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창4:5)
355. ‘가인’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이나 분리 가능성을 용인하는 그런 교리를 상징합니다.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는 앞서와 같이 그런 예배는 받으실 수가 없었음을 상징합니다. By “Cain,” as has been stated, is signified faith separated from love, or such a doctrine as admits of the possibility of this separation; by his “offering not being looked to” is signified as before that his worship was unacceptable.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는 속에 있는 것들이 변했음을 상징합니다.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alling” is signified that the interiors were changed.
‘분’(憤, anger)은 이웃 사랑이 떠나버렸음을, ‘안색’(顔色, faces)은 속에 있는 것들을 각각 가리키며, 그것들이 변하는 걸 ‘안색이 변했다’(fall)고 합니다. By “anger” is denoted that charity had departed; and by the “faces,” the interiors, which are said to “fall” when they are changed.
356. ‘가인’이 사랑으로부터 분리된 신앙이나 이런 분리를 용인하는 교리를, 그리고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가 그런 자의 예배는 받으실 수가 없음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앞서 보여드렸습니다. That by “Cain” is signified faith separated from love, or a doctrine that admits of this separation; and that “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signifies that his worship was not acceptable, has been shown before.
357. ‘가인이 분하여’는 이웃 사랑이 떠나버렸음을 상징함이 분명한 것은, 이것이 나중에 그가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이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며, 아벨은 이웃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at “Cain’s anger was kindled” signifies that charity had departed is evident from what is afterwards related of his killing his brother Abel, by whom is signified charity.
분노는 무엇이든지 자아 사랑 및 그 탐욕과 배치되기만 하면 야기되는 아주 일반적인 악감정입니다. Anger is a general affection resulting from whatever is opposed to self-love and its cupidities.
이것은 악한 영들의 세계에서는 아주 생생하게 지각됩니다. 거기는 이웃 사랑은 전혀 없고, 대신 증오로 가득한 악한 영들의 결과, 주님을 대적하는 전반적인 분노가 있기 때문이며,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에는 무엇이든지 신경질적으로 안티를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이런 안티들을 생생하게 합니다. This is plainly perceived in the world of evil spirits, for there exists there a general anger against the Lord, in consequence of evil spirits being in no charity, but in hatred, and whatever does not favor self-love [amori proprio] and the love of the world, excites opposition, which is manifested by anger.
말씀에서 여호와에 관한 서술 시, ‘분노’, ‘진노’, 심지어 ‘노함, 격노’까지 자주 사용됩니다만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나 쓰는 것이며, 단지 위에서 언급한 어떤 이유로 그렇게 표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씀을 읽다 보면 여호와의 무슨 속성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In the Word, “anger,” “wrath,” and even “fury,” are frequently predicated of Jehovah, but they are of man, and are attributed to Jehovah because it so appears, for a reason mentioned above.
그래서 시편에 기록되기를 Thus it is written in David:
49그의 맹렬한 노여움과 진노와 분노와 고난 곧 재앙의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셨으며 50그는 진노로 길을 닦으사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전염병에 붙이셨으며 He sent against them the anger of his nostril, and wrath, and fury, and trouble, and an immission of evil angels; he hath weighed a path for his anger, he withheld not their soul from death. (시78:49-50)
여호와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화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 재앙의 천사들을 보내시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그들을 자기한테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Not that Jehovah ever sends anger upon anyone, but that men bring it upon themselves; nor does he send evil angels among them, but man draws them to himself.
이런 이유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좀 더 보면, ‘그는 진노로 길을 닦으사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또한 그래서 이사야에서도,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사45:24)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한 것은, ‘분냄’은 악, 또는 같은 의미이지만, 이웃 사랑으로부터 떠남을 상징합니다. And therefore it is added, that he “hath weighed a path for his anger, and withheld not their soul from death”; and therefore it is said in Isaiah, “To Jehovah shall he come, and all that were incensed against him shall be ashamed” (Isa. 45:24), whence it is evident that “anger” signifies evils, or what is the same, a departure from charity.
358. ‘안색이 변하니’가 내면이 변했음을 가리킨다는 것은 ‘얼굴’과 ‘변함’의 상징으로부터 분명합니다. That by the “faces falling” is signified that the interiors were change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 “face” and of its “falling.”
얼굴은, 고대인들에게는, 속에 있는 것들을 상징했습니다. 속에 있는 것들이 겉으로 얼굴을 통해서 반영되기 때문인데요, 태곳적에는 사람들이 겉과 속이 완전히 일치하는 얼굴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기질이나 마인드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The face, with the ancients, signified internal things, because internal things shine forth through the face; and in the most ancient times men were such that the face was in perfect accord with the internals, so that from a man’s face everyone could see of what disposition or mind he was.
그들은 속사정하고는 다른 얼굴을 하고 다니는 것을 무슨 괴물 같은 걸로 여겼습니다. They considered it a monstrous thing to show one thing by the face and think another.
무슨 척, 무슨 체 하는 것과 속이는 것은 그래서 혐오스럽게 여겨졌고, 이상과 같은 사유로, 얼굴을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Simulation and deceit were then considered detestable, and therefore the things within were signified by the face.
이웃 사랑이 얼굴에 나타나 빛날 때, 그 얼굴을 일컬어 ‘위로 들린다’ 하고, 그 반대는 ‘아래로 떨어진다’ 합니다. 그래서 축복기도문에서 주님을,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시는’ 주님으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6)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4:6)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주님은 사람에게 인애(仁愛, cherity)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When charity shone forth from the face, the face was said to be “lifted up”; and when the contrary occurred, the face was said to “fall”; wherefore it is also predicated of the Lord that he “lifts up his faces upon man,” as in the benediction (Num. 6:26; and in Ps. 4:6), by which is signified that the Lord gives charity to man.
‘얼굴을 떨굼’이 의미하는 바는 예레미야에 보면 이렇습니다. What is meant by the “face falling,” appears from Jeremiah: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I will not make my face to fall toward you, for I am merciful, saith Jehovah. (렘3:12)
‘여호와의 얼굴’은 자비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을 향해 ‘그 얼굴을 드심’은 그가 자비하심 가운데 그를 향해 인애를 베푸심인 반면, 그 반대는, 그가 ‘얼굴을 숙이심’, 곧, 사람의 얼굴이 변한 것, ‘안색이 변하니’입니다. The “face of Jehovah” is mercy, and when he “lifts up his face” upon anyone, it signifies that out of mercy he gives him charity; and the reverse when he “makes the face to fall,” that is, when man’s face 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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