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2. ‘나무는 퍼셉션 perception, 지각(知覺),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 a tree desirable to behold는 진리의 퍼셉션 the perception of truth, ‘먹기에 좋은 나무’ a tree good for food는 선의 퍼셉션 the perception of good, ‘생명 나무’ the trees of lives는 사랑과 사랑에서 기원하는 신앙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는 육체적, 감각적인 것에서 기인하는 신앙 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곧 단지 기억지식에 불과한 mere memory-knowledge 신앙을 각각 가리킵니다.

 

 

103. 여기 나무들이 퍼셉션을 가리키는 이유는 천적 인간 the celestial man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 the spiritual man일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적 인간일 때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주제에 따라 달라집니다.

 

 

104. 오늘날엔 퍼셉션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며, 어떤 것의 선과 진리에 관한 일종의 내적 감각 a certain internal sensation입니다.

 

태고 교회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아주 완벽한 퍼셉션 가운데 있습니다. 천사들은 이 퍼셉션으로 선과 진리를 직관하며, 관련 지식들을 얻습니다 they are aware and have knowledge of. 또한 어떤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들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 역시 이 퍼셉션으로 직관하고 압니다. 천사들은 누가 자기들한테 올 때, 그의 퀄러티 the quality of anyone, 즉 그가 어떤 자인지를 역시 이 퍼셉션으로 직관하고 압니다. 그가 단지 다가만 왔을 뿐이며, 그를 한번 슥 쳐다만 봤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영적 인간은 퍼셉션이 없습니다. 대신 양심 conscience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 a dead man은 양심조차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이 양심이 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퍼셉션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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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7, 3월 첫 주 주일입니다. 우리는 매월 첫 주 주일예배 때, 성찬식을 합니다. 하여 오늘은 특별히 성찬에 관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최근 일련의 아케이나 시리즈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는데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마주하던 일련의 익숙한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다룬 십일조가 그렇고, 안식일이 그렇습니다. 오늘 다룰 이 성찬 또한 그런데요, 이 말고도 주께서 다루게 하실 다른 많은 주제들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어떤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편하고 좋은 일입니다. 거기에 그 본래의 의미와 처음 취지를 잃지 않고 지킬 수만 있다면 말이지요.

 

이 아케이나, 곧 속뜻, 숨은 뜻, 비의(秘義)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이너 센스 inner sense, 인터널 센스 internal sense라고도 하는 이 라틴어 아케이나의 의미는, 이것이 가리키는, 이것이 상징하는, 이것에 상응하는 천국의 대상이 무엇이냐, 이 지상의 것은 천국의 무엇과 상응하는가 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 지상에서 생활하면서 이 모든 것의 영적 의미, 천국의 의미를 늘 살필 수 있다면 정말 가장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참된 영성이며,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 지상 신앙생활이 좌표를 잃고 흔들리거나 세상 세속의 무엇과 적당히 섞여 변질되고 더럽혀지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자비로 우리의 영안이 열리고, 또한 온전히 깨끗하고 순전하게 보존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626절로 28절입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6-28)

 

주님 오시기 전 유대교회는 말하자면 일종의 표상(表象)교회였습니다. 영어로는 the representative church입니다. 교회의 모든 것이 천국의 무엇을 가리키는, 나타내고 상징하는 그런 교회였지요. 성막, 성전이 그렇고, 번제로 대표되는 제사가 그렇고, 각종 절기가 그렇습니다. 많은 상징물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한 분 주님이시며,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모세로 대표되던 이 교회는 그러나 가리키던 그분, 곧 주님이 오시자 그 모든 가리킴들이 중단이 되었고, 그래서 더 이상 표상교회는 계속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가운데 딱 두 개만 남기셨습니다. 바로 세례(침례)와 성찬이지요. 세례의 경우, 대부분 세례라 하지만 침례교인들은 침례라는 표기를 사용합니다. 원어로는 물 속에 잠기다라는 뜻의 밥티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둘을 병기하겠습니다.

 

이 둘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세례(침례)를 통해서는 사람이 교회의 일원, 패밀리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상에 구현된 천국입니다. 교회의 속뜻, 아케이나가 곧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모든 지상의 교회가 정말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성찬을 통해서는 천국의 패밀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정말 지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왜 그런지를 특히 성찬에 대하여 오늘 살펴보겠습니다. 주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빛을 비추사 우리로 밝히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왜 빵을 가지고 가리켜 이것은 내 몸이니라하셨을까요? 위 본문의 은 영어로는 브레드 bread, 곧 빵입니다. 잠시, 말씀에서 빵의 의미, 더 나아가 푸드 food, 곧 먹을 것, 먹을 양식의 의미에 대해서 좀 보겠습니다.

