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2

 

천적 천사들이 소생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를 떠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천사들이 와서 그에게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줍니다. 이전에는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When the celestial angels are with a resuscitated person, they do not leave him, for they love everyone; but when the soul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no longer be in the company of the celestial angels, he is eager to depart from them; and when this takes place the spiritual angels arrive, and give him the use of light, for previously he had seen nothing, but had only thought.

 

 

해설

 

이 단락은 사람이 죽은 직후 처음 맞이하는 영적 상태가 무엇인지를 매우 질서 있게 보여 줍니다. 소생된 사람은 처음부터 심판이나 분별의 상태에 놓이지 않고, 천적 천사들과 함께 머무르며 보호받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는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질서이며, 주님의 자비가 먼저 작동하는 단계임을 분명히 합니다.

 

천적 천사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명시됩니다. 여기서 사랑은 평가나 판단을 전제하지 않는 사랑이며, 영혼이 아직 자기 자신을 직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그를 감싸고 안정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단계에서는 인간의 과거 행위나 내적 상태가 아직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환점은 천사 쪽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 발생합니다.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그는 천적 천사들로부터 떠나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추방이나 배제가 아니라, 사랑의 분위기 자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즉, 천적 사랑은 항상 열려 있으나, 그 사랑과 합치되지 않는 내적 상태는 스스로 거리를 두게 됩니다.

 

이때 영적 천사들이 도착합니다. 이는 보호의 단계에서 분별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 천사들의 역할은 사랑이 아니라 빛, 곧 이해와 인식입니다. 그래서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준다고 표현됩니다. 이 빛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 상태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전환의 성격을 분명히 합니다. 이전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생각만 했다’고 합니다. 이는 죽음 직후의 인간이 아직 명확한 인식이나 자각 없이, 흐릿한 사고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뜻합니다. 곧, 생각은 있으나 통찰은 없고, 의식은 있으나 분별은 없는 상태입니다. 영적 천사들의 도착은 바로 이 상태에서 ‘보는 상태’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AC.182, 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AC.182.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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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AC.182, 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AC.182.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제가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인생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아니, 영적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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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3, 창3 앞, ‘인간의 지각 속에서 경험되는, 빛의 사용이 주어지는 과정’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3 이 천사들이 어떻게 하는지가 제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왼쪽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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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1, 창2 뒤, 지금까지는 ‘천적 소생’, 이후에는 ‘영적 각성’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81 이처럼 천적 천사들에 의해 소생된 사람은 아직은 어두운 생명(obscure life)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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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심화

2.  교대와 다양함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 하는가?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varieties)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없고,  나아가 퍼셉션,  지각될 수도 없습니다.(Life without such alternations and varieties would be uniform, consequently no life at all; nor would good and truth be discerned or distinguished, much less perceived.)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진술은  놀랍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천국은,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 삶이  행복, 만수무강하게  ,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알기 때문이지요...

 

 

AC.37에는 처음 읽으면 조금 놀라운 말이 나옵니다. 영적·천적인 것들에 교대(alternations) 다양함(varieties)이 있으며, 만일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획일적이 되어 결국 생명이 전혀 없게 된다고 합니다. 변화가 없으면 단조롭다는 말까지는 쉽게 이해되는데, 왜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이 없다고까지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여기서 말하는 단조롭다는 것을 단순히 지루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부족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원문은 `uniform`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한결같아서 차이와 변화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재미가 없으니 생명이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라, 생명에는 본래 상태의 차이와 다양함이 있다는 훨씬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AC.37은 그 이유를 바로 이어서 어느 정도 설명해 줍니다.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선과 진리가 분별되거나 구별될  없고, 더욱이 퍼셉션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베덴보리가 왜 교대와 다양함을 생명과 연결하는지 중요한 실마리를 얻습니다. 살아 있는 영적 생명은 선과 진리가 아무런 차이 없이 하나의 평평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분별하고 구별하며 퍼셉션하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의 생명을 생각하면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됩니다. 하루에도 빛의 상태가 달라지고, 한 해에도 열과 빛이 달라집니다. 봄의 자연과 한여름의 자연, 가을과 겨울의 자연은 서로 다릅니다. 바로 그 변화 속에서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다시 새로운 때를 준비합니다. 스베덴보리가 AC.37에서 자연계의 날과 해의 교대를 영적·천적 상태의 교대에 비유하는 이유를 이런 모습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나쁜 상태를 겪어야 한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됩니다. AC.37이 말하는 교대와 다양함은 곧바로 선과 악의 반복을 뜻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의 교대를 말합니다. 따라서 악에 빠지는 것 자체가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거나, 신앙이 무너지고 사랑이 식어야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본문보다 앞서 나가는 해석입니다.

