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3, AC.156-159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Verse 23.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 23절 속뜻
천적 인간은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차이, 그리고 그 상호관계를 분명히 압니다. 천적 인간의 겉 사람과 속 사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하나 됨, 곧 결혼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156.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은 겉 사람의 본성을 말하며, 여기서 ‘뼈’(bone)는 이 본성이 생기가 거의 없음을, ‘살’(flesh)은 생기 있는 본성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자는 속 사람을 의미하며, 이어지는 구절에 보면 이 속 사람은 겉 사람과 결합하기 때문에, 앞서 ‘여자’(woman)라고 했던 본성을 여기서는 ‘아내’(wife)라고 합니다. ‘이제’(Now)는 이 시점에서 이렇게 되었음을 말하는데요, 이때 상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y the own of the external man; “bone,” this own not so much vivified, and “flesh,” the own that is vivified. Man, moreover, signifies the internal man, and from his being so coupled with the external man as is stated in the subsequent verse, the own which was before called “woman” is here denominated “wife.” “Now” signifies that it was thus effected at this time because the state was changed.
※ 우리말 개역개정에는 이 ‘이제’에 대한 번역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157.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이 그 안에 인터널(the internal, 속에 해당하는 것, 內的인 것)이 있는 겉 사람의 본성을 의미하는 한, 그래서 고대에는 자신들의 본성(their own [proprii])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게 한 가족(one house)이든, 가계(one family)든, 기타 어떤 종류의 관계(any degree of relationship)든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라반도 야곱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Inasmuch as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signified the own of the external man in which was the internal, therefore in ancient times all those were called “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 who could be called their own [proprii], and were of one house, or of one family, or in any degree of relationship. Thus Laban said of Jacob,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29:14) Surely thou art my bone and my flesh. (Gen. 29:14)
그리고 아비멜렉 또한 자기 어머니의 혈육들(his mother’s brethren)과 외가 사람들(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And Abimelech said of his mother’s brethren, and of the family of the house of his mother’s father,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삿9:2) Remember that I am your bone and your flesh. (Judges 9:2)
이스라엘 지파들(The tribes of Israel)도 다윗에게 자신들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tribes of Israel also said of themselves to David,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삼하5:1) Behold, we are thy bone and thy flesh. (2 Sam. 5:1)
158. 사람(man, 아담)은 속 사람, 즉 같은 말이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사41:28)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Isa. 41:28)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요. 예레미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5:1)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Jer. 5:1)
‘정의를 행하는 자’(One who executes judgment)는 지혜로운 사람을, ‘진리를 구하는 자’(one who seeks the truth)는 총명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159. 그러나 천적 인간의 상태(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천적 인간 안에서 속 사람은 겉 사람과 구별되되, 실제로는 너무도 구별되어 속 사람, 겉 사람에게 속한 것은 각각 무엇이며, 겉 사람이 속 사람을 통해 주님에 의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천적 인간은 지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천적 인간의 후손들의 상태(the state of the posterity of this celestial man)는 자신들의 본성, 곧 자신들의 겉 사람에게 속한 본성을 징그럽게 원한 결과, 너무도 변질, 더 이상은 겉 사람과 속 사람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속 사람이라는 거하고 겉 사람이라는 거하고 같은 거 아냐? 할 지경이 되었는데요, 이런 일은 사람이 자신의 본성으로 기울어질 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But it is not easy to perceive how the case is with these things unless 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 is understood. In the celestial man the internal man is distinct from the external, indeed so distinct that the celestial man perceives what belongs to the internal man, and what to the external, and how the external man is governed through the internal by the Lord. But the state of the posterity of this celestial man, in consequence of desiring their own, which belongs to the external man, was so changed that they no longer perceived the internal man to be distinct from the external, but imagined the internal to be one with the external, for such a perception takes place when man inclines to his own.
'번역 > AC 절별 속뜻'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2:25, AC.163-167,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0) | 2023.11.11 |
---|---|
창2:24, AC.160-162,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0) | 2023.11.10 |
창2:22, AC.151-15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0) | 2023.10.26 |
창2:21, AC.147-15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0) | 2023.10.25 |
창2:19-20, AC.142-146,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0) | 2023.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