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4.심화
1. 천적 천사들의 ‘생명과 지성의 빛’은 어떤 상태일까?
위 AC.34 본문, ‘그러한 생명과 지성의 빛 가운데 있는 그 상태는 거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and are in such a life and light of intelligence that scarcely anything of it can be described.) 말인데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어떤 묘사가 좀 가능할까요? 저렇게만 말하면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해서요...
AC.34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에게 허락된 영계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천적 사랑 가운데 있는 천사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그 사랑으로 인해 ‘신앙에 속한 모든 지식 안에 있으며’, ‘그러한 생명과 지성의 빛 가운데 있는 그 상태는 거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읽으면 오히려 궁금증이 커집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니, 도대체 어떤 상태라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AC.34에서 실제로 말한 범위를 정확히 붙드는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그 상태를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천적 천사들이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생각이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 어떤 방식으로 진리를 알아보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워 ‘천적 천사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단정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AC.34 자체가 알려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첫째, 그들은 ‘천적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둘째, 그 사랑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입니다. 셋째, 그 사랑으로 인해 그들은 ‘신앙에 속한 모든 지식 안에’ 있습니다. 넷째, 그 결과 그들에게는 놀라운 ‘생명과 지성의 빛’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함께 보면 어느 정도 그 상태의 윤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생명’입니다. 바로 앞의 AC.33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랑과 생명을 떼어 놓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생명도 있을 수 없고, 사랑이 어떠한가에 따라 생명과 기쁨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된 생명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AC.34의 천적 천사들이 놀라운 ‘생명’ 가운데 있다는 말은 앞의 설명과 연결됩니다. 그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 사랑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랑에 따른 생명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지성의 빛’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머리가 매우 좋다거나 지식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34가 강조하는 것은 천적 천사들이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으로 인해 ‘신앙에 속한 모든 지식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과 신앙에 속한 지식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지성의 빛은 사랑 없는 지적 능력이나 교리 지식의 축적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바로 뒤에 나오는 반대 사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랑 없이 신앙의 교리적 지식만 가진 영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지식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관한 교리적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생명의 차가움과 빛의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천적 천사들에게는 ‘생명과 지성의 빛’이 있고, 사랑 없는 교리적 지식만 가진 영들에게는 ‘생명의 차가움과 빛의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대조가 AC.34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천적 천사들의 ‘지성의 빛’을 이해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사랑에서 분리되지 않은 지성의 상태’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신앙에 속한 지식은 차가운 지식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생명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결합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그들의 상태를 단순히 ‘많이 아는 상태’가 아니라 ‘생명과 지성의 빛 가운데 있는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의 AC.32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스베덴보리는 천적 천사들이 ‘사랑에 속한 신앙’ 외에 다른 신앙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의 사랑과 생명과 행복이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며, 지각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34의 천적 천사들을 이해할 때에도 같은 질서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랑과 신앙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 모든 생명의 근원이 주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의 경험에 빗대어 조금이라도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아주 제한적인 비유는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 일을 ‘해야 하니까’ 억지로 하는 경우와, 진심으로 이웃의 유익을 사랑하여 기쁘게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행동이라도 후자의 경우에는 ‘무엇이 옳은가’라는 앎과 ‘그것을 하고 싶다’는 애정이 더 가까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천적 천사들의 상태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과 진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연적 수준에서 희미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비유 정도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적 천사들의 상태를 ‘아무런 고민도 없이 모든 진리를 한순간에 직관적으로 아는 상태’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AC.34가 여기서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과 지성의 빛’을 어떤 특별한 황홀감이나 감정 상태로 묘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랑과 신앙의 질서입니다.
왜 그 상태를 ‘거의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는지도 여기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경험했다고 말하는 천적 사랑의 생명과 지성의 빛은 자연계에 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랑과 지식의 관계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진리에 어긋날 수 있고,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그대로 살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신앙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실제 사랑의 삶과 분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34에서 천적 천사들의 상태는 바로 그 반대편에 놓입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천적 사랑과 신앙에 속한 지식이 결합되어 있고, 거기에서 생명과 지성의 빛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분리된 상태를 가지고 그 결합의 상태를 온전히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베덴보리도 ‘거의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문장을 신비한 황홀경에 대한 묘사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AC.34의 문맥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신앙의 결합에 관한 것입니다. 사랑과 신앙은 하나를 이루며, 사랑 없는 신앙의 지식은 겨울 햇빛처럼 생명을 내지 못하지만,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은 봄의 햇빛처럼 생명을 일으킵니다. 천적 천사들의 ‘생명과 지성의 빛’은 바로 이 사랑과 신앙의 결합이 천국에서 얼마나 충만한 생명을 이루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상태를 완전히 묘사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무엇이 그 상태의 핵심인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이 아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 안에서 신앙에 속한 지식이 살아 있는 상태’,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아 생명과 지성의 빛을 이루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설명은 결국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AC.34가 천적 천사들의 놀라운 상태를 보여 주는 목적은 단순히 천국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바로 다음에 사랑 없이 신앙의 교리적 지식만 가진 영들의 차갑고 어두운 상태를 대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은 신앙 지식을 알고 있는가?’만이 아니라 ‘그 지식이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삶과 결합되어 있는가?’입니다.
천적 천사들의 ‘생명과 지성의 빛’은 우리에게 아직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천국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AC.34가 밝혀 주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생명과 빛의 근원은 천사들 자신에게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으며, 그들에게 사랑과 신앙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질서가 그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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