 

아마 이 의미가 제일 먼저 다루어지는 본문들이 창세기 첫 장들이지 싶은데요, 창세기 3장은 그 내용이 참 슬픈 장입니다. 거기서 사람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차례로 뱀과 여자에게 말씀하신 후, 그리고 끝으로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9)

 

여기 먹을 것이 바로 빵입니다. 사람이 살 수 있으려면, 곧 생존하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바로 의, , 주이지요. 이 가운데 표현상 두 번째가 되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입니다. ‘먹을 것이지요. 지상의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그 몸에 먹을 것’, 곧 빵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한테서 식량을 빼앗는 것은 그더러 죽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주 북한 김정은이 갑자기 북한 내 모든 장마당을 폐쇄하라 명령했습니다. 장마당을 폐쇄하고 대신 국가기관을 활성화해서 국가의 관리를 통해 먹거리와 생필품을 구하도록 하라 지시하여서 지금 북한이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나라가 주민들의 식량을 공평하게 무상급식해 주겠다는 체제가 공산주의인데 이게 잘 안 되어 주민들이 굶어죽게 생겨 자생적으로 생겨난 게 장마당이고, 이 장마당의 활성화로 북한이라는 체제가 근근이 숨을 쉬던 차였는데 이걸 틀어막으려 하니...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도 한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을 아들 김정은이 또 시도하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생계가 참으로 막막해졌고, 지금 북한은 그냥 굶어 죽느냐, 죽기를 각오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느냐의 기로에 서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식량, 곧 빵의 본질입니다. 빵은 곧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도 먼저 이 부분부터 건드렸고, 그에 대해 주님도 이렇게 답하신 것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4:3-4)

 

물론 이 말씀들의 아케이나는 더욱 깊고 다르지만,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하시면서, 사람에게 떡이 곧 생명임을 확인하여 주십니다.

 

지상의 빵이 이처럼 사람에게 생명이듯 천국의 천사들 역시 그들 생명의 음식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천적, 영적인 것들입니다. 지상에서는 빵을 얼굴에 땀을 흘려야얻을 수 있지만 천국 천사들은 주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림으로써 얻습니다. 천사들의 양식이 주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천적, 영적인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나오며, 이것으로 천사들이 양식을 삼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6:48, 51)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 곧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모든 피조물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음을, 주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양식이 되시는 분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은 유월절 만찬 때가 아닌 이미 이때 자신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51, 53-58)

 

우리의 생명되신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떡과 잔, 브레드 앤드 와인 bread and wine을 주님은 위 말씀처럼 자신이 직접 주님의 살과 피 flesh and blood로 연결시키셨습니다.

 

여기서 하나, 오늘날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성찬 때 잔, 곧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성찬 때 잔, 곧 주님의 피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 곧 신적 진리 Divine Truth입니다. 한 가지 예가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피뿌림입니다.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24:6-8)

 

모세가 뿌려 백성에게 입혀진 피는 곧 주님으로부터 나와 우리에게 전달되는 주님의 신적 진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힘입어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애정으로 진리에 담긴 선을 실천하게 되어 진리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것이 어떻게 우리로 영생하게 하며, 우리로 위 요한복음 말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가 될 수 있는지, 이 주님의 성찬, 떡과 잔, 살과 피의 아케이나를 살피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이 처음 도입하신 성찬의 목적은 천국의 모든 것, 곧 주님의 모든 것과 교회의 모든 것, 곧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 간 결합입니다. 주님은 천국과 교회가, 주님과 우리가 하나로 결합하게 하시려고 성찬을 도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우리는 성찬을 통해 천국의 패밀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결합, 이 하나됨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성찬에서 살과 떡 the flesh and the bread은 신적 선 Divine good을 가리키는데, 이 선은 인류 전체를 향하신 주님의 신적 사랑 the Lord’s Divine love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피와 잔 the blood and the wine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신적 선에서 나오는 신적 진리 Divine truth를 가리킵니다.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진리라는 그릇 안에 선이 담기는 것이며, 우리는 진리를 통해 선을 알고, 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선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선은 그 안에 주님이 계셔서 주님의 선을 행하는 사람마다 주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주님으로부터 마치 해의 열과 빛처럼 선과 진리가 나옵니다. 해의 열이 빛과 융합되어 만물을 소생케 하듯 주님의 선과 진리가 융합되어 모든 피조세계에 생명을 공급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신성이며, 그래서 우리가 성찬 때, 떡과 잔, 곧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거룩하게 참여하면 우리는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생명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렇게 주님과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찬의 떡과 잔, 살과 피는 주님의 선과 진리, 곧 주님의 신성을 가리킨다! 이것이 성찬 떡과 잔의 아케이나입니다.

