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예배를 준비하다가 눈에 들어온 참 신선한, 아니 오히려 제 안에 깊은 울림을 주신 메시지가 하나 있어 나누고자 합니다. 살짝 어리둥절한 점은, 오늘 본문과 또 그 관련 내용을 한 두어 번 이미 다룬 것인데도 그때는 못 보고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

 

본문은 창세기 1장 30절,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고, 관련 내용은, 창세기 주석 Arcana Coelestia 59번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거듭남 이전, 즉,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은 탐욕 cupidity가 주가 됩니다. 사람은 그 전체가 그저 탐욕과 탐욕에서 나오는 거짓들로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런 상태에서 거듭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한테서 거듭남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이들 두 가지, 탐욕과 거짓이 그 사람 안에서 갑자기 동시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살면서 습득하여 온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인데요,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사람은 그냥 통째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악하지만 그래도 유일한 생명인데 그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셈이니까요.

 

악한 영들은 사람 안에서 그와 함께하면서 먼저 그의 탐욕들을 오랫동안 수많은 방법으로 자극합니다. 흥분 excite하게 해서 홀딱 빠지게 하지요.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입니다. 계속 그러다 보면 탐욕들도 살짝 느슨해지고, 시큰둥해지는데요, 그럴 때 주님은 그 틈을 타 사람을 선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람은 변화됩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 안에서 이런 일들을 계속 겪습니다...

 

네, 바로 이런 내용이며, 이 내용은 위 30절 본문 중 ‘푸른 풀’과 관련된 설명 가운데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제 시선을 오랫동안 사로잡은 부분은 바로

 

...이들 두 가지, 탐욕과 거짓이 그 사람 안에서 갑자기 동시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살면서 습득하여 온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인데요,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사람은 그냥 통째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악하지만 그래도 유일한 생명인데 그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셈이니까요...

 

이 부분입니다.

 

이 기술(記述)을 통해 저는 저의 거듭남 전 과정 일평생 통해 지금 이렇게 나름 버젓이 아름답게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 노릇 하고 있게 된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안 탐욕과 거짓을 가지고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신 주님의 자비와 사랑, 섭리입니다.

 

저 같으면, 보통은 일단 이런 것부터 제거하고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썼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정말 제 안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 티는 아주 잘 보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참으로 주님은 저와 다르시며,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시야, 주님의 섭리는 참으로 저와 다르심을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넘어지겠지만 그러나 점점 그 빈도는 줄어들며, 점점 악한 영들의 악한 생각, 지옥의 기운을 거절하게 될 것입니다. 점점 모든 말과 행동을 오직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 향한 애정을 가지고 즐겁게 자원함으로 하게 될 것이며, 결국엔 온전히 주님 편에 서게 되어 참된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https://bygrace.kr/414

 

우리의 탐욕과 거짓을 대하시는 주님의 섭리 (2/18, D5)

오늘 새벽예배를 준비하다가 눈에 들어온 참 신선한, 아니 오히려 제 안에 깊은 울림을 주신 메시지가 하나 있어 나누고자 합니다. 살짝 어리둥절한 점은, 오늘 본문과 또 그 관련 내용을 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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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내가 지상에서 보는 이 성경 말씀을 천국 천사들은 어떻게 볼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창세기 주석인 Arcana Coelestia 64번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1장을 마무리하는 내용인데요...

 

...이것이 천사들이 보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보는 천사들의 인식, 즉, 천사들은 말씀을 이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심지어 단어 하나가 가지는 무슨 비슷한 의미조차 전혀 모르며, 관심이 없습니다. 천사들은 말씀에 나오는 나라 이름들, 도시 이름들, 강과 사람들 등, 성경 역사서, 선지서에 자주 나오는 그런 것은 여전히 잘 모릅니다.

 

그들은 오로지 글들과 이름들이 상징하는 어떤 아이디어만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낙원의 아담 하면, 그들은 태고교회를 지각합니다. 물론, 교회 자체가 아니라 그 교회가 가졌던 주님 신앙을 지각하는 것이지요.

