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bearing fruit after it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And the earth brought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fter its kind, an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was in itself,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1:11-13)

 

AC.29

 

(earth), 곧 사람이 이렇게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되고, 선과 진리에 속한 어떤 싹을 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주님은 먼저 아주 연약한 것을 돋아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tender herb)입니다. 다음으로는 더 괜찮은 것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안에 씨를 지니고 있어 ‘씨 맺는 채소(herb yielding seed)라고 하지요. 마지막으로는 선한 것이 나와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이며, 이 모든 것은 ‘각기 종류대로’입니다. 거듭나는 중인 사람은 처음에는 자기가 행하는 선과 자기가 말하는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선과 모든 진리는 주님에게서만 오지요. 그러므로 그것들이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직 참된 신앙의 생명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나중에 그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그것들이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다만 신앙의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 상태에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는 여기서 생명 없는(inanimate) 것들로 표현되고, 그다음에 오는 신앙의 생명 상태는 생명 있는(animate) 것들로 표현됩니다. When the “earth,” or man, has been thus prepared to receive celestial seeds from the Lord, and to produce something of what is good and true, then the Lord first causes some tender thing to spring forth, which is called the “tender herb”; then something more useful, which again bears seed in itself, and is called the “herb yielding seed”; and at length something good which becomes fruitful, and is calle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 each according to its own kind. The man who is being regenerated is at first of such a quality that he supposes the good which he does, and the truth which he speaks, to be from himself, when in reality all good and all truth are from the Lord, so that whosoever supposes them to be from himself has not as yet the life of true faith, which nevertheless he may afterwards receive; for he cannot as yet believe that they are from the Lord, because he is only in a state of preparation for the reception of the life of faith. This state is here represented by things inanimate, and the succeeding one of the life of faith, by animate things.

 

[2] 씨를 뿌리는 이는 주님이시며, 씨는 주님의 말씀이고, 땅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주님 자신 친히 밝혀 주셨습니다 (13:19-24, 37-39; 4:14-21; 8:11-16). The Lord is he who sows, the “seed” is his Word, and the “earth” is man, as he himself has deigned to declare (Matt. 13:19–24, 37–39; Mark 4:14–21; Luke 8:11–16).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13:19-24, 37-39)

 

14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4:14-20)

 

11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11-15)

 

같은 뜻으로 주님은 이렇게도 설명하십니다. To the same purport he gives this description:

 

26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4:26-28) So is the kingdom of God, as a man when he casteth seed into the earth, and sleepeth and riseth night and day, and the seed groweth and riseth up, he knoweth not how; for the earth bringeth forth fruit of her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ear, after that the full corn in the ear (Mark 4:26–28)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가장 보편적 의미로는 전체 천국을 뜻하고, 덜 보편적으로는 주님의 참된 교회를, 가장 개별적 의미로는 참된 신앙에 속한 사람, 곧 신앙의 삶으로 거듭난 각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러한 사람을 ‘천국(heaven)이라 하는데, 이는 천국이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이며, 또 그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친히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By the “kingdom of God,” in the universal sense, is meant the universal heaven; in a sense less universal, the true church of the Lord; and in a particular sense, everyone who is of true faith, or who is regenerate by a life of faith. Wherefore such a person is also called “heaven,” because heaven is in him; and likewise the “kingdom of God,”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in him, as the Lord himself teaches in Luke: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0-21) Being demanded of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should come, he answered them, and said,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neither shall they say, Lo here! or, Lo there!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Luke 17:20–21).

 

이것이 사람 거듭남의 세 번째 연속 단계로서, 곧 회개(repentance)의 상태이며, 이 역시 그늘에서 빛으로, 곧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13절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This is the third successive stage of the regeneration of man, being his state of repentance, and in like manner proceeding from shade to light, or from evening to morning; wherefore it is said (verse 13),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 해설이 끝나는 맨 하단에 이 ‘회개’에 대한 AC 글들을 인용했습니다. 매우 유용하오니 꼭 읽어들 보시기 바랍니다.

 

 

해설

 

이 글은 창세기 1장에서 처음으로 ‘생명처럼 보이는 것’이 등장하는 장면을 인간 거듭남의 실제 단계와 연결합니다. 앞선 단계들에서 사람은 빛을 인식하고, 속 사람과 겉 사람이 구별되며, 지식이 기억 속에 모이는 준비를 거쳤습니다. 이제 그 준비 위에서 비로소 무엇인가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 성장은 단번에 열매로 나타나지 않고, 연한 풀에서 시작해 씨 맺는 채소를 거쳐 열매 맺는 나무에 이르는 점진적 과정으로 묘사됩니다.