 

천국의 대기는 주님의 신성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물고기는 아가미 호흡을, 사람은 폐 호흡을 할 수 있어야 각각의 환경에서 살 수 있듯 우리도 천국 생활을 하려면 천국의 대기, 곧 주님의 신성 호흡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려면 우리 안에 주님의 신성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곧 이 지상의 삶을 통해 주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그럼 성찬 때 먹고 마시는 떡과 잔, 살과 피가 과연 참된 신앙고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맞습니다. 당연히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향한 애정으로 주님의 말씀 생활을 하고, 그 말씀을 일상 가운데 실천해야지요. 주님의 진리의 말씀은 참 특별해서 알고 있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절대로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즉 진리의 실천 같은 것엔 도무지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찬에 참여한들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먹고 마셨으면 반드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시고, 또 그런 참된 실천, 참된 회심의 삶을 가지고 모든 성찬에 정성을 다해 참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기쁜 성찬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성찬에 참여하시는 모든 성도님들께 주님의 생명 안으로 초청이 이루어지는 크고 영원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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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8-101

창세기 2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8. ‘동산은 지성 intelligence, ‘에덴은 사랑을, ‘동방은 주님을 각각 상징하며, 그 결과 동방의 에덴동산’ the garden of Eden eastward은 천적 인간의 지성, 곧 주님으로부터 나와서 사랑을 통해 그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성을 상징합니다.

 

 

99. 영적 인간과 함께하는 생명과 그 질서 life, or the order of life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이 그의 이해, 이성, 기억에 속한 것들 속으로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in ejus 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신앙을 통해서 흘러 들어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의 외적 인간은 그의 내적 인간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정반대로 기억과 이성에 속한 것들을 통해서 [per scientifica et rationalia] 자기 자신한테서 지성이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 생각에는 말이야... 내가 알기로는 말이야...’ 하는 것들입니다.

 

반면, 천적 인간의 생명과 그 질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은 사랑과 사랑의 신앙을 통해서 그의 이해, 이성, 기억에 속한 것들 속으로 흘러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더이상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 사이 다툼이 없기 때문에 그는 주님이 정말로 이런 질서로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심을 지각합니다. 천사들이 실제로 이렇습니다.

 

영적 인간과 함께하는 동안은 지금까지 이렇게 거꾸로였던 질서가 천적 인간과 함께하면서 본래대로 회복되었음을 지금 설명하는 중이며, 이때 이 질서, 혹은 이런 질서 가운데 있는 사람, 천적 인간이지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동방의 에덴동산이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창설하신 동산은 최고의 뜻으로는 in the supreme sense 주님 자신을, 가장 내적인 뜻 in the inmost sense, 보편적인 뜻 the universal sense 으로는 주님의 왕국과 천국, 곧 사람이 천적 인간이 되면 when he has become celestial  가 있게 될 천국입니다.

 

이때 그의 상태는 천국 천사들과 함께하는 상태, 마치 그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그런 상태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천국에도 있을 수 있도록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상태에서는 그의 모든 사고와 아이디어들 all his thoughts and ideas of thoughts, 그리고 심지어 말과 행동들이 모두 오픈 상태이며, 심지어 주님으로부터 온 것들까지도 그렇습니다. 천사들이 바로 그런데 그것은 그들 안에 선한 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 안에는 천적, 영적인 것들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그 하나하나에 주님의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며, 그에게 생기는 퍼셉션 perception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100. ‘동산이 지성을, ‘에덴이 사랑을 상징하는 것은 이사야에도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51:3)

 

여기서 사막’ wilderness, ‘기뻐함’ joy, ‘감사함’ confession은 신앙의 천적인 것들, 혹은 사랑 관련한 것들을 or such as relate to love, ‘광야’ desert, ‘즐거워함’ gladness, ‘창화하는 소리’ the voice of singing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 혹은 이해에 속한 그런 것들을 or such as belong to the understanding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전자는 에덴’, 후자는 동산과 각각 관련되는데, 이 선지자는 이와 관련된 두 가지 표현을 늘 사용해서 하나는 천적인 것을,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더욱 깊은 의미에 관해서는 10절에서 다루겠습니다.