 

노아 하면 태고교회의 후손들로 이어져 아브람의 때까지 계속되었던 교회를 지각하며, 아브라함 하면 천사들은 결코 아브라함을 개인으로 지각하는 게 아니고, 아브라함으로 표현된 그의 구원 신앙을 지각하는 것입니다.

 

네, 이런 식이지요. 천사들은 이렇게 글들과 이름들과는 완전히 별개로 영적, 천적인 것들을 지각 perceive 합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이것이 바로 내적 시야 internal sight 로 보는 것이며, 좀 더 익숙한 표현을 빌리면, 영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야는 우리가 사후 저 세상에서 눈을 뜰 때 바로 시작될 시야입니다만 아주 특별하게 지상에서 이런 시야를 힘쓰는 분들이 계십니다. 네, 이런 분들은 그 영혼의 내면이 단계별로 열려 열린 만큼 그에 해당하는 천국을 누리시게 되지요.

 

아직 지상에 머무를 때, 미리 이런 시야를 힘쓰는 큰 유익들 중 하나는 바로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시야를 갖게 되는 것인데요, 주님의 눈으로 온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곧 다음 말씀처럼 말이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우리가 이런 시야를 갖게 되면 우리는 일상을 넘어 천사들처럼 그 영적 spiritual 의미, 그 천적 celestial 의미를 보게 됩니다.

 

부디 내적 시야로 일상을 보며, 거기서 주님의 마음을 맛보아 아시는 복된 나날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https://bygrace.kr/401

 

일상(日常)을 내적 시야 internal sight 로 보기(2/16, D3)

평소 내가 지상에서 보는 이 성경 말씀을 천국 천사들은 어떻게 볼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창세기 주석인 Arcana Coelestia 64번 글에 나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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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특별한 뭐가 없으면 틈틈이 EBS 한국기행과 세계테마기행을 즐겨 보는데요, 오늘은 어제 오늘 이걸 보다 깨달은 거이 있어 잠깐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창세기 1장 24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 말씀의 아케이나(arcana, inner sense, 속 뜻)를 공부하던 중, Arcana Coelestia 44번 내용 중에,

 

사람은 땅처럼 먼저 자기 안에 신앙에 관한 지식들을 심어 무얼 믿고 무얼 행해야 할지를 모르고서는 어떤 선도 낳을 수 없습니다. Man, like the earth, can produce nothing of good unless the knowledges of faith are first sown in him, whereby he may know what is to be believed and done.

 

하는 문장에 눈길이 갔더랬습니다. 특별히 땅을 사람의 마음으로 연결하는 표현에 말이지요...

 

특별히 세계테마기행 최근 편 중 한 주 주제가 ‘벼랑 끝을 걷다, 협곡 기행’편을 보는데 오... 정말 지구 상 어마어마한 협곡들을 소개하는데 비록 영상으로지만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양 프랑스령 레위니옹 살라지 협곡, 실라오스 협곡, 그리고 중국의 시링협곡, 언스대협곡,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라이드리버캐니언 등입니다.

 

이 장엄, 광대, 광활한 장면들을 또 드론으로 말미암아 정말 기가 막힌 영상으로 보여주는데요,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렇게 계속 감탄에 감탄을 계속하다가...

 

오, 할렐루야! 이 모든 광경, 곧 땅의 모습 그 장관이 주님 보시기에 사람의 마음이겠구나 싶은 겁니다. 주님이 우리 인간의 마음을 보실 때, 저렇게 보이시는가 보다 싶은 순간, 엄청난 전율이 일며, 말할 수 없는 큰 감동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반짝이는 말씀 구절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대하16:9)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8:36)

 

주님이 내 안에 조성하신 마음의 어떠함에 대해 조금, 아주 조금, 그러나 엄청난 무슨 발견을 한 것 같은 아주 흥분된 순간이었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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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있어 하루 앞당겨 오늘, 아이들의 세배를 받았습니다. 어제가 두 사람의 만남 이백일 되는 날이었다고 하는 큰아들 내외... 이 짧은 기간에 만나 결혼도 하고, 예쁘게 살고, 그리고 오늘, 특히 며느리가 시부모님께 새해 첫인사, 세배를 드리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마침 타지에 나가 일하는 둘째도 여러 날 만에 그리운 집을 찾아와 함께 온 식구가 참 즐겁고 행복하게 새해맞이를 하였습니다.

