, is a stringed instrument, and therefore signifies spiritual truth; but the organ, being intermediate between a stringed instrument and a wind instrument, signifies spiritual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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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금과 퉁소의 속뜻, 앞 절은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다룬 반면, 이번 절은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음

 

21절,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418

앞 절은 사랑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다룬 반면, 이번 절은 신앙에 속한 영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걸 ‘수금과 퉁소’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프( 본문에서는 수금으로 번역)와 그런 종류의 현악기들은 신앙의 영적인 것들을 의미하는데요, 그건 여러 가지를 살펴볼 때 분명합니다. 표상교회(表象, the representative church)의 예배에서는 이런 악기들과 보컬 말고는 딱히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요, 이런 이유로, 심령이 천국의 모든 기쁨으로 즐거울 때, 그걸 보컬로, 그리고 그 옆에서 그 보컬을 받쳐주고, 북돋워 주는 현악기들을 가지고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보컬과 악기 연주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예배를 마음의 모든 애정(affection)을 다해 참여하게 되는데요, 그 결과, 이 예배에 보컬과 보컬 관련된 것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마음의 애정은 천적인 반면, 그로 인한 보컬은 영적입니다. 보컬과 그런 류의 의미가 영적이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걸 저는 두 종류의 천사 찬양대, 곧 천적, 영적 찬양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 찬양대는 현악기 소리에 비교되는, 그들의 활기찬 찬양 톤 [sono canoro alato] 때문에 천적 찬양대와 쉽게 구별이 되는데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태고인들은 천적인 건 심장 지역, 영적인 건 폐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폐와 관련된 것들은 뭐든지, 예를 들면, 보컬 목소리 및 그와 유사한 것들을 그렇게, 곧 목소리나 그런 악기들의 소리를 영적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근거는 단지 심장과 폐가 마치 사랑과 신앙처럼 일종의 결혼을 표현한다는 사실 뿐 아니라, 실제로 천적 천사들은 심장 지역에, 영적 천사들은 폐 지역에 속하여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본문의 의미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도 또한 알 수 있는데요,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 그리고 유발이 수금과 퉁소(the harp and the organ) 연주의 조상이라는 의미 말고는 아무것도 없거나, 이런 아르카나를 아는 게 아무한테도 쓸데없는 거라면 그런 건 생명이 결핍된 거여서 주님의 말씀이라 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The former verse treated of celestial things which are of love, but this verse treats of spiritual things which are of faith, and these are expressed by the “harp and organ.” That by stringed instruments, such as harps and the like, are signified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is evident from many considerations. Similar instruments, and also the singing, in the worship of the representative church, represented nothing else, and it was on this account that there were so many singers and musicians, the cause of this representation being that all heavenly joy produces gladness of heart, which was expressed by singing, and in the next place by stringed instruments that emulated and exalted the singing. Every affection of the heart is attended with this: that it produces singing, and consequently what is connected with singing. The affection of the heart is celestial, but the consequent singing is spiritual. That singing and that which resembles it denote what is spiritual has been evident to me from the angelic choirs, which are of two kinds, celestial and spiritual. The spiritual choirs are easily distinguished from the celestial by their vibrant singing tone [sono canoro alato], comparable to the sound of stringed instruments, of which, by the Divine mercy of the Lord, we shall speak hereafter. The most ancient people referred what was celestial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what was spiritual to that of the lungs, and consequently to whatever pertains to the lungs, as do the singing voice and things like it, and therefore the voices or sounds of such instruments. The ground of this was not merely that the heart and lungs represent a kind of marriage, like that of love and faith, but also because the celestial angels belong to the province of the heart, and the spiritual angels to that of the lungs. That such things are meant in the passage before us, may also be known from the fact that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and that it would be destitute of life if nothing more were implied than that Jubal was the father of such as play upon the harp and the organ; nor is it of any use to anyone to know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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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의 속뜻

