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2 심화
1. ‘세대의 종말’은 왜 수백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
위 AC.32 본문, ‘지금이 세대의 종말이기 때문이며’(now i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말인데요, 이 글, 곧 ‘Arcana Coelestia’ 작성 시기가 1749-1756임을 생각하면, 지금은 2026년이니 대략 270년이 흘렀어요. ‘세대의 종말’이 이렇게 길게 몇백 년씩 계속되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AC.32에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랑이 ‘더 큰 광명체’이고 신앙이 ‘더 작은 광명체’라는 아르카나가 특별히 이 마지막 시대에 감추어져 있는 이유는 ‘지금이 세대의 종말(the consummation of the age)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Arcana Coelestia’가 18세기 중엽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그때가 ‘세대의 종말’이었다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떻게 세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세상의 종말’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AC.32에서 이 표현은 바로 이어지는 설명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는 ‘이때에는 사랑이 없고, 따라서 신앙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뒤 마24:29의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해는 사랑, 달은 신앙, 별들은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세대의 종말’은 지구가 사라지거나 인류 역사가 끝나는 물리적 종말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는 영적 종말과 관계됩니다.
그러므로 AC.32를 읽을 때 ‘스베덴보리가 18세기에 곧 세계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예측이 빗나갔다’고 이해하면 그의 말뜻을 놓치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종말은 자연계의 시간표에 따른 지구의 파괴가 아니라 교회의 영적 상태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도 종말이라면 언젠가는 끝나야 하지 않는가? 왜 18세기의 종말을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되는 상태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여기서는 오히려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AC.32가 기록되던 당시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그 교회의 종말 상태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기 저작에서는 그 뒤에 일어난 사건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은 자연계에서 지구가 불타 없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영계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입니다. 그는 그 최후의 심판이 1757년에 영계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의 저작 전체의 시간 흐름을 따르면, AC.32의 ‘지금이 세대의 종말’이라는 말은 수백 년 동안 끝없이 계속되는 종말을 뜻한다고 볼 필요가 없습니다. AC가 기록되던 시기는 그가 말하는 종말의 국면에 있었고, 이후 최후의 심판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거쳐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갔다고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서 ‘종말’의 의미도 조금 더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한 교회의 종말은 달력상의 어느 날 교회 조직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외적인 형태와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배당도 있고, 성경도 읽고, 교리도 가르치며,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계속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내적인 생명,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참된 신앙이 소멸되면 그 교회는 내적으로 종말에 이를 수 있습니다.
AC.32가 바로 이 점을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므로 신앙도 없고, 그 상태가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으로 말씀에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대의 종말’은 먼저 이러한 영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지상에 여전히 기독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스베덴보리의 ‘종말’과 모순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교회론에서 어떤 교회의 영적 종말과 그 교회에 속한 외적인 조직들의 역사적 존속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기존 교회 안에 속해 있다고 해서 그 안의 모든 개인에게 사랑과 신앙이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교회의 보편적인 상태에 대한 판단과 개개인의 영적 상태에 대한 판단은 구별해야 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회의 종말’이라는 말을 듣고 오늘날의 모든 기독교인과 모든 교회를 일괄적으로 영적으로 죽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교회의 시대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지상에서 특정 교단에 속한 모든 개인의 내면을 한꺼번에 판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실제 영적 상태는 그가 어떤 이름의 교회에 속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또한 새 교회의 시작 역시 기존 교회 조직들이 어느 날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조직 하나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새 교회의 핵심은 새로운 교리적 빛과 주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리고 사랑과 신앙의 올바른 질서가 다시 세워지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영계에서 이루어진 최후의 심판과 지상에서 새로운 교회의 진리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확산되는 과정 역시 구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AC.32의 ‘지금이 세대의 종말’이라는 표현 때문에 ‘그 종말이 27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가?’라고 물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문장의 ‘지금’은 우선 AC.32가 기록되던 당시의 ‘지금’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당시 기독교회의 내적 상태를 종말로 보았고, 이후 자신의 저작에서 1757년 영계에서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AC.32의 한 문장만을 떼어 18세기의 ‘종말’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연장하기보다, 그의 저작 전체에서 이어지는 계시의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AC.32의 본래 주제로 다시 돌아가게 합니다. 왜 스베덴보리는 ‘세대의 종말’을 여기서 언급했을까요? 종말론 자체를 자세히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시대에는 사랑과 신앙의 참된 관계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사랑에서 생명을 얻는 신앙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는 사랑이고 달은 신앙이다’라는 단순해 보이는 상응 안에 당시에는 감추어진 하나의 아르카나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AC.32에서 ‘세대의 종말’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언제 지구가 끝나는가?’가 아니라 ‘교회에서 사랑과 신앙이 어떤 상태에 이르렀는가?’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 자신의 저작 흐름을 따르면, AC가 기록되던 종말의 시대에서 1757년의 최후의 심판을 거쳐 새 교회가 시작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18세기의 ‘세대의 종말’을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긴 종말 기간으로 늘여 설명하기보다, 당시의 영적 상태와 그 이후에 이어진 사건들을 구별하여 읽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AC.32, 심화 2, ‘아르카나, 세대의 종말, 사랑도 신앙도 거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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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 창1:14-17, ‘해가 사랑이고, 달이 신앙이다 : 마지막 시대에 드러나는 광명체의 아르카나’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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