 

차이가 있어야 선을   있으니 악을 경험해야 선을 안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AC.37은 악을 경험해야만 선을 퍼셉션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선과 진리가 분별되고 구별되거나 퍼셉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양함 을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생명도 교대가 있다는 뜻일까요? AC.37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에 교대가 있다고 말하므로, 적어도 영적 생명을 언제나 똑같은 강도의 빛과 사랑과 기쁨이 끝없이 지속되는 정지된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실마리를 줍니다. 다만 천국에서 그 교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험되는지는 AC.37의 설명 범위를 넘어섭니다. 그 문제는 스베덴보리가 천국의 상태 변화를 직접 다루는 다른 글들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 점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완전함에 대한 생각도 조금 바꾸어 줍니다. 우리는 완전한 영적 상태라면 아무런 변화도 없이 항상 최고조의 사랑과 빛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AC.37은 영적·천적 생명 자체에 교대와 다양함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변화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곧 불완전함이나 실패의 증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변화를 주님께서 주신 좋은 변화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실제 삶에는 자기 사랑 때문에 생기는 후퇴도 있고, 잘못된 선택의 결과도 있으며, 악과 거짓으로 기울어지는 상태도 있기 때문입니다. AC.37 교대를 이런 모든 상태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자신의 악을 영적 성장 과정으로 합리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가장 안전하게 붙들 수 있는 것은 생명은 획일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생명에는 다양한 상태가 있고, 그 상태들은 서로 구별되며, 바로 그 안에서 선과 진리도 분별되고 구별되고 퍼셉션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살아 있는 다양함을 자연계의 날과 해, 빛과 열의 변화에 비유합니다.

 

이렇게 보면 AC.37 결국 생명이 전혀 없게 된다는 표현도 조금 이해됩니다. 생명은 단순히 어떤 좋은 상태 하나를 얻은 뒤 그것을 영원히 얼려 놓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은 다양한 상태를 가지며, 그 안에서 선과 진리가 서로 구별되고 퍼셉션됩니다. 적어도 AC.37이 보여 주는 영적 생명은 변화 없는 정지가 아니라 교대와 다양함을 가진 생명입니다.

 

우리의 거듭남을 바라볼 때도 이 원리는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내적 상태가 다르다고 해서 그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변화를 무조건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러 상태 가운데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주님 앞에서 더욱 분명히 분별해 가는 것입니다.

 

결국 AC.37이 말하는 교대와 다양함은 영적 생명이 죽은 평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놀랍게도 바로 그 다양함 속에서 선과 진리가 분별되고 구별되며 퍼셉션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변화가 있으니 생명이 있다는 단순한 말보다, ‘살아 있는 영적 생명에는 선과 진리가 퍼셉션될  있는 교대와 다양함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AC.37의 뜻에 더 가깝겠습니다.

 

 

 

AC.37, 창1:14-17, ‘영적 생명의 리듬 : 낮과 밤, 계절처럼 반복되는 거듭남의 질서’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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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1,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

AC.37.심화 1.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 위 AC.37 본문에 ‘이 말 속에는 지금 당장 다 펼쳐 보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아르카나가 담겨 있지만’(In these words are contained more arcana than can at present be unf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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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심화

1. 징조(signs), 계절(seasons), (days), (years)

 

 AC.37 본문에   속에는 지금 당장  펼쳐 보일  없을 만큼 많은 아르카나가 담겨 있지만(In these words are contained more arcana than can at present be unfolded)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역량과 상태가, 펼쳐 보여도 아직은 이해할  없는, 감당할  없는 역량이어서 그런  같은데... 그럼에도 혹시 한두 가지만  보여 주실  있나요?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말씀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라는 8:22 말씀을   와닿게 이해하고 싶어서입니다.

