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소리’, 의 속뜻, 증오

 

10절,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374

핏소리’가 체어리티에 가해진 폭행임이 분명한 것은 말씀에 나오는 많은 본문들 때문입니다. 거기에 보면 ‘소리’는 어떤 것에 대한 고발을, ‘’는 어떤 종류의 죄, 특히 증오(hatred)를 가리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 대로 누구든지 형제를 향하여 증오를 품는 사람은 마음으로는 그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voice of bloods” signifies that violence had been done to charity is evident from many passages in the Word, in which “voice” denotes anything that accuses, and “blood” any kind of sin, and especially hatred; for whosoever bears hatred toward his brother, kills him in his heart; as the Lord teaches: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1-22)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them of old, thou shalt not kill, and whosoever shall kill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but I say unto you, that whos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rashly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and whosoever shall say to his brother, Raca, shall be in danger of the council; but whosoever shall say, thou fool, shall be in danger of the hell of fire, (Matt. 5:21–22)

 

이 말씀들은 증오의 등급을 의미합니다. 증오는 체어리티와 정반대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만일 직접 안 되면, 간접적으로라도 죽입니다. 증오는 오직 직접적인 외적 규제로만 저지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레미야에서처럼 모든 증오는 입니다. by which words are meant the degrees of hatred. Hatred is contrary to charity, and kills in whatever way it can, if not with the hand, yet in spirit, and is withheld only by external restraints from the deed of the hand. Therefore all hatred is “blood,” as in Jeremiah:

 

33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렘2:33-34) Why makest thou thy way good to seek love? Even in thy skirts are found the bloods of the souls of the needy innocent ones. (Jer. 2:33–34)

 

[2] ‘’ 하면 증오이듯 모든 종류의 불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증오는 모든 불법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에서처럼 And as hatred is denoted by “blood,” so likewise is every kind of iniquity, for hatred is the fountain of all iniquities. As in Hosea:

 

2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호4:2-3) Swearing falsely, and lying, and killing, and stealing, and committing adultery, they rob, and bloods, in bloods have they touched; therefore shall the land mourn, and everyone that dwelleth therein shall languish. (Hos. 4:2–3)

 

그리고 에스겔에서 무자비함을 말씀하시면서 And in Ezekiel, speaking of unmercifulness:

 

2인자야 네가 심판하려느냐 이 피흘린 성읍을 심판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이 알게 하라 3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4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6이스라엘 모든 고관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에 있었도다, 9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음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겔22:2-4, 6, 9) Wilt thou judge the city of bloods, and make known to her all her abominations, a city that sheddeth bloods in the midst of it? Thou art become guilty through thy blood that thou hast shed. (Ezek. 22:2–4, 6, 9)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그 성읍에 찼음이라 (겔7:23) The land is full of the judgment of bloods, and the city is full of violence. (Ezek. 7:23)

 

그리고 예레미야 애가에서 And in Jeremiah:

 

13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애4:13-14) For the sins of the prophets of Jerusalem, and the iniquities of her priests, that have shed the blood of the righteous in the midst of her, they wander blind in the streets, they have been polluted with blood. (Lam. 4:13–14)

 

이사야에서 In Isaiah: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4:4) When the Lord shall wash away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purged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with the spirit of judgment, and with the spirit of burning. (Isa. 4:4)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사59:3) Your palms are defiled in blood, and your fingers in iniquity. (Isa. 59:3)

 

에스겔에서 예루살렘의 혐오스러운 것들, 곧 ‘’라 하는 것들을 말씀하시면서 In Ezekiel, speaking of the abominations of Jerusalem, which are called “bloods:”

 

6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22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겔16:6, 22) I passed by thee, and saw thee trampled in thine own bloods, and I said unto thee, Live in thy bloods, yea, I said unto thee, Live in thy bloods. (Ezek. 16:6, 22)

 

