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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2.21 주일예배(2/21), '십일조 아케이나'(마23:23)
  2. 2021.02.21 2021-02-21(D1)-제9권8호통391호

제가 우안(右眼) 수술 등, 38일 만에 유튜브 주일설교를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려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오늘은 221, 2월 셋째 주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32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23)

 

오늘 이 본문과 또 십일조 관련, 몇몇 말씀들을 가지고, 과연 십일조의 참된 영적 의미, 아케이나는 무엇일까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침 오늘은 우리 큰애 우석이의 만 31세 생일이며, 또 큰애 결혼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신기합니다. 앞으로 해마다 큰애는 자기 결혼기념일로부터 딱 100일째 되는 날이 자기 생일이 되었어요! ㅎㅎㅎ... ^^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혼을 그것도 풍요롭게 벼락같이 하고는 또 평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 여전히 지금도 꿈만 같고 이 모든 게 어찌됨인가 생각하며 주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 이 오늘 주일예배가 지난 199391, 바로 이 자리, 바로 아파트 집 저희 거실에서 창립개척예배를 처음 드린 후, 1995번째 드리는 예배이므로 다음 주말이면 2000번째 예배를 드리게 될 것 같아 요즘 곰곰이 지난날을 회상함과 함께 우리 큰애에게 찾아온 이 큰 복을 생각하면서 마음속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특별한 한 가지, 곧 큰 아이의 헌금생활, 특별히 십일조 생활이 떠올라 오늘 그 말씀을 좀 나누고자 합니다.

 

작년 11, 큰애 결혼 즈음하여 많은 지인들께 큰애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멘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함 가운데 조용히 이해되어지는 바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우석이 지난 7년 동안, 부모님이 하시는 이 아파트 집 교회를 한결같이 섬겼습니다. 박사과정 중에 조금 나오는 그걸 가지고, 거기서 또 십일조에, 엄마 생활비에, 뭐에 뭐에... 아무리 바빠도 해외출장과 늘청(늘사랑교회 청년국) 수련회 때 외에는 늘 주일예배를 지키며, 아버지와 함께 특송을 올려드렸지요...

 

, 맞습니다. 이 내용 그대로입니다. 자기 앞가림 및 자기 앞날, 장래 장가갈 비용마련 등 생각해야 할 게 많았을 텐데도 우석이는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며, 당장 현 상황 현재의 자리에서 주님과 부모님 앞에 자기의 할 도리를 다하기로 마음을 정하고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외길을 걸었지요.

 

가끔 몇 달 십일조 및 생활비가 안 들어와 혹시 아이가 마음이 바뀌었나 보면 나중에 한꺼번에 들어오는 겁니다. 무슨 사정으로 프로젝트 대금이 이제야 들어왔다고요. 이 사이 아이는 그날그날 식비도 마땅치 않아 그냥 빵 한 쪽에 정수기 물만 먹을 때도 있었다는 말에 부모의 마음이 찢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호흡은 보통이 십 년이신가 봅니다. 주님이 사람의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기본 단위가 말입니다. 결심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 황소처럼 묵묵히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그것도 십 년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인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그 마음이 정결해야 계속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하여튼 저는 육십 평생에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주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우리 큰아들은 나이 삼십에 인정을 받으며, 복 받는 것을 보면서, , 요셉이 저랬겠구나! , 다니엘이 저랬겠구나 싶습니다. 주님을 찬양하오며, 형의 이런 축복의 생생한 현장을 아우 준석이도 곁에서 보면서 준석이 우리 둘째도 동일한 복 받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이런 이유 등으로 오늘은 특별히 우리의 헌금생활 중 십일조에 대하여, 그 아케이나(arcana, 秘義, 속뜻)에 대하여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십일조에 관한 거의 첫 본문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창세기 14, 아브람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드린 부분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14:17-20)

 

여기 20,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에 나오는 이 십분의 일에 관하여, 창세기 주석 아케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38번 글을 보면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십일조(tithes)가 리메인스(remains)를 상징한다, 가리킨다는 사실은 앞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리메인스라는 것은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선행, 인애)의 모든 상태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의 모든 상태, 이웃 사랑의 모든 상태들을 말하며,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순진함(innocence)과 평화(peace)의 모든 상태, 곧 천국의 모든 상태이며, 주님은 이런 상태, 이런 리메인스를 거듭남의 과정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이 상태들이 사람에게 그 유아기 때부터 주어져 어른이 되면서 점점 줄어들지만 그러다가 거듭남이 시작되면 사람은 다시 이번에는 새로운 리메인스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입니다. 사람이 진정 사람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리메인스로부터, 또는 리메인스에 의해서이며, 만약 사람에게 이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상태가 없다면, 그래서 결국 순진함의 상태가 없다면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며, 그때는 오히려 짐승보다도 더 최악이 됩니다. 사람은 순진함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생명의 다른 상태들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말하는 리메인스는 시험을 이김으로써 얻는 리메인스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싸워 이긴 후, 멜기세덱에게 바친 십일조를 가지고 이 리메인스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리메인스는 사랑의 모든 상태, 곧 사랑의 모든 천적인 것들인데, 주님도 인성을 입고 계신 동안은 지속적인 싸움과 이김을 통해서 힘들게 습득하신 것입니다. 이것으로 주님은 끊임없이 주님의 신적 본성과 결합하셨고, 같은 방식으로 주님의 인성이 사랑, 곧 생명 그 자체, 곧 여호와가 되실 때까지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좀 어렵지 않으신지요... 스베덴보리의 글들은 천계(天界), 초월적 지혜의 나라의 일을 매우 제한적인 지상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는지 원문은 사실 이보다 더 간략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 글과 글 사이 무슨 배경지식이 없으면 한 번에 이해하기가 다소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위 주석을 제가 이해한 바로 좀 쉽게 풀이하자면...

