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39

 

어떤 영이 있었는데, 그는 육신에 있을 때 간음의 죄를 가볍게 여겼던 자였습니다. 그가 원해서 그는 천국의 첫 문턱(threshold)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이르자마자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에게서 나는 시체 같은 악취(cadaverous stench)를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만일 조금이라도 더 나아간다면 자신이 사라질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래 땅으로 내던져졌는데, 단지 천국의 첫 문턱에서 간음과 반대되는 영역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고통을 느꼈다는 사실에 분노하였습니다. 그는 불행한 자들 가운데 있습니다. A certain spirit who during his life in the body had made light of adulteries, was in accordance with his desire admitted to the first threshold of heaven. As soon as he came there he began to suffer and to be sensible of his own cadaverous stench, until he could endure it no longer. It seemed to him that if he went any farther he should perish, and he was therefore cast down to the lower earth, enraged that he should feel such torment at the first threshold of heaven, merely because he had arrived in a sphere that was contrary to adulteries. He is among the unhappy.

 

 

해설

 

이 글은 앞선 두 단락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생생한 방식으로, ‘상태의 불일치가 낳는 고통’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는 ‘천국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태도 자체가 천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충돌은 설명이나 판단 이전에, 즉각적인 감각과 고통으로 드러납니다.

 

이 영은 생전에 간음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는 단순히 특정 행위를 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사랑과 결합의 질서를 내적으로 무너뜨린 상태를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간음은 도덕적 규범 위반을 넘어, 사랑의 질서, 곧 하늘의 질서를 왜곡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한 상태는 천국의 영역과 본질적으로 상극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은 자신의 바람, 곧 자기가 원해서 천국의 첫 문턱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되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의 바람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원하면 가까이 가게 하시되, 그 결과를 스스로 체험하게 하십니다. 강제로 막지 않으시고, 설명으로 대신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가 느낀 것은 환희가 아니라 극심한 고통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표현은 ‘자기 자신의 시체 같은 악취를 느꼈다’는 대목입니다. 이는 외부에서 부여된 형벌이 아니라, ‘자기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천국의 영역에서는 거짓과 왜곡이 가려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자기 내면의 실상이 감각으로 체험됩니다.

 

이 악취는 실제 냄새라기보다, 사랑의 질서에 반하는 상태가 천국의 감각 안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보여 주는 상응 표현입니다. 천국의 순수한 사랑의 영역에 비추어질 때, 왜곡된 사랑은 생명 없는 것, 곧 ‘죽음의 냄새’로 체험됩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낍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면 ‘사라질 것 같다’는 감각은, 그 상태가 천국 안에서는 존속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결국 그는 아래 땅으로 떨어집니다. 이 역시 처벌이라기보다, ‘존재가 견딜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느낀 감정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거나 깨닫기보다, 분노합니다. 천국의 문턱에서 이런 고통을 느꼈다는 사실 자체를 부당하다고 여깁니다. 이는 그의 내적 태도가 여전히 변화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마지막에 짧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는 불행한 자들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이 불행은 외부적 형벌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 상태와 질서의 불일치가 지속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국을 향한 욕망은 있었지만, 천국의 삶을 원하지는 않았던 결과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장면은 매우 무겁고도 정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천국을 원하는가, 아니면 천국의 삶을 원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어떤 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단지 윤리적 문제를 넘어서, 우리 존재의 감각과 방향을 결정합니다. 천국은 그 방향이 맞을 때에만 안식이 됩니다.

 

AC.539는 천국을 도덕적 판결의 법정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국은 ‘자기 자신을 피할 수 없는 거울’로 나타납니다. 그 거울 앞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은, 거울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비추어진 것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이 본문은, 회개와 변화가 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지를 가장 실감 나게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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