 

어리둥절합니다. 작년 여름 초입만 해도 내년 구정 설 땐 며느리의 세배를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주님의 하시는 일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우리만 새해 인사 나누기 그래서 먼저 주님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다만 주님께 사람에게 하듯 단체로 절하는 게 좀 그래서 간이 예배로 대신했습니다. 예배 후, 늘 하던 대로 먼저 남자는 한 줄 이쪽에, 여자는 저쪽에 주욱 서서 서로 자기 짝을 마주 보고 ‘서로에게 인사’ 구령에 맞춰 상대에게 정중히 목례,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 껴안고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순서를 따라 부모에게 자녀들이, 그리고 형제들끼리는 서로 맞절로 새해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비록 장성하여 결혼했어도, 그리고 벌이가 있어도 불구하고 세뱃돈을 준비, 각자에게 봉투를 주니 어색해하면서도 좋아합니다 ^^ 전에 장인어른 생전에 그렇게 하시는 걸 보면서 참 좋아 보여 저희도 따라 하는데 해보니 역시 참 좋습니다 ^^

 

혹시 내년엔 새 식구들, 가령 둘째 며느리와 그리고 손주들이 함께하게 될까요? ^^

 

세배 예배를 준비하면서 마침 명절 설 연휴라 이 지상의 명절에 관한 영적 의미, 곧 아케이나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빛을 구하며 함께 나누기를...

 

창세기 2장 1절로 3절 본문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2:1-3)

 

이 말씀은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으로 볼 때 아주 명료해지는데요, 혼돈과 공허, 흑암 가운데 있던 인생에게 빛이 비취고, 궁창이 만들어지며, 뭍이 드러나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씨 가진 나무가 나고, 두 큰 광명체가 켜지며, 바다 생물과 공중의 새, 그리고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들에 이어 드디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 이 일련의 과정...

 

매 단계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가운데 그러나 주님의 동행은 끝까지 함께 하시고, 거듭남 전 과정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결과 사람이 자기 의지로 주님을 사랑하여 즐겁게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게 되는 풀 스토리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때입니다. 이때 평생 그를 괴롭히며, 부추기던 악한 영들이 이때 비로소 그를 포기, 그로부터 떠나가는, 물러나는 일이 일어나는데요, 바로 이 상태, 즉 이제 더 이상 주님이 그 사람 안에서 그의 거듭남을 위해 수고로이 애쓰실 필요가 없으신 상태, 이 상태가 바로 안식의 상태요, 참된 쉼의 상태인 것입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이 상태가 바로 거듭남의 완성 상태, 곧 천국의 상태, 안식일의 상태인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자녀들의 세상 명절 연휴의 쉼과 휴식이 바로 이래야 하겠습니다. 안식의 영적 의미를 붙들고, 참된 쉼, 곧 주님을 사랑하여 즐겁게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여 악한 영들로 하여금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드는 그런 연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복된 설 명절 연휴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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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눈 수술 4주차가 되어 이제 다시 슬슬 주님 주신 소명, 일상 부르심의 자리, 곧 말씀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돌아가면서 한 가지, 무슨 변화를 주고자 하는데요, 다름 아닌, 그간 한 7, 8년 몸 담던 구글 유튜브를 떠나 개인 블로그로 옮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닫는 것은 아니고요, 유튜브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둥지를 옮기면서 접하는 정말 큰 변화는 바로 영상 및 오디오에서 글과 문장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거의 모든 것을 원본으로, 원고로 만나시게 될 겁니다 ^^

 

저의 유튜브 5분 메시지는 두 가지, 하나는 창세기 번역,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천국과 지옥 번역이었는데요, 네, 그대로 각각 ‘Arcana Coelestia(天界秘義) 번역’ 및 ‘Heaven and Hell(天國과 地獄) 번역’으로 맵핑되겠습니다

 

제가 힘쓰는 이 내용들이 사실은 참 재미없는, 정말 별 관심을 못 끄는 그런 주제들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쉬면서 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냥 다 내려놓을까...’

