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4 심화
2. 왜 ‘도망함’(flight)이 ‘마지막 때와 각 사람이 죽을 때’를 뜻하는가?
위 AC.34 본문 중 인용 구절,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막13:18)에 나오는 ‘일’(flight)을 기독교, 개신교에서는 ‘휴거’라 하여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C.34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랑 없는 신앙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각각 겨울과 봄의 햇빛에 비유한 뒤, 막13:18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곧바로 ‘여기서 도망함(flight)은 마지막 때를 뜻하며, 또한 각 사람이 죽을 때를 뜻합니다. 겨울은 사랑이 없는 삶이고, 환난의 날은 저세상에서의 그 비참한 상태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처음 읽으면 상당히 뜻밖입니다. ‘도망함’이라는 말이 어떻게 ‘마지막 때’를 뜻하고, 더 나아가 ‘각 사람이 죽을 때’를 뜻할 수 있을까요? 혹시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을 flight라고 표현한 것일까요?
먼저 이 가능성부터 제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기서 영어 flight는 ‘비행’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막13의 문맥에서 flight는 위험을 피해 ‘도망함, 피신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이해하면서 영어 단어의 다른 뜻인 ‘비행’을 끌어올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것을 현대 종말론에서 흔히 말하는 ‘휴거’와 동일시해서도 안 됩니다. AC.34에서 스베덴보리는 flight를 휴거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직접 제시하는 속뜻은 ‘마지막 때’와 ‘각 사람이 죽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화에서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그가 실제로 제시한 이 두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도망함’이 ‘마지막 때’를 뜻할까요? 막13의 문자적 문맥에서 도망함은 한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결정적인 끝을 향해 가는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말씀을 교회의 마지막 상태에 적용합니다. AC.32에서도 ‘세대의 종말’을 사랑이 거의 없고 그 결과 신앙도 거의 없는 상태로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계의 어느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도망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한 교회의 상태가 마지막에 이르는 영적 의미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또한 각 사람이 죽을 때’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 전체의 마지막과 한 개인의 자연계 삶의 마지막 사이에 대응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그 교회의 마지막 상태가 있고, 개인에게는 자연계에서의 삶을 마치는 때가 있습니다. AC.34는 막13의 말씀을 이 두 차원에 함께 적용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죽을 때’를 단순히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이동 순간으로 이해하면 AC.34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바로 이어 설명하는 것은 이동의 방식이 아니라 그때의 ‘상태’입니다. ‘겨울은 사랑이 없는 삶’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을 AC.34의 속뜻에 따라 읽을 때 중심 질문은 ‘죽을 때 영혼이 어떻게 이동하는가?’가 아니라 ‘자연계의 삶을 마칠 때 그 사람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가?’입니다. 그때가 ‘겨울’, 곧 사랑이 없는 삶의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34 전체의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이 글의 처음부터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사랑과 신앙의 결합입니다. 사랑과 신앙은 하나를 이루며, 사랑 없는 신앙의 교리적 지식만 가지고 있는 영들은 ‘생명의 차가움과 빛의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는 사랑 없는 신앙의 생명을 겨울철 햇빛에 비유합니다. 빛은 있지만 열이 없어서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고 모든 것이 굳어 있는 상태입니다.
반대로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은 봄철의 햇빛과 같습니다. 빛과 함께 열이 있어 모든 것이 자라고 번성합니다. 바로 이 겨울과 봄의 대조를 설명한 다음에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이 인용됩니다. 따라서 ‘겨울’의 의미는 앞의 설명과 분리해서 읽을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각 사람이 죽을 때’를 언급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자연계에서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은 사랑과 신앙이 결합된 삶을 향하여 거듭날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계의 삶을 마칠 때 그 사람의 지배적인 생명이 사랑 없는 겨울과 같은 상태라면, 그것은 단순히 추운 계절에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계의 삶을 마쳤다는 뜻이 됩니다.
AC.34은 그 뒤의 ‘환난의 날’도 ‘저세상에서의 그 비참한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 역시 자연계의 재난이나 종말 시간표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 없는 삶이 사후에 어떤 상태와 연결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따라서 이 인용 전체는 AC.34가 계속 말해 온 ‘사랑 없는 신앙에는 참된 생명이 없다’는 원리를 매우 엄중한 방식으로 강조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죽을 때’라는 표현 때문에 임종 순간의 감정이나 마지막 몇 분의 상태에 지나치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AC.34가 말하는 ‘겨울은 사랑이 없는 삶’입니다. 즉 문제는 죽는 바로 그 순간 사람이 평안했는가 두려워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연계에서 어떤 사랑을 자신의 생명으로 삼아 살아왔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거나, 의식을 잃은 채 죽었거나, 임종 때 심한 고통과 두려움을 겪었다고 해서 그것을 ‘겨울에 도망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겨울은 육체적 임종 상황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삶’이라는 영적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별은 목회적으로도 중요합니다. 막13:18을 AC.34의 설명에 따라 읽으면서 ‘좋은 상태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임종의 외적 모습에 적용하면 불필요한 두려움을 만들 수 있습니다. 평안하게 임종했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봄인 것도 아니고, 고통스럽게 임종했다고 해서 영적으로 겨울인 것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보는 것은 자연적 죽음의 외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이루어 온 사랑의 성질입니다.
이렇게 보면 ‘도망함’이 왜 각 사람이 죽을 때를 뜻하는지도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막13의 종말에 관한 말씀을 교회의 마지막에만 한정하지 않고 개인의 자연계 삶의 마지막에도 적용합니다. 그리고 그때 중요한 것은 ‘그 마지막이 사랑 없는 겨울의 상태인가, 아니면 사랑과 신앙이 결합된 생명 가운데 있는가’입니다.
따라서 AC.34에서 flight를 ‘비행’이나 ‘휴거’로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서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이동 자체를 flight라고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주는 열쇠는 ‘마지막 때’, ‘각 사람이 죽을 때’, 그리고 ‘겨울은 사랑이 없는 삶’이라는 세 표현입니다.
결국 이 인용의 중심은 ‘어떻게 세상 끝에서 탈출할 것인가?’가 아니라 ‘자연계의 삶을 마칠 때 나는 어떤 사랑의 상태에 있는가?’입니다. AC.34 전체가 말하듯 신앙은 사랑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사랑 없는 신앙은 겨울의 햇빛과 같습니다. 그래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은 사랑과 신앙이 하나가 된 삶의 중요성을 마지막 순간의 관점에서 다시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AC.34, 창1:14-17, 사랑과 신앙은 하나다 : 겨울의 빛과 봄의 빛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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