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D1)-제9권41호통424호.hwp
1.01MB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창12

 

1478. 14절,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Verse 14. And it came to pass when Abram was come into Egypt, that the Egyptians saw the woman, that she was very beautiful.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주님이 배움을 시작하셨을 때를,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지식 중 기억-지식은 스스로를 무척 즐거워하는 그런 본성이 있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It came to pass when Abram was come into Egypt” signifies when the Lord began to be instructed; “and the Egyptians saw the woman, that she was very beautiful” signifies that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is of such a nature as to be highly pleasing to itself.

 

※ 여기, ‘지식 중 기억-지식’(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이라는 John Faulkner Potts 역(1888-1902)에 대해, 최근(2010 출간) 라틴 원전(1749-1756)을 직접 번역한 Lisa Hyatt Cooper 역에서는 ‘종교 지식에 관한 스터디’(the study of religious knowledge)라고 번역하고 있다는 점을 코멘트합니다.

 

즉, 위 표현은, ‘종교 지식에 관한 스터디는 그 고유 본성 상, 그 자체를 무척 즐거워합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겠습니다.

 

 

1479.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It came to pass when Abram was come into Egypt.

 

이 표현이, 어린 시절. 주님이 배움, 곧, 배우기를 시작하셨을 때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브람’이 그 속뜻으로는 주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과, ‘애굽’의 의미가 앞서 10절에서 보여드린 대로, 지식 중 기억-지식, 곧 종교 지식에 관한 스터디라는 점을 보면 분명하며, That this signifies when the Lord began to be instructed is evident from the representation of Abram, which in the internal sense is the Lord when a child;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Egypt” as being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as before shown, at verse 10.

 

그래서 ‘애굽에 이르렀을 때’의 의미가 가르침을 받는 것, 배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o come into Egypt” is to be instructed.

 

 

1480.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And the Egyptians saw the woman, that she was very beautiful.

 

이 표현은, 종교 지식에 관한 스터디는 지식 그 자체를 가장 즐거워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이런 사실은, 앞서 11절, 어린 시절에 볼 수 있는, 지식에 대한 어린이들의 태도에서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는 것’(knowing)을 가장 즐거워하는 바로 그 점이 기억-지식, 곧 사실적 지식(factual knowledge)에 있어 마치 본질적, 선천적인 면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에게 선천적인 겁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 memory-knowledge of knowledges is of such a nature as to be highly pleasing to itself, is evident from what was before said, at verse 11, that such is the nature of memory-knowledge during childhood; for this is as it were innate in memory-knowledge, because it is innate in man, that at the very first it pleases for no other end than for the sake of knowing.

 

모든 사람이 다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아는 걸 굉장히 좋아하여 더 이상 무슨 다른 걸 원하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 곧 지식은 영적인 것들의 양식입니다. 마치 겉 사람이 땅에서 나는 것으로 양식을 삼듯, 영은 이것으로 유지되며, 생기를 되찾습니다. Such is every man; his spirit is greatly delighted to know, so that there is scarcely anything it desires more; this is its food, by which it is sustained and refreshed, as the external man is by earthly food.

 

이것은 사람의 영의 자양물, 곧 그 영의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인데, 지식이라는 것은 겉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여 끝에 가서는 겉 사람으로 하여금 속 사람에게 순응하게 합니다. This sustenance, which is that of his spirit, is communicated to the external man, to the end that this may be adapted to the internal man.

 

방금, 지식을 영의 양식이라 하였는데, 그와 관련하여 한 말씀 드리면, 양식엔 다양한 양식이 있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서로의 뒤를 잇습니다. 천적 양식은 모든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이며,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영적 양식은 모든 신앙의 진리입니다. 천사들은 이 양식으로 살아갑니다. 이어 이들로부터 나오는, 천적, 영적 양식 같으나 더 낮은 수준이어서 천사적 영들의 몫이 되는 그런 양식이 있습니다. 다시, 여기서 나오는, 여전히 더 낮은 수준의 천적, 영적 양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성과, 그로 인한 기억-지식의 양식입니다. 이것은 선한 영들의 양식입니다. 끝으로, 육적 양식이 있습니다. 사람한테는 이것이 맞으며, 이 양식이 사람이 몸 안에 사는 동안 이용하는 양식입니다. But the various foods succeed one another in the following order: celestial food is all the good of love and charity from the Lord; spiritual food is all the truth of faith: on these foods the angels live; and from them comes forth the food, likewise celestial and spiritual, but of a lower angelic degree, on which angelic spirits live; from this again there comes a still lower celestial and spiritual food, which is that of reason and thence of memory-knowledge, on which good spirits live; and lastly comes corporeal food, which is proper to man while he lives in the body.

 

이들 양식들은 놀라운 방식으로 서로에게 상응합니다. These foods correspond to one another in a wonderful manner.

 

이런 사실로 또한 분명한 것은, 기억-지식이라는 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스스로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하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이 경우는 다음과 같은 건데요, 그건 마치 식욕과 같고, 맛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음식을 먹는 건, 영들의 경우엔 기억-지식에 상응합니다. 즉, 식욕과 그걸 맛보는 건 지식에 대한 욕구와 같은 것이지요. 사정이 이렇다는 걸 저는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여기에 관해서는 나중에(AC.4791-4795, 4801) 주님의 신적 자비, 곧 허락하심을 받아 말씀드리겠습니다. From this it is also evident why and how memory-knowledge is very pleasing to itself; for the case therewith is the same as it is with appetite and taste; and therefore eating, with man, corresponds to memory-knowledges in the world of spirits; and appetite and taste themselves correspond to the desire for these knowledges; as is evident from experience, concerning which,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4절과 그 내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어린 시절, 주님도 여느 어린이들처럼 배움을 시작하셨다. 이 배움의 대상인 지식은 자기 자신, 곧, 진리 그 자체를 무척 즐거워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2021-10-10(D1)-주일예배(2209, AC.1478-1480, 창12,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hwp
0.07MB

https://youtu.be/uEjBeMApfck

 

Posted by bygracetistory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