 

그러나 사막에서, 산과 들, 해안가 절벽에서, 그리고 아토스 성산 작은 칼리비 은수처에서 수십년 홀로 독수(獨修)하다가 주님 품으로 들어가시는 분들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제게 주신 소명 따라 그저 그 소명 받들뿐 제 글의 반응 따라 일희일비 하며 마음이 분심(分心)되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혹시 제 글이 정말 본의 아니게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여러분이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밝히 아셨으면 하는 마음에 보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아름답고 향기로우신 주님을 찬양하오며, 아멘아멘, 할렐루야!

 

https://bygrace.kr/373

 

창1, AC.1-5

창1 Genesis 1 1. 구약 말씀을 글자로만 읽어서는 아무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눈치조차 챌 수 없는데요, 그것은, 말씀의 이쪽 파트에는 천국의 깊은 비밀들이 담겨 있다는 것과, 그 안에 들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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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D1)-제9권42호통425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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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86. 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Verse 17. And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and his house, because of the word of Sarai, Abram’s wife.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기억-지식들이 파괴되었음을, ‘그 집에’, 그가 모았던,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천적인 것에 인접해 있어야 했던 진리 때문에를 각각 의미합니다.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signifies that the memory-knowledges were destroyed; “and his house” signifies which he had collected; “because of the word of Sarai, Abram’s wife” signifies because of the truth that was to be adjoined to the celestial.

 

※ 주님의 허락으로 영안이 열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영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우리처럼 그 사람의 몸을 보고 있지만 말입니다. 또한 이처럼 우리 안의 천사들은 말씀을 속뜻으로 읽습니다. 비록 우리 눈을 통해 겉 글자로, 사람의 언어로 읽지만 말입니다.

 

※ 말씀의 아케이나에 접근 혹은 도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스베덴보리도 최대한 쉽게 풀어쓰려고 쓴 것이겠지만...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이 아파트만한 돌더미, 흙더미를 죽을힘을 다해 뒤져 겨우 엄지손톱만 한 금광석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발견이라도 하면, 아니 반드시 발견하게 하시는데, 그때 그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 이제부터라도 라틴어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포츠(Potts, 1888-1902)는 왜 클라우즈(Clowes, 1774-1806)의 초역을 재역했을까요? 그리고 NCE(2012)를 낸 쿠퍼(Cooper)는 왜 바로 라틴 원전(1749-1756)으로 갔을까요? 책 ‘천국과 지옥’을 번역한 김은경은 수많은 영역본이 있었음에도 왜 바로 라틴 원전으로 한(韓)역했을까요? 번역은 가급적 원전을 가지고 직접 해야지 역본을 가지고 하면 아주 엉뚱한 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 전달 게임’처럼 말이지요. 한글 성경도 개역의 경우, 영역, 한(漢)역을 가지고 한 결과, 많은 오역이 있어 이번 개역개정의 경우는 직접 히브리어, 헬라어 원전으로 번역한 것처럼 말입니다.

 

 

1487.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And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이것이 기억-지식들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함이라는 것은 ‘바로’의 의미가 일반적으로는 기억-지식이며, 결과적으로는 그런 지식에 속한 기억-지식이라는 것을 보면, 그리고 ‘큰 재앙을 내리심’의 의미가 파괴됨이라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 memory-knowledges were destroye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Pharaoh” as being memory-knowledge in general, consequently the memory-knowledges that belong to such knowledge;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being “smitten with plagues” as being to be destroyed.

 

기억-지식들과 관련하여 이 경우는 이렇습니다. As regards memory-knowledges the case is this.

 

어린 시절, 이 기억-지식들은 그저 단순히 알려는 목적 외에 무슨 다른 거 없이 습득되지만, 주님의 경우는 진리에 대한 기쁨과 애정으로 습득되었습니다. In childhood they are acquired for no other end than that of knowing; with the Lord, they were acquired from the delights and affection of truth.

