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4)’ (2023/6/1)

 

계속해서 ‘유혹’(誘惑, temptation), 오늘은 네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554

 

 

[4] 그들, 곧 이 지옥에서 온 영들은 진리에 관한 애정들(the affections of truth)에 대해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는데요, 이 애정들이 사람의 양심(the conscience)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양심에 속한 게 무엇이든, 그리고 그게 어떤 종류든 일단 그걸 지각하게 되면, 그 즉시 이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거짓들과 실패들로부터 자신들에게 어떤 애정을 하나 급조하는데요, 이걸 가지고 이들은 진리의 빛 위에 그늘을 드리워 그걸 왜곡하거나 불안을 유도, 그를 고문합니다. 그들은 또 그가 다른 걸 두리번거리지 못하도록 어떤 한 가지만 끈질기게 생각, 그걸 환상으로 채우며, 동시에 그 갈망, 그 욕망에 몰래 환상의 옷을 입힙니다. 이런 식으로 이들, 곧 이 악령들의 수법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인데요, 이런 거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말 예술 수준의 기술들이 있는데, 그 하나하나는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수도, 이해시켜 드릴 수도 없는 그런 것들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나마 이런 것들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수단들 중 극히 일부이며, 이들이 사람의 양심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방법들 중 가장 일반적인 수준의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들 지옥의 영들은 사람을 파괴하는 것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They act in a similar way against the affections of truth that make the conscience: as soon as they perceive anything of conscience, of whatever kind, then from the falsities and failings in the man they form to themselves an affection; and by means of this they cast a shade over the light of truth, and so pervert it; or they induce anxiety and torture him. They also hold the thought persistently in one thing, and thus fill it with fantasies; and at the same time they clandestinely clothe the yearnings with the fantasies; besides innumerable other arts, which cannot possibly be described to the apprehension. These are a few of the means, and only the most general, by which they can make their way to man’s conscience, for this above all else they take the greatest delight in destroying. (AC.1820.4)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이 지옥에서 온 영들’, 각 사람에게 와 있는 악령들은 지옥에서 직접 오는 게 아니고, 수많은 지옥 공동체에서 중간영계로 파견 나온 에이전시 영들입니다. 이 중간영계는 천국 상태도, 지옥 상태도 아닌, 중간 상태의 영들이 잠시 머무르는 영계로, 여기는 사람의 사후, 제일 먼저 놓이게 되는 상태이며, 여기엔 지옥뿐 아니라 천국 수많은 공동체에서 파견 나온 에이전시 천사들(또는 선한 영들)도 함께 있습니다.

 

2. ‘진리에 관한 애정들이 사람의 양심을 만든다’, 양심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종교적 원리(the religious principle)를 속으로(inwardly) 받아들임에 따라 형성되는 건데요, 여기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함(what is good)에 대한 양심이 있고, 다른 하나는 올바름(what is just), 정의, 공정 등에 대한 양심이 있습니다. 전자는 속 사람의 양심, 후자는 겉 사람의 양심으로서, 전자는 내적 애정(internal affection)을 가지고 신앙의 율례(the precepts of faith)에 따라 행하는 걸로, 후자는 외적 애정에 따라 사회, 도덕적 법에 따라 행하는 걸로 구성됩니다. 전자에는 후자 또한 있지만, 그저 후자뿐인 사람은 전자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며, 그러나 가르침을 통해서 나중에 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 저, ‘새 예루살렘과 천적 교리’(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9장 ‘양심’에서 발췌)

 

그러므로 기독교 내 각 교단과 교파, 심지어 타종교에 이르기까지 주님은 저들의 나름의 종교적 양심을 허락하시며, 최종적으로는 선한 양심의 사람들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 역시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자신의 종교적 양심에서 출발, 결국엔 선한 양심이 되도록 힘쓸지언정 나와 다르다고 타인의 양심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례, 심지어 종교적, 신앙적 폭행을 일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3. ‘그 즉시 이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거짓들과 실패들로부터 자신들에게 어떤 애정을 하나 급조한다’, 각 사람에게 와 있는 선한 영 둘, 악한 영 둘은 각각 전자는 그 사람의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후자는 그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서는 그 기억과 생각들이 마치 자기들 것인 양 사용하는데요, 위 기술(記述)은 바로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위 기술의 뜻은,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회사에서 이중장부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교회 다니는 사람은 ‘아, 그건 좀...’ 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그 순간, 그의 안에 있는 악령들은 곧바로 ‘아니야, 지난번에도 괜히 양심 어쩌구 하다가 큰 불이익을 받았잖아... 그랬다고 누가 잘했다고 내 편 드는 사람 하나 없었고... 심지어 마누라까지도 당신은 왜 그렇게 남들처럼 안 해? 왜 그렇게 튈려고 그래? 그래서 얻는 게 뭔대? 하며 나를 모욕했잖아... 그래,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눈 감자. 아무개 좀 봐. 회사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얼마 안 있어 승진했잖아...’ 속삭이며, 그에게 비추는 빛을 가리고, 대신 환상의 옷을 입히며, 슬쩍 속이는... 네, 이런 겁니다.

