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백내장 같은 하나의 수술로 마치는데 저는 메인 수술은 유리체 수술이었고, 백내장 수술은 겸사, 하는 김에 하는 수술이었거든요. 보통 유리체 수술을 하면 거진 다 곧 백내장이 따라온다시며 같이 하기를 권하셨고... 또 백내장이 조금 진행되기도 하셨다셔서... 그래서인지 수술 18일차인 오늘까지도 눈이 좀 잔잔히 아프고, 빛에 노출되는 게 좀 힘들어 대체로 눈을 감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상이 좀 살짝 불편하기는 합니다... ^^
그래서인지 더욱 뭘 좀 보고픈 게 더 많아졌습니다. 말씀도, 아케이나 주석도, 그리고 이런저런 세상 뉴스, 특히 유튜브 미 대선소식 및 국내외 이런저런... 그러나 폰이든 컴퓨터든 뭘 조금만 봐도 금새 눈이 충혈되고 아픕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기보다는 귀로 듣는 편이 되어 가고 있어요.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쓰고 있네요. 아이고... ^^
그런 말들을 하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미 대선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참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제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도 보면, 그 넓은 신문지 그 많은 글자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아는 글자만 보여요 ^^
이런 비슷한 패턴이 천국 구성원들 가운데서도 나타납니다. 천국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요, 보통은 삼층천, 곧 주님의 신성에 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누구는 가장 내적인 삼층천, 누구는 중간인 이층천, 누구는 가장 외적인 일층천으로 가게 됩니다.
사람들의 내면은 세 단계로 구성되는데요, 어느 단계까지 열렸느냐에 따라 각각 해당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즉, 세 번째 단계까지 열린 사람은 삼층천으로, 두 번째 단계는 이층천, 첫 번째 단계만 열렸으면 일층천으로 갑니다. 어느 천국이든 자기 역량으로는 맞기 때문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가 되는 것입니다 ^^
만일 가장 외적 천국인 일층천 사람이 이층천 또는 삼층천에 들어가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나는데요, 하나는, 그곳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정작 이 사람 눈엔 아무도 안 보이며,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은 큰 고통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역량을 벗어나기 때문인데, 내적 시야 역시 일층천 시야를 가진 이 사람한테는 이층천 또는 삼층천 시야까지는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과 육, 육과 영으로, 또는 겉 사람 external man, 속 사람 internal man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옷처럼 입고 있는 이 몸을 벗고, 사후 영계에서 깨어나면 그 즉시 우리는 내적 시야, 내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영이며, 이 지상 생활과 관련된 모든 외적 기억들은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반면, 그 외적 기억들로 말미암은 내적 기억들과 함께 전혀 차원이 다른 놀라운 삶을 살게 됩니다.
육의 눈 관련,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내적 시야, 곧 속 사람의 일들과 사람이란 무엇인가, 영과 육의 커뮤니케이션 같은 주제를 주로 연구하고 깊이 살피게 되네요...
나중에 우리가 영원히 살러 갈 곳, 천국에 관해 부지런히 배워서 미리미리 잘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퇴원수속 밟고 귀가, 옷 좀 갈아 입고, 식사 및 시간 되어 일련의 약들 복용 및 점안을 마치니 오후 3시, 살짝 노곤하니 잠이 쏟아집니다. 긴장이 풀리나 봅니다. 5인실 병실에서는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았고, 또 저의 경우, 내내 앉아서 자야 하여 보통 일이 아니었거든요. 어휴... ^^
갑자기 주변이 너무 고요, 적막하기까지 하니 이상합니다. 저희 아파트 거실이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군요! ^^
여전히 생각이 납니다. 옆 5번 병상 어젯 저녁 들어온 11세 남자 아이, 에고... 어린 나이에 양쪽 눈을! 마음이 많이 안스러웠습니다
1번 병상 아저씨, 수술실 들어가 국소 마취까지 끝냈는데 움직임 방지 가로걸쇠를 채우자 호흡곤란 시작, 급 수술 중지! 도로 나오셔서 향후 전신마취 여부 결정 후 재 수술하자 하여 그만 급 퇴원수속하신... 저는 수술 후, 그날 밤 마취 풀릴 때, 눈알이 빠질 정도로 너무나 아팠고, 또 속이 울렁거려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새벽까지 주님을 찾다가 잠깐 한 두어 시간 눈을 붙였거든요. 아이고...