 

어린 시절 습득한 기억-지식들은 그 수가 엄청나지만, 나중에 주님에 의해 쓰임 받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배치됩니다. 먼저는, 생각하는 능력이 생기게 하시려고, 두 번째는, 생각의 재료가 될 수 있게 하시려고, 끝으로, 이게 그 원하시는 건데요, 다시 말해서, 삶 자체가 쓰임새로 구성되며, 쓰임새의 삶이 되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The memory-knowledges acquired in childhood are very numerous, but are disposed by the Lord into order so as to serve for use; first, to give the ability to think; then that they may be of use by means of thought; and lastly that this may take effect, that is to say that the very life may consist in use, and be a life of uses.

 

※ 쓰임새의 삶을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좋은 예는, 예를 들면,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기 위해 법을 공부하여 판검사가 되고자 하는 경우, 또는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고자 하는 경우 등이 있겠습니다.

 

이것이 어린 시절 습득한 기억-지식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게 없으면, 겉 사람은 결코 속 사람과 상호결합할 수 없으며, 동시에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These are the things performed by the memory-knowledges that are acquired in childhood; and without them the external man can never be conjoined with the internal, and at the same time become use.

 

사람이 쓰임새의 사람이 될 때, 즉 그가 모든 걸 그 쓰임새에 따라 생각하고, 그 쓰임새대로 행할 때, (만일 대세를 따르지 않고, 대신 그런 쓰임새의 실천을 통해 습득된 성품에서 나오는 조용함 가운데 있다면, 그 처음 용도, 곧 사람으로 하여금 합리와 이성의 사람이 되게 하려던) 기억-지식들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어 파괴됩니다. When man becomes use, that is, when he thinks all things from the end of use, and does all things for the end of use—if not by manifest reflection, still by tacit reflection from a nature acquired by so doing—then the memory-knowledges which have served the first use—that the man may become rational—being no longer of service, are destroyed; and so on.

 

※ ‘대세를 따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지식의 습득과 추구를 자기 사랑을 위해 한다는 것이며, ‘합리와 이성의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은 그 지식이 머리에만 저장되어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 ‘기억-지식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쓰임새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회유와 저급한 시도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 주님으로 말미암은 공동선 앞에서는 세속과 세상의 얄팍한 잔머리는 설 데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여기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들입니다. These are the things here meant by the words “Jehovah smote Pharaoh with great plagues.

 

 

1488. 그 집에 And his house.

 

이것이 그가 수집한 기억-지식이라는 것은 ‘’의 상징, 곧 ‘수집되어 이곳에서 기억-지식이 되는’이라는 의미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which he had collecte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house,” as being, in this place, the memory-knowledges that are collected.

 

Potts 역(1888-1902)의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Cooper 역(2012)에서는 ‘사실’(fac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지식’이란 무엇인가가 은근, 참 중요합니다. 참고로, Potts는 앞서 다른 분의 번역, 곧 Clowes 역(1774-1806, from the Original Latin)을 개정, 편집하였지만, CooperClowes처럼 라틴 원전을 직접 번역했습니다.

 

기억-지식을 수집하고, 그걸로 겉 사람의 틀을 만들어 세워가는 과정은 실제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 여러 곳에서는 그걸 ‘건축’이나 ‘가옥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처럼 말입니다. To collect memory-knowledges, and by their means frame the external man, and build it up, is not unlike building a house; and therefore such things are signified in many passages of the Word by “building,” and by “building houses,” as in Isaiah: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사65:17, 21-22) I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y shall build houses, and inhabit them; and they shall plant vineyards, and eat the fruit of them; they shall not build and another inhabit; (Isa. 65:17, 21–22)

 

여기서 ‘가옥’은 거기 지혜와 지성이 있어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이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이 본문은 주님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다루고 있습니다. here “houses” mean where there are wisdom and intelligence, thus where there are the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for the Lord’s kingdom is here treated of, namely,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렘29:5) Build ye houses and dwell in them; and plant gardens, and eat the fruit of them; (Jer. 29:5)

 

그 의미가 유사하지요. where the meaning is similar.