 

모든 사람은 거듭남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단은 주님으로부터 첫 번째 리메인스라는 것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어떻게든 결국 선 쪽으로 기울어지는데요, 물론 사람들 중에는 끝까지 주님을 거절하여 선보다는 악을, 천국보다는 지옥을 선택, 결국 멸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입니다. 주님의 이 첫 번째 선물로 말미암아 사람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며, 일단 거듭남이 시작되면 이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두 번째 리메인스를 또 선물로 받습니다. 이 선물로 말미암아 사람은 생명, 곧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발자국을 떼는 것이지요. 사람은 주님의 선물, 주님의 호의, 주님의 돌보심 없이는 결코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탐욕과 거짓의 덩어리, 곧 악의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입니다. 사람 안에 주님이 넣어 두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리메인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십분의 일로 표현된,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십일조라 일컫는 것이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무슨 이쁜 짓을 하고, 무슨 기특한 행실을 보일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안에 넣어 두신 이 리메인스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것으로 멜기세덱, 곧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공경하였습니다. ‘주님, 이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으로 제가 롯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사례한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아케이나입니다.

 

이 멜기세덱 본문을 보다 더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돌라오멜, 소돔왕, 그리고 롯과 아브람의 속뜻, 아케이나가 무엇이며, 그들 간 전쟁과 그 결과, 그리고 멜기세덱과 그가 들고 온 떡과 포도주의 아케이나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하지만 그것은 내용이 깊어지므로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정식으로(?) 다루기로 하고요, 여기서는 간략히만 말씀드리면...

 

주님도 인성을 입고 오셔서 처음에는 외견상의 선과 진리(apparent good and truth), 겉으로 보기엔 선이요, 진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가짜인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셨습니다. 그것이 아브람과 그돌라오멜 간 전쟁입니다. 아브람은 주님의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 그돌라오멜은 외견상 진리를, 롯은 주님의 겉사람을 각각 가리킵니다. 겉사람과 합리성은 같이 있어야 하는데 겉사람이 합리성을 떠나 가짜 진리에게 사로잡힌 것을 롯이 아브람을 떠나 소돔에 있다가 그돌라오멜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주님이 이 가짜들과 싸워 이기신 후, 주님의 겉사람이 속사람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전히 인도된 것을 아브람이 롯을 데리고 멜기세덱을 만난 것과 그의 떡과 포도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 여기서는 이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간략하게라도 소개를 하고 넘어가는 것은, 말씀(the Word)은 정말 철저하게 상응(相應, correspondence)으로 기록되었다는 것과 그래서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은 아케이나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1428, 29절입니다.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 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4:28-29)

 

십분의 일을 가지고 주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말씀하시는 본문입니다. 주님은 이 십분의 일을 가지고 레위인과 객,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십니다. 이들은 겉뜻으로도 그렇지만 속뜻으로도 영적 결핍을 뜻합니다. 주님은 거듭남을 시작한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두 번째 리메인스를 가지고 이런 영적 결핍을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거듭남의 여정 가운데 있는 우리는 정말 그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에게 있는 이 영적 결핍들을 돌아보고 채워주는 일에 이 두 번째 리메인스를 열심히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아브라함의 십일조 본문을 통해, 그리고 오늘 주님 말씀 마태복음 본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먼저, 십일조를 드린다, 십일조 헌금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헌금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넣어주신 선한 능력, 리메인스를 잘, 그리고 열심히 사용하여 더욱 주님으로부터 더욱더 많은 리메인스가 우리 속사람 안에 공급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개념이 아닌, 주님의 것이 우리 안에 쌓이는 개념입니다.

 

말라기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0)

 

여기 시험하여증명하여’(prove, verify)라는 뜻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라, 증명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주님은 우리 안에 더욱 더 넘치게 주님의 리메인스를 공급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넘치는 리메인스로 우리는 더욱 더 쉽게 거듭남의 여정, 곧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내 것을 드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주님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리메인스라는 것을 우리는 두 번 다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가 악을 이겨 낼 근본 능력을 우리도 모르게 주님께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것으로 살며, 영적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사실은 모두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시인하며 사는 삶은 복된 삶이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게 되며, 우리가 드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 안에 리메인스로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본문, 주님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23)

 

박하와 회향, 근채의 십일조는 외적인 십일조입니다. 정의와 긍휼, 믿음의 십일조는 내적인 십일조입니다. 이 둘은 같이 갑니다. 외적 십일조는 내적 십일조가 겉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의 신앙이 온전할 수 없고, 반대로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디 주님 말씀처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않는그런 온전한 신앙생활들을 하시기를, 그래서 주님 약속하신 저 놀라운 말씀들이 우리 큰아들처럼 생생히 이루어지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알려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수년간 힘쓰던 유튜브에서의 활동을 무슨 사정으로 앞으로는 저의 개인 블로그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유튜브를 아주 닫는 건 아니지만 여기 유튜브에는 주일설교나 아주 특별한 것만 올리고, 대부분의 컨텐츠는 이렇게 비디오나 오디오 형태가 아닌 주로 글과 문서의 형태로 저의 블로그에 올리고자 합니다.

 

많은 양해 바라며, 아래 제 블로그 주소가 있으니 찾아와 둘러보시고 여전히 도움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bygra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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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 설교 유튜브 주소입니다.

 

youtu.be/cZRid5lCT0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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