 

5. 영계는 내면의 나라여서 이곳에서 우리가 ‘추상적이다’, ‘개념적이다’ 하는 것들이 그곳에서는 마치 영상을 보듯, 비디오를 보듯 보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우리 안의 악령들의 저 은밀한 짓거리들을 마치 두 눈으로 보듯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악령들의 온갖 궤휼과 술수에 대해 스베덴보리는 그러나 주님이 그 자세한 기술을 금하셨다고 합니다. 만일 그 방법 하나라도 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 순간 이 세상은 정말 큰일 나기 때문이지요. 비록 지금 우리는 두 눈이 탁하고 어두워 저들의 하는 짓을 실제로 볼 수도, 그리고 이렇게 알려줘도 이해조차 쉽지 않지만... 하여튼 아주 사소한 ‘유혹’조차도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겨 한번 두번 허용했다가는 영적으로는 수습 불가 상태로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1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4:1-11)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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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3)’ (2023/5/31)

 

계속해서 ‘유혹’(誘惑, temptation) 세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553

 

 

[3] 또 그들은 선(善, good)이 무엇이고, 진리(眞理, true)는 무엇인지에 관한 단순한 논쟁 같은 건 하지 않는데요,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논쟁에서 자신들이 천 번을 지더라도 자신들은 여전히 집요할 것이기 때문이며, 이 역시 선과 진리에 관한 건 결코 이성으로, 머리로, 말과 논쟁으로 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선과 진리를 왜곡(歪曲, pervert), 거기에 욕망(慾望, yearning, appetite)과 망상(妄想, persuasion, delusion)의 불을 확 붙여 그로 하여금 영적 장님이 되어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보게, 그리고 모르게 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런 욕망과 망상을 어떤 즐거움으로 불타오르게 하는데, 이 즐거움은 그들이 그에게서 뺏은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그를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이고 감염시키며, 영적 성폭행을 통해 철저히 망가지게 합니다. 이런 일을 그들은 정말 엄청난 스킬로 하는데요, 이런 스킬로 그들은 그를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놀며, 만일 주님이 그를 돕지 않으시면, 그는 실제로 자기가 지금 영적으로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악령들의 훼방과 공격은 정말 정말 지독하며, 이런 것이 영계에서 자행되는 ‘유혹’(誘惑, temptation)의 정체, 실체입니다. (AC.1820.3) Nor do they wage the combat simply by reasoning against things good and true, because such combats are of no account, for if they were vanquished a thousand times they would still persist, since reasonings against goods and truths can never be wanting. But they pervert the goods and truths, and inflame with a certain fire of yearning and of persuasion, so that the man does not know otherwise than that he is in the like yearning and persuasion; and at the same time they enkindle these with delight that they snatch from the man’s delight in something else, and in this way they most deceitfully infect and infest him; and this they do with so much skill, by leading him on from one thing to another, that if the Lord did not aid him, the man would never know but that the case was really so.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선과 진리를 왜곡, 욕망과 망상의 불을 붙인다’는 것은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출발할 때는 주님을 사랑하여 이 골고다의 길 걸어야지 해 놓고는 그래도 안정된 목회를 하려면 십일조 내는 가정이 몇은 되어야 생활이 되니 어쩌니 하다가, 그 다음엔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되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를 해야 하니 어쩌니, 그것도 스킬이 있어야 하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엔 설교꾼, 목회꾼이 되어버리고 마는... 네, 이런 비슷한 많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망가지는 중에도 계속해서 ‘나는 지금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이 길은 나중에 큰 상급이 약속된 길이야...’ 하는 속삭임에 그만 정신 못 차리고 점점 깊이 빠져드는 것이지요...

 

2. 이 ‘yearning’과 ‘persuasion’의 역사는 참으로 유구합니다. 인류 첫 교회의 종말인 ‘대홍수’(大洪水) 역시 사실은 인류 첫 교회인 태고교회가 타락, 이 ‘yearning’과 ‘persuasion’의 물결에 얼마나 처절하게 잠겼는지 다른 마땅한 표현이 없어 ‘대홍수’, ‘노아의 홍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참고로, ‘노아’는 당시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참 신앙의 교회, 곧 신앙과 체어리티를 분리하지 않았던 교회를 일컫는 이름입니다.