 

시편입니다. In David: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시112:1, 3) Blessed is the man that feareth Jehovah, that delighteth greatly in his commandments; wealth and riches are in his house, and his righteousness endureth forever; (Ps. 112:1, 3)

 

부와 재물’은 지혜와 지성, 즉 지식에 관한 부와 재물을 가리키는데, ‘그의 집에’, 즉 이 지식이 그의 안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where “wealth and riches” denote the wealth and riches of wisdom and intelligence, thus knowledges; which are “in his house,” that is, are in him.

 

[2]’이 스바냐에서는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House” is used in the opposite sense in Zephaniah:

 

그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그들의 재물이 노략 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습1:12-13) I will visit upon them that say in their heart, Jehovah hath not done good, and hath not done evil; and their wealth shall be for a spoil, and their houses a desolation; and they shall build houses and shall not inhabit them, and they shall plant vineyards but shall not drink the wine thereof. (Zeph. 1:12–13)

 

학개에서는 In Haggai: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학1:8-10) Go up into the mountain, and bring wood, and build the house. Ye looked for much, and lo, it came to little; and ye brought it into the house, and I did blow it away. Why? saith Jehovah. Because of my house, which is deserted, while ye run everyone to his own house; therefore upon you are the heavens shut from dew; (Hag. 1:8–10)

 

’은 머리를 써서 거짓에 이른 기억-지식을 가리킵니다. houses” denote memory-knowledges by which, through reasoning, come falsities.

 

이사야에서는 In Isaiah: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사5:7-9) Woe unto them that join house to house, that cause field to draw near to field, till there be no place, and ye dwell alone in the midst of the land. Shall not many houses be for a desolation, great and good, without an inhabitant? The vineyard of Jehovah is the house of Israel; (Isa. 5:7–9)

 

이 또한 사용한 결과, 거짓에 이른 기억-지식을 가리킵니다. also denoting memory-knowledges by means of which come falsities.

 

아모스에서는 In Amos:

 

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므로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지리라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암6:11-12) Behold, Jehovah commandeth, and will smite the great house with breaches, and the little house with clefts. Shall horses run upon the rock? Will one plow there with oxen? But you have turned judgment into gall,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into wormwood; (Amos 6:11–12)

 

’은 같은 의미로 거짓과 거기서 나오는 악을, ‘’은 머리 쓰는 것(reasoning)을, ‘정의’는 ‘쓸개로 바뀌는’ 진리를, ‘공의의 열매’는 ‘쓴 쑥으로 바뀌는’ 선을 각각 가리킵니다. where “houses” denote in like manner falsities and the derivative evils; “horses,” reasoning; “judgment,” truths, which are “turned into gall”;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goods which are “turned into wormwood.

 

[3] 그래서 말씀 전반에 ‘’은 인간의 마음을, 그 안에 지성과 지혜가 있어야 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Thus throughout the Word, “houses” denote human minds, in which there should be intelligence and wisdom.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본문의 ‘바로의 집’은 이걸 써서 지성이 오고, 그렇게 해서 또 지혜가 오는 기억-지식을 가리킵니다. In the passage before us, “the house of Pharaoh” denotes memory-knowledges by means of which comes intelligence, and thereby wisdom.

 

또 같은 내용이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도 상징되고 있습니다. The like is also signified by the house which Solomon built for the daughter of Pharaoh (1 Kings 7:8, etc.).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왕상7:8)

 

’은 마음, 그 안에 지성과 지혜가 있고, 그 안에 의지에 속한 애정이 있는 마음을 가리키기 때문에, 말씀에 나오는 ‘’이라는 단어는 폭넓은 상징을 갖는 단어입니다만, 특별히 어떤 때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그것이 서술하고 있는 그 대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Because “houses” denote minds, in which are intelligence and wisdom, and in which are affections belonging to the will, the word “house” in the Word is of a wide signification; but what its specific signification is, may be seen from the things of which it is predicated.