3번 병상 아저씨는 망막박리수술을 받으셔서, 계속 엎드리거나 앉아서도 머리를 수그리고 계셔야 했습니다. 저 역시 망막 관련 수술이라 퇴원 후 주의사항이 거진 비슷하지만 저는 그래도 엎드려 지낼 필요는 없는 반면, 그 분은 계속 엎드려 지내야 하는... 어휴!
2번 병상 어르신, 어르신 역시 저처럼 계속 앉아서 주무셔야 하는... 거기다 귀가 좀 어두우셔서 간호사들께서 애를 먹으셨지요...
의사, 간호사 및 조무사, 보조 등 모든 다른 병원 식구들은 또 어떻게요?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고는 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 강도 높은 대인 관계 및 긴장감 넘치는 모든 선택의 순간들...
다른 사람을 돕고 보살피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의료적 훈련을 받았음을 살필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가... 나는 더욱 차원이 다른 영적 세계를 도우며, 목회자라 하면서 실상 저 정도, 그리고 저 이상의 고도의 훈련을 받고 있는지... 많은, 그리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 주님, 이번에 저는 이런 제 모습, 저의 내면의 어떠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이 시대 참된 봉쇄 수도의 삶은 자기를 영적으로 봉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이라는 울타리 밖을 절대로 나가지 않는 태도, 세상이, 세대가 점점 더 악해질수록 반대로 우리는 더욱 더 주님께 힘써 붙어 있으며,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 절대 나오지 않겠다 마음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참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웃 사랑의 아케이나는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 곧 그 사람 안에 깃든 주님의 신성에 대하여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끝날 역시 그 시작의 첫 시간을 이렇게 주님께 드릴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은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 하실 때, be 동사 단수 표현을 하셨습니다. ‘광명체들’은 분명 둘 이상 복수 표현인데 말이지요... 주님은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도록 허락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셔요. 이 둘은 오직 하나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광명체’가 처음 언급될 때 그들은 하나로 간주되었으며, 그래서 본문에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한 해 우리를 매일 돌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말씀으로 먹이신 주님께 무한 감사 드립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먹이시며 돌보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멍멍하고, 갈피를 못 잡겠는 한 가지가 있으니, 곧 30년 지기 친구 목사님의 갑작스런 사별입니다. 지난 달 아들 결혼식 때도 다녀가고, 또 통화도 몇 번 하고... 그런데 지난 17일(목)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저는 충주봉쇄수도원에 있었고, 하산 후에야 알았습니다. 코로나 검사 후, 19일, 전주 예수병원으로 내려가 천국환송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그의 흔적만 보입니다. 가까운 세종이 집인 그는 수시로 저를 찾아와 밥 같이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지금도 그의 전화가 올 것 같습니다... 그의 주변을 보면 모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 뿐입니다. 한 사람의 빈 자리가 이렇게나 클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이렇게 훌쩍, 마치 무슨 정말 나그네처럼 살다 간 목사님이십니다...
주님은 신(神, the Divine)이십니다. 주님과 우리의 차이는 주님은 무한(無限, Infinite)하신 반면, 우리는 유한(有限, Finite)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지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천사들 중 가장 내적 천사들조차 주님의 신성, 그 자체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유한은 무한을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천계적 존재들조차 주님을 그 본래, 신성 그 자체로는 만날 수도, 알 수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은 어떤 형체, 곧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며, 그리고 주님과 분리된 상태 가운데 있는 인류를 다시 자신과 결합하게 하시려고 우리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렇게 오심이 바로 성육신(聖肉身, Incarnation)이며, 이렇게 입으신 인성이 바로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73. 앞 두 장에 걸쳐 천국은 그 전체로 봤을 때, 천국 내 각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 모습임을 확인했습니다. In the two preceding chapters it has been shown that heaven in its whole complex, and likewise each society in heaven, reflects a single man.
그리고 그 내용에서 나오는 일련의 이유로, 각 천사 역시 이와 같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From the sequence of reasons there set forth it follows that this is equally true of each angel.
천국은 가장 큰 형태의 사람이고, 천국 내 한 공동체는 작은 형태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각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As heaven is a man in largest form, and a society of heaven in a less form, so is an angel in least.
천국 형태처럼 가장 완벽한 형태에서는 전체는 부분과, 부분은 전체와 그 모양이 같습니다. For in the most perfect form, such as the form of heaven is, there is a likeness of the whole in the part and of the part in the whole.
이것은 천국은 일종의 소유공동체이기 때문인데, 천국은 그 가진 모든 것을 모두와 공유하며, 모두는 그 가진 모든 것을 공유를 통해 받기 때문입니다. This is so for the reason that heaven is a common sharing, for it shares all it has with each one, and each one receives all he has from that sharing.