 

 

1:14에는 징조(signs), ‘계절(seasons), ‘(days), ‘(years)라는 네 표현이 한꺼번에 나옵니다. AC를 읽는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징조는 무엇을 뜻하고, 계절은 무엇이며, 날과 해는 각각 어떤 영적 상태를 뜻할까?

 

그런데 뜻밖에도 AC.37은 이 네 단어를 하나씩 풀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여기에 현재로서는 말할  있는 것보다  많은 아르카나가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네 단어의 개별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에 존재하는 교대(alternations) 다양함(varieties)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AC.37을 읽으면서 징조는 이것, 계절은 이것, 날은 이것, 해는 이것이라는 네 개의 고정된 정의를 당장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먼저 이 네 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더 큰 배경을 보여 줍니다. 영적 생명에는 상태의 변화가 있으며, 그 변화는 자연계에서 날과 해가 변하는 모습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는 아침, , 저녁, 밤이 교대하고, , 여름, 가을, 겨울이 교대합니다. 그에 따라 빛과 열이 달라지고 자연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천적인 것들에도 이와 같은 교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영적 상태가 자연계의 하루나 계절과 정확히 같은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연의 변화가 영적 상태의 변화를 이해하도록 보여 주는 상응적 모습이라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는 각각 짧은 영적 주기와 긴 영적 주기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해를 돕는 하나의 추측이나 비유로는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AC.37이 그렇게 정의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이 직접 말하는 것은 영적·천적 상태의 교대가 날과 해의 교대에 비유된다는 데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 정도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계절 역시 곧바로 하나의 영적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가는 정해진 시점이라고 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계에서 계절이 변화와 교대를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AC.37 `seasons`의 속뜻을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지금 말할  있는 것보다  많은 아르카나가 있다고 한 이상, 오히려 독자가 성급하게 하나의 뜻으로 고정하지 않는 것이 본문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징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내가 현재 어느 영적 상태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표시라고 설명하면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것 역시 AC.37의 직접적인 정의는 아닙니다. 더구나 성경에서 징조라는 말은 문맥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1:14 `signs`를 하나의 심리적인 자기진단 표지로 좁혀 버리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AC.37은 왜 굳이 징조와 계절과 날과 를 언급하면서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AC를 읽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언제나 한 글에서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표현을 먼저 제시하고 그 의미의 큰 틀만 보여 준 뒤, 말씀의 다른 부분에 이르러 다시 돌아와 더 깊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AC.37 마지막에서 그는 이 주제가 창8:22에서 다시 다루어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지금 AC.37에서 모든 세부를 확정하기보다, 앞으로 말씀의 다른 곳에서 같은 주제가 어떻게 다시 펼쳐지는지를 기다리는 것이 AC를 읽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AC.37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중요한 원리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영적 생명은 하나의 상태에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에는 교대와 다양함이 있으며, 스베덴보리는 그런 변화가 없으면 삶은 획일적이 되어 생명이라 할 만한 것이 없고, 선과 진리도 분별되고 구별되거나 퍼셉션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원리를 먼저 붙들면 징조와 계절과 날과 를 성급하게 네 개의 공식으로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이 네 표현 전체가 우리에게 영적 생명에는 상태와 상태의 변화가 있다는 더 큰 세계를 열어 주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를 처음 읽을 때 이런 미완성된 설명을 만나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 여기서 정확히 뜻을 말해 주지 않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씀의 속뜻은 하나의 단어에 하나의 뜻을 붙인 사전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표현들이 말씀의 여러 곳에서 다시 나타나고 서로 연결되면서 점차 더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AC.37에서 징조, 계절, , 의 뜻을 묻는 가장 안전한 답은 이렇습니다. 이 네 표현에는 많은 아르카나가 들어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아직 그것들을 각각 상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지금 그가 먼저 가르치는 것은 영적·천적 생명에 교대와 다양함이 있으며, 그것이 자연계의 날과 해의 변화에 비유된다는 사실입니다. 세부적인 뜻을 서둘러 채우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펼쳐 가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AC.37, 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위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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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창1:14-17, ‘영적 생명의 리듬 : 낮과 밤, 계절처럼 반복되는 거듭남의 질서’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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