 

연한 풀은 거듭남 초기에 나타나는 매우 미약한 선의 움직임을 뜻합니다. 이는 아직 삶을 이끌 만큼 강하지도, 분명하지도 않지만, 분명히 이전에는 없던 변화입니다. 그다음 단계인 씨 맺는 채소는, 선이 어느 정도 유용성을 갖기 시작하고, 그 안에 다시 진리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열매 맺는 나무는, 선이 안정되어 실제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한 행위를 낳는 상태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각기 자기 종류대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거듭남이 사람마다 동일한 외형을 갖지 않음을 뜻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단계 전체에서 사람이 여전히 착각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선과 자기가 말하는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생각을 즉시 잘못이라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반드시 거쳐야 할 상태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직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신앙의 생명을 받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는 ‘생명이 없는 것들’로 표현됩니다. 풀과 채소와 나무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아직 참된 의미에서의 신앙의 생명, 곧 주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생명이 완전히 작동하는 단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단계는 헛된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토양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는 그 선과 진리를 통해서도, 실제로는 그를 더 깊은 신앙의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원리를 주님의 비유로 확증합니다. 씨를 뿌리는 이는 주님이시고, 씨는 주님의 말씀이며, 땅은 사람입니다. 씨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거듭남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변화는 일어나지만, 그 메커니즘은 인간의 통제와 인식 바깥에서 작동합니다. 사람은 다만 땅으로서, 수용체로서 그 과정을 통과할 뿐입니다.

 

마가복음의 비유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성장의 순서입니다. 먼저 풀잎, 다음에 이삭, 그다음에 충만한 알곡이 나옵니다. 이는 스베덴보리가 창세기에서 풀, 채소, 나무의 순서를 설명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즉,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이미 복음서에서 거듭남의 비유로 다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 스베덴보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세 층위로 설명합니다. 천국 전체, 참된 교회, 그리고 각 개인입니다. 특히 마지막 의미가 중요합니다. 참된 신앙의 삶으로 거듭난 사람 자신이 ‘천국’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외적 제도나 미래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뒤집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세워지는 질서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는 회개(repentance)의 상태라고 불립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행위가 아니라, 선과 진리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서 주님으로 옮겨 가는 방향 전환입니다. 이 방향 전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 역시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셋째 날로 불립니다.

 

AC.29는 거듭남이 얼마나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인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열매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아주 연한 풀 하나가 돋아나는 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이 점에서 이 단락은 신학적으로 깊을 뿐 아니라, 목회적으로도 매우 큰 위로를 줍니다.

 

 

※ 다음은 위 AC.29에서 언급한 ‘뉘우침(repentance, 회개)에 대한 글 모음입니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He who wishes to be saved must confess his sins and do repentance. (AC.8387)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악에 대한 철저한 숙지, 그걸 자기 안에서 보고 시인, 그 결과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여긴 후, 이러한 이유로 자신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 이런 게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To confess sins is to become thoroughly acquainted with evils, to see them in oneself, to acknowledge them, to regard oneself as guilty, and to condemn oneself on account of them. When this is done before God, it is to confess sins. (AC.8388)

 

회개한다는 건 사람이 그렇게 죄를 고백 및 그 죄에 대한 용서를 겸손하게 간구한 후, 그런 죄짓는 걸 그치고, 신앙의 계명들을 따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To do repentance is after one has thus confessed his sins and from a humble heart has made supplication for their forgiveness, to desist from them and to lead a new life according to the commands of faith. (AC.8389)

 

그가 자신은 남들과 같이 죄인임을 그저 시인만 할 뿐인, 그리고 스스로를 모든 악에 대해 유죄로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을 조사하지는 않는, 즉 자신의 죄를 직시하지는 않는 그런 사람이라면 그는 고백이라는 걸 하긴 하지만, 그러나 회개의 고백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가 전에 하던 대로 후에도 그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He who merely acknowledges that he is a sinner like all others, and who regards himself as guilty of all evils, and does not examine himself—that is, see his sins—does indeed make confession, but not the confession of repentance, for he lives afterward as he had done before. (AC.8390)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날마다 회개하는데요,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악을 반성, 시인 및 대적,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계속해서 넘어지지만, 주님에 의해서는 계속해서 일으키심을 얻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욕망을 품고 악한 걸 생각할 때는 넘어지지만, 그러나 악을 대적할 때는, 그리고 그 결과 악을 행하지 않을 때는 주님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런 게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악 안에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넘어지나 주님 또한 끊임없이 이들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로 하여금 모든 지옥 중 가장 끔찍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 막으심인데요, 그들 스스로 그렇게 기울어져 가는 자신들을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는 만큼이며, 그래서 사실은 그들을 좀 더 온화한 지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He who leads a life of faith does repentance daily; for he reflects upon the evils that are in him, acknowledges them, guards himself against them, and supplicates the Lord for aid. For from himself man is continually falling, but is continually being raised up by the Lord. He falls from himself when he thinks what is evil with desire; and he is raised up by the Lord when he resists evil, and consequently does not do it. Such is the state with all who are in good; but they who are in evil are continually falling, and also are continually being uplifted by the Lord; but this to prevent them from falling into the most grievous hell of all, whither from themselves they incline with all their might; thus in truth uplifting them into a milder hell. (AC.8391)