[3] 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때의 무자비함과 증오 또한 ‘’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계16:3, 4) 는 영어로 bloods라 하여 복수로 언급되는데요, 모든 불공정하고 혐오스러운 것들이 증오로부터 솟구쳐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든 선하고 거룩한 것들이 사랑으로부터 그렇게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하여 증오를 느끼는 사람은 만일 그가 할 수만 있다면 그를 죽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이웃을 폭행하는 것이며, 그것을 여기서 아주 적절하게 ‘핏소리’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The unmercifulness and hatred of the last times are also described by “blood” in the Revelation (16:3, 4). Bloods” are mentioned in the plural, because all unjust and abominable things gush forth from hatred, as all good and holy ones do from love. Therefore he who feels hatred toward his neighbor would murder him if he could, and indeed does murder him in any way he can; and this is to do violence to him, which is here properly signified by the “voice of bloods.”

 

 

3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계16: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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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우의 핏소리’, 피의 호소’, ’의 속뜻

 

10절,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373

네 아우의 핏소리’는 체어리티에 폭행이 가해졌음을 말합니다. ‘피의 호소’는 유죄 고발(the accusation of guilt)이며, ‘’은 어떤 종파(schism)나 이단(heresy)을 말합니다.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signifies that violence had been done to charity; the “crying of bloods” is the accusation of guilt, and “ground” signifies a schism or her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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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체어리티를 지키는 자’,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앙은 자기가 체어리티를 지배해야 한다, ‘가인이라는 교리를 원리로 삼아 따르고 말음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72

지키는 자’가 된다는 건 유대 교회의 ‘문지기’나 ‘수위’(문지방을 지키는 자)처럼 섬기는 걸 말합니다. 신앙은 체어리티를 지키는 자라고 합니다. 그것이 원래 신앙의 의무이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앙은 자기가 체어리티를 지배해야 한다는, ‘가인이라 하는 교리를 원리로 삼아 따르고 말았습니다. 7절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To be a “keeper” signifies to serve, like “door keepers” and “porters” (that is, the keepers of the threshold) in the Jewish church. Faith is called the “keeper” of charity, from the fact that it ought to serve it, but it was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the doctrine called “Cain” that faith should rule, as was said in vers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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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태고인들의 퍼셉션, 홍수 후 양심으로 대체됨. 양심 역시 일종의 딕테이션이지만 방식이 다름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71

태고인들은 자신들의 퍼셉션을 ‘여호와의 스피킹’이라는 워딩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퍼셉션 역량을 주신 분이 주님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퍼셉션은 사랑이 주(主, the principal)일 동안은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to) 사랑이 식고 그 결과, 이웃을 향한(toward) 사랑 또한 식으면 퍼셉션은 사라졌습니다만, 그러나 아직 사랑이 남아 있는 한은 퍼셉션도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퍼셉션 역량은 태고교회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 세대처럼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고,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해서 주어지자 양심이라는 게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 양심이라는 것 또한 일종의 딕테이트를 주는 건데 방식은 다릅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심이 딕테이트할 때, 그것은 말씀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와 같은 식입니다. 양심은 계시와 지식, 그리고 말씀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말씀(the Word) 말씀하시거나(speaks) 딕테이트하실 때, 말씀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심지어 오늘날에조차 양심, 혹은 신앙에 관한 걸 언급하면서 ‘주께서 말씀하십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더 일반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By the “speaking of Jehovah” the most ancient people signified perception, for they knew that the Lord gave them the faculty to perceive. This perception could continue no longer than while love was the principal. When love to the Lord ceased, and consequently love toward the neighbor, perception perished; but insofar as love remained, perception remained. This perceptive faculty was proper to the most ancient church, but when faith became separated from love, as in the people after the flood, and charity was given through faith, then conscience succeeded, which also gives a dictate, but in a different way, of which, by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When conscience dictates, it is in like manner said in the Word that “Jehovah speaks”; because conscience is formed from things revealed, and from knowledges, and from the Word; and when the Word speaks, or dictates, it is the Lord who speaks; hence nothing is more common, even at the present day, when referring to a matter of conscience, or of faith, than to say, “the Lord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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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의 속뜻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70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는 그들에게 체어리티, 혹은 ‘아우 아벨’에 관하여 일종의 딕테이트(dictate)를 준 어떤 퍼셉션 같은 것(perceptivity)을 말합니다. 가인의 대답,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는 신앙이 체어리티를 뭣도 아닌 걸로 여겼음을, 그리고 체어리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걸 마음에 내켜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체어리티와 관련된 모든 걸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게 그들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Jehovah said unto Cain” signifies a certain perceptivity from within that gave them a dictate concerning charity or the “brother Abel.” Cain’s reply,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signifies that faith considered charity as nothing, and was unwilling to be subservient to it, consequently that faith altogether rejected everything of charity. Such did their doctrine be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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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69,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속뜻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9