 

21절,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And his brother’s name was Jubal; he was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417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는 같은 교회 영적인 것들의 교리를,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은 신앙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his brother’s name was Jubal” is signified the doctrine of the spiritual things of the same church; by the “father of everyone that playeth upon the harp and organ”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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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의 속뜻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하는 이유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416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함이 분명한 것은 야발이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맨 처음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야발과 같이 자기도 ‘양 치는 자’란 말을 들었던 아벨, 하지만 그는 아담과 하와의 둘째였던 반면, 야발은 가인에서 시작, 일곱 번째였기 때문입니다. That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are signified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Jabal was not the first of those who “dwelt in tents and in folds of cattle,” for it is said likewise of Abel, the second son of Adam and Eve, that he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Jabal was the seventh in the order of descent from C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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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의 속뜻, 사랑의 거룩한 것들에서 나오는 선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415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한다는 건 위 본 장 2절에서 보여드린, ‘양 치는 자’가 체어리티(charity)의 선을 상징한다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양 치는 자 대신 조상, ‘양 떼 대신 가축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며, 야발을 가리켜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라 할 때 사용된 단어 가축 장막 바로 뒤에 나옵니다. 이걸로 분명한 것은, 이것은 사랑의 거룩, 즉 거룩한 사랑에서 나오는 선을 상징한다는 것과, 가축의 주거지나 우리(fold), 즉 장막과 가축의 우리에 거주하는 자들의 조상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이 사랑의 천적인 것들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한다는 건 말씀에 나오는 다양한 본문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That by the “father of cattle” is signified the good that is derived from the holy things of love, is evident from what was shown above, at verse 2 of this chapter, where it was shown that a “shepherd of the flock” signifies the good of charity. Here however the term “father” is employed instead of “shepherd,” and “cattle” instead of “flock”; and the word “cattle,” of which Jabal is said to be the “father,” follows immediately after “tent,” whence it is evident that it signifies the good that comes from the holy of love, and that there is meant a habitation or fold for cattle, or the father of them that dwell in tents and in folds for cattle. And that these expressions signify goods from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is evident from vari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Jeremiah: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렘23:3) I will gather the remnants of my flock out of all lands whither I have scattered them, and I will bring them again to their folds, that they may be fruitful and multiply. (Jer. 23:3)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겔34:14) I will feed them in a good pasture, and upon the mountains of the height of Israel shall their fold be; there shall they lie down in a good fold, and in a fat pasture shall they feed upon the mountains of Israel, (Ezek. 34:14)

 

여기 ‘우리’와 ‘’은 ‘살지다’로 서술된 사랑의 선들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folds” and “pastures” denote the goods of love, of which “fatness” is predicated. In Isaiah: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사30:23) He shall give the rain of thy seed wherewith thou shalt sow the ground; and bread of the increase of the ground shall be fat and full of oil; in that day shall he feed thy cattle in a broad meadow, (Isa. 30:23)

 

여기 ‘먹을 것’은 천적인 것을, 가축이 그 가운데서 먹게 될 ‘풍성함’은 천적인 것에서 나오는 선들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where by “bread” is signified what is celestial, and by the “fat” whereon the cattle should feed, the goods thence derived. In Jeremiah:

 

11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12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렘31:11-12) Jehovah hath redeemed Jacob, and they shall come and sing in the height of Zion, and shall flow together to the good of Jehovah, for the wheat, and for the new wine, and for the oil, and for the sons of the flock, and of the herd; and their soul shall be as a watered garden, (Jer. 31:11–12)

 

여기 여호와의 거룩하심이 ‘곡식’과 ‘기름’으로,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선들이 ‘새 포도주’와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 곧 ‘가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다시 where the holy of Jehovah is described by “wheat” and “oil,” and the goods derived from it by “new wine” and the “sons of the flock and of the herd,” or of “cattle.” Again:

 

