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2.심화

 

3. 변화의 가능성, 완성의 방식

 

... 위 설명은 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구조와 본질은 여전히 영적 방식 위에 있다 최종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가 말이죠.

 

 

결론부터 분명히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느끼신 대로 그 두 문장은 그대로 두면 충돌처럼 들리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이것은 내용의 모순이라기보다 ‘두 층위(가능성 vs 최종 구조)를 한 문장 안에 섞어 말하면서 생긴 혼선’입니다. 이걸 분리해서 보면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변화될 수 있는 자유는 열려 있지만, 그 변화는 아무 형태로나 무한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조 안에서 완성된다’입니다.

 

먼저 ‘최종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가리키는 층위부터 보겠습니다. 이것은 ‘사람은 처음 상태에 묶여 있지 않고, 선택과 거듭남을 통해 실제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즉, 처음에 자연적이었던 사람이 영적이 될 수 있고, 영적 인간도 더 깊이 사랑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맞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출발 상태에 묶어 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장,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구조와 본질은 여전히 영적 방식 위에 있다’는 전혀 다른 층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거듭났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적 인간은 ‘진리를 통해 사랑에 이르는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깊이 사랑에 이르더라도, 그 사랑은 ‘진리를 통해 형성된 사랑’입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처음부터 ‘사랑이 먼저’인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둘을 정확히 나누면 이렇게 됩니다. ‘변화의 가능성’ 차원에서는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성된 구조’ 차원에서는 차이가 유지됩니다. 즉, 영적 인간이 사랑에 이르더라도 그는 ‘영적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고, 천적 인간은 ‘천적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걸 비유로 풀어보면 더 또렷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평안’에 이르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오랜 고민과 분별, 선택의 과정을 거쳐 평안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처음부터 그 평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 다 평안하지만, 그 평안의 ‘형성 방식’은 다릅니다. 이 차이가 바로 영적과 천적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영적 사람이 천적이 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꾸는 것이 정확합니다. ‘영적 사람도 사랑 중심의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예,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천적 인간의 사랑과 동일한 구조인가?’—아니오, 형성 방식이 다릅니다.

 

이렇게 보시면 두 문장이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나는 ‘열려 있음(자유와 변화 가능성)’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형성된 질서(구조의 고유성)’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가장 정확한 정리는 이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 중심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 사랑은 각자가 거듭난 방식에 따라 영적 구조 안에서 혹은 천적 구조 안에서 완성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완성의 방식은 각자의 구조에 따라 다르게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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