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1)’ (2023/5/29)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Whereby shall I know that I shall inherit it? (창15:8)

 

위 말씀은 창세기 15장 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시는 말씀에 아브람이 대답하는 말입니다.

 

이는 겉으로는 아브람과 여호와 간 대화이지만, 그 속뜻으로는 주님의 내부 사람(the interior man)과 속 사람(the internal) 간 대화입니다.

 

이는 인성을 입으신 주님의 거듭나심에 관한 과정으로서 주님 안에서 일어난 각종 영적 전쟁과 전투, 싸움을 주님은 어떻게 이겨나가셨는지를 아브라함의 아브람 시절 일어난 일들을 통해 알려주고 계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 역시 우리의 거듭남의 과정 및 우리의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면 주님처럼 이겨나갈 수 있는지 하는 매우 생생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귀한 계시입니다.

 

아래는 주님이 받으신 유혹에 대하여, 스베덴보리를 통해서 밝히신 아르카나이며, 순서대로 오늘은 그 첫 번째 단락을 번역, 소개합니다.

 

 

[1] 이 표현이 주님의 사랑, 곧 온전히 확신할 수 있었으면 하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유혹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들 단어 자체에 내포된 의심들을 보고 알 수 있는데요, 시험 중에 있는, 유혹 가운데 있는 사람은 시선의 끝(the end in view), 곧 믿음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선의 끝인 믿음은 곧 사랑인데요, 이는 악한 영들과 정령들(evil genii)의 힘써 싸우는 대상이요, 결국 의심케 하고자 의도하는 것이며, 이 사랑이 크면 클수록 저들 역시 더욱 이를 악물고 그 목적, 곧 그 사랑을 포기, 의심케 하고자 갖은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만일 그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전혀 꿈쩍도 안 하면, 저들은 크게 절망, 결국 그 어떤 유혹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결과에 대한 확신은 승리를 선행, 승리, 이김이라는 것에는 이런 확신도 들어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a temptation against the Lord’s love, which desired to be fully assured, may be seen from the doubt that is implied in the words themselves. He who is in temptation is in doubt concerning the end in view. The end in view is the love, against which the evil spirits and evil genii fight, and thereby put the end in doubt; and the greater the love is, the more do they put it in doubt. If the end which is loved were not put in doubt, and indeed in despair, there would be no temptation. Assurance respecting the result precedes the victory, and belongs to the victory. (AC.1820.1)

 

 

시험, 유혹은 내 영적 시선의 끝인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내가 무엇을 사랑하면 곧바로 악령들의 훼방이 시작된다는 사실! 그러므로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였으면, 당연히 그에 따른 유혹 역시 비례하여 혹독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게 되며,

 

그러면 이 세상 온 인류를 사랑하신 주님은 그 시험와 유혹, 훼방과 모욕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였을까 생각하며, 거듭거듭 주님 십자가의 길 걸으심 앞에 숙연해집니다...

 

주님, 정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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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셔널(rational, 합리), 주님의 생명과 영적 진리가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가 삶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능력’(2023/5/28)

 

 

(오늘 설교문에서 인용)

 

창세기 16장 4절은 주님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리는 순간을 하갈이 이스마엘을 임신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주님의 인성이 거룩하게 되신 과정은 우리 인간이 거듭나는 과정과 흡사하셨는데요, 그래서 주님의 래셔널이 열리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거듭남 또는 래셔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4)

 

여기서 아브람은 주님의 속 사람을, 그리고 하갈은 선과 진리에 따른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브람과 하갈의 동침은 그 속뜻으로는, 주님께서 선과 진리의 지식을 삶으로 실천하셨을 때, 주님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이 일어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시던 어린 시절, 먼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통해 선과 진리를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셨지요. 그때 주님의 겉 사람인 인성과 속 사람인 여호와의 신성이 하나가 되셨고, 그러면서 또한 주님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렸는데, 그것이 바로 하갈이 임신한 아들입니다.

 

그러면 임신한 하갈은 왜 사래를 멸시했을까요? 사래는 아브람의 아내입니다. 즉 사래는 주님의 속 사람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영적 진리를 의미하지요. 따라서 임신한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는 것은 그 속뜻으로는, 처음 래셔널이 열리기 시작할 때는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래셔널이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요,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은 지옥,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은 천국이라는 진리 앞에서, 처음 래셔널이 생길 때는 그것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있어야 이웃도 있는 거 아냐? 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가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는 모습입니다. 거듭남의 과정 초기, 래셔널이 처음 생길 때는 이와 같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처음 생긴 래셔널(rational, 합리, 이성)이라는 게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래셔널은 자기 여주인(mistress)을 경멸한다는 것, 곧 지적 진리(intellectual truth)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지적 진리가 주(主, manifest)가 되지 못합니다. 인정받지를 못하기 때문인데요, 오류들과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것들이 흩어져 버리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이 감각적인 것들을 가지고, 그리고 세상에서 배운 지식들을 가지고 자기 본위로 진리를 재단하는(reasons)한 흩어져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단지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것은 진리야라고 순진하게 믿는 순간, 그것은 주가 됩니다. 그 즉시 오류의 그늘들은 흩어져 버리고, 그리고 그 사람 안에서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게 됩니다. (AC.1911:6)

 

 

말씀의 글자의 뜻으로부터 무리하게 진리를 추측하는 습관에 젖어있을 때는 주님께서 진리를 보여주셔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고 진리를 마음대로 추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러자 43절,

 

43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래셔널이 건강해지면 속 사람으로부터 래셔널 가운데로 영적 진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래셔널을 통해 다시 겉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삶을 사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큰 행복이지만, 그 자체로 주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믿는 진리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말로 전하기보다는 삶으로, 인격으로 전해야 합니다. 귀신이 나갔을 때,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설교 원고 및 오디오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s://bygrace.kr/1549

 

주일예배(2023/5/28, 눅9:37-43), '귀신 들린 아들, 내 안에 속 사람을 향한 창문에 문제가 생긴 것'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csKtmnQKn1U 2. 축도 원고

bygra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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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5-28(D1)-주일예배(2479, 눅9,37-43), '귀신 들린 아들, 내 안에 속 사람을 향한 창문에 문제가 생긴 것'.pdf
0.41MB

https://youtu.be/csKtmnQKn1U

 

 

2. 축도 원고

2023-05-28(D1)-주일예배.축도.pdf
0.2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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