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렘6:3) The shepherds and the flocks of their cattle shall come unto the daughter of Zion; they shall pitch their tents toward her round about; they shall feed everyone his own space. (Jer. 6:3)

 

시온의 딸’은 ‘장막’과 ‘양 떼’로 서술된 천적 교회를 가리킵니다. The “daughter of Zion” denotes the celestial church, of which “tents” and “flocks of cattle” are predi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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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에 거주하여의 속뜻, 사랑의 거룩한 것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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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에 거주하는 것’이 사랑의 거룩한 걸 상징한다는 건 말씀에서 ‘장막(tents)의 상징을 보면 분명합니다. 시편에 보면 That to “dwell in tents” signifies what is holy of lov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ents” in the Word. As in David: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15:1-2) Jehovah, who shall abide in thy tent? Who shall dwell in the mountain of thy holiness? He that walketh upright, and worketh righteousness, and speaketh the truth in his heart, (Ps. 15:1–2)

 

이 말씀에서 ‘장막에 거주하는 것’, 혹은 ‘성산에 사는 것’을 사랑의 거룩한 것들, 즉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in which passage, what it is to “dwell in the tent” or “in the mountain of holiness” is described by holy things of love, namely, the walking uprightly, and working righteousness. Again: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19:4) Their line is gone out through all the earth, and their discourse to the end of the world. In them hath he set a tent for the sun, (Ps. 19:4)

 

여기 ‘’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다시 where the “sun” denotes love. Again: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시61:4) I will abide in thy tent to eternities, I will trust in the covert of thy wings, (Ps. 61:4)

 

여기 ‘장막’은 천적인 것을, ‘날개 아래’는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the “tent” denotes what is celestial, and the “covert of wings” what is spiritual thence derived. In Isaiah: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사16:5) By mercy the throne has been made firm, and one hath sat upon it in truth, in the tent of David, judging and seeking judgment, and hasting righteousness, (Isa. 16:5)

 

여기 또한 ‘장막’은 사랑의 거룩한 것을 가리킵니다. ‘정의로 판결함’, ‘공의를 신속히 행함’이라는 표현을 보면 아실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where also the “tent” denotes what is holy of love, as may be seen by the mention of “judging judgment,” and “hasting righteousness.” Again: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사33:20) Look upon Zion, the city of our appointed feast; thine eyes shall see Jerusalem a quiet habitation, a tent that shall not be moved away, (Isa. 33:20)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씀하시면서 speaking of the heavenly Jerusalem.

 

[2]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렘30:18) Thus said Jehovah, Behold, I bring again the captivity of Jacob’s tents, and will have mercy on his dwelling places, and the city shall be builded upon her own heap; (Jer. 30:18)

 

장막의 포로’는 천적인 것, 즉 사랑의 거룩한 것들의 황폐함을 상징합니다. 아모스입니다. the “captivity of tents” signifies the vastation of what is celestial, or of the holy things of love. In Amos: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암9:11) In that day will I raise up the tabernacle of David which is fallen; and will fence up the breaches thereof, and I will raise up its ruins, and I will build it as in the days of eternity, (Amos 9:11)

 

여기 ‘장막(tabernacle, 성막)은 마찬가지로 천적인 것과 그것의 거룩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입니다. where the “tabernacle” in like manner denotes what is celestial and the holy things thereof. In Jeremiah: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렘4:20) The whole land is laid waste, suddenly are my tents laid waste, and my curtains in a moment. (Jer. 4:20)

 

내 장막이 무너지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휘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렘10:20) My tent is laid waste, and all my cords are plucked out, my sons are gone forth from me, and they are not; there is none to stretch my tent anymore, and to set up my curtains, (Jer. 10:20)

 

여기 ‘장막’은 천적인 것들을, 그리고 ‘휘장’과 ‘’은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다시 where the “tent” signifies celestial things, and “curtains” and “cords” spiritual things thence derived. Again: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렘49:29) Their tents and their flocks shall they take; they shall carry off for themselves their curtains, and all their vessels, and their camels, (Jer. 49:29)

