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6,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AC.292-297) -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하는 '가죽옷'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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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새끼, 양, 염소, 해달 및 숫양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건 말씀에서 야곱이 나오는 데와 또 궤(the ark)가 나오는 데의 속뜻을 보면 분명합니다. 야곱의 경우, ‘에서의 의복으로 옷 입혀졌고’, 그의 손과 목 매근매끈한 곳에는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대신했으며, 이삭이 그 향취를 맡았을 때, ‘내 아들의 향취는 밭의 향취로다 하였습니다 (27:15, 16, 27). 이 가죽들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것은 주님의 허락으로 해당 부분(AC.3540)을 다룰 때 보시게 됩니다. 궤와 관련, 성막의 덮개는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26:14; 36:19). 그리고 그들이 전진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증거궤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같은 식으로 상과 대접들, 등잔대와 그릇들, 금제단, 그리고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그릇들도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4:614). 이 가죽들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는 것 또한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해당 부분에서 보시게 됩니다. 궤, 성막 혹은 장막 안에 있던 것들은 그게 무엇이었던지 간에, 네, 아론이 입은 거룩한 옷 위에 있던 것들 또한 그게 무엇이었던지 간에 사실은 천적 영적인 것을 상징하였고,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그 나름의 고유한 표상(表象, representation)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That the skins of kids, sheep, goats, badgers, and ram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is evident from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here Jacob is treated of, and also where the ark is treated of. Of Jacob it is said that he was “clothed with the raiment of Esau,” and on his hands and on his neck, where he was naked, “with skins of kids of the goats,” and when Isaac smelled them, he said, “the smell of my son is as the smell of a field” (Gen. 27:15, 16, 27).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s,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een in that place. Of the ark it is said that the covering of the tent was “of rams’ skins and badgers’ skins” (Exod. 26:14; 36:19), and that when they set forward Aaron and his sons covered the ark with a covering “of badgers’ skins,” and likewise the table and its vessels, the candlestick and its vessels, the altar of gold, and the vessels of ministry and of the altar (Num. 4:6–14). Of the Lord’s Divine mercy it will in that place also be seen that these skins signify spiritual and natural good, for whatever was in the ark, the tabernacle, or the tent, yea, whatever was upon Aaron when clothed with the garments of holiness, signified what is celestial spiritual, so that there was not the least thing that had not its own representation.

 

15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창27:15, 16)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창27:27)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 (출26:14; 36:19)

 

6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7진설병의 상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대접들과 숟가락들과 주발들과 붓는 잔들을 그 위에 두고 또 항상 진설하는 떡을 그 위에 두고 8홍색 보자기를 그 위에 펴고 그것을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9청색 보자기를 취하여 등잔대와 등잔들과 불 집게들과 불똥 그릇들과 그 쓰는 바 모든 기름 그릇을 덮고 10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1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 12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13제단의 재를 버리고 그 제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14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민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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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95,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AC.292-297) -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이유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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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인(太古人)들을 일컬어 ‘가죽으로 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벌거벗은 사람들’(naked)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노센스(innocence, 순진무구)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던 이 이노센스를 잃어버렸고, 그러자 자신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벌거벗음’(nakedness)이기 때문입니다. (태고인들의 스피킹 방식에 맞춰) 모든 일이 상호 긴밀히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그들은 벗은 채로 있게 될까 봐 주님이 자기들에게 옷을 입히셨다 라고 합니다. 악 가운데 있는 것은 벗은 채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영적 자연적 선 가운데 있음이 분명한 것은 그들에 관한 언급인 위 본 장 1절로 13절까지 내용과, 그것이 여기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내용과 연관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여기서는 그 교회의 첫 번째, 그리고 더욱 특별히는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 이들은 그런 선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y are said to be “clothed with a coat of skin,” is that the most ancient people were said to be “naked,” on account of their innocence; but when they lost their innocence they became conscious that they were in evil, which also is called “nakedness.” That all things might appear to cohere historically (in accordance with the way of speaking of the most ancient people), they are here said to be “clothed lest they should be naked,” or in evil. Their being in spiritual and natural good is evident from what was remarked above concerning them, from verse 1 to 13 of this chapter, as well as from its being here related that “Jehovah God made them a coat of skin, and clothed them”; for it here treats of the first—and more especially of the second and third—posterities of the church, who were endowed with such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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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94,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AC.292-297) - '가죽'이 새끼 염소나 양, 숫양의 가죽으로 이해되는 이유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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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뜻에 관한 어떤 계시 없이도, 그리고 말씀 내 유사 표현들이 나오는 여러 일련의 비교 구절들 없이도, 그 어느 쪽도 사람들이 여기 ‘가죽옷’이 영적 자연적 선을 상징한다고 볼 거라는 건 아니지 싶습니다. 겉 글자만 읽고 그걸 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가죽(skin)이라는 보통 쓰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새끼염소나 양, 또는 숫양의 가죽으로 이해가 되는데요, 말씀에서 이들 동물들은 선,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에 속한 애정, 그리고 체어리티에 속한 것, 즉 희생제사 때 쓰이던 양과 똑같은 걸 상징합니다. 체어리티의 선, 곧 영적 자연적 선을 가진 걸로 보이는 사람들을 (sheep)이라 하며, 그래서 주님도 양의 목자(the shepherd of the sheep)시라 하고, 체어리티를 가진 걸로 보이는 사람들을 그분의 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Neither would it be evident to anyone that a “coat of skin” signifies spiritual and natural good, except by a revelation of the internal sense, and a subsequent comparison of passages in the Word where similar expressions occur. The general term “skin” is here used, but that of a kid, sheep, or ram, is understood, which animals in the Word signify affections of good, charity, and that which is of charity, as was likewise signified by the sheep used in the sacrifices. Those are called “sheep” who are endowed with the good of charity, that is, with spiritual and natural good, and hence the Lord is called the “shepherd of the sheep,” and those who are endowed with charity are called his “sheep,” as everybod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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