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5:1)

 

AC.470

 

‘출생의 책’(book of the births), 곧 ‘계보’가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명단이라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장부터 11장, 즉 에벨 시대까지, 이름은 결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태고 시대에 인류는 집(houses), 가족(families), 그리고 민족(nations)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집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의 가족 중 일부는 봉사했습니다. 가족은 더 많거나 적은 수의 집으로 구성되었으며, 서로 멀리 떨어져 살지는 않았지만, 함께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더 많거나 적은 수의 가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That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very evident from what follows, for from this to the eleventh chapter, that is, to the time of Eber, names never signify persons, but actual things. In the most ancient time mankind wer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 house consisting of the husband and wife with their children, together with some of their family who served; a family, of a greater or lesser number of houses, that lived not far apart and yet not together; and a nation, of a larger or smaller number of families.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0에서 창세기 5장을 ‘계보’, 곧 ‘출생의 책’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한층 더 분명히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장이 태고교회에 속한 자들의 열거라는 사실은 ‘뒤따르는 내용으로부터 매우 분명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5장부터 11장, 곧 에벨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이름들은 어느 하나도 개인을 뜻하지 않고, 모두 ‘실제적인 것들(actual things)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구간의 성경은 역사적 인물 전기가 아니라, ‘교회의 내적 실재들’, 곧 신앙과 사랑, 인식과 상태의 변화를 이름으로 표현한 장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actual things’는 추상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태고교회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영적 상태, 곧 그들이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지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아담’, ‘’, ‘에녹’, ‘노아’라는 이름은 어떤 개인의 호적명이 아니라, ‘그 시대 교회를 규정하던 중심 상태’를 대표하는 표지, 즉 표상과 같습니다. 이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창세기 5장부터 11장까지는 끝내 설교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 단지 해명해야 할 난제의 집합으로 남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태고교회 시대의 인류가 어떻게 구분되어 있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태고의 시대에는 인류가 ‘(house), ‘가족(family), ‘민족(nation)으로 구분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행정적 단위나 혈연 중심의 사회 구조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태고교회에서 이러한 구분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필요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정도와 질서’, 곧 내적 상태의 유사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먼저 ‘’이란, 단순히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의 묶음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집은 ‘남편과 아내,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함께 섬기던 가족 일부’를 포함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집이 단순한 생활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인식이 살아 움직이던 작은 교회’였다는 점입니다. 태고교회의 혼인은 단순한 사회 제도가 아니라, 사랑과 지혜의 결합이었고, 그 결합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같은 영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므로 한 집은 곧 ‘하나의 영적 생태계’였습니다.

 

그다음 단계가 ‘가족’입니다. 가족은 여러 집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로,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살되 한 집처럼 완전히 섞여 살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태고교회의 질서가 ‘무질서한 집단화’가 아니라, 각 집의 고유한 영적 색채를 존중하면서도 더 큰 조화를 이루는 구조였음을 보여줍니다. 각 집은 고유한 사랑의 강조점을 가지고 있었고, 가족은 그러한 다양한 집들이 하나의 더 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단위였습니다. 이 역시 행정적 필요가 아니라, 내적 친밀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더 많은 가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족은 오늘날의 국가 개념이나 정치 공동체가 아닙니다. 태고교회의 민족은 ‘같은 종류의 사랑과 신앙을 공유하는 가족들의 연합체’였습니다. 다시 말해, 혈통이 아니라 ‘내적 상태의 공통성’이 민족을 이루는 기준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에서 한 민족의 이름이 곧 하나의 영적 상태를 가리키게 되었고,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 역시 이 구조 위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설명은 왜 창세기 5장부터 11장까지의 이름들이 개인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뜻하는지를 분명히 해줍니다. 태고교회에서는 개인보다 상태가 먼저였고,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기억되기보다, 자신이 속한 집과 가족, 민족의 영적 성격 속에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이름을 나열하는 것은 사람 수를 세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상태가 어떻게 분화되고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결국 AC.470은 창세기 족보를 읽는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성경은 ‘옛날에 이런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처음에는 이렇게 하나였고, 이렇게 다양해졌으며, 이렇게 구조를 이루어 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관점 위에서만, 창세기 5장과 11장 사이의 모든 이름들은 살아 있는 신앙의 언어가 됩니다. 그리고 이 언어는 오늘날 교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AC.469, 창5: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AC.469-474)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창5:1) AC.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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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5:1)

 

AC.469

 

‘계보’(book of the births)는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을 열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는 그가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는 그가 천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태고교회에 대한 설명입니다.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denotes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signifies that he was made celestial: thus it is a descri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해설

 

창세기 5장은 얼핏 보면 족보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AC.469에서 이 장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합니다. ‘계보(book of the births)란 개별 인물들의 혈통 기록이 아니라, ‘태고교회에 속했던 자들의 상태가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해 갔는지를 열거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출생’이란 육체적 탄생이 아니라, ‘새로운 영적 상태의 출현’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5장은 누가 누구의 아들이었는지를 말하려는 장이 아니라, ‘태고교회라는 하나의 교회가 어떤 영적 상태에서 시작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 쇠퇴와 전환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연대기’입니다. 이 관점을 놓치면 이 장은 끝내 이해되지 않지만, 이 관점을 붙들면 창세기 5장은 성경 전체에서도 매우 깊은 교회론적 장이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라는 표현을 시간적 의미로 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은 언제나 ‘상태’를 의미하며, 여기서 말하는 창조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영적 존재로 세워진 상태’, 곧 영적(spiritual) 인간이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태고교회의 인간은 단순히 자연적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받아 그것에 따라 사는 영적 인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5장의 출발점은 인류의 생물학적 시작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시작’, 다시 말해 인간이 참된 의미에서 인간이 된 상태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AC.469의 핵심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라는 말은 단지 영적 인간이 되었다는 뜻을 넘어서, ‘그가 천적(celestial) 인간이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적 상태란 진리를 통해 선으로 인도받는 상태이지만, 천적 상태란 ‘사랑 자체 안에서 선을 곧바로 인식하는 상태’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선과 진리를 배워서 알지 않았고, 교리를 통해 판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무엇이 참이고 선한지를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태고교회의 독특성이며, 이후 어떤 교회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회복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5장은 타락 이후의 인간사를 정리한 장이 아니라, ‘타락 이전 혹은 타락의 문턱에 있던 태고교회의 내적 구조를 보여주는 장’입니다. 각 이름은 한 개인이라기보다 교회의 한 국면을 나타내며, 장수는 그 상태가 교회 안에서 지속된 기간을 의미합니다. ‘낳았으며... 죽었더라’라는 반복 표현은 단순한 생사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 상태가 끝나고 다음 상태로 넘어갔음을 알리는 표지’입니다.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는 모두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의미가 왜곡됩니다.

 

결국 AC.469는 창세기 5장을 읽는 하나의 결정적인 해석 원리를 제시합니다. ‘태고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곧바로 인식하던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은 그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그 천적 상태가 이어졌으며, 마침내 왜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입니다. 이 관점 위에서만 창세기 5장은 족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압축된 영적 역사’로 읽히게 됩니다.

 

 

 

AC.470, 창5:1, '창5-11 에벨 시대까지 나오는 이름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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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2, 창4:26, '태고교회 이단들의 뿌리와 그 심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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