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29.심화
1. ‘라틴어’
본문, ‘학문을 배우는 것이 결코 금지된 것이 아님은 분명한데, 그것들은 삶에 유익하고 즐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이 세상의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것도 아닙니다’ 부분 말인데요, 그래서 스베덴보리도 모든 저술을 당시 학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기록한 것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매우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저술을 라틴어로 기록한 것은 단순한 학문적 관습을 따른 것이 아니라, AC.129에서 말하는 원리, 곧 ‘신앙 안에 있는 사람도 세상의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는 원리를 실제로 구현한 선택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라틴어는 학문과 신학, 철학의 공통 언어였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전하려는 내용이 단지 개인적 체험이나 종교적 감상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검토되고 이해될 수 있는 진리’라고 보았기 때문에, 가장 공적이고 검증 가능한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즉, 그는 일부 신비주의자들처럼 상징적이고 폐쇄적인 언어를 쓰지 않고, 오히려 누구나 접근 가능한 학문 언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 자체가 ‘신앙과 이성의 질서’를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AC.129의 맥락과 연결하면 더 분명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학문, 이성, 기억 지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근원이 되느냐, 아니면 도구로 사용되느냐’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학문 언어, 곧 라틴어를 사용하되, 그 안에 담는 내용의 근원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계시와 지혜에 두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형식은 학자의 언어를 취하고, 내용은 하늘에서 온 것을 담은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라틴어 선택이 단순한 ‘전달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저술이 특정 교파나 지역에 묶이지 않고, 당시 학문 세계 전체를 향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그가 자국어로만 썼다면, 영향력은 훨씬 제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틴어는 국경을 넘는 언어였기 때문에, 그의 저술은 처음부터 ‘보편 교회를 향한 성격’을 갖게 됩니다.
더 깊이 보면,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질서와도 일치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지성, 이성, 그리고 기억 지식을 통해 ‘아래로 흘러가며 표현되는 구조’입니다. 라틴어라는 학문 언어는 그 마지막 표현 단계, 곧 기억 지식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그는 그 영역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온전히 사용하여 위에서 받은 것을 아래까지 전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단순한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신학적 실천과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늘의 진리는 세상의 언어를 통해서도 충분히, 아니 오히려 더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 단, 그 근원이 바뀌지 않는 한에서.’
정리하면, 스베덴보리가 라틴어로 기록한 것은 단지 시대적 관습 때문만이 아니라, AC.129의 원리, 곧 신앙과 학문, 계시와 이성이 충돌하지 않고, 올바른 질서 안에서 함께 작동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보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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