 

 

101. 주님이 동쪽이시라는 것 또한 말씀에 나오는데요, 에스겔입니다.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43:1-2, 4)

 

표상교회였던 유대교회에서 성전 건물 앞에서 기도할 때, 전통적으로 그들의 얼굴을 동쪽을 향하여 돌렸던 것은 이렇게 주님의 임재가 동쪽이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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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 the breath [spiraculum] of lives 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94.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to ‘form man, dust from the ground’ 는 천적 인간의 외면을 빚으시는 것인데, 앞에 5,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no man to till the ground’ 를 보면 이 외면은 그때는 아직 사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which before was not man.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to ‘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는 그에게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시는 것이며,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man became a living soul’ 는 천적 인간의 외면이 이제는 살아있는 상태, 사람이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95. 천적 인간의 바깥면의 생명이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데요, 앞의 두 구절, 5, 6절에서는 신앙 혹은 이해하는 능력, 이성의 생명 the life of his faith or understanding , 여기 7절에서는 사랑 혹은 의지의 생명 the life of his love or will 이 각각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겉사람은 속사람에게 굴복, 그의 시중 드는 일을 싫어했습니다. 오히려 늘 싸우는 편이었지요. 그래서 겉사람은 사실 주님의 시야로는 아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천적(天的)이 되면서 겉사람은 속사람에게 복종, 그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생명, 사랑의 생명으로 변화되어 가면서 그는 사람이 됩니다. 신앙의 생명은 그를 준비시키지만, 그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생명입니다. 주님의 시야로는 사람이 사랑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인 것입니다.

 

 

9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보겠습니다.

 

고대에는, 그리고 말씀에서는 , 콧구멍’ nostril 을 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향기, , 퍼셉션 perception 으로 이해했습니다. 퍼셉션은 주님의 빛으로 주님의 것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그가 번제 burnt offerings 로부터, 그리고 그와 그의 나라를 표현한 것들로부터 , 안식의 향기를 맡으시다는 표현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29:18)와 같은 표현들입니다. 아주 자주 반복되지요. 사랑과 신앙에 관련된 것들은 주께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하셨고, 그래서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 곧 주님을 가리켜 콧김’(4:20)이라 하신 것입니다. 주님 자신 요한복음에서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라 하심으로써 같은 걸 상징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22)

 

 

97. ‘호흡’ breathing ’ breath 이 생명을 묘사하는 이유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사랑의 상태, 신앙의 상태들을 호흡 respiration 의 상태들로 지각했습니다. 이 호흡 상태들은 후에 그 후손들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변했지요. 이것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오늘날, 이와 관련해서 알려진 게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태고시대 사람들은 이런 것에 매우 친숙했고, 내세의 사람들, 저세상 사람들 역시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 위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런 것에 대해 친숙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영 또는 생명을 바람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주님 또한 사람의 거듭남을 이야기 하실 때,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3:8)

 

다윗의 시편들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33:6)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104:29-30)

 

’ breath, [spiraculum] 을 사용하여 신앙의 생명, 사랑의 생명을 표현하는 것은 욥기서에도 나옵니다.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32:8)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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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93

 

창세기 25절로 6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2:5-6)

 

90. ‘들의 초목’ shrub of the field 밭의 채소’ herb of the field 는 보통은 외적 인간한테서 나오는 모든 걸 의미합니다. 사람이 아직 영적일 동안은 외적 인간을 가리켜 ’ earth 이라 하지만, 그가 천적이 되면 지면’ ground, ‘’ field 이라 달리 부르게 됩니다. 바로 뒤에 안개’ mist 라 언급하는 ’ rain 는 영적 전투가 그친 후 시작되는 평화의 평온함 the tranquility of peace, 내적 평화의 겉모습입니다.

 

 

91. 그러나 여기 들어있는 모든 것은, 사람이 영적에서 천적으로 상태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이 사람의 상태라는 것에 관해 what man’s state is 그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만큼 아주 깊이 감추어진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직 영적인 동안은 외적 인간은 아직 내적 인간에게 기꺼이 복종하려 하거나 내적 인간의 시중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둘 사이 긴장이 있고, 다툼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그가 천적이 되면, 그때는 외적 인간은 내적 인간에게 기꺼이 복종하고, 내적 인간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자연히 다툼도 그치고, 평온함이 시작되지요. (87번 글 참조)

 

이 평온함을 가리켜 ’ rain, ‘안개’ mist 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수증기와도 같아서 마치 외적 인간이 내적 인간으로부터 수분 공급을 받아 촉촉해지는 것과 같지요. ‘들의 초목밭의 채소라 하는 것들이 다 이 평온함, 평화의 샘 the offspring of peace 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들은 특별히 천적 영적 기원에서 나오는 from a celestial spiritual origin 합리적 마인드와 기억들에 관계된 것들 things 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입니다.