 

자유롭게 행한 회개는 도움이 되지만, 무슨 강압적 상태 속에서 행한 회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압적 상태라는 건 무슨 큰 병에 걸린 상태라든지, 불행이 닥쳐 몹시 낙담한 상태, 혹은 죽음이 임박한 상태 등, 한 마디로 건전한 이성의 사용을 방해하는 모든 두려움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강압적 상태에 놓이게 된 악인은 회개를 약속, 선행을 하여 자유로운 상태가 되지만, 그렇게 되면 그는 이전의 그 악한 생활로 돌아갑니다. 선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요, 그에게는 그가 정복하는 유혹의 상태가 될 뿐입니다. The repentance that is done in a state of freedom avails; but that which is done in a state of compulsion avails not. A state of compulsion is a state of sickness, a state of dejection of mind from misfortune, a state of imminent death; in a word, every state of fear which takes away the use of sound reason. When an evil man who in a state of compulsion promises repentance and also does what is good, comes into a state of freedom, he returns into his former life of evil. The case is otherwise with a good man, such states being to him states of temptation in which he conquers. (AC.8392)

 

입으로 하는 회개, 그리고 삶이 받쳐주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죄는 그런 걸로가 아닌, 삶의 회개, 생활의 회개로 용서받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죄를 계속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은 자비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죄는 여전히 그 사람에게 붙어 있습니다. 아무리 그가 ‘나는 죄 사함을 받았어’라고 할지라도 그가 신앙의 계명들을 따라 살지 않는 이상은 죄는 그에게서 제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들 계명에 따라 사는 만큼 그의 죄는 제거되며, 그의 죄가 제거되는 만큼 그는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악에서 물러나 선에 머물게 됩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몸 안에 살면서 악에 저항한 만큼 그는 저세상에서도 악에서 물러날 수 있으며, 그가 이 세상 삶을 통해 애정으로 선을 행한 만큼 그는 저세상에서도 선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죄 사함이라는 게 뭔지, 그리고 그게 어디서 오는 건지를 보여 줍니다. 그밖에 무슨 다른 방식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믿는 사람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Repentance of the mouth and not of the life is not repentance. Sins are not forgiven through repentance of the mouth, but through repentance of the life. Sins are continually being forgiven man by the Lord, for He is mercy itself; but sins adhere to the man, however much he may suppose that they have been forgiven, nor are they removed from him except through a life according to the commands of faith. So far as he lives according to these commands, so far his sins are removed; and so far as they are removed, so far they have been forgiven. For by the Lord man is withheld from evil, and is held in good; and he is so far able to be withheld from evil in the other life, as in the life of the body he has resisted evil; and he is so far able to be held in good then, as in the life of the body he has done what is good from affection. This shows what the forgiveness of sins is, and whence it is. He who believes that sins are forgiven in any other way, is much mistaken. (AC.8393)

 

사람은 스스로를 살피고, 자기 죄를 시인하며 회개한 후에는 생의 마지막까지 선 안에 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만일 나중에 이전 악한 삶으로 돌아가 거기 빠지게 되면, 그게 바로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는 건데요, 그때 그는 악을 선으로 결합, 그 결과 그의 나중 상태는 이전 상태보다 더 나빠집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After a man has examined himself, and has acknowledged his sins, and has done repentance, he must remain constant in good up to the end of life. If however he afterward falls back into his former life of evil, and embraces it, he commits profanation, for he then conjoins evil with good, and consequently his latter state becomes worse than his former one, according to the Lord’s words:

 

43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12:43-45) When the unclean spirit goeth out of a man he walketh through dry places, seeking rest, but findeth none; then he saith, I will return into my house whence I came out; and when he is come, and findeth it empty, and swept, and garnished for him, then goeth he, and joineth to himself seven other spirits worse than himself, and having entered in they dwell there; and the last things of the man become worse than the first (Matt. 12:43–45). (AC.8394)

 

 

 

AC.30, 창1:14-17,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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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 창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10)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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