그래서 이상으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본문,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의미인데요, 그것은 신앙과 체어리티는 둘 다 교리적으로는 신앙의 교리로부터 말미암았음에도 불구, 신앙, 얘가 문젠데... 곧 애써 자기를 사랑에서 분리 및 체어리티를 무시, 반드시 체어리티를 지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결국은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리고야 마는 게 신앙이라는 내용인데요, 오늘날의 경우, 체어리티의 실천은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바로 이런 걸로 그들은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리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그들이 사랑 없이 신앙 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입술로 고백할지라도 말입니다. From this then it follows that the words “Cain rose up against his brother Abel, and slew him,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ogether,” denote that while both faith and charity were from the doctrine of faith, yet faith separate from love could not but disregard and thereby extinguish charity; as is the case at the present day with those who maintain that faith alone saves, without a work of charity, for in this very supposition they extinguish charity, although they know and confess with their lips that faith is not saving unless there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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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68,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의 속뜻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8

’이 교리를,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앙과 체어리티의 교리에 속한 것이면 무엇이든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예레미야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field” signifies doctrine, and consequently whatever belongs to the doctrine of faith and charity,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Jeremiah: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렘17:3) O my mountain in the field, I will give thy possessions [facultates] and all thy treasures for a spoil. (Jer. 17:3)

 

이 구절에서 ‘’은 교리를, ‘재산’과 ‘보물’은 신앙의 영적인 부(富), 혹은 신앙의 교리에 속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다음 말씀도 같습니다. In this passage “field” signifies doctrine; “possessions” and “treasures” denote the spiritual riches of faith, or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doctrine of faith. In the same: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렘18:14) Shall the snow of Lebanon fail from the rock of my field? (Jer. 18:14)

 

시온을 향하여 선포하시기를, 신앙의 교리가 결핍되면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라 하십니다. (렘26:18; 미3:12) 에스겔에서 It is declared concerning Zion, when destitute of the doctrine of faith, that she shall be “plowed like a field.” (Jer. 26:18, Micah 3:12) In Ezekiel: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겔17:5) He took of the seed of the land, and set it in a field of sowing, (Ezek. 17:5)

 

교회와 교회의 신앙을 다루면서 말입니다. 교리를 일컬어 그 안에 종자, 씨가 심긴 ‘’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본문에서 treating of the church and of its faith; for doctrine is called a “field” from the seed in it. In the same: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겔17:24) And let all the trees of the field know that I Jehovah bring down the high tree. (Ezek. 17:24)

 

요엘입니다. In Joel:

 

10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욜1:10-12) The field is laid waste, the ground mourneth, for the corn is wasted, the new wine is dried up, the oil languisheth, the husbandmen are ashamed, the harvest of the field is perished, all the trees of the field are withered, (Joel 1:10–12)

 

여기 ‘’은 교리를, ‘나무’는 지식들을, ‘농부들’은 예배자들을 말합니다. 시편에서 where the “field” signifies doctrine, “trees” knowledges, and “husbandmen” worshipers. In David: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시96:12) The field shall exult and all that is therein; then shall all the trees of the forest sing, (Ps. 96:12)