 

 

92. 영적 전투, 곧 온갖 탐욕과 거짓들 때문에 야기되는 모든 쉴 수 없는 상태가 종료될 때 비로소 외적 인간한테는 평화의 평온함이라는 것이 찾아오는데요, 이것은 평화의 상태를 맛본 사람들이라야만 알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이 상태는 기쁨에 대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건데요, 단순히 영적 전투의 상황 종료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내적 평화로 시작, 외적 인간을 감동시키며 뻗어나가는 생명입니다. , 이건 정말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진리들도, 사랑의 선들도 다 그 생명이 여기서 비롯되는데요, , 평화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93. 천적 인간의 상태는 내리는 비로 리프레쉬된 상태, 평화의 평온 상태, 악과 거짓의 매임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상태인데요, 이 상태를 가리켜 에스겔서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34:25-27, 31)

 

그리고 이것을 호세아서에서는 셋째 날이라 하여 창세기 본문 일곱째 날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6:2-3)

 

에스겔서에서는 이 상태를 들의 성장’, 즉 들 벌판 가득 자라는 풀로 비유하셨는데, 이것은 고대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16:7)

 

이렇게도 비유하시고요.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60:21)

 

youtu.be/2ImTmM-YY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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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9

 

창세기 24절입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2:4)

 

89. ‘하늘과 땅의 내력’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은 천적 인간을 빚으심 the formation of the celestial man 입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바로 천적 인간을 빚으심이라는 것은, 다음 이어지는 모든 내용을 자세히 관찰하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5절에,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든지, 7,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19,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만드시는 장면들 등입니다. 이 내용은 이미 앞장에서 다 다루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 여기서는 또 다른 사람을 다루고 계시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지요.

 

다음을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먼저, 주님을 가리켜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영적 인간을 다룬 앞장에선 간단히 하나님이라고만 했지요. 그리고 또, 여기선 을 함께 언급하는데, 앞에선 만 언급되었습니다. 또 오늘 본문 구절인 이 4절에서는 하늘보다 먼저 언급되다가 나중에는 하늘보다 먼저 나옵니다. ‘은 겉사람을, ‘하늘은 속사람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

 

그리고 개혁, 개선, 다시 빚으심 reformation 이 영적 인간의 경우는 ’, 곧 겉사람, 외적 인간 the external man 에서 시작하지만, 천적 인간은, 지금 다루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인데요, 천적 인간의 경우에는 속사람, 내적 인간 the internal man, 하늘에서 시작한다는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도 그렇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들, 정황들을 통해, ‘, 여기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youtu.be/P-Nf3OufL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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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88

 

창세기 22절로 3절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2-3)

 

86. 이윽고 여섯째 날이 된 who has become the ‘sixth day’ 영적 인간이 이제 막 천적(天的)이 되려고 the spiritual man is beginning to be celestial 할 때, 바로 이 상태를 여기서 먼저 다루고 있는데요, 이때가 유대교회에서 말하는 안식일 저녁’ the ‘eve of the sabbath’입니다.

 

안식일의 거룩함은 저녁부터 지켜집니다. 천적 인간은 앞으로 말씀드릴 아침’ the ‘morning’입니다.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23:54)

 

 

87. 천적 인간을 가리켜 안식일’ the sabbath 또는 ’ rest 이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천적이 될 때 전투가 그치기 combat ceases when he becomes celestial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evil spirits retire,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다가옵니다. good ones approach, as well as celestial angels. 이들이 있으면 악한 영들은 도저히 머무를 수가 없어 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전투를 치른 사람이 이 사람 본인이 아니라 홀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안식하시니라하신 것입니다.

 

 

88. 영적 인간이 천적이 될 때,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일’ the ‘work of God’ 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해 지금까지 싸워오셨고, has fought for him, 지금까지 그를 창조해 오셨으며, 지으시고 만들어 오셨기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하신 것이며, 한 번 더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he rested from all his work’ 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사람을 가리켜 거듭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한 일’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이라 하였습니다. 이사야에, 거듭남의 사람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45:11-12, 18, 21)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새 창조, 거듭남은 오직 주님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하다’ to ‘create’, ‘짓다’ to ‘form’, ‘만들다’ to ‘make’ 라는 표현들을 다음 두 가지 경우들과 또 창세기 본 장과 앞 장에 아주 특징적으로 사용하셨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 구절들 중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 와 같은 이사야 다른 구절들, 예를 들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43:7)

 

하신 부분과, 또 창세기 1장과 지금 2,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하신 부분입니다.