 

3. 영계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주님 말씀에 처절하게 시선 고정하지 않으면 정말 눈 뜨고 코 베임을 당하는 그런 세계이며, 그래서 모든 천사는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얼굴을 돌린다고 합니다. 마치 해바라기들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천사들을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4.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한 조각 ‘유혹’조차도 철저하게 끊어내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그러셨고, 수 많은, 소위 성인’(聖人)이라 추앙받는 사람들도, 이들 중 99.999%는 후세가 자신을 성인으로 추앙한다는 사실에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주님 앞에서 쥐구멍을 찾았겠지만..., 이 ‘유혹’의 영적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상상을 초월한 금욕에 힘썼던 것입니다. 금욕 생활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분들은 이 혼탁한 물질과 육욕의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을 사랑하여 더할 수 없이 순결, 정결한 신부로 준비하여 드리고픈 그런, 이미 지상에서 천사의 삶, 천국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몸부림치시는, 혹은 치셨던 분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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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2)’ (2023/5/30)

 

어제에 이어 ‘유혹’ 두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모두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어떤 경우가 유혹(temptations)인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여기서 짧게라도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이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하고도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 무엇을 더욱 열렬히 사랑할수록 이들은 더욱더 치열하게 싸웁니다. 악한 정령들(evil genii)이나 악한 영들(evil spirits)은 모두 애정(affection)에 관한 것들과 싸우는데, 그것들이 선(good)과 관련되었으면 전자, 진리(truth)와 관련되었으면 후자입니다. 이들은 무언가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사람이 그걸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그리고 무언가 사람이 그것을 즐거워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마치 냄새를 맡듯 지각하는데요, 그 순간, 이들은 곧바로 그것에 대한 폭행과 함께 그걸 파괴하려고 힘쓰는데, 그것은 곧 그 사람 전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사실은 그가 사랑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파괴하는 것보다 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건 없는데요, 주님이 이들을 쫓아버리시지 않는 한 이들은 심지어 영원히 이 짓을 그만두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악의적이고 교활하여 사람에게 아첨,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은 후, 사람이 자신들을 사랑하게 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이들은 사람을 자기들 가운데로 끌어들이며, 일단 끌어들인 후에는 이들은 그 사람의 사랑을 파괴하려 하며,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 방법은 수천 가지나 되며, 그 하나하나는 도저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As few know how the case is with temptations, it may here be briefly explained. Evil spirits never fight against other things than those which the man loves; the more ardently he loves them, the more fiercely do they wage the combat. It is evil genii who fight against the things that pertain to the affection of good, and evil spirits that fight against those which pertain to the affection of truth. As soon as they notice even the smallest thing which a man loves, or perceive as it were by scent what is delightful and dear to him, they forthwith assault it and endeavor to destroy it, and thereby the whole man, for man’s life consists in his loves. Nothing is more delightful to them than to destroy a man in this way, nor would they desist, even to eternity, unless they were driven away by the Lord. They who are malignant and crafty insinuate themselves into man’s very loves by flattering them, and thus bring the man among themselves; and presently, when they have brought him in, they attempt to destroy his loves, and thereby murder the man, and this in a thousand ways that cannot be comprehended.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입니다.

 

1. 모든 사람에게는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혹은 천사들)이 최소 둘 이상씩 와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항상 주님과 연결되어 있게 하시려는 주님의 배려 때문인데요, 이는 사람이 그 본성상 악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설명은 따로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번역 가운데 ‘악한 정령들’과 ‘악한 영들’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2. 위 내용은 사람의 내면, 즉 사람의 영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자연계와 영계, 두 세계에 공존합니다. 그러므로 자연계 관점만으로는, 즉 육체적, 감각적 관점만으로는 자기 안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는 걸 전혀 인지할 수 없습니다.

 

 

오늘 메시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혹은 누구를 사랑하고 좋아하며, 애정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에 관련되었으면, 영계에서는 그에 비례, 아니 그 이상의 아주 지독한 훼방과 파괴가 시작된다는 걸 꼭 기억,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할 결심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즉 모든 종류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는 반드시 그에 비례하는 고난과 시험, 유혹이 뒤따르는데, 이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주님의 허락과 배려 때문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짜 사랑, 오직 행복하기만 한 애정의 꽃길 같은 건 없습니다. 주님조차 무슨 금수저의 길을 걸으시다 십자가 한번 지시고 덜컥 구속주가 되신 거, 절대 아닙니다. 주님도 우리처럼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와 똑같은 거듭남의 과정을 밟으시되 주님의 속 사람이신 여호와께 초집중,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성취를 아주 어려서부터 이루신 것만 다를 뿐입니다.

 

거듭남은 무슨 영접기도 한 번, 신앙고백 한 번으로 되는 거, 절대 아니며, 이처럼 매 순간 우리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악령들의 훼방과 파괴를 주님 의지하고, 마치 탈북민들, 목숨 걸고 강을 건너 자유의 나라로 넘어오듯 그렇게 절박함으로 싸워 얻는 것입니다. 싸워 얻는다는 건 싸워 이겨나가는 중에 우리의 속 사람이 천국 생활에 적합하게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로 이 거듭남을 이루어 천국 들어가도록 끝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며 도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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