 

여기 ‘’이 어떻게 기뻐 어쩔 줄 몰라 하겠으며, ‘숲의 모든 나무들’이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람 안에 있는 것들, 곧 신앙에 관한 지식들 얘기임이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예레미야에서 where it is perfectly evident that the field cannot exult, nor the trees of the forest sing; but things that are in man, which are the knowledges of faith. In Jeremiah: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렘12:4)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Jer. 12:4)

 

여기서도 분명한 것은 ‘’도, ‘지방의 채소’도 슬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황폐한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의 어떤 것에 관한 것입니다. 비슷한 구절이 이사야에도 나옵니다. where it is also evident that neither the land nor the herbs of the field can mourn; but that the expressions relate to something in man while in a state of vastation. A similar passage occurs in Isaiah: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사55:12) The mountains and the hills shall break forth before you into singing, and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all clap their hands. (Isa. 55:12)

 

주님 또한 세상 종말 관련 예언 가운데 신앙의 교리를 가리켜 ‘’이라 하십니다. The Lord also in his prediction concerning the consummation of the age calls the doctrine of faith a “field:”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24:40; 눅17:36) Then shall two be in the field,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Matt. 24:40; Luke 17:36)

 

※ 개역개정 한글 성경에는 눅17:36 본문이 ‘(없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 ‘’은 신앙의 교리, 곧 참된 교리, 거짓된 교리 둘 다를 의미합니다. ’이 교리를 가리키기 때문에, 신앙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그 누구든, 그것이 사람이든, 교회든, 아니면 세상이든 또한 일컬어 ‘’이라 합니다. where by a “field” is meant the doctrine of faith, both true and false. As a “field” signifies doctrine, whoever receives a seed of faith, whether a man, the church, or the world, is also called a “field.”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렘26:18)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미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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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67,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체어리티는 신앙의 '아우', 둘 사이 생득권, 장자권 분쟁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7

체어리티가 신앙의 ‘아우’라는 것, 그리고 ‘’이 교리에 속한 것이면 무엇이든 의미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말고는 굳이 말씀 내 유사 구절들을 찾아 이들을 컨펌할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체어리티가 신앙의 아우라는 사실은 신앙의 본성이나 본질상 누구에게나 자명합니다. 이 형제지간이 에서와 야곱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생득권(生得權, the birthright) 및 그로 인한 주도권 다툼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유다로 말미암은 다말의 두 아들, 베레스와 세라로 (38:28-30),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로도 표현되었습니다 (48:13-14). 이 둘도 다른 유사한 경우들과 같이 장자권(長子權, the primogeniture)과 그로 인한 주도권 다툼이 있습니다. 신앙과 체어리티는 교회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남자라 합니다. 본 장 1절의 가인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체어리티는 아우라 합니다. 19:2, 13:14 및 다른 데서들처럼 말이지요. 신앙과 체어리티의 연합을 형제의 계약’(1:9)이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상징과 비슷한 것이 방금 말씀드린 야곱과 에서의 상징이었습니다. 야곱 또한 그의 형 에서를 대신하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그런데요, 호세아를 봐도 분명합니다. It is unnecessary to confirm these things by similar passages from the Word, except so far as to prove that charity is the “brother” of faith, and that a “field” signifies whatever is of doctrine. That charity is the “brother” of faith is evident to everyone from the nature or essence of faith. This brotherhood was represented by Esau and Jacob, and was the ground of their dispute about the birthright and the consequent dominion. It was also represented by Pharez and Zarah, the sons of Tamar by Judah (Gen. 38:28, 29, 30); and by Ephraim and Manasseh (Gen. 48:13, 14); and in both of these, as well as in other similar cases, there is a dispute about the primogeniture and the consequent dominion. For both faith and charity are the offspring of the church. Faith is called a “man,” as was Cain, in verse 1 of this chapter, and charity is called a “brother,” as in Isa. 19:2; Jer. 13:14; and other places. The union of faith and charity is called “the covenant of brethren.” (Amos 1:9) Similar to the signification of Cain and Abel was that of Jacob and Esau, as just said; in that Jacob also was desirous of supplanting his brother Esau, as is evident also in Hosea:

 

2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호12:2-3) To visit upon Jacob his ways, according to his doings will he recompense him; he supplanted his brother in the womb. (Hos. 12:2–3)

 

그러나 에서, 곧 에서로 표현된 체어리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내용이 그들의 아버지 이삭의 예언을 보면 나옵니다. But that Esau, or the charity represented by Esau, should nevertheless at length have the dominion, appears from the prophetic prediction of their father Isaac: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창27:40) By thy sword shalt thou live, and shalt serve thy brother;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ou hast the dominion, that thou shalt break his yoke from off thy neck. (Gen. 27:40)

 

또한 같은 건데요, 이방인들의 교회, 혹은 새 교회는 에서로, 유대인들의 교회는 야곱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형제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자주 듣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교회, 혹은 원시 교회에서는 체어리티로 말미암아 모두 서로를 형제라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도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을 형제라 하고 계십니다. (8:21)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신앙의 사람들이요, 말씀을 행하는 사람들은 체어리티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서, 혹은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 행함은 없는, 혹은 체어리티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형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이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에 비유하셨기 때문입니다. (7:24, 26)  Or what is the same, the church of the gentiles, or new church, is represented by Esau, and the Jewish church is represented by Jacob; and this is the reason for its being so often said that the Jews should acknowledge the gentiles as brethren; and in the church of the gentiles, or primitive church, all were called brethren, from charity. Such as hear the Word and do it are likewise called brethren by the Lord (Luke 8:21); those who hear are such as have faith; those who do are such as have charity; but those who hear, or say that they have faith, and do not, or have not charity, are not brethren, for the Lord likens them unto fools (Matt. 7:24, 26).

 

 

28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창38:28-30)

 

13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창48:13-14)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사19:2)

 

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 사이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13:1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암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눅8:21)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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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66,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속뜻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6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는 일종의 시간 간격, 즉 시간이 흘렀음을 말합니다. 가인은 앞서 기술(記述)처럼,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을, ‘아벨은 체어리티, 곧 신앙의 아우를 말하며, 그래서 여기 그는 두 번 아우라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field)은 무엇이든지 교리에 속한 것이면 다 입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는 분리된 신앙이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렸음을, 즉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음을, 끝장냈음을 말합니다. Cain spake to Abel” signifies an interval of time. Cain,” as before stated, signifies faith separated from love; and “Abel” charity, the brother of faith, on which account he is here twice called his “brother.” A “field” signifies whatever is of doctrine.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signifies that separated faith extinguished ch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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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65, 창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AC.361-365) -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의 속뜻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365

세 번째입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는 체어리티는 신앙과 함께 지내기를 무척 원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 신앙은 오히려 체어리티를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질서에 역행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주도권을 쥐려 하는 한, 그런 건 신앙이 아닙니다. 오직 체어리티의 지배하에서만 신앙이 됩니다.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체어리티가 신앙보다 주(, the principal)이기 때문입니다. 체어리티를 불에 비유할 수 있겠는데요, 불은 열과 빛의 본질이지요. 열과 빛이 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분리 상태에 있는 신앙은 마치 빛은 빛인데 열 없는 빛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빛은 있어도 만물이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겨울철 빛 말입니다. In the third place it is said, “Un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by which is signified that charity is desirous to abide with faith, but cannot do so because faith wishes to rule over it, which is contrary to order. So long as faith seeks to have the dominion, it is not faith, and only becomes faith when charity rules; for charity is the principal of faith, as was shown above. Charity may be compared to flame, which is the essential of heat and light, for heat and light are from it; and faith in a state of separation may be compared to light that is without the heat of flame, when indeed there is light, but it is the light of winter in which everything becomes torpid and 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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