 

속뜻을 생각할 때, 이런 용법을 만나면 늘 그 표현을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다음 케이스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주님을 가리켜 창조하시는 분(creator)’, ‘빚으시는 분(former)’, ‘만드시는 분(maker)으로 표현하신 경우이지요.

 

youtu.be/PjmXzMaDF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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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인어른 故 권성조 아버님, 아이들에게는 외조부이셨던 분의 6주기 기일입니다. 마침 어제는 故 변배근 아버님, 친조부의 33주기 기일이었고, 겸사 보면, 친할머니 故 남경순 어머님은 올해가 41주기, 외할머니 故 김정자 장모님의 경우, 벌써 16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송강 정철(1536-1594)의 시입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못할일 이뿐인가 하노라

 

세상 살며 자식으로서 그 뿌리가 되시는 부모님의 기일을 생각함은 신앙인으로서 더욱 마땅한 것이며, 사후뿐 아니라 생전 공경이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외조부의 기일을 맞아 지상 혈연에 대한 영적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주님의 시야로 올바른 가족 관계, 혈연관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눅20:34-35)

 

이 본문은 사두개인들이 주님을 올무에 빠트리려 했을 때, 그들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신 주님의 답변이며, 이 가운데 천국의 결혼과 지상의 혈연이 천국의 무엇과 상응하는지, 즉 지상의 혈연관계가 가리키는 속뜻, 영적인 뜻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 아주 귀한 본문이어서 오늘의 본문으로 정했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천국에도 결혼이 있습니다. 자세한 건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0장 ‘천국 안의 결혼’과 별도 저서 ‘결혼애’라는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성은 사후에도 남성은 영원히 남성으로, 여성은 영원히 여성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성전환 수술을 통해 육체에 무슨 변화를 주어도 그 영은 변하지 않습니다. 속으시면 안 됩니다.

 

천국 결혼은 두 마음의 하나됨, 곧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을 자기도 원하고, 아내는 남편의 생각을 자기도 따르는 것, 이것이 두 마음의 하나됨입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성이며, 이것은 곧 선과 진리로 연결되므로 천국 결혼의 결과, 세상 결혼하고는 달리 새로운 선과 진리가 생겨납니다. 세상 결혼은 아들, 딸, 후손들이 생겨나지만 말입니다.

 

천국의 원리 중 하나는 ‘비슷하면 가깝고 다르면 멀다’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통합니다. 이 원리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부모-자식으로 만나는 것도 주님 보시기에 우리의 선의 종류가 같거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지상 혈연의 관계가 천국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 지상의 부부가 지상 생활 때부터 서로 두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있어 서로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하면 주님이 그렇게 지내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모든 경우, 부부 관계도, 부모-자식 관계도, 모든 지상 혈연관계는 지상으로 끝나고, 사후엔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살면서 습득한 선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상에서 이런 혈연으로들 만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부모님의 모습으로 내 곁에 계신 주님을, 자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형제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섬기게 하시려고입니다.

 

모든 인생은 지상에서 얼마나 주님을 닮았느냐, 자기 안에 주님 성품을 얼마나 담았느냐로 천국 삶이 결정되며, 그것은 오직 무슨 일, 어떤 상황, 누구에게든지 주께 하듯 함으로써만 이루어집니다. 어제 말씀드린 선친의 생전 권면으로는, ‘얘야, 세상 이렇다 저렇다, 사람 이렇다 저렇다 할 거 없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기 할 도리만 다하면 된다’가 되겠습니다.

 

부모에 대한 태도가, 남편, 아내에 대한 태도가, 형, 동생에 대한 태도가, 더 나아가 내 직장동료에 대한 태도가, 내 삶에 대한 태도가 곧 주님께 대한 태도요, 그것이 곧 내 속사람을 결정짓는 재료가 됩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혹시라도 가족을 주님보다도 더 사랑하거나 하지는 않는지 하는 영적 시야를 꼭 붙드시는 일상 가운데 가족과 혈연, 직장 동료 등을 통해 주님 사랑에 힘쓰시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youtu.be/sZDL56Bah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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