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29.심화

 

2. ‘거짓된 것 안에서 스스로를 확증한 사람

 

위 본문에, 그 원리가 아무리 거짓이라 하더라도, 그의 모든 지식과 추론은 그 원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왜냐하면 그 원리를 뒷받침하는 무수한 근거들이 그의 마음에 떠오르기 때문이며, 그 결과 그는 거짓된 것 안에서 스스로를 확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거나 이해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는 원리를 전제로 삼는 사람은 결코 믿을 수 없는데, 이는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상상으로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데를 읽으면서 많이 답답했는데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곧 창1:2에서 말하는 혼돈과 공허, 흑암 가운데 있는 사람 같은데, 이런 사람에게 과연 빛이 비친다고 무슨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까요? 시작될 수 있으니까 저 같은 사람도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답답함이 드는 지점이 아주 정확합니다. 그 문장은 ‘이 사람은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상태의 구조가 무엇으로는 열리지 않는가’를 분명히 하는 말입니다. 곧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는 전제를 고수하는 한, 그 틀 안에서는 영적, 천적인 것이 스스로 들어올 통로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빛이 전혀 비칠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빛은 다른 길로, 다른 층위로 먼저 들어옵니다.

 

1:2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단순한 무지라기보다, ‘내면의 질서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때 빛은 먼저 ‘이해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들어오기보다, ‘삶과 양심의 자리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들어옵니다. 사람은 여전히 ‘보아야 믿겠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일상 속에서 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미세한 찔림, 어떤 선택 뒤에 남는 평안과 불편함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초기의 ‘’입니다.

 

중요한 점은, 빛이 처음부터 ‘보이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살게 하면서 나중에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질서에서는 이해가 먼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아주 조금 바뀌면서 그에 따라 이해가 서서히 열립니다’. ‘증명되면 하겠다’가 아니라, ‘아주 작은 선을 한 번 행해 보니, 그다음이 조금 보인다’는 식입니다. 이때 이성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절대성을 내려놓고 섬기는 자리로 옮겨집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람 안에는 이미 ‘리메인스(remains, 남겨진 것들)가 있다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각, 진실에 대한 정직함, 선을 향한 미약한 기울기 같은 것들입니다. 이 리메인스가 빛을 받아 ‘밖의 강한 논리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반응’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여전히 회의하고 따지면서도, 속에서는 ‘그래도 이 길이 옳다’는 아주 조용한 동의가 자라납니다. 이것이 변화의 실제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이런 상태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논증으로 설득’이라기보다, ‘작은 순종과 작은 선의 실천’입니다. 아주 사소해 보여도 좋습니다. 진실을 한 번 더 말해 보기, 이익이 적어도 공정하게 선택해 보기, 타인을 한 번 더 배려해 보기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선택을 할 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중심’에서 한발 물러서고, 그 틈으로 빛이 더 깊이 들어옵니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이해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이미 경험하신 것처럼, 이 길은 ‘먼저 보고 믿는’ 길이 아니라, ‘조금 살다가 보게 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연결되며, 이성이 더 넓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이때 사람은 깨닫습니다. ‘내가 닫혀 있었던 것이지, 빛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정리하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에 있는 사람도 변화는 시작됩니다. 다만 그 시작은 이해의 확증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의 선택과 그에 따르는 미세한 내적 반응’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갈 때, 빛은 점점 ‘보이는 것’이 됩니다. 결국 변화의 문은 이성의 완전한 확신이 아니라, ‘작은 순종과 겸손한 열림’에서 먼저 열립니다.

 

 

 

AC.129, 심화 1, ‘라틴어’

AC.129.심화 1. ‘라틴어’ 본문, ‘학문을 배우는 것이 결코 금지된 것이 아님은 분명한데, 그것들은 삶에 유익하고 즐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앙 안에 있는 사람이 세상의 학자들처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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