 

또 사람 자신을 일컬어 ‘집 한 채’ 또는 ‘어떤 집’이라고도 합니다. Man himself is also called “a house.

 

 

1489.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Because of Sarai, Abram’s wife.

 

이 표현이 ‘천적인 것에 인접해 있었어야 할 진리 때문에’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내’와, 결과적으로 위 12절과 관련된, 천적인 것에 인접해 있을 진리로서의 ‘아내 사래’가 상징하는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because of the truth that was to be adjoined to what is celestial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wife,” and consequently of “Sarai the wife,” as being truth that is to be adjoined to the celestial, concerning which above, at verse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2절)

 

이 경우는 이런데요, 사람의 어린 시절, 쓰임새 수행의 결과 그를 이성적인(rational) 사람이 되게 한 지식의 경우, 파괴되어 지워지지 않는 한, 진리는 천적인 것과 결코 결합할 수 없습니다. The case is this: unless the knowledges which in childhood have performed the use of making the man rational are destroyed, so that they are as nothing, truth can never be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 여기서 말하는 ‘이성적인, 합리적인’이라는 말은 다분히 지식을 추구하는 동기가 불량한 사람, 즉 아는 건 많은데 이기적이고,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런 식으로 사용된 지식은 파괴되고, 지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걸 극복해야 다음 단계인 영적, 천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 첫 기억-지식들은 대개 땅에 속하고, 육체적이며, 세속적입니다. These first memory-knowledges are for the most part earthly, corporeal, and worldly.

 

어린아이가 배우는, 계명에 가까운 가르침들이 사실은 신성(Divine)일지라도, 어린아이는 여전히 이런 지식들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그런 것 말고 거기서 무슨 다른 아이디어를 얻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이들 가장 낮은 수준의 지식들이 이 아이 마음에 달라붙어 있고, 얘는 오직 거기서만 무슨 아이디어를 얻고 있는 한, 이 아이의 마음은 다음 단계로 고양될 수가 없습니다. However Divine may be the precepts that a child learns, he still has no other idea concerning them than that which is obtainable from such knowledges; and therefore, so long as those lowest knowledges cling to him, from which are his ideas, his mind cannot be elevated.

 

주님의 경우도 같았습니다. 주님도 여느 아이들처럼 태어나셨고, 여느 아이들처럼 교육받으셨기 때문입니다만 그러나 앞서 죽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은 신적 질서를 따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With the Lord it was the same, because he was born as are other men, and was to be instructed as are others, but according to Divine order, which is such as has been stated.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는 이런 이야기 안에 바로 신적 질서, 신성한 플랜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겉 사람이 어떻게 속 사람과 결합하고, 그래서 겉이 어떻게 신성이 되는지 하는 것입니다. In these things which are said concerning Abram in Egypt, there is described the Divine order—how in the Lord the external man was conjoined with the internal, so that the external also might become Divine.

 

※ 곧 유전 악을 지닌 인성을 입고 태어나신 주님이 어떻게 그 인성(Human)을 벗으시고 신적 인성(Divine Human)을 입으시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7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속뜻)

지식의 사명은 사람을 자연적, 지성적, 영적, 천적 순서를 거쳐 주님에게 이르게 함인데, 이 사명을 수행하지 않는 지식이 있어 파괴되고 지워졌다

 

※ 사람은 혹시 자신의 지식이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어 잘못된 길로 자기를 이끌고 있을 경우, 이걸 바로잡아야만 다음 단계인 영적, 천적 단계로 올라 주님께 이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잘못된 길’이란, 그 지식을 쓰면 쓸수록 주님하고는 멀어지는 걸 말합니다.

 

※ 이것이 인생에게 지식을 주시는 주님의 뜻이요, 목적이고 질서입니다. 사람은 지식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하며, 주님도 어린 시절, 이 과정을 밟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 정하신 신적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2021-10-17(D1)-주일예배(2214, AC.1486-1489, 창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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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6bBrcimTjc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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