 

게달(아라비아)과 동방 자손들에 관한 말씀인데, 이들을 통해 천적인 것, 즉 거룩한 것을 소유한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speaking of Arabia and the sons of the east, by whom are represented those who possess what is celestial or holy. Again: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애2:4) Into the tent of the daughter of Zion the Lord hath poured out his wrath like fire, (Lam. 2:4)

 

신앙의 천적인 것, 곧 거룩한 것들의 황폐함에 관한 말씀입니다.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the celestial or holy things of faith.

 

[3] 말씀에서 이 ‘장막’이라는 용어를 채택, 천적인 것과 사랑의 거룩한 것들을 표현하는 이유는, 고대에는 예배의 거룩한 의식들을 그들의 장막에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성모독의 예배를 장막에서 드림으로써 장막을 모독하기 시작하더니 성막이 세워졌고, 나중에는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장막은 먼저 성막이, 그 다음엔 성전이 가리키는 모든 것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거룩한 사람을 가리켜 주님의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라 합니다.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 같은 걸 상징한다는 것은, 시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he reason why the term “tent” is employed in the Word to represent the celestial and holy things of love is that in ancient times they performed the holy rites of worship in their tents. But when they began to profane the tents by profane kinds of worship, the tabernacle was built, and afterwards the temple, and therefore tents represented all that was subsequently denoted first by the tabernacle, and afterwards by the temple. For the same reason a holy man is called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of the Lord. That a “tent,” a “tabernacle,” and a “temple”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s evident in David:

 

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4-6) One thing have I asked of Jehovah, that will I seek after, that I may remain in the house of Jehovah all the days of my life, to behold Jehovah in sweetness, and to visit early in his temple; for in the day of evil he shall hide me in his tabernacle; in the secret of his tent shall he hide me; he shall set me up upon a rock. And now shall my head be lifted up against mine enemies round about me, and I will offer in his tent sacrifices of shouting. (Ps. 27:4–6)

 

[4]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은 그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과 관련하여 ‘장막’, ‘성막’, 그리고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천인(天人, celestial man)을 그렇게 부르며, 모든 천적이며 거룩한 것들 또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자기 뒤에 일어난 교회들보다 더욱 사랑스러웠던 태고교회, 그 당시 혼자, 곧 가족 단위로 살면서 자기들의 장막에서 참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렸던 태고교회, 이런 이유로, 장막은 성전, 나중에 신성모독된 성전보다 훨씬 더 거룩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기념하고자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이 제정되었습니다. 토지 소산을 거둘 때에 그들은 그 절기 동안 태곳적 사람들처럼 장막에서 지냈습니다. (23:39-44; 16:13; 12:9)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as to his human essence is the “tent,” the “tabernacle,” and the “temple”; hence every celestial man is so called, and also everything celestial and holy. Now as the most ancient church was better beloved of the Lord than the churches that followed it, and as men at that time lived alone, that is, in their own families, and celebrated so holy a worship in their tents, therefore tents were accounted more holy than the temple, which was profaned. In remembrance thereof the feast of tabernacles was instituted, when they gathered in the produce of the earth, during which, like the most ancient people, they dwelt in tents. (Lev. 23:39–44; Deut. 16:13; Hosea 12:9)

 

23:39-44

39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레23:39-44)

 

16: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신16:13)

 

12: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호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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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의 속뜻, 신앙의 천적인 것들의 어머니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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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가 신앙의 천적인 것들의 어머니라는 것은 그녀의 첫아들 야발을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라 하는 걸 보면 분명한데요, 여기 가축은 천적이며, 그 이유는 그것들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at by “Adah” is signified the mother of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is evident from her firstborn Jabal being called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which are celestial because they signify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goods thence der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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