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day in which God created man)가 그가 영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는 그가 천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하고 보인 바에서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사람이 새로 창조될 때, 곧 거듭남을 받을 때에 적절히 사용되며, ‘만들다’(make)라는 표현은 사람이 완성(perfect)될 때에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는 ‘창조하다’(creating), ‘빚다’(forming), ‘만들다’(making) 사이에 정확한 구별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둘째 장에서 보인 바와 같이, 영적 인간이 천적으로 만들어질 때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Go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in making)(창2:3)고 한 데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다른 여러 구절에서도 ‘창조하다’(create)는 영적 인간과 관련되고, ‘만들다’(make), 곧 완성시키다는 천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16번과 88번을 보세요) That by the “day in which God created man” is signified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that by “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 is signified his being made celestial, appears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The expression to “create” properly relates to man when he is being created anew, or regenerated; and the word “make,” when he is being perfected; wherefore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observed between “creating,” “forming,” and “making,” as was shown above in the second chapter, where it is said of the spiritual man made celestial that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in making”; and in other passages also, to “create” relates to the spiritual man, and to “make,” that is, to perfect, to the celestial man. (See n. 16 and 88.)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72에서 창세기 5장 1절의 짧은 표현 속에 담긴 깊은 차이를 다시 한번 정리해 줍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과 ‘하나님이 그를 자기 모양대로 만드셨다’라는 두 표현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영적 국면을 가리킵니다. 앞의 표현은 사람이 ‘영적’으로 세워진 상태를 뜻하고, 뒤의 표현은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상태에까지 이르렀음을 뜻합니다. 즉, 창세기 5장은 인간이 단번에 완성된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상태에서 시작하여 천적 상태로 완성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조하다’(create)라는 단어의 용법을 매우 엄밀하게 다룹니다. 성경에서 ‘창조’라는 말은 단순히 무언가를 처음 만들어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새로 만들어지는 순간’, 곧 거듭남의 시작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이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최초의 사건보다도, 주님께서 인간의 내면을 새롭게 하시는 영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창조’는 언제나 인간이 자연적 상태에서 벗어나,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받아들이는 영적 상태로 들어갈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반면에 ‘만들다’(make)라는 표현은 다른 차원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시작이 아니라 ‘완성’, 곧 영적 인간이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 천적 인간으로 ‘완전하게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과정을 ‘완성’(perfect)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완성이란 도덕적 흠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가 더 이상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결합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진리를 통해 선을 향해 가던 사람이, 이제는 사랑 자체 안에서 선을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만들어짐’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 안에서 ‘창조하다’(creating), ‘빚다’(forming), ‘만들다’(making)가 결코 무작위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각각은 인간의 영적 형성 과정의 서로 다른 국면을 정확히 가리킵니다. ‘빚다’는 자연적 인간의 형성을, ‘창조하다’는 영적 인간의 탄생을, 그리고 ‘만들다’는 그 영적 인간이 천적 상태로 완성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이 세 단어는 인간이 주님 앞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연속된 언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2장의 표현을 다시 끌어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는 말은, 영적 인간이 천적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내적 갈등이나 분리가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쉼’은 노동의 중단이 아니라, ‘내적 완성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진리와 선이 더 이상 분리되어 다투지 않고, 사랑 안에서 하나로 작용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쉬셨다’고 말해집니다.
이 점에서 AC.472는 태고교회의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해줍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단지 거듭난 영적 인간에 머물지 않고, 그 거듭남이 완성된 천적 인간의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따라 선을 선택하는 단계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사랑 안에서 곧바로 선을 인식하는 상태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창세기에서 ‘창조’와 ‘만듦’이 함께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동시에 이 구분은 오늘날 우리 신앙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거듭남을 신앙의 목표처럼 생각하지만,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거듭남은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은 출발이며, 그 이후에는 사랑과 신앙이 하나로 결합되는 천적 상태를 향한 길이 놓여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교회가 태고교회와 같은 천적 상태에 이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여전히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창조’에서 멈추지 말고, 주님 안에서 ‘만들어짐’, 곧 완성을 향해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결국 AC.472는 창세기 5장 1절의 두 표현을 통해, 인간의 영적 삶 전체를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주님은 인간을 먼저 영적으로 창조하시고, 그다음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만드십니다. 이 질서는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가 정해 놓은 길입니다. 이 질서를 이해할 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과거의 신화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영적 역사’로 읽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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