각 천사는 그래서 하나의 그릇이며, 그는 위 해당 장에서 본 것처럼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입니다. 그리고 사람 또한 그가 천국을 수용하는 만큼, 그도 그릇이요, 천국이고, 천사입니다. (위 57번 글 참조) Because an angel is thus a recipient he is a heaven in least form, as shown above in its chapter; and a man also, so far as he receives heaven, is a recipient, a heaven, and an angel (see above, n. 57).
이런 사실을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This is thus described in Revelation: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계21:17) He measured the wall of the holy Jerusalem, a hundred and forty and four cubits, the measure of a man, which is that of an angel. (Rev. 21:17)
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 ‘성’(城, Jerusalem)은 주님의 교회, 더 높은 의미로는 천국을(주64), ‘성곽’은 진리, 거짓과 악의 폭행에 맞서 방어하는 진리를(주65), ‘백사십사’는 모든 선과 진리 전체를(주66), ‘측량’은 그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주67), ‘사람’은 일반적으로는 선과 진리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구체적으로는 그래서 천국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Jerusalem” means here the Lord’s church, and in a more eminent sense, heaven;(C64) the “wall” means truth, which is a defense against the assault of falsities and evils;(C65) “a hundred and forty and four” means all goods and truths in the complex;(C66) “measure” means what a thing is,(C67) a “man” means one in whom are goods and truths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thus in whom is heaven.
그리고 이런 이유로 천사가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에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이라 하신 것입니다. And as it is from this that an angel is a man, it is said “the measure of a man, which is that of an angel.”
이것이 위 말씀의 영적 의미입니다. This is the spiritual meaning of these words.
이런 의미를 모르고서는 ‘성곽’의 의미가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인 것68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Without that meaning how could it be seen that “the wall of the holy Jerusalem” is “the measure of a man, which is that of an angel”?68
74. 이제 경험 이야기를 하지요. Let us now turn to experience.
천사들이 사람 모습, 곧 사람들임을 저는 수천 번 보아오고 있습니다. That angels are human forms, or men, has been seen by me a thousand times.
저는 그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어떨 땐 혼자, 어떨 땐 여럿과 함께 대화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람과 다른 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가끔 그들이 사람과 너무 똑같아 놀라곤 했습니다. I have talked with them as man with man, sometimes with one, sometimes with many together; and I have seen nothing whatever in their form different from the human form; and have occasionally been surprised to find them such.
이런 일이 무슨 환상이나 환각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까 봐, 저는 완전히 깨어 있는 중에 제 온몸의 감각이 다 정상인 상태, 그래서 아주 선명하게 지각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런 경험을 하도록 허락받았습니다. And that this might not be said to be a delusion or a vision of fancy, I have been permitted to see angels when fully awake or in possession of all my bodily senses, and in a state of clear perception.
저는 종종 그들에게 기독교계 사람들은 천사와 영에 관하여 믿기를, 그들은 형태가 없는 정신적인 존재들, 심지어는 순수한 생각들이라는 것, 그 안에 무슨 기운이 좀 있는 아주 가벼운 것들인 점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And I have often told them that men in the Christian world are in such blind ignorance in regard to angels and spirits as to believe them to be minds without form, even pure thoughts, of which they have no idea except as something ethereal in which there is some vitality.
그렇게 그들은 천사들은 생각하는 거 말고는 아무 인간적인 게 없다고 보기 때문에 믿기를, 그들은 볼 수 있는 눈도, 들을 수 있는 귀도 없으며, 말할 수 있는 입이나 혀도 없다고 믿고 있는, 거의 장님 수준의 무지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And as they thus ascribe to angels nothing human except a thinking faculty, they believe that having no eyes they do not see, having no ears they do not hear, and having no mouth or tongue they do not speak.
[2] 이 말에 천사들은 자기들도 세상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음을, 특히 배운 사람들, 심지어 성직자들 중에 더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To this the angels replied that they are aware that such a belief is held by many in the world, and is prevalent among the learned, and to their surprise, even among the clergy.
그 이유를 그들은 말하기를, 지식인들, 이들은 리더들이며, 천사와 영에 관한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만든 자들인데, 이들이 겉 사람의 감각만 가지고 그런 관념들을 만든 거라고,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 내면의 빛이나 누구에게나 심긴 보편적 아이디어로는 생각하지 않고 대신 이런 어처구니 없는, 남이 만든 관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엉터리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왜냐하면, 겉 사람의 감각만 가지고 만든 관념들은 오직 자연계에 속한 것만 받아들이고, 그 이상의 것은 전혀, 그래서 영계에 속한 그 어떤 것도 받을 수 없기69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The reason, they said, is that the learned, who were the leaders and who first concocted such an idea of angels and spirits, conceived of them from the sense conceptions of the external man; and those who think from these, and not from interior light and from the general idea implanted in everyone, must needs fabricate such notions, since the sense conceptions of the external man take in only what belongs to nature, and nothing above nature, thus nothing whatever of the spiritual world.69
천사들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그들의 리더십들로부터 온 이런 거짓된 생각들을 채택, 안내받은 사람들은 그 결과, 먼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을 정하며, 그걸 믿고, 그리고는 그게 이치에 맞다 여기게 되어 나중엔 그 입장에서 쉽게 물러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고정관념에 안주하게 됩니다. From these leaders as guides this falsity of thought about angels extended to others who did not think from themselves but adopted the thoughts of their leaders; and those who first take their thoughts from others and make that thought their belief, and then view it with their own understanding, cannot easily recede from it, and are therefore in most cases satisfied with confirming it.
[3] 천사들 말이, 오히려 신앙과 하트가 단순한 사람들은 천사에 대한 그런 아이디어는 없고, 대신 단순히 하늘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하늘로 말미암아 그들 안에 심긴 걸 세상 학문으로 지워버리지 않았으므로 형태 없는 그 무엇에 대한 어떤 관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The angels said, furthermore, that the simple in faith and heart have no such idea about angels, but think of them as the men of heaven, and for the reason that they have not extinguished by learning what is implanted in them from heaven, and have no conception of anything apart from form.
이것이 교회 안에 있는 천사들이 조각상이든 그림이든 왜 항상 사람 모양인가 하는 이유입니다. This is why angels in churches, whether sculptured or painted, are always depicted as men.
천국으로 말미암은 이런 인사이트에 관하여 천사들의 말은, 그것이 신앙과 생활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주님의 신성이라고 합니다. In respect to this insight from heaven they said that it is the Divine flowing into such as are in the good of faith and life.
※ 각주
64.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Jerusalem” means the church (n. 402, 3654, 9166).
65. ‘성곽’은 거짓과 악의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The “wall” means truth defending against the assault of falsities and evils (n. 6419).
66. ‘열둘’은 모든 선과 진리 전체를 의미합니다. “Twelve” means all truths and goods in the complex (n. 577, 2089, 2129, 2130, 3272, 3858, 3913). ‘칠십이’와 ‘백사십사’ 역시 같습니다. 열둘(12)의 배수들이기 때문입니다. Likewise “seventy-two,” and “a hundred and forty-four,” since this comes from twelve multiplied into itself (n. 7973). 말씀에 나오는 모든 숫자는 그 상징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All numbers in the Word signify things (n. 482, 487, 647, 648, 755, 813, 1963, 1988, 2075, 2252, 3252, 4264, 4495, 5265). 배수들은 곱하기 전 그 본래의 수가 상징하던 것과 같은 것을 상징합니다. Multiplied numbers have a like signification as the simple numbers from which they arise by multiplication (n. 5291, 5335, 5708, 7973).
67. 말씀에서 ‘측량’은 진리와 선 측면에서 본 어떤 것의 퀄러티를 의미합니다. “Measure” in the Word signifies the quality of a thing in respect to truth and good (n. 3104, 9603).
68. 말씀의 영적 혹은 속뜻에 관하여는 계시록 백마에 관한 설명이나 새 예루살렘과 그 천적 교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In regard to the spiritual or internal sense of the Word see the explanation of the white horse in Revelation, and the appendix to the 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69. 사람은 겉 사람의 감각 관념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지혜로 머물게 됩니다. Unless man is raised above the sense conceptions of the external man he has very little wisdom (n. 5089).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감각 관념들을 넘어선 생각을 합니다. The wise man thinks above these sense conceptions (n. 5089, 5094). 사람이 이런 걸 극복하면 그는 더 밝은 빛 가운데 들어가며, 마침내 천국의 빛 안으로 들어갑니다. When man is raised above these, he comes into clearer light, and finally into heavenly light (n. 6183, 6313, 6315, 9407, 9730, 9922). 이런 걸 극복하고 위로 올라감이 고대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었습니다. Elevation and withdrawal from